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를 가장 좋아해

이연 — 유튜버

새하얀 종이와 길게 깎은 연필, 지우개가 화면에 등장한다. 곧이어 한 손이 연필을 꼿꼿이 쥔 채 드로잉을 시작한다. 사운드를 끄고 보면 그림 유튜브로 보이지만, 귀를 쫑긋 세우면 이것이 한 편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만만해 보이지 않는 방법’, ‘너무 열심히 살면 안 되는 이유’…. 궁금한 제목 속에서 들려오는 이연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편안하다. 유하게 흘러가는 그 목소리에서 80만 구독자가 쉬이 귀를 닫을 수 없는 건 뼈가 만져지기 때문일 테다. 무르지 않고 튼튼한, 연하지 않고 야무진 뼈가 나날이 단단해지는 모습이 《매일을 헤엄치는 법》에 담겼다. 이연이 헤엄쳐 온 시간을 엿볼수록 마음 어딘가가 조금씩 강건해진다.

와, 작업실이 엄청 깨끗해요. 

요새 스튜디오에 잘 안 나와서 그래요(웃음). 일을 자꾸 집으로 가져가게 되네요. 하필 인터뷰를 앞두고 감기에 걸렸어요. 목소리가 좀 답답하죠? 엊그제 친구들이랑 발리에 다녀왔는데, 비행기가 건조해서 잠을 잘 못 잤거든요.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목감기가 온 거 같아요. 

 

오늘 대화는 쉬엄쉬엄해 보도록 해요. 발리 여행은 어땠어요? 

너무 좋았어요. 제가 이제까지 여행을 계속 혼자 다니다가 친구들이랑 해외여행을 처음 가봤거든요. 근데 그런 말 있잖아요. ‘혼자 하면 기억이고 같이 하면 추억이다.’ 7박 8일 있었는데 매일매일 정말 즐거웠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니까 좋네요. 이연 씨는 보통 어떻게 소개하곤 해요? 유튜버?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데, 요즘은 ‘그림 그리면서 생각을 전하는 유튜버’라고 이야기해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저를 소개할 말이 필요할 것 같아서 생각해 봤는데 ‘드로잉 에세이스트’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냥 작가라는 말은 너무 광범위해서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저는 유튜브 채널 ‘이연LEEYEON’에 그림 그리면서 제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업로드하는데요. 어떻게 보면 라디오이기도 하고, 에세이기도 하거든요. 근데 시각적으로는 드로잉을 하니까 드로잉 에세이스트가 어떨까 싶었죠. 

 

포맷은 영상인데 라디오라고 하니까 신선하네요. 

제 유튜브의 모티프가 사실은 라디오였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라디오는 좀 개념적이지만 ‘혼자 있는 기분이 들지 않게 하는 거’예요. 혼자 작업하다 보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 대상을 책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목소리에서 찾고자 한다면 라디오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작업을 영상보다도 라디오라고 생각하면서 만들고 있어요. 

 

그 라디오를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는데, 어느 인터뷰에서 “내 본캐를 유튜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가 하는 일이 저를 설명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유튜브 하는 시간은 일주일 중 얼마 되지 않거든요. 그림 그리는 시간도 되게 짧고요.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기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난 뭘 하는 사람이지?’ 나 자신에게 물었는데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인 거예요. 그때그때, 지금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펼치면서 살고 있어서 본캐를 유튜버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지금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관해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지?’를 자주 생각해요. 이를테면, 오늘은 샤워하면서 ‘완벽한 샤워의 기준’을 생각해 봤어요. 저는 여행 갔다 돌아왔을 때 제일 좋은 게 집에 있는 익숙한 제품들로 샤워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요즘 샤워는 제법 완벽해요(웃음). 매일 하는 샤워여도 최대치의 샤워가 있고 간략한 버전이 있는데, 오늘은 ‘인터뷰 샤워’라고 정성스러운 샤워를 하고 왔어요. 저는 나무 향이나 플로럴한 향을 좋아해서 중요한 날엔 향수를 뿌리곤 하는데요. 향수를 사용하는 날엔 향이 안 나는 바디워시랑 로션을 써요. 그러고 나서 향수로 저만의 향을 입히죠. 사실 이건 단순히 씻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어떻게 가다듬어 가는지에 대한 철학이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 그때그때 애플워치로 녹음해 놓고 유튜브 콘텐츠로 발전시켜요. 그러니까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 거죠.

