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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해진 — 아이엠유어스티커스
때론 위로보다 농담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유머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 몰입해야만 한다. 박홍해진은 ‘손님이 왕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스티커를 만든다. 제철인 ‘밈’을 정성 들여 손질해 구성한 꾸러미에는 적절한 농도의 농담이 깃들어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AROUND》 독자들께 인사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13년째 브랜드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는 박홍해진이라고 합니다. ʻ아이엠유어스티커스’를 운영하며 라벨 스티커를 만들고 있어요.
언제부터 스티커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나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나름의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그러던 차에 출장을 나갔다가 우연히 라벨 스티커의 세계에 발을 들였죠. 처음에는 스티커 광인처럼 수집만 했어요. 그러다가 기계를 구해서 취미 삼아 지인들 이름을 넣어서 만들고 선물하기 시작했죠. 은근히 재미있더라고요. 자료가 쌓인 김에 아예 아카이빙 계정까지 따로 만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계정을 본 분이 너무 기발한 아이디어 같다며 제작을 문의해 주셨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의뢰받았고 어쩌다 보니 주문량이 늘어나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어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짤’과 ‘밈’을 소재 삼아 스티커를 제작하고 있죠.
처음 라벨 스티커 기계를 사서 스티커를 만들 때부터 유행어로 디자인했어요. 지인들한테 나눠 줄 용도였으니까요. 제가 평소에 밈을 많이 쓰기도 하거든요. 웃긴 짤이 있으면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 수집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오랫동안 마케팅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에 호감을 느끼는지를 빠르게 습득해야 했어요. 스티커를 만들기 전부터 제가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재료로 삼아본 거죠.
이젠 밈이나 짤 없이는 대화가 힘들 정도로 일상생활 속에 깊숙하게 침투한 것 같아요. 기업에서도 이를 비즈니스에 적용하여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기도 하지요. 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제작자로서 연구를 거듭해야 할 듯싶어요.
유행어는 말 그대로 유행이 있다 보니까 수명이 짧잖아요. 그래서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공부도 하고 재미있는 말도 많이 수집해요. 밈은 세대에 따라 지식의 편차가 커요. 제 친구들이 아는 유행어랑 저희 손님들이 생각하는 밈의 범위가 다르거든요. 특히 원본이나 유래를 모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가 쉽죠. 그래서 일단 고객 연령대를 파악해야 해요. 영 모를 것 같은 유머는 아예 빼버려요. 무엇보다 유머란 건 정말 한 끗 차이잖아요. 이게 어떤 맥락에서 시작된 이야기인지 모르면 자칫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거든요. 재미 삼아 만들었는데 소수자나 장애인을 비하하는 내용이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이트에서 퍼진 걸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책임감을 느끼고 예민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죠.
언어와 미디어를 재가공하는 일이니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살펴봐야겠네요. 특별히 고려하게 되는 부분이 또 있나요?
예전에 캐릭터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저작권 관련해서 소액이라도 법적으로 정리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는 걸 배웠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문제를 잘 살피려고 해요. 트위터에서 시작된 밈 같은 경우에는 최초 발화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출처를 검색해서 원트윗을 쓰신 분께 허락을 구하는 메시지를 보내죠. SNS에서 한 말이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의견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럼에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서 판매되는 것이기도 하고, 이로 인해 기분이 상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되니까 예방 차원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오마카세’라는 이름 아래 손님의 입맛에 맞게끔 꾸러미를 구성하기도 하죠.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스티커라니,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어떤 분들이 많이들 주문하나요?
고객분들이 주문서를 작성해서 보내주시거든요. 가끔 라디오 사연만큼이나 길게 적어서 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대부분 대학생, 취준생,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일상에서 겪는 슬픈 일화를 많이 들려주죠. 읽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친근하게 느껴져요. 그분들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되거든요. 저도 겪어봤으니까요. 그분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나 ʻ갓생(신을 의미하는 ʻGod’과 인생을 뜻하는 ʻ생’의 합성어.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한다.)’ 살고 싶다.”는 이야기예요. 더 열심히 살지 못하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문구를 요청하곤 해요. 그런 분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저는 그 분을 탓하기보단 최대한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제작하려고 하죠.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한 답장으로 스티커를 보내는 일이 펜팔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스티커 한 장에 어마어마한 애정을 담고 있는 셈이네요.
그런가 봐요. 주문이 밀리면 답장이 늦어지는 것처럼 초조해져요. 사실 스티커 좀 늦게 받는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단순히 주문서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편지라고 생각하니, 저 또한 정성을 담아서 보답하고 싶은 거죠. 더 큰 재미를 전하고자 거듭 고민을 하게 되고 상황에 적합한 밈을 찾아보려고 해요. 요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무지 바쁜데 스티커를 만드는 일만큼은 너무 재미있어요. 제 만족을 위해 만든 건데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감동적인 후기를 보내주시는 것도 기쁘고요.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한번은 젊은 무속인이 주문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점집 같은 곳을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분들이 겪는 직업적 고충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아무래도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실 테니 서비스직과 비슷한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어요. 상상에 의존해서 제작해 보내드렸는데, 그분이 너무 만족하셨는지 주변 무속인 분들까지 소개해 준 거예요. 무속인 에디션만 몇 개를 만들었는지(웃음). 간호사분들도 재미있는 내용의 주문서를 많이 보내주세요. 병원 생활이 많이 고되고 힘들다 보니 분노와 울분이 서려 있죠. 어떤 분은 명찰 뒤에 붙여놓고 화가 날 때마다 숨어서 본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선생님들이나 무언가를 창작하시는 분들도 잘 쓰고 있다는 후기를 많이 남겨주세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들지 않은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삶이 팍팍하면 스티커에서 낙을 찾겠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만든 무언가가 사람들한테 묘한 힘을 전해준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죠. “아스팔트에서도 과수원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스티커다.”라고 말해주신 분도 있어요(웃음).
