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지 틈에 놓인 이야기

“히사이시 조가 누구야?” 하고 묻는 이에게 ‘Summer’의 선율을 읊어주면 즉시 “아!”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의 곡을 들으면 어떤 작품의 줄거리가 귀로 들려오는 듯하다.

히사이시 조의 소리가 깃든 이야기

<최초의 인간 개톨즈> (1974)
<로봇 아이 비톤> (1976)
<과연 사루토비> (1982)
<오즈의 마법사> (1982)
<테크노폴리스 21C> (1982)
<은하질풍 사스라이거> (1983)
<기갑창세기 모스피다> (1984)
<BIRTH> (1984)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아리온> (1986)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이웃집 토토로> (1988)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비너스 전기> (1989)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1991)
<붉은 돼지> (1992)
<천외마경2 만지마루> (1992)
<소나티네> (1993)
<키즈 리턴> (1996)

<모노노케 히메> (1997)
<HANA-BI> (1997)
<기쿠지로의 여름> (199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웰컴 투 동막골> (2005)
<태왕사신기> (2007)
<마리와 강아지 이야기> (2007)
<벼랑 위의 포뇨> (2008)
<굿바이> (2008)
<언덕 위의 구름> (2009-2011)
<악인> (2010)
<바람이 분다> (2013)
<가구야 공주 이야기> (2013)
<남극지련> (2018)
<니노쿠니> (2019)
<해수의 아이> (2019)
<적호서생> (2020)
<제2의 나라: Cross Worlds> (2021)

히사이시 조의 소리가 깃든 이야기

“클래식 음악에는 거리를 두었다. 낡은 것은 필요 없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 히사이시 조,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중에서

히사이시 조는 고백한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그의 이름을 들으면 피아노 선율, 혹은 오케스트라가 입혀진 음악이 떠오르는 나한테는 그 문장이 퍽 새로웠다. 클래식도 좋아하기는 했지만 가요나 팝송이 더 친근했다는 그의 어린 시절을 곰곰 떠올렸다. 유행곡을 흥얼거리는 작은 일본 남자아이를. 

어릴 적 유행곡이라 하면 과연 ‘신화’나 ‘god’려나. ‘S.E.S.’나 ‘핑클’도 있었다. 좀더 이르게는 ‘H.O.T.’나 ‘젝스키스’ 같은 가수들도. 그들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랩까지 커버했다. 대개 사랑을 노래했고, 사람이나 세상을 향한 공격적인 제스처를 보여줄 때도 있었다. 그들의 춤은 금세 유행해서 간단한 손동작부터 의자를 활용한 고난도 춤까지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가요’는 그런 부류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이나 ‘존 케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일이나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을.

히사이시 조는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가 선택한 건 현대음악이었다. 그중에서도 미니멀 음악을 과감히 시작했다. ‘미니멀 도형 악보’를 그리고, 콘서트를 열면서. 오선지가 아닌 도형을 이용한 악보라니, 모양이 궁금해 검색해 봤지만 명확히는 알 수 없었다. 즉흥 연주 집단과 연주했다는 걸 보면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게 해주는 악보였음은 분명한데, 예술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들은 왜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이 어려울까.

히사이시 조가 미니멀 음악이라는 장르를 계속해서 이어왔다면 어땠을까. 과연 지금 사람들이 카페에서, 사무실에서, 소품숍에서 ‘Summer’를 틀어두듯이, 피아노로 ‘인생의 회전목마’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듯이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히사이시 조는 미니멀 음악에서 벗어나 팝으로 진입했다. 그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에서 영국의 록시뮤직이나 독일의 테크노 팝 그룹 크라프트베르크의 활동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같은 음악인데도 더욱 자유로이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고. 혹시 그는 도형 악보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걸까.

히사이시 조가 영화 음악에 뛰어든 건 그다음의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음악을 제안하면서 우리가 아는 그 히사이시 조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셋. 그 뒤로 40년이 흐를 동안 그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달했던가.

기승전결을 품은 선율

“우선 음악의 3요소는 멜로디, 리듬, 하모니인데, 그중 엔터테인먼트 음악에서 돌출되는 것은 멜로디입니다. 리듬이 시간축, 하모니가 공간축이라고 하면 멜로디는 기억회로 같은 것입니다. 외우기 쉬우니까요.”

—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중에서

히사이시 조는 광고나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엔터테인먼트 음악’이라고 부르며 그것의 기본은 오락이라고 했다. 우리가 쉽게 흥얼거리는 그의 곡들, <벼랑 위의 포뇨>(2008)에서 흘러나오는 “포뇨 포뇨 포뇨” 하는 그것 역시 오락의 일종이리라.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멜로디는 어떤 하나의 작품을 불러온다. 그것은 대개 영화거나 애니메이션이고, 듣고 있으면 금세 뭔가를 보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기쿠지로의 여름>(1999)보다 ‘Summer’를 먼저 알았다. 어떻게 그 음악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연주하기 위해 악보를 프린트하고 음계를 익히며 한 음 한 음 손가락으로 기록한 것만큼은 기억한다. 어릴 때 기억은 다른 시절보다 수명이 길고 깊게 각인되는 경향이 있어 손가락은 그 선율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피아노가 보이면 의자에 앉아 가장 먼저 연주한 것은 보통 그 곡이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Summer’ 도입부가 들려오면 고개를 돌렸다.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것보다 히사이시 조를 흉내 내는 것이 이목을 끌기에 훨씬 좋다는 걸 나는 어릴 적에 알아버리고야 말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떠올려 보자. 과연 그의 말처럼 ‘멜로디가 강조되는 곡’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곡, 엔터테인먼트 음악. 그러니까 히사이시 조 하면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 건 매끄러운 일이다. 그가 처음 만든 애니메이션 음악은 앞서 이야기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만남엔 왠지 대단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단순히 레코드 회사가 오작교 역할을 하여 만난 사이라고 한다. 히사이시 조의 앨범을 만든 회사에서 하야오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시시하다는 생각에 앞서 인연의 힘이 새삼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건 왜일까.