이연이라는 활동명을 사용하고 있죠. 펼 연演 자를 쓴다고 했는데, 본명을 쓸 때랑 어떤 점이 좀 달라요? 

이름은 불러주는 사람이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에 따라 그 힘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별명으로만 부른다면 별명이어도 이름보다 힘이 강해지곤 하잖아요. 이를테면, 제 친구 성이 ‘방’인데요. 본인은 그 성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근데 한 친구가 영어 단어를 따서 “방을 영어로 하면 룸Room이니까 ‘루미’로 부를게.” 하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본명보다 루미로 더 많이 불리고 있어요. 본인도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고요. 그러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시너지와 영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이제 제 본명인 ‘이연수’로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어졌어요. 이연 채널의 구독자가 80만 명이 넘었으니 이연으로 더 많이 인정받은 거죠. 이젠 저도 제 이름이 이연 같아서 그 전의 삶은 전생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도 이름을 빼앗기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아우슈비츠만 생각해도 이름을 빼앗고 번호로 부른단 말이죠. 그만큼 누군가를 정의하는 개념, 그 기초가 되는 게 이름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뭔가 펼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펼 연 자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유튜버가 되기 전엔 회사 소속의 디자이너였기에 디자이너로 불리는 일이 많았어요. 저는 언제나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디자이너라고만 불리니까 그림 그리는 자아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그림을 더 많이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란 걸 많이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고요. 요새는 목소리를 좀더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소리 없이 제가 이만큼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까 싶어서요. 사실 그림은 어릴 적부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만한 재능을 갖추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거든요. 재능이 귀하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까 목소리나 말하기가 저의 재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목소리를 좀더 많이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어요. 

 

유튜브에서 말하기를 하고 있지만, 쌍방 소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화하는 것도 좋아해요? 

엄청 좋아해요. 

 

혼자 말하기랑 대화는 어떻게 달라요? 

혼자 말할 때는 어떤 면에서는 좀더 단호해져요. 누구나 혼잣말은 좀 차분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차분할 때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차가워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전달력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좀 냉정해지기도 하고요. 반면, 대화할 때는 다정하고 따듯하게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유튜브도 보이지 않을 뿐 상대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완전한 독백보다는 좀더 따듯한 편이에요. 어떻게 보면… 약간 환상적인 어투이기도 하고요. 눈앞에 사람들을 두고 할 만한 말투는 아니거든요. 저 자신에게도 그런 말투는 써본 적이 없고요. 이런 면에서 유튜브 말하기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구독자 80만 명은 굉장히 큰 숫자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내 말이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어때요? 

무엇보다 ‘언제나 내가 바라왔던 일이다.’라는 걸 항상 상기하려고 해요. 남들이 저를 좋아해 주고 제 콘텐츠를 찾아주고 저를 궁금해하는 것에 늘 갈증이 있었는데 그걸 이루었다는 걸 생각하려고 하죠. 앞으로도 계속 그걸 기대하고 싶고요. 반면, 우려하는 점이라면 구독자와의 관계예요. 80만이란 숫자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있어서 가끔은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해요. 제가 하는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서 제 말이 자신에게 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자주 있거든요. 과하게 친밀감을 느끼거나 그걸 넘어 오해가 생길 때도 있어요. 유튜브에서 한 말일 뿐인데,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죠.” 하면서 일대일 대화로 받아들이고 과몰입하는 경우가 있어서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고민스러운데,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대부분 응답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진짜 제 채널을 좋아하는 구독자들이랑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게 되는 게 특히 아쉬워요.

 

이연 씨 채널은 앞서 언급한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10가지 방법’이라는 영상으로 구독자가 껑충 뛰었죠. 일주일 만에 200명에서 2만 명이라니. “그림 그릴 때 망칠까 봐 겁이 나요.”라는 댓글을 보고 만든 콘텐츠라고 들었어요. 

