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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처럼 거대한 이상과 변화를 요구하는 꿈은 당연히 아니다. 남은 생 전체를 아우르는 거창한 꿈도 아니다. 그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이 꿈이었다. 어느 정도는 이뤘다. 비록 작은 집이지만 월세도, 전세도 아닌 내 집을 마련했다.
절대적인 규칙이 하나 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내가 사는 집에 타인을 초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없지도 않다. 속으로 횟수를 세어봤다. 친구나 지인이 지금의 집에 발을 들여놓은 게 3회가 넘지 않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홈 파티 같은 걸 조금도 선호하지 않는다. 밖이 아닌 누군가의 집에 오래 있는 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좀 불편하다. 화장실 쓰기도 미안해진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극내향인의 고충이다. 극내향인은 왠지 모르게 늘 피곤하다. 내 집과 내 방은 나를 꼭 닮았다. 행여 있을 수도 있는 타인을 위한 배려 따위는 조금도 없다. 오직 나를 위해 건설한 나만의 성채다. 심지어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장식 또한 거의 없다. 일단 책이 좀 많고, 만화책은 더 많다. 여기에 CD와 LP, 각종 게임기와 게임 디스크 등등. 어제도 나는 아마존에서 CD를 주문하고, 인터넷 게임 숍에서 게임 하나를 배송 받았다. 마침 새해 연휴다. 내 게임 패드가 불타오를 시간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과 타인에게 붙어 있어야 겨우 온전한 것 같은 삶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20대 시절의 나는 후자였다. 그래서 시간을 너무 헛되게 보냈다는 후회의 찌꺼기가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몇 년 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인간관계를 통해 내가 접할 수 있는 감정의 총량이 있다면 이미 다 경험한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필요를 거의 못 느낀다. 나 혼자만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본 결과 이 정도 관계라면 나에게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의미다. 그들의 존재가 그래서 내게는 더욱 소중하다는 것이다.
명탐정 브라운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건일지라도 자연스럽지 못한 눈속임을 걷어내면 세상에 없을 만큼 간단명료한 것이 된다.” 우리 인생도 똑같다. 나는 단순해지고 싶다. 단순한 만큼 단단해지고 싶다. 쉽게 흔들리는 삶은 20대 이후로 작별했다고 믿고 싶다. 도파민에 절여진 삶은 더 이상 없다. 2025년 일을 제외하고 사적으로 잡은 외부 약속이 몇 번이었는지를 헤아려봤다. 정확히 열 번이었다. 이 정도가 딱 좋다.
얼마 전 출연했던 유튜브에서 진행자가 이렇게 물었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게 뭔가요?” 내 대답은 이랬다. “매일 내 방에서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 진심이다. 더 이상 진심일 수 없을 만큼 진심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도로시는 이미 신고 있는 구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열쇠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렇다. 이미 나는 내가 그토록 갖기를 원했던 것을 갖고 있다. 내 집이다. 내 공간이다. 내 삶이다. 여기가 바로 나만의 멋진 신세계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수록곡이다. 이후 수많은 뮤지션이 이 곡을 커버하면서 팝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되었다. 다시 한번 이 작품의 내용을 복기한다. 뇌를 갖고 싶은 허수아비는 지혜로 일행을 구하고,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은 눈물을 쏟는다. 용기를 갈구하던 사자는 무서운 적을 물리치고, 도로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이미 구두를 신고 있다. 그래. 맞다. 우리는 언제나 ‘무지개 너머 어딘가’를 꿈꾸지만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닫기 위해 어떤 경험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화 〈위대한 쇼맨〉(2017)에서 ‘Never Enough’를 불렀던 로렌 앨레드가 발표한 곡이다. 한데 이 곡은 영화 음악이 아니다. 게임 음악이다. 그것도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랜차이즈로 평가받는 ‘파이널 판타지 7-2’의 주제가다. 내 일 다 마치고, 책 좀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가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다. 손가락 힘이 다할 때까지 즐기고 싶은 취미다.
클래식 팝이다. 행여 가수와 곡을 모르더라도 플레이하면 여러분도 들어봤을 확률이 최소 90퍼센트는 넘는다고 장담한다. 이 곡의 제목을 잘못 해석한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는 모두 외롭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 오직 당신과 나 둘뿐’이라는 낭만적 의미를 지닌 관용어다. 여기에서의 당신을 ‘내 집’이라고 바꿔도 좋겠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 〈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