예전에는 스티커를 나만 보는 일기장에만 붙였는데, 이제는 휴대폰과 노트북 등에도 장식하고 있죠.
미팅을 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소지품에 붙은 스티커를 하나하나 보곤 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의 집에 가면 책장을 구경하잖아요. 책 제목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가 있죠. 노트북이나 다이어리에 취향에 맞춰 붙인 스티커 또한 어떤 메시지를 말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스티커 사용하시는 분들께서 최대한 난처한 일을 겪지 않게끔 더욱 신경 쓰려고 해요. 그래픽 티셔츠도 그 그림에 담긴 의미가 별로면 입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잖아요. 스티커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의 내력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생각하니 재미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소장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단가의 현대미술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해진 씨도 평소에 스티커를 비롯하여 다양한 수집품을 모으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를 설명하는 주요한 특징 중 두 가지가 ʻ메모’랑 ʻ수집’이에요. 책을 비롯해서 스티커나 문구류 같은 귀엽고 쓸데없는 물건 모으는 걸 좋아해요. 여행 가서도 그 지역의 작은 문방구를 꼭 들러서 ʻ디깅’을 하는 편이고요. 희귀한 물건들은 즉각 사 모으곤 하죠. 그리고 제가 수집하는 것 중 가장 특이한 게 하나 있어요. 바로 ʻ웃긴 얘기’예요. 평소에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 이야기를 옮겨 적고 있어요. 듣자마자 빵 터질 정도로 유머러스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허접한 이야기도 정말 많아요. 이를테면 몰래 코를 후비던 과장님이랑 눈 마주친 ʻ썰’ 같은 거요.
그런 사소한 이야기는 어떻게 모으기 시작한 거예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턴을 했는데, 그때 저는 회사에 관한 환상이 있었어요. 취직하고 출근하면 날마다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 줄 알았죠. 그런데 회사에선 저한테 허드렛일만 시키고, 인턴이라고 무리에 끼워주지도 않는 거예요. 그런 소외감을 느낀 뒤부터 회사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기 위해서 웃긴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생각해 보면 분명 일을 하면서 웃었던 일도 있을 텐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일하다가 분노했던 거랑 혼난 것들만 기억나잖아요. 그래서 소소한 웃음거리들도 모으기 시작했죠.
수집이 일상의 돌파구가 되어준 셈이네요. 그렇다면 해진 씨가 생각하는 수집의 묘미란 뭐예요?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물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깃든 무언가를 찾았을 때 짜릿하달까요. 수집은 제겐 숙명과도 같은 거예요. 집안 내력이기도 하고요. 저희 외가 쪽 삼촌들이 기가 막힌 애서가거든요. 큰외삼촌께서는 518 민주화 항쟁 당시 사회부에 소속된 기자셨고, 둘째 외삼촌께선 통일부 대변인을 거쳐 기밀 정보 분석에 관한 일을 하셨어요. 두 분 집에는 그 시대 대통령이 보낸 서한이나 북한에서 발간된 책과 잡지들도 많았죠. 기자로 활동하면서 모으신 책과 잡지 자료들도 빼곡했고요. 두 분께서 철학과 역사, 문학을 좋아하셔서 그분들의 서재에는 늘 인간과 삶에 관한 통찰력이 담긴 책들이 숲처럼 어우러져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어마무시한 콜렉터 곁에서 자랐다 보니 은근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저는 수집은 무조건 유전의 영역이라고 봐요. 제 주변 수집가분들께도, 혹시 가족 중에 한 분께서 컬렉터냐고 물어보면 귀신 본 것처럼 “어떻게 아셨냐?”며 놀라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모르는 수집의 세계 속 법칙이 있나요?
수집하는 사람들끼린 이거 얼마 주고 샀냐는 말이 금기어예요. 그게 일종의 예의거든요. 물어봐서 대답해 줬는데 “아이고 그 가격이면 차 한 대 뽑았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감당할 만하고,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샀겠죠. 그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간혹 나중에 엄청 비싼 값으로 팔면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수집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팔 생각으로 물건을 구매하진 않는 것 같아요. 이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예민한 문제라니, 잘 기억해 둬야겠어요(웃음). 스티커를 통해 알게 된 기쁨이 있나요?
보통 수집하는 사람들은 물건들을 자기 공간에 모셔놓고 혼자 즐기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물론 저도 그렇지만 되도록 제가 모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거든요. 그걸 통해서 얻게 된 귀한 인연이 참 많아요. 원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수집을 통해서 더 다채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어요. 덕분에 새로운 사업도 시작하게 됐고요. 신기하게 스티커를 구매해 주시는 분들도 주변에 소개해 주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확장되는 걸 보면서 덕질로 하나 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느껴요. 저도 회사에서 팀장급 연차나 다름없어요. 제 후배 세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기도 하죠. 그런데 스티커를 만들면서 아래 세대 친구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을 듣게 되었어요. 스티커를 매개로 어떤 마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아이엠유어스티커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간혹 스티커를 어딘가에 붙이지 않고 보관만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아끼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접착제에는 수명이 있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예쁜 종이가 되어버리거든요. 저도 그동안 모았던 스티커를 많이 쓰고, 많이 주기도 했어요. 스티커는 선순환이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많이 나눠 주면 또 그만큼 돌아오거든요. 너무 귀엽고 예뻐서 아까워서 못 쓰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감사하기도 하지만, 스티커는 어딘가에 붙였을 때 자기 몫을 다할 수 있어요. 그러니 아낌없이 쓰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에디터 오은재
사진 박홍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