그 댓글을 써주신 분께는 지금도 감사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해줘서라기보다는 구독자가 200명인 유튜버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점 때문이에요. 저는 지금도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 때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뭐라고 영상을 만들지?’ 그러다가도 영상 조회수를 보면 안심하는 경우가 많아요.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그 숫자가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해지죠. 근데 구독자가 200명일 때도 저는 똑같은 콘텐츠를 만들었거든요. 사실 ‘네가 뭔데 그런 영상을 만들어?’라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때인데, 그런 저한테 마음을 열어주셨다는 게 감사해요. 그 댓글이 없었다면 지금 제 채널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는데요. 그래도 전 6개월 내지 1년 안에 다른 걸로 성과를 냈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유튜브를 지속할 흥미와 체력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했을 것 같거든요. 그럼 언젠가는 성과가 났겠죠? 지금처럼 빠른 성장은 아니더라도요. 

 

나를 믿는다는 건 굉장히 멋진 모습이에요. 가끔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사라지거나 또 다른 매체가 성행할까 봐 걱정되진 않아요? 

걱정되죠. 제가 디자이너일 땐 디자이너가 사라질 거란 걱정은 없었거든요. 근데 유튜버는 속성 자체가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플랫폼에서 출발하다 보니까 사라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유튜브를 하지 않는 시간에 할 일을 계속 만들어요. 유튜브를 안 해도 아쉽지 않도록요. 한 가지에 올인하게 되면 약점이 드러났을 때 치명타를 입는 일이 많은데, 그 외 다양한 일을 하고 수익을 만들어두면 충격이 덜해요. 이건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내가 다니던 회사가 와르르 무너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난감해지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일을 하는 건 무척 중요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한 건 겁이 많아서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겁이 없어서 여러 가지에 도전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 아니에요. 저는 겁이 너무 많아서 열심히 살아온 거예요. 망하면 안 되니까요. 

 

지금은 어떤 거에 가장 겁을 먹고 있어요? 

요즘 겁나는 건… 어떻게 보면 너무 유명해지는 거요. 얼마 전에 유튜버 친구 네 명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인터넷에 내가 남기지 않은 말이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고요. 제 콘텐츠가 캡처돼서 다르게 해석된 내용으로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누군가 가공한 형태로 업로드하기도 하거든요. 제 이름을 잠깐만 검색해 봐도 그런 파편이 정말 많은데 이게 다 남들이 생산해 낸, 제가 하지 않은 말들이라는 게 문득 무서웠어요. 매일매일 제가 예측할 수 없는 규모로 제가 하지 않은 말들이 생겨난다는 게 저를 불안하게 해요. 그래서 요즘엔 내 작업을 성실하게 하면서 적당히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은 80만 구독자와 함께하는 유튜버가 되었지만, 책 《매일을 헤엄치는 법》에는 그 이전의 이야기가 담겨 있죠. 힘들었던 직장 생활과 퇴사 후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가는 다소 고된 과정이 촘촘히 기록돼 있어요. 

저는 콘텐츠를 만들 때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퇴사하기 전에 저는 퇴사에 관련된 책을 참 많이 봤어요. 근데 퇴사하고 나서 개운하다는 내용은 많은데, 퇴사하고 살아남은 기록이 잘 없는 거예요. 마치 “공주님이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나버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공주가 어떻게 살았는데? 왕자랑 어떻게 지냈는데?’ 하는 다음 내용이 전혀 없는 듯한 느낌이었죠. 계속 그 뒤가 궁금하더라고요. 그 후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시간이 배드 엔딩이었다면 또 어떻게 견뎠는지, 고군분투했다면 어떻게 지나왔는지. 저는 사실 그 시간이 되게 찌질했지만 그만큼 제 인생에서 중요했거든요. 저처럼 그 시절을 궁금해할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그런 이야기를 해준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어요. 퇴사하고 나서 정말 가난하게 지낸 이야기부터 그래서 더 자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던 이야기까지…. 그때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한창 젊을 때 일해야지, 지금 퇴사할 때 아니다.”라고 했거든요. 근데 저는 반대로 젊으니까 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 밖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으니까요.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는 구절을 보고 ‘너도 할 수 있어!’ 하고 독려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피드백을 준 사람이 있었어요? 

