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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좋아해왔어요

일본의 전방위적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오랜 세월 동년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으로 살아왔다. 데뷔작부터 주요 문학상을 휩쓴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지다 못해 아예 이탈리아어로만 글을 쓰겠다고 선언한다. 두 권의 책을 통해 두 사람은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각기 다른 식으로 고백하고 들여다본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게 된 것은 한 잡지 인터뷰에서 배우 김혜수가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해서 그 사람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고 말한 구절 때문이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내 주변에는 그 작가의 책을 읽거나 이름을 들어본 사람조차 없었다. 그때만 해도 책이라곤 거의 읽지 않던 나는 어떤 작가를 좋아해서 그 사람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는 게 어떤 일인지 무척 궁금했다. 어떤 작가를 그렇게나 좋아할 수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스무 살의 어느 방학에 나는 고향 진해의 오래된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그곳의 낡은 서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발견했다. 첫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첫 번째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다른 책을 빌리러 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도서관에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더 이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은 채로 어른이 되거나 그의 소설이 점점 별로라고 말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반대로 점점 더 좋아졌다. 때로는 좀 싱겁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도 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그 좋은 느낌은 어쩌면 오랜 세월에 걸쳐 (작가와 독자로서) 우리 사이에 쌓인 단단한 신뢰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리 오해가 없도록 말씀드리는데,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구’한 성과가 아닙니다. 난 문학연구자로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일개 팬의 입장에서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시각이나 학술적인 엄밀성 같은 것을 기대하면 곤란합니다. 팬이란 편애하는 작가가 쓴 것이면 어떤 것이든 읽고 싶은 법이고, 어떤 것을 읽어도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중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한다고 말하기가 곤란한 사람인데, 대충 사상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는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는 학자였고 한때는 대학 교수였다. 철학은 물론이고 정치, 사상, 문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글을 쓰고 의견을 개진한다. ‘개풍관’이라는 이름의, 스스로 설립한 무도관의 관장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무도를 연마하며 철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팬이다. 일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론가들의 외면을 받기로 유명한 작가다. 아예 그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기 싫다는 평론가들도 있다. 한때 그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거품경제 시절의 소비사회를 떠도는 도시인의 멋진 삶’을 그린 작가로 폄하했으나, 그 시절 비슷한 주제를 다루던 작가들은 사라졌음에도 하루키는 여전히 건재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가 순전히 팬심으로 쓴 책이라 못 박으면서도, 단순한 팬이 아니라 한 명의 철학자, 비평가로서 이 시대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가진 의미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세계에는 이유 없는 처절한 폭력이나 사악한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길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그런 것과 무심하게 딱 마주칩니다. 그것이 가져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꼼꼼하게 다림질을 하고, 연필을 뾰족하게 깎고, 적당하게 간을 하여 스파게티 면을 삶는 등 사소한 일상에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결코 표층적인 것이 아니며 삶의 근본적인 것과 연결됩니다. 

–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중에서

그렇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로 아침을 지어 먹고, 집안을 청소하고, 다림질을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무언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우리가 이 일상을 정성들여, 바르게 살아간다고 해서 이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달라질 수 없는 곳이기에 거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이 일상을 정성들여,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밖에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사막에 풀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일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아무 소용도 없고 언제 결실을 맺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미가 없을지 모르면서도 의미를 찾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자세, 나는 그런 것을 아주 좋아한다. 

살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이 없는 세계에서도 사람은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우리 자신이 매일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한 동시에 잊으려고 하는 질문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입니다. 신의 존재를 전제로 삼는 성서를 거스른다고 할까, 신이 없는 세계에서 사람이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묻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중에서

솔직히 60대 나이에 동년배의 작가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용기일지 모른다. 심지어 그 작가와는 개인적인 친분조차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바로 그런 이유로 우치다 타츠루가 좋다. 좋아하는 마음은 씩씩하게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왜 좋아하는지를 자신의 지성과 관점과 삶으로 풀어내는 자세가 좋다.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조차 그의 고유한 개성과 자산이 되어버린다. 바람직한 팬이란 이런 것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도계 미국 소설가 줌파 라히리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졌다. 데뷔작으로 주요 문학상을 휩쓸고 작가로서 경력의 정점에 이른 그녀는 어느 날부터 영어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제 이탈리아어로만 글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원어민이 아닌 그녀가 완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영어로 쓸 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던 것들조차 이제는 도달하기 힘든 목표가 된다. 그러나 줌파 라히리는 포기하지 않고 이탈리아어로 글쓰기를 고집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행위는 대체 무엇인가. 줌파 라히리는 산문집 《이 작은 책은 나보다 크다》를 통해 이탈리아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굳이 내가 이탈리아어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이탈리아에 살지 않았고 이탈리아 친구들도 없었다. 난 이탈리아어를 갈망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갈망은 미친 듯 원하는 욕망과 다르지 않다. 많은 열정적인 관계가 그렇듯 이탈리아어에 대한 내 열광은 애착, 집착이 될 터였다. 이성을 잃는, 응답받지 못하는 뭔가가 늘 존재하겠지. 난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졌지만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내게 무관심하다. 이탈리아어는 날 절대 갈망하지 않을 거였다. 

