왜 경주에 살고 있나요

아라키 준

왜 경주에 살고 있나요

아라키 준

“왜 경주에 살고 있나요?” 경주에 사는 사람 중 이런 질문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40여 차례 경주 여행을 왔던 여행자, 연구자, 문화해설자, 그리고 한옥에 사는 카레집 주인. 이 모든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일본인 아라키 씨는 경주에 온 지 5년이 넘은 지금도 종종 그 질문을 듣는다. 도쿄와 교토에서 살던 그가 경주에 정착한 이유는 무얼까.

경주의 여행자

1995년 겨울, 경주를 처음 방문한 이후로 정착하기 전까지 40여 차례 여행했다고 들었어요.

처음 경주에 올 때는 KTX가 없어서 서울에서 경주까지 새마을호를 타고 왔어요. 제가 일본의 나라를 좋아해서 그 도시의 공기를 알고 있었는데, 경주에서 똑같은 냄새가 느껴졌어요. 사실 신라의 수도였다는 것 외에 경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죠. 그런데도 경주가 좋아서 직장 생활하다가 1주일 정도 쉴 수 있는 틈이 생기면 여행을 왔어요. 자주 오다 보니까 나중에는 친구도 생겨서 친구를 만나러 오기도 했죠.


서울에서 경주로 왔을 때 온도 차가 꽤 있었을 것 같아요.

95년 즈음 도쿄는 뭔가 차가웠고 사람은 많은데 활기가 없었에요. 반면 서울은 같은 도시인데도 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또 서울에 있다가 경주에 오니 같은 나라인가, 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어요. 우선 시간의 흐름 자체가 다르니까요.


경주에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이 어딘가요?

불국사와 석굴암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갔는데 산의 능선이라고 할까요, 그런 데서 오는 경주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여행자로 경주에 처음에 온 게 20여 년 전인데, 그때 아라키 씨는 어떤 방식으로 여행했나요?

일본에 《지구를 걷는 방법地球の歩き方》이라는 여행 잡지가 있어요. 세계 각 나라를 다루는 잡지인데 일본 배낭여행객들이 선호하죠. 그걸 들고 관광지, 식당 등 여기저기 다녔어요. 나중에는 돌아다니기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주가 됐지만요.

경주에 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고분이에요. 무덤이 삶의 터전이랑 가까이 있잖아요. 그런 도시에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저는 고분을 현대식 무덤이 아니기 때문에 일종의 조형물로 봐요. 사실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는 건 어딜 가도 발견할 수 있어요. 어디에서건 누구에게나 죽음이란 오는 것이고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다만 경주에는 고분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가시화되어 있을 뿐이죠.


경주의 고분을 보면 죽음에 관한 두려운 생각보다는 경이가 느껴져요.

고대인이 어느 정도까지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고분과 산의 능선이 참 조화로워요. 특히 봉황로 길가의 고분과 봉황대에서 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죠. 조선 시대의 사람들은 봉황대를 무덤으로 보지 않았어요. 풍수지리적으로 경주의 중심이라 그런 이름을 붙인 거죠. 또 첨성대에 가면 주변의 고분과 풍경을 함께 바라보세요. 자연이랑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답거든요.


경주를 숱하게 여행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관광’이라는 말이 붙으면 자꾸 어딘가 가야 할 것 같지만, 욕심내지 말고 쉬러 오면 좋겠어요. 일상에서 시간에 충분히 쫓기잖아요. 경주에서는 나무 냄새를 맡으며 다니시면 어떨까 싶어요.

경주의 생활자

2011년부터 경주에 정착하고 남산동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집 근처에 서출지라는 연못이 있어요. 제가 경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저는 여행 왔을 때 서출지에서만 시간을 보낸 적도 있어요. 아주 조용한 못이에요. 서출지에 올 때마다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강아지 유키와 거의 매일 산책하듯 가요. 남산은 요즘 논문 때문에 바빠서 잘 못 가지만요.


시내와 가깝지만 남산 덕분인지 또 다른 분위기예요.

경주에 내려와서 처음에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답답하더라고요. 또 큰 개를 키우고 싶었어요. 아내는 개를 좋아하진 않지만, 절실한 제 욕구를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단독주택을 찾아야겠다 생각했죠. 