정말 많았죠. 제 이야기 덕분에 퇴사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이 본인도 이런 시간을 거쳤다고 이야기해 주시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시기를 거친다는 의미 같기도 해요. 그만큼 보편적인 일인데도 이연 씨 이야기를 찾는다는 건 같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의 말하기에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애쓰는 부분이기도 한데, 힘을 많이 안 주려고 해요. 어떤 분야든지 힘이 많이 들어가면 부담스럽거나 촌스럽더라고요. 특히 딱딱한 글 보면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힘이 들어가면 손도 아프고, 그림도 경직돼 있단 말이죠. 그래서 편안하게 말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도 하고, 잠도 자고, 책도 읽고, 좋은 사람도 만나려고 해요. 그래야 제가 편안한 상태가 되고 편안한 말하기가 나오거든요. 사실 지금 이 시대에 편안함을 누리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불편한 일이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애를 쓰는 거죠.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말하기로 나와서 그게 하나의 매력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럼 자극적인 건 피하려고 해요? 

아뇨. 엄청 좋아하죠(웃음). 언젠가 기질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아주 높더라고요. 그러니까 편안함을 미친 듯이 추구하지만 막상 편안해지면 지루해하는 거예요. 이런 성향이라는 걸 저도 잘 알아서 관련된 책도 읽어 봤는데요. 원래 인간은 고통을 느낄 때보다 지루할 때 더 괴로워한대요. 작은 방에 사람과 전기충격기만 두고 지켜보는 실험을 했는데, 여자는 10퍼센트, 남자는 50퍼센트 이상이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인간은 지루함을 못 견디는 존재인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편안함을 못 견디는 상황이 오면 제가 뭔가를 안 해서 부족함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라는 종이 원래 그렇다는 걸 생각하려고 해요. 

요새는 어떤 자극을 즐겼어요? 

마약이요(웃음). 유튜브로 마약 관련된 콘텐츠를 정말 많이 봤어요. 제 삶에서 마약을 접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 걸 유튜브로 알아가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저는 키워드 하나에 꽂히면 종일 그것만 찾아보거든요. 마약 거래를 할 땐 계좌 이체를 하면 걸리니까 비트코인으로 거래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 계좌가 한 번 거래하고 나면 폭파된다는 정보도 접했어요. 제가 모르는 세상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가고 있죠. 자극적으로요(웃음).

 

저는 이연 씨가 졸업 작품을 끝내고 ‘다시는 만화 그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는 게 꽤 자극적이었어요(웃음). 《매일을 헤엄치는 법》은 만화 에세이잖아요. 

이 책엔 제 삶에서 가장 어둡고 우울한 시기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워낙 무거운 이야기다 보니 이 이야기를 우울한 톤으로 풀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사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니까 출판사에서도 초고를 받아보고 어떻게 남들이 읽을 만한 이야기로 다듬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셨대요. 그러다 만화로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제가 졸업 작품을 끝내고 ‘다시는 만화 그리지 말아야지.’ 했던 건, 너무 좋아하는 장르인데 제대로 못 해내니까 야속한 마음에서 한 이야기였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안 한다고 하면서도 꼭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낸 거죠. 

 

만화라는 장르가 무거운 이야기의 무게감을 조금 덜어줄 수 있다는 의미 같기도 해요. 

그렇죠. 일단 제 책은 캐릭터가 귀엽게 설정되었기 때문에 덜 심각해 보일 수 있었어요. 요새 제 모토 중 하나가 ‘심각하게 살지 말자.’거든요. 심각하다는 건 지나친 걱정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가 말하기에 걱정은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걱정하느라 중요한 일, 소중한 사람에게 집중을 못 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을 안 하려면 심각해지지 말아야겠죠. 그 생각을 하다 보니 표현도 심각하게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유튜브는 마음에 안 들면 비공개로 돌리면 되지만 책은 그렇지 못하니까 덜 부끄러운 내용을 담고 싶었어요. 사실 캐릭터가 말을 하면 좀 덜 심각해 보일 수 있거든요. 가벼운 캐릭터와 편안한 무드로 무거움을 중화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책에 등장한 캐릭터는 전구인데, 또 생각한 오브제가 있었어요? 

책을 쓸 땐 딱 전구뿐이었는데 오히려 그 이후에 여러 오브제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다음 제가 생각한 건 식물이에요. 저 뒤쪽에도 그림이 있는데, 선인장 머리를 한 사람이거든요. 언젠가 가시가 많은 식물은 독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독이 없어서 약하기 때문에 가시를 만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난당하면 가시가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인간도 마찬가지 같아요.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 약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선인장이나 시든 꽃 같은 걸 인물에 접합하여 드로잉해 보기 시작한 거죠.

