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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기억하는 방식
오늘의 주파수
라디오를 기억하는 방식
누군가 그랬다. 여행을 떠나면 꼭 현지 라디오를 듣는다고. 뜻 모를 말들, 동시대에 그곳에서 사랑받는 노래,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연, 경쾌한 광고 소리. 그러고 보니 라디오는 언제나 우리의 휴일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오늘의 주파수는 몇으로 정할까. 넌지시 건네는 행복한 물음이다.
라디오가
뭐라고
돌이켜 보면 무수히 많은 시간이 라디오로 채워졌다. 설이나 추석에 긴 여정을 떠나는 자동차 안에서 “잠깐만”으로 시작하는 CM송이 흘러나왔고, 한산한 오후가 되면 분식집 안으로 유쾌한 사연이 뒤섞여 들었다. 라디오 퀴즈를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전화를 걸었고, 아빠는 이따금 라디오 드라마를 듣기도 했다. 스카치테이프로 다 쓴 테이프의 구멍을 막아 공테이프를 만들어서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울 오빠들’ 목소리를 간직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그러면 안 되지만) 수업시간이나 야자시간에 몸 뒤로 이어폰을 빼서 몰래 듣기도 했고, 중학교 동창은 라디오에서 노래를 불러 지금은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어느 날엔가 오랜만에 라디오를 켰을 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은 자취방을 가득 채웠을 때, 나는 이유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의 목소리였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건넸고, 또 누군가 대답을 했다. 내가 직접 말을 섞지 않아도, 그들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전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며 배우고, 경험하고, 실패하고, 즐거워하지만 전자 기기 너머의 누군가와 간접적으로 맺은 끈끈한 우정이 내게도 있던 것이다. 사람이 본래 자기 이야기를 전하거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라디오를 통해서 사연뿐만 아니라 숱한 감정을 주고받는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진다.
그러니 이건 개개인을 잇는 하나의 매개체다. 마포구에 사는 실연한 30대 아무개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어지고, 장안구에서 어제 퇴사한 20대 후반 청년을 축하하고 싶어지는, 아주 이상한 연결 고리. 라디오가 뭐라고. 그러게, 이게 뭐라고 어쩜 수많은 인류를 이리도 끈끈하게 만들고 있을까.
라디오와
숫자들
1895
1895년 이탈리아의 마르코니Marconi가 무선통신기를 발명하면서 라디오가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4
방송인 전현무는 MBC 라디오 <굿모닝 FM 전현무입니다>의 DJ로 새로 발탁된 이후, 생방송 4일 만에 지각을 했다.
50
1925년 11월 총독부 구내에 설치한 무선방송실험실에서 최초로 무선방송을 실험했을 때 출력은 50와트다.
870
1927년 2월 16일, 국내에 주파수 870킬로헤르츠의 첫 라디오 방송이 개시되었다. 초창기 라디오 방송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혼합한 단일 방송이었다. 한국어와 일어 방송의 비율은 처음엔 1:3이었지만, 그 뒤 몇 차례 바뀌었다.
1920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방송 전파가 발사된 것은 1920년 1월, 미국 워싱턴의 아나고스티아 해군비행장의 군악대 연주 방송이
었다.
1957
1957년 삼양전기, 1958년 금성사가 국내 최초의 라디오 생산 업체로 등장해, 수입한 부품으로 라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방송의 활성화와 더불어 국산품 제조로 수신기가 저렴해지면서 1960년대 이후 수신기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29
1990년 3월 19일에 시작한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올해 29년 차인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 이후 단 한 번의 진행자 교체 없이 청취자들과 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해 2017년 8월 3일 방송 1만 회를 맞이하기도 했다.
25
대중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은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는 총 25대의 DJ가 거쳤다. 오남열, 차인태, 이종환, 박원웅, 안병욱, 조영남, 오혜령, 고영수, 이필원, 김기덕, 문진호, 이수만, 서세원, 이문세, 이적, 이휘재, 박광현, 정성화&박희진, 옥주현, 박정아, 박경림, 윤하, 허경환, 백지영을 이어 현재 강타가 진행 중이다.
1440
국내 라디오 방송 개시 일주일 후인 1927년 2월 22일, 등록된 라디오 수는 총 1440대였다. 이 중 일본인이 1165대, 한국인이 275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1988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여성시대>는 1975년 <MBC 여성살롱 임국희예요>로 첫 방송을 시작해 1988년 <여성시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여성시대> 시그널 송은 시인이자 작사가인 조운파 씨가 가사를 지었다. 시그널 노래의 원곡은 외국곡이다. “라랄랄라라라라라랄랄라, 달려가는 여성시대!”
라디오
뒤편에는
이따금 그곳의 사람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출판사는 어떤 사람들이 모였길래 그런 책을 만들까, 그 영화사에는 어떤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식의 상상이 덧붙여진 질문들. 그중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라디오 제작진은 보통 PD와 작가로 구성된다. 제작진이 회의를 거쳐 프로그램과 시간대에 맞는 코너를 정하고 게스트를 섭외한 후, 코너에 맞는 대본을 쓰는 작업을 거친다. 그렇게 만들어진 코너가 방송을 통해 나가면 반응을 보고 코너를 수정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다른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라디오 프로그램 역시 회의와 섭외, 구성을 통해 제작되는 것이다.
라디오의 꽃은 역시 선곡이다. 그날의 분위기, 사건과 사고, 일상의 흐름 등과 잘 연결된 것이 노래기 때문이다. 선곡은 예외적인 상황을 빼면 대부분 PD가 결정한다. PD는 진행자 섭외, 프로그램 기획을 비롯해 작가진을 꾸리는 등 프로그램의 큰 틀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그날그날 방송할 노래를 선곡하고 작가들과 원고 내용을 상의하는 등 데일리 업무도 진행한다. 즉 DJ가 방송할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준비해주는 게 PD를 포함한 제작진의 할 일이다. 그 위에서 DJ는 준비된 원고와 음악을 바탕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노래를 트는 일은 콘솔에서 하는데, 프로그램에 따라 엔지니어나 PD가 한다. DJ가 직접 음악을 트는 경우는 거의 없다.