포털사이트에서 히사이시 조와 미야자키 하야오 이름을 넣고 검색하고 스크롤을 몇 번 내리니 재미있는 사진이 눈에 띈다. 아직 젊고 싱그러워 보이는 두 사람이다. 첫 작업 이후 애니메이션 대상에서 최우수음악상을 받았다는 기록을 읽으며 그들의 호흡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두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전에 음악부터 만든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지 보드를 보면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주제나 키워드를 뽑아내고 합의점을 찾아 음악부터 만든다는 것이다. 과연 서로에 관한 믿음과 관심, 애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가능할 일일까. <천공의 성 라퓨타>(1986)나 <이웃집 토토로>(1988), <모노노케 히메>(1997) 등의 음악에는 하야오가 직접 노랫말을 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단짝이라는 단어가 과연 다 설명해 낼 수 있을까. 어떤 인간의 생애는 드라마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Book—《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히사이시 조 | 책세상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들

1. <마녀 배달부 키키>(1989)— ‘바다가 보이는 마을’

마녀가 될 아이는 열세 살이 되면 집을 나서야 한다. 어느덧 열셋이 된 키키. 서북 카리키라 지방은 내일도, 모래도 맑을 거란 일기예보를 듣자마자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언제나 마음먹은 건 바로 해내고 마는 씩씩한 아이. 키키가 검은 옷에 빨간 리본을 메고 “까만 고양이에 까만 옷, 전부 까망이네.” 하고 조금 섭섭한 얼굴을 할 때 엄마가 말한다. “키키, 겉모습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중요한 건 마음이야.” 그때 다시 거울을 보며 읊는 키키의 대답을 사랑한다. “알아요. 마음이라면 걱정 푹 놓으세요. 보여줄 수 없어서 유감이네요.” 항상 웃는 얼굴을 잊지 말라는 키키 엄마의 말을 마음에 담고 나는 ʻ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듣는다. 키키처럼 웃으며 집 밖으로 나가보자 싶어서.

2. <벼랑 위의 포뇨>(2008)— ‘벼랑 위의 포뇨’

벼랑 위에 사는 남자아이 소스케. 어느 날 바다에서 건져 올린 금붕어에게 ʻ포뇨’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양동이에 담아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소중한 것을 살피는 사람의 마음은 어른이건 아이건 왜 이리도 귀할까. 목적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헤아리다가, 소스케의 어린이집 친구가 새로 산 원피스를 자랑하며 소스케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 포뇨가 짓던 뾰로통한 표정이 떠올랐다. 어떤 마음인지 잘 알아 사랑스러운 그것. 포뇨의 심술도 소스케의 사랑도 모두 내가 가져본 적 있는 것이어서 ʻ벼랑 위의 포뇨’를 들으면서 그 선하고 맑은 마음을 생각했다. 사실 가장 오래 생각한 건 포뇨가 뿜은 물줄기에 맞아 울면서 엄마에게 이르겠다며 자리를 뜬 어린이집 친구. 소스케와 포뇨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3. <붉은 돼지>(1992)— ‘시대의 바람’

어릴 적부터 돼지 캐릭터를 좋아했다. 귀엽게 묘사되어 사랑스러운 몸짓을 하는 돼지부터 어쩐지 탐욕스럽고 지독해 보이는 돼지까지, 보드라운 살결과 한껏 올라간 코를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붉은 돼지>를 보기 전만 해도 나에게 돼지는 무해하고 순한 존재였다. 그러나 비행하는 돼지 ʻ포르코 로소’를 만난 이후 돼지는 용감하고 지적인 존재로 탈바꿈했다. ʻ시대의 바람’을 들으며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나아.” 하고 말하던 그의 목소릴 떠올린다. 이탈리아의 공군 에이스 파일럿이었지만, 전쟁의 비인간성을 알아버린 사람. 기꺼이 돼지가 되어 지중해에서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공중 해적인 맘마유토단이 아이들이 있는 배를 습격한다는 소식이다. 음악을 재생하니, 포르코 로소가 아이들을 구하러 가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무사히 탈출한 아이들과 붉은 비행기에 올라 있는 장면까지 순식간에 떠오른다. 무해하고 순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어느 여름날’

수많은 명장면이 떠오르지만 ʻ어느 여름날’을 들으면 이 애니메이션의 첫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시골로 이사 온 치히로의 무료한 표정. 자동차 뒷좌석에 길게 드러누워 심드렁하게 누워 있는 그 장면을 보면서 하야오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한 가족을 지루하게 살게 둘 리 없다고 생각했다. 우둘투둘한 길을 달리던 차가 멈춰, 차에서 내려 걷게 된 가족. 그들 앞에 나타난 시커먼 터널을 보며 심장이 콩콩거리는 걸 느꼈다. 치히로가 “난 안가.” 하고 표정을 굳힐 때 이 애니메이션은 반드시 재미있으리란 걸 직감했다. 어느 여름날은 원래 그런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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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