 

“영원할 것처럼 찬란히 빛나다가 죽는 점이 인간과 닮”아서 만화 캐릭터를 전구로 설정했다고 했죠. 지금 이연 씨는 전구의 생애 중 어느 지점에 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하얀빛과 노란빛 사이의 온도로 가장 환한 상태 같아요. 언제나 이성을 유지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함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이 있거든요. 또 지금이 리즈 시절인 것 같아서 환하다고 표현한 거고요(웃음). 

 

환한 시절을 기록하게 되어 영광이에요(웃음). 그림을 그리려고 퇴사했고, 만화에서도 계속 “다시 그림을 그리자.”라는 문장이 나와요. 이연 씨에게 그림이라는 건 어떤 존재예요? 

‘이렇게 재미있는 게 또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재미가 하나씩은 있을 것 같아요. 저한텐 그게 그림인 거죠. 제 삶에 있어 가장 꾸준하고 건강하게 도파민을 뿜어내는 행위거든요. 저는 어떤 목표를 세우든 그 목표에서 그림이 빠지지 않아요. 그림으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죠. 

 

그림을 보는 건 어때요? 

보는 덴 흥미가 없어요. 사실 저는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에 좋아해요. 지금 제 실력에 확신을 가지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서요. 

 

내 자존감을 올려줄 수 있는 게 뭔지 안다는 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맞아요. 사람이 필요한 일이 아니어서 더 좋아요. 그게 사람이면 힘들어져요. 물론 항상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좋겠죠. 근데 그 사람이 아플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고, 하다못해 잘 수도 있잖아요. 근데 그림은 그런 게 없으니까요.

그림으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마음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전혀 없어요? 

네. 고등학교 때는 목표가 잘 그리는 거였고, 좋은 대학에 가는 거였어요. 근데 막상 대학에 가고 나니 제가 미친 듯이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또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학생 때는 딱 지금의 저만큼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어요. 이 정도 그림체를 가지고 싶었거든요.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앞으로 뭘 더 해야 하지?’ 하고요. 그런데 전 이걸로 충분해요. 너무 좋고, 재미있어요. 근데 신기한 건 이렇게 만족해도 1년이 지나서 보면 그림이 늘어 있어요. 창작의 좋은 점은 그런 거 같아요. 인간은 나이를 먹고 노화하는데 창작 실력은 계속 늘게 된다는 거요. 몸을 쓰는 활동은 전성기가 분명히 있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아요. 마흔, 쉰이 되어도 젊은 화가라고 하니까요. 갈수록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더 좋아질 거라는 게 기대돼요. 

 

퇴사를 결심하고 막막했을 텐데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내가 책임질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이야기했죠. 어떻게 나를 그렇게 믿을 수 있었어요? 

어머니가 어느 날 제 사주를 보고 오셨는데, 제가 가세를 일으킬 거라고 했대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제가 뭘 한다고 하면 “그래, 넌 가세를 일으킬 인물이니까!” 하시는 거예요(웃음). 미술 한다고 했을 때도 “그래, 미술로 가세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 하셨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가세를 일으키는 사람이 저였나 싶기도 해요(웃음). 사실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할 때 주변 사람들이 다 말렸거든요. 근데 엄마가 “네가 거기 다니면서 가세를 어떻게 일으키니? 네가 할 일은 따로 있어. 넌 네 일을 해야 해.”라고 해주셨어요. 그 말 덕분에 퇴사를 결심하게 됐죠. 물론 사주가 원동력이라는 이야길 하려는 건 아니고요,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건 가족일 수도 있지만 친구나 이웃, 선배나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죠. 제 친구들 역시 저한테 “난 네 걱정 하나도 안 돼.”라는 말을 자주 해줬어요. 진심으로 저를 믿어준 거죠. 원동력이라는 게 있다면 저한테는 그게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믿음이나 기대에 못 미칠까 봐 걱정되진 않았어요? 

오히려 제 기대에 못 미칠까 봐 겁이 났어요. 사람들은 제가 엄청난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지 않는데, 오히려 저만 제가 특별하기를 바라고 잘되기를 바랐거든요. 