라디오를 들으며 누릴 수 있는 작은 재미가 하나 있다. 물론 철저히 청중으로서의 재미인데, 바로 크고 작은 라디오 방송의 실수를 목격하는 것이다. 열세 살 때인가 국민 오빠로 불리던 가수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역할극을 하면서 사연을 따라 읽는데, 하얀 피부에 고운 인상으로 인기를 끌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대사 끝에 자기 말을 넣어 버렸다. “아니라고, 새꺄!” 대본이 아니었냐고? 백 퍼센트 단언컨대 그건 대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한참 정적이 흘렀기 때문이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라서 아마 내부에서 짧은 고난과 역경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듣는 나는 재미있었지만, 후후!
남녀노소에게 문턱이 낮은 라디오는 큰 문제없이 재미있는 일만 가득해 보이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수고와 고생이 담겨 있다. 먼저 라디오 프로그램은 1년 365일 내내 방송되기 때문에 주말에도 본인이 맡은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는지 확인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또한 매일 방송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휴가를 내기도 힘들다. TV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이 끝나면 일정 기간 쉴 수 있지만, 라디오는 그런 기간이 거의 없는 편이다. 무엇보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라디오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 역시 라디오 제작자의 고충이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확보할 수 있는 팟캐스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은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기존에 유일무이하던 선택권의 경계는 금세 허물어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춰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은 방송사를 막론하고 수많은 라디오 제작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화두가 되었고, 자체적으로 TF를 꾸려 전략을 세우거나 내부 스터디 모임에서 고민을 나눈다. 참여율도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생각과 경험을 노출하고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평균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라디오가 사람들의 곁을 지켜주었듯, 앞으로도 우리 곁에 자리할 것이다. 라디오가 다른 매체와 다른 점은 무얼까. 아마 사람 냄새일 것이다. 라디오에서는 DJ가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목소리로 전달되는 감정은 속이기 어렵기 때문에 진실한 마음이 그대로 와 닿는다.
라디오이기
때문에
언젠가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자주 듣는 라디오의 DJ가 며칠 전에 바뀌었는데 그 후유증이 너무 크다고 말이다. 평일 저녁 꼬박꼬박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저들은 둘만의 시간을 촘촘히 메워왔을 것이다. 언제 만나자고 약속을 했고, 그들은 지켰다. 서로가 없는 사람이면서, 서로가 있었다. 라디오이기 가능한 일들은 우리의 빈 시간을 알게 모르게 채우고 있었다.
고신형ㅣVFX디자이너
저는 조용히 각자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내내 라디오를 듣곤 해요. 몇 년 전에 라디오를 한창 듣고 있는데 저보다 어린 산모가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는 사연을 접했어요. 그래서 라디오를 듣는 게 요새 삶의 낙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해에 같은 사람에게 사연이 왔어요. 건강한 아기 사진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근데 그 사연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거예요. 이미 제가 그녀의 지인이 된 것처럼 말이에요. 정말 묘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일면식 없는 누군가와 함께 라디오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는 게요.
정혜미ㅣ에디터
아침 출근길에 차 안에서 라디오를 즐겨 들어요. 그날 그날 소식도 들을 수 있고, 길고 지루한 출근길이 노래와 이야기로 가득 차서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어느 날엔가 비가 내릴락 말락 하는 우중충한 날씨였어요. 그날 김창완 아저씨 라디오를 듣는데, 조금 슬프고 서러운 사연이 나오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조용히 읽은 김창완 아저씨가 갑자기 ‘청춘’을 선곡하신다면서, 그 자리에서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시기 시작했어요. 기분이 무척 이상했어요. 그리고 절대 못 잊을 것 같았죠. 절대요.
이은별ㅣ게임개발자
대학생 때 중간에 편입을 준비했어요. 암담하고 우울한 하루하루였죠. 제가 의존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때 라디오가 힘이 되었느냐고요? 아뇨. 그땐 절대 라디오를 듣지 않았어요. 대신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내게 선물했어요. 잠들기 전 딱 한 시간. 군중 속 소외감에 빠져 지내던 때였는데 DJ가 전해주는 고운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쿠폰처럼 느껴졌어요. 그 쿠폰이 가득 차면, 그럼 분명 나한테 좋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믿었죠. 그리고 그 해에 드디어 학교가 바뀌었어요. 매일 도서관에서 김밥을 혀로 녹여 먹으며 지냈는데, 정말 기뻤어요.
이자연ㅣ에디터
열두 살 즈음인가, 제 방이 생기면서부터 라디오를 들었어요. 그땐 김동완 씨가 <텐텐클럽>을 진행하고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로 새벽을 맞이하던 때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사춘기를 거쳤던 것 같아요. 방문을 닫기 시작한 거죠. 라디오에서는 아침에 만난 오렌지 장수 이야기, 외로운 중학생의 고백, 엄마에게 전하는 비밀 같은, 나중이 되면 자연스레 잊어버릴 작고 소소한 사연이 나왔어요. 삶의 단편들을 그러모으면서 그 때를 조용히 보낸 것 같아요. 사춘기란 게 일부러 외로움을 자처하는 시간이잖아요. 혼자 있으려 애써 바깥보단 안을, 거실보단 방을 선택했는데, 어쩐지 라디오가 있어서 그렇게 외롭진 않았어요. 혼자 있는데도 말이에요.
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
자문 MBC 라디오PD 박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