이곳은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요?

아라키로 들어오는 길 쪽에 ‘야선미술관’이라는 곳이 있어요. 주인이 일본에서 만난 제 오래된 친구인데, 지금 이 자리를 소개해줬어요. 사실 계획을 가지고 집을 지은 건 아니에요. 굳이 계획이라면 ‘개를 키우는 것’, 그거 하나였죠. 처음엔 남산동이 한옥지구라는 것도 몰랐고요.


유키가 이 집을 만들었네요. 한옥을 지으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살아보니 어떤가요?

한옥을 지나치게 낭만화할 수는 없어요. 단열 문제도 있고, 방음도 잘 안 되고요. 일반 주택보다 건축비도 많이 들죠. 장작도 직접 아궁이에 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평생 처음 하는 일이니 어떻게 보면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요. 


카레집인 ‘아라키’에 왔을 때 개인 서재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처음부터 개인 공간과 상업 공간을 합한 형태의 집을 생각했나요?

카레집을 해야지, 생각했지만 집을 지으며 당장 시작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다만 공간을 개방적으로 만들어서 다용도로 열어두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제가 여기 살면서 지켜보니까 한옥은 계획성이 있을수록 못 짓는 것 같아요. 너무 치밀한 계산을 하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부딪히는 대로 하다 보니까 완성까지 가는 거예요.

건축가 토미이 마사노리가 이 집을 지었죠. 두 분이 집을 만들어가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우선 아내와 제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는 걸 신경 써주셨어요. 그리고 실험적으로 대들보를 없애고 다락을 만들었죠. 한옥은 지붕의 기와가 무겁기 때문에 지탱하는 대들보가 필요하지만, 없어도 무게를 지탱할 방법을 연구했어요. 어떻게 보면 전통에서 벗어난 건축이기도 해요. 사실 전통이라는 건 매뉴얼이거든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무난하게, 실수 없이 할 수 있다.’는 거요. 그래서 전통적으로 하면 오히려 쉽게 갔을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방식을 합의한 거죠.

 

천장에 쓰인 글은 무슨 뜻인가요?

제가 직접 쓴 건데요, 지은 날짜와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예요. ‘경주를 사랑하고 한일의 가교 구실을 하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적었어요.

 

경주는 ‘사람의 풍요로움’이 있는 도시라고 말한 걸 들었어요. 여행하며, 살며 만난 경주의 사람들은 어떤가요?

저는 어디까지나 만난 사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경주는 사람을 흡수하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영감을 받으러 오는 예술가들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국립경주박물관에는 박물관 대학이 있어요. 유명한 학자를 매주 불러서 대학 강의 수준의 수업을 받을 수 있죠. 저도 거기 졸업생이에요. 기초반만 해도 1년인데, 강의료도 그렇게 비싸진 않아요. 그런데 등록한 사람들이 와서 참 열심히 공부해요. 문화재에 대한 지식수준이나 문화 의식도 높고요. 그런 지역은 많지 않을 거예요. 

 

요즘은 지진 때문에 걱정이 많을 것 같아요. 특히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잖아요.

경주는 관광도시이다 보니, 관광객이 와야만 경제가 유지돼요. 그런데 이번 지진 때문에 타격이 컸죠. 이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메르스, 이번에는 지진까지 3년 연속 어려움을 겪고 있잖아요. 이건 개인의 노력으로 막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에요. 성실하게 살아도 무자비하게 덮쳐오는 것이니까요. 구조적인 차원에서 극복 방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해요.

경주의 문화해설자

아라키 씨가 작업 중인 논문은 어떤 내용인가요?

일제강점기의 사회관계에 집중하고 있어요. 일본인이 경주에 들어오면서 유적 발굴, 유물 유출, 관광 개발 등의 일을 했거든요. 당시 일본인의 논리가 있고 조선인의 논리가 있으니 그런 부분을 세밀하게 연구하고 있죠.