–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에서

부모님은 인도인, 그 자신은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줌파 라히리는 전 생애를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영어를 완벽히 구사했지만 외모와 피는 숨길 수 없는 인도인이었다. 동시에 인도에 사는 친척들에게 그녀는 미국식 벵갈어를 쓰는 미국인일 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던 그녀가 영어도 벵골어도 아닌, 제3의 언어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찌 보면 납득할 만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굳이 그 일이 아니어도 좋고 딱히 돈 때문만은 아닌데도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일이 불안과 패배와 절망을 선물하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아침 책상에 앉아 빈 화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설레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데, 차분해지는 이유는 내가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나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 쓰면 쓸수록 내가 못 쓴다는 걸 깨달을 거라는 사실, 그 사실이 왜 절망적이면서도 기쁜 걸까. 그 감정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 

난 이탈리아어로 나 자신을 표현할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한다. 일종의 결핍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난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필요에 의해서 글을 쓰지만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느꼈던 기쁨을 다시금 맛보았다. 누구도 읽지 않을 노트에 단어를 적어 넣는 기쁨을 말이다. 나는 문장을 다듬지 않고 투박하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그리고 계속 불안한 상태다. 맹목적이지만 진실한 믿음과 함께 나 자신을 이해받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에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굳이 그 일이 아니어도 좋고 딱히 돈 때문만은 아닌데도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일이 불안과 패배와 절망을 선물하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아침 책상에 앉아 빈 화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설레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데, 차분해지는 이유는 내가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나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 쓰면 쓸수록 내가 못 쓴다는 걸 깨달을 거라는 사실, 그 사실이 왜 절망적이면서도 기쁜 걸까. 그 감정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에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은,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큰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쪽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더 대단한 존재, 나보다 더 큰 존재를 좋아하고 갈망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매순간이 패배와 좌절의 연속이다. 그런데 실은 그 패배감과 좌절감이 우리라는 존재를 조금씩 이룩해나간다. 나보다 더 큰 것 앞에서 겸허히 무릎을 꿇은 채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분투하는 것. 그런 것이 어쩌면 사람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기쁨이 아닐까. 기쁨은 승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패배에서도 온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오랫동안 좋아하고 또 갈구한 사람들은 아는 것만 같다. 

포켓 사전은 평상시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있다. 그래야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전으로 나는 다른 책들을 읽고, 새로운 언어의 문을 열 수 있다. 지금도 휴가나 여행을 떠날 때면 늘 지니고 다닌다. 사전은 내게 필수품이 됐다. 혹시라도 여행을 떠났는데 깜박 잊고 사전을 가져오지 않았을 땐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마치 칫솔이나 갈아 신을 양말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이 작은 사전은 부모라기보다 형제 같다. 여전히 내게 필요하고 아직도 날 이끌어준다. 사전에는 비밀들이 가득하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에서

좋아하는 마음은 언제나 완벽하게 보답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보다 더 큰 것을 갈구하는 행위는 언제나 그 자체로도 보답이다. 사실 그 패배의 기쁨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불행인가.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우치다 타츠루ㅣ바다출판사ㅣ328쪽

우치다 타츠루가 안내하는 하루키의 문학 세계. 실제로 그는 30년 넘게 그의 글을 읽어왔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루키를 사랑하는 마음이 잔뜩 묻어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그것에서 나오는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ㅣ마음산책ㅣ168쪽

라히리는 안정감만큼 창작 활동에 위험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유롭고 친숙한 영어가 아니라, 새로운 표현으로 이탈리아어를 선택하여 이 책을 썼다. 왜 다른 언어를 선택한 것일까? 이 책에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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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박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