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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마트 음악감상실
기차에서 지하철로 갈아타 중앙로역에 도착했다. 계단을 걸어 올라오자마자 쏟아지는 뙤약볕을 대구의 반가운 인사라 여기며 동성로 한편으로 파고들었다. 곧 사람들이 차오를 골목에서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면 오래된 음악감상실 하나가 보인다. 그 이름은 ‘하이마트 음악감상실’. 독일어로 ‘고향Heimat’이라는 뜻을 붙여둔 그곳은 한국전쟁 시절부터 사람의 손길이 뭉근히 닿은 흔적들로 가득하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선율이 흐르는 곳에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오래된 풍경 속을 유유히 떠다니던 음악 소리도 가만한 기색으로 나의 곁에 머문다
매일 정오, 하이마트 음악감상실은 변함없이 문을 열고 음악을 튼다. 때로는 클래식, 때로는 오래된 가요가 턴테이블 위로 올라선다. 시끌벅적한 노랫소리와 분주한 이들로 가득한 동성로에서 하이마트의 음악은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음악감상실로 들어서는 걸음들은 이 공간의 존재를 오랫동안 알고 있고 또 애정을 품는 이들의 것이다. 그들은 스테인드글라스 창에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며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음악에 빠져든다.
고풍스러운 모양새의 현재와 달리 하이마트의 시작을 말하려면, 거칠고 드센 한국전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수많은 사람은 날카로운 전쟁의 칼날을 피해 부산과 대구로 쏟아져 내려왔다. 현재 하이마트를 운영 중인 박수원 선생의 할아버지이자 창업주 김수억 선생도 마찬가지였는데, 음악을 사랑하던 그는 음반들을 품에 안고 서울부터 대구까지 먼 길을 나섰다고. 피란 중에도 음반을 사 모으거나 미군 부대 또는 미국에 사는 친척을 통해 구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전쟁의 매듭이 불완전하게나마 지어진 후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갈까 고심했지만, 결국 대구에 남기로 했다. 많은 음반들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도 없거니와 고된 시대를 거치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고향이 되길 바라며, 송영택 시인이 지어준 ‘하이마트’라는 이름을 안고 시작한 음악감상실은 당시 유명한 문인과 화가, 음악인 등을 한자리로 끌어들였다. 창작을 꿈꾸는 예술인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가 되어, 생채기 난 일상과 마음을 구슬픈 선율로 어루만져 주곤 했다.
김수억 선생은 하나뿐인 딸 김순희 선생에게 마음의 고향을 물려주었다. “내가 없더라도 네가 문 닫지 말고 끝까지 해라.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야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라는 말과 함께. 1957년 옛 대구극장 맞은편에 자리했던 음악감상실을 70년대에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에는 공간도 보다 살뜰히 가꿨다. 손님들이 앉아 다과를 나눌 수 있는 휴게실과 음악을 듣는 데 집중하는 감상실로 나누었고, 상징성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과 유명 음악가들이 담긴 조각을 벽면에 설치했다. 적벽돌과 어두운 실내조명, 나무 가구들은 당시 유행하던 인테리어 풍조였다고. 감상실 안쪽에는 LP와 CD가 가득 쌓인 디제이 부스를 만들어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기도 했다. 듣는 이는 원하는 곡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자리를 지킨다. 그 오롯한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그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는 바삐 움직였으리라. 어떤 삶을 잠시 생각해 본다.
어머니를 이어 하이마트를 세 번째로 이어받은 박수원, 이경은 부부는 익숙한 자태로 이방인에게 공간의 이모저모를 들려주었다. 하이마트는 지금껏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80년대부터는 가정마다 카세트나 전축이 구비되고 개인이 이어폰을 소유하면서 집 바깥이 아닌 안에서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공간에 모여 함께 음악을 듣던, 다른 이의 신청곡이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듣던 시대에서 개인적인 감상으로 향유 문화가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불과 몇 년 전에는 온 세상을 휩쓴 팬데믹 때문에 그 걸음마저 뚝 끊기기도 했다고. 사람이 머물지 않는 공간은 자연스레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음악가인 남편과 피아니스트인 아내는 과거와 더 먼 과거가 그랬듯, 함께 나누는 음악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클래식만 고집하던 마음을 내려두었다. 젊은 피아니스트나 산울림, 김광석, 김동률처럼 여러 세대에서 사랑받는 음악까지 끌어안은 것이다. 입장료를 내면 종일 다과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여전한데, 다시금 음악감상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좀더 앳된 얼굴을 띠고 있다고 이경은 선생은 설명한다. 얼마 전엔 삼대가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다가 결혼했는데, 이제는 60대가 된 아들과 대학생인 손주들이 함께 걸음한 것이다. 손주들처럼 앳된 얼굴이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청춘이 슬며시 머릿속을 스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박수원 선생은 감상실 안쪽 디제이 부스로 안내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빼곡히 꽂힌 음반들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보다가, 이내 그 성대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수한 세계에서 원하는 곡을 척척 찾아내던 박수원 선생은 직접 들려주겠다며 도넛판(12인치 LP판보다 연주 시간이 짧아 소작품을 녹음하는 데 쓰였다. 일종의 싱글 앨범과도 같다고.)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소리골을 찾아 핀을 조심스레 올려두는 순간 LP판은 빙글빙글 돌면서 그 안에 새겨진 음표들을 읽어 나갔다. 부스 바깥으로 퍼지는 음악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실크 시트가 씌워진 묵직한 감상실 의자에 앉았다. 적당한 노이즈가 오히려 선율의 생생함을 불어넣었고, 아주 먼 과거 어딘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호흡마저도 닿았다. 그리고 그 감각을 감상실에 머무는 이들이 모두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게 느껴졌다. 아, 우리는 이러기 위해 음악을 함께 들었지. 나의 조용한 읊조림은 음악 어딘가에 섞인 듯하다. 하이마트 음악감상실에 머무는 이들은 오래된 풍경 속 실내악이 되어 그날의 장면을 마음 깊이 새겨둔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이승환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디제이 부스를 둘러보던 나에게 박수원 선생이 듣고 싶은 곡이 있는지 물었다. 그럴싸한 클래식을 말하고 싶었지만(웃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이 노래.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그대의 얘기와 지나간 내 정든 날”이라는 가사를 좋아한다. 이별을 말하는 가사와 달리 전주는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폴린
앞선 질문을 포토그래퍼에게도 물었다. 얼마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콩쿨에서 연주한 이 곡을 인상 깊게 들었다고 하자 박수원 선생은 같은 곡을 연주한 다른 음악가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요즘 주로 쓰이는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기계 중 하나인 진공관 앰프로 듣자 연주자들을 눈앞에 둔 듯, 음악이 보다 생생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무도’
카미유 생상스
마침 취재하러 간 날은 1990년부터 시작된 음악 동호회 ‘소향회’의 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다. 박수원 선생의 선곡과 안내로 클래식을 감상하는 모임이라고. 정오가 되자 단정한 옷을 입은 중년 여성 회원들이 반가운 기색을 띠며 하나둘 하이마트 음악감상실의 문을 열었다. 그날의 첫 곡은 시인 앙리 카잘리스가 오래된 프랑스 괴담을 바탕으로 쓴 시를 모티브로 탄생한 교향곡이었다.
‘Jewels Of Song’
베니아미노 질리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곡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고민하던 박수원 선생은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와 더불어 이 곡을 골랐다. 테너인 베니아미노 질리는 이태리 오페라를 중심으로 다양한 곡을 소화해 내며 명가수로 손꼽히는 인물.
글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