특히 그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경주는 학문적인 관심이 고대사와 고고학 쪽에 많이 집중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조선 시대나 일제강점기, 근현대기가 많이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선 시대나 일제강점기는 오늘날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할 때 중요한 요소거든요. 어떤 문제가 생겨서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면 그 시대에서 찾는 게 타당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기에 일본인들이 남긴 경주에 관한 자료가 많아요. 아무래도 그런 자료를 분석하는 데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제 이점도 살리고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죠.

요즘에는 논문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해설자로 봉사하고 있어요. 주로 개인 여행객, 어르신들을 많이 만나요.


해설자는 박물관의 안내자잖아요. 아라키 씨는 해설자로서 어떤 태도를 유지하려고 하나요?

유물을 감상할 때 단순히 “아름답네요.”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수습되는 과정이나 일화를 설명하려고 해요. 유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사회적인 맥락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해설자랑 구별되는 관점인 것 같아요. 저는 박물관이 그저 유물을 보러 오는 자리가 아니라 과거의 사람과 대화하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해요.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같이 이야기해보려고 하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해설하다 보면 종종 어떤 분들은 “신라 문화가 으뜸이다, 최고다.”라는 말을 해주길 바라요. 하지만 문화는 우위를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도 신라의 문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만이 최고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차분하고 좋았다고, 객관적으로 얘기해줘서 속이 시원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해설하는 보람이 있죠. 제가 직접 그런 얘길 하진 않지만 밑바탕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해하신 것 같아요. 


학생들도 많이 만날 것 같아요. 경주가 대표적인 수학여행지잖아요. 사실 짜인 일정대로 바쁘게 움직여서 기억에 남는 건 크게 없었지만요.

그래도 수학여행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수학여행이라는 게 경주를 다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거거든요.

신라는 천 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잖아요. 그 시간 동안 가장 소중하게 남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유적지나 유물을 얘기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유적이나 유물은 시간이 지나면 불타거나 유실되거나 없어질 수도 있어요. 절대적인 영원은 없는 거예요. 언젠가는 사라지게 돼요. 그런데 이야기는 달라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비롯해 어마어마한 스토리가 있죠. 세상이 힘든 때일수록 사람들이 원하는 게 스토리인 것 같아요. 스토리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또 이야기를 가지고 유물이나 문화재에 접근해야 그 의미를 완전히 소화할 수 있어요. 저는 소설가도 아니고 연구자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소개하는 게 사명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본격적인 한일 교류 활동을 하진 않지만, 일상 속에서 거리감을 좁히고 싶다, 이런 일본 사람도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접근하고 싶다.”고 말한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한국에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한일 교류의 키워드가 되더라고요. 물론 그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일본 정부나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고작 하나의 인간일 뿐이죠. 한일 교류라는 걸 내세워 활동할 생각은 없지만 아내와 딸이랑 경주에 살면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라키 씨를 만나러 오는 길이 참 차분하고 좋았어요. 이런 경주의 분위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간단히 말하면 문화재랑 관련이 있어요. 문화 유적을 지키기 위해 근처에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없어요. 규제 덕분에 유지되는 부분이죠. 남산동은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지만 도시 근처에서 이렇게 한가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서울을 보세요. 이런 시골까지 가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능 옆에는 2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참 고맙게 들렸어요.

규제라는 게 양날의 검이죠. 인간의 행동과 행위가 제한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 지켜지는 것도 있잖아요. 저도 한옥 지을 때 규제가 많아 괴로웠지만, 정착하다 보니 이런 규제가 좋더라고요. 주변에 이상한 건물이 지어지지 않거든요. 


경주를 다니다 보니 새로운 변화가 반갑기도 하지만 경주만은 이대로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라키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 쪽에서 바라보면, 변함이 없다는 건 늘 신선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현대사회에선 변함이 없다는 건 변하고 있다는 거랑 마찬가지죠. 이런 빠른 세상에서 ‘변함없음’에 가치를 부여하면 경주는 소중한 도시로 인식되지 않을까요? 세상의 속도처럼 변할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게 경주예요. 그럼 다른 것과 똑같이 되어버리니까요. 변함없음의 소중함, 변함없음의 부가가치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빠른 세상에서 모처럼 잘, 경주 같은 도시를 지켜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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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