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piece Story

오려낸 종이는 살아있는 그림책이 된다

오려낸 종이는 살아있는 그림책이 된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흘 남짓 머무른 적이 있다. 가끔 한 도시는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나에게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로 기억되었고,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안데르센’으로 기억된다. 코펜하겐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나가보니 1843년부터 문을 열었다는 도심형 놀이공원인 ‘티볼리’가 있었다. 그리고 티볼리 공원을 바라보는 한 남자 동상 앞에서 나는 발길을 멈췄다. 작가 ‘안데르센’의 동상이었다. 키가 아주 크고, 챙이 높은 모자를 어수룩하게 쓰고 있는 안데르센은 자신의 옆모습을 우리를 향해 자랑하듯 내비쳤다. 실제 안데르센은 185센티미터로 당시 덴마크에서도 상당히 키가 큰 편에 속했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던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거나 사진 찍으려고 하면 반드시 옆모습으로 남길 바랐다고 한다.

코펜하겐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 2017, Ⓒ이소영

소도시인 오덴세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처음으로 가본 극장에 매료되었다. 형편이 어려워 좋아하는 극장에 가지 못한 그는 스스로 작은 극장과 인형을 만들어 연극하는 것을 즐겼다. 그때부터 가위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에 빠졌다. 안데르센의 어머니는 손재주가 뛰어난 아들이 재단사가 되길 바랐으나, 그의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덴마크에서 가장 큰 도시에 있는 왕립극장의 배우가 되어 유명해지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그의 나이 14살 때의 일이다. 안데르센은 코펜하겐에 처음 온 날을 자신의 두 번째 생일로 정할 만큼 그 도시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많은 작품들이 코펜하겐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덴마크의 비평가와 사람들은 허수아비같이 크고 우스꽝스럽게 걷는 안데르센을 보고 혹평하고 조롱했다. 가난한 형편과 못난 외모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마음은 훗날 그의 그림책 《미운 아기 오리》, 《성냥팔이 소녀》 같은 동화에 투영된다.

안데르센 사진, Photograph taken by Thora Hallager, 1869

종이 오리기 예술가, 안데르센

자신의 무수한 상상력과 경험을 결합해 150편이 넘는 동화를 남긴 안데르센을 우리는 훌륭한 작가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예술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고, 콜라주를 익힌 안데르센은 가위와 종이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양한 모양의 신기한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안데르센은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며 직접 현장에서 종이 오리기(Paper cutting)를 했다. 그의 종이 오리기 작품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현장에서 바로 작업한 후 그 자리에 있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전달해서다. 그의 종이 오리기 예술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안데르센에게 직접 동화를 듣는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평생 간직되었다.

백조, 야자수, 건축물, 부채를 든 여인이 등장하는 종이 오리기 작품, 23x14cm, 오덴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박물관

오덴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박물관

책 《종이 오리는 이야기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안데르센을 그림책 작가가 아니라 종이 오리기 예술가로 소개한다. 그 책에는 실제 안데르센이 직접 동화를 구연하며 종이 오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기록이 있다.

“안데르센은 늘 어마어마하게 큰 가위로 종이를 오렸다. 어떻게 그런 커다란 손으로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가위를 들고 그토록 여리고 섬세한 모양을 오려내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열 살 때 덴마크의 자기 집에서 안데르센에게 동화를 들었던 보딜 폰 도네르 남작부인의 이야기다.

‘무용수, 요정, 백조, 야자수, 발레리나, 천사….’

그의 손을 거치면 아무것도 없는 종이에 구멍이 뚫리고 이야기가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안데르센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그 순간만큼은 안데르센은 눈부신 주인공이 되었다. 십대부터 죽을 때까지 종이 오리기 작품을 했던 안데르센, 그가 만든 작품은 몇 천 점일 테지만 세상에 남은 것은 약 250점이다. 십대부터 늘 여행을 떠나며 트렁크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한 안데르센의 가방에는 언제나 종이와 가위가 함께했다. 나는 그를 훌륭한 그림책 작가가 아니라 ‘종이 오리기 예술가’로 기억하고 싶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가 또 다른 분야에까지 열정을 보인 것은 이야기와 그림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일 것이다.

두 손과 여인이 있는 페이퍼 커팅, 오덴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박물관

살아있는 그림책을 만든 안데르센

오려진 종이는 동화 속 세계가 되고, 남은 종이는 켜켜이 쌓여 그가 만들 다음 이야기가 된다. 놀거리가 부족하고 그림책이 드물던 19세기, 안데르센의 종이 오리기 예술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그림책이 되어주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신(神)이 쓴 한 편의 동화다.”

안데르센의 말이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지낸 오늘도 안데르센의 종이 오리기 예술처럼 살아있는 그림책은 아니었는지. 내일도 우리는 우리가 직접 쓰고 그리는 그림책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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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