 

그럴 땐 어떻게 했어요? 

좋아하는 책 《빅매직》에 창작할 때 고통을 마주하면 ‘이거 내가 항상 겪던 거지.’ 하면서 되새기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슬럼프 앞에서 도망치고 싶고, 숨고 싶을 때 ‘아, 나 지금은 이런 단계지.’ 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자기의 사고를 프로세스화하는 거죠. 그걸 인지하고 나면, 그 시간을 버티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견디게 돼요. 유튜브 조회수가 안 나온다고 ‘이제 접어야지.’ 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다 차츰차츰 조회수가 잘 나오면 ‘그래! 이게 나다!’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정말 두려울 땐 유튜브에 제 이름을 검색해요. 그럼 제가 업로드한 영상 개수가 뜨거든요. 만일 그게 200개라면, ‘난 이 겁나는 걸 200번을 넘게 해왔구나.’ 하면서 안심하는 거예요. 

 

책에서 ‘내가 되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죠. 자연스러운 나를 찾자는 말 같았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할 텐데, 이연 씨는 본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여행에서 특히 더 잘 알게 됐는데, 친구들이랑 가니까 제가 더 잘 보이더라고요. 극명한 비교군이 캐리어였어요. 저는 캐리어의 반 정도 여분이 있었고, 모든 게 정리가 되어 있었거든요. 바퀴 쪽에는 이거, 오른쪽에는 이거, 위쪽에는 이거, 저만의 로직이 있었단 말이죠. 근데 옷만 무진장 넣어 온 친구도 있었고, 저랑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리한 친구도 있었어요. 화장품을 챙겨 오는 스타일도 제각각이었죠. 한 친구는 본품을 챙기고, 다른 친구는 샘플을 챙기고, 저는 소분을 해 왔죠. 그걸 보면서 제가 정리정돈이나 로직에 얼마나 집착하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저는 그런 사람 같아요. ‘항상 단정하고 선명하고 싶은 사람. 거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

나를 찾기 위해서는 관찰도 중요할 텐데요. 어떻게 나를 관찰하곤 해요? 

질문을 해요. 살다가 무기력하고 기분이 나빠지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럴 때 질문을 던지면 제법 많은 게 해결돼요. “넌 지금 왜 기분이 나빠?”, “너 지금 왜 불만족스러워?” 하고 묻는 거죠. 저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에서 제가 뭘 원하는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너 왜 이 음식 싫어해?”라고 묻거나 “너 왜 여기 안 가려고 해?”라고 물으면 반대급부에서 진짜 제 모습을 찾을 수가 있어요. 예전엔 불평불만이 많은 제가 싫었는데, 그걸 느끼는 순간마다 질문하고 답변하다 보니까 저를 좀더 알게 되더라고요. 

 

너무 좋은 방법인데요. 종종 써먹어야겠어요(웃음). 요즘은 유난히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는 콘텐츠가 많아졌어요. 책도, 유튜브도, SNS도 그렇죠. 사람들 이야기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를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한때 저는 해놓은 건 없고 나이만 먹는 것 같아서 불안해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사이에 그려놓은 그림이나 써둔 글이 보이면 위로가 되는 거예요. 제가 뭔가 했다는 게 증명이 되니까요. 그러니까 다들 자기 존재에 대한, 삶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닐까요? 사실 이런 문화는 요즘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옛날엔 벽화에 이런 흔적을 남긴 게 아닌가 싶어서요. 내가 잊히고, 소모되고,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생각이 드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남겨놓으려고 했던 거죠. 저는 그 방법 중 제게 가장 잘 맞는 게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진짜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이유는 기억되고 싶어서예요. 

 

그럼 반대로 우리는 왜 영상이나 책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보려고 하는 걸까요? 

저는 드라마나 소설 같은 픽션보다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요. 재연되지 않은 원천 소스들을 좋아하는 거죠. 거기서 공감할 지점을 찾으면 제 삶에 큰 위안이 되거든요. 가끔 누워서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때면 저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어요. 근데 다큐멘터리에서 누군가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장면이 나오면 위로가 되는 거예요. ‘아,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고요. 또 공감할 수 없는 걸 보는 재미도 있어요. 우리가 우주를 궁금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고요. 

 

결국 영상은 내가 겪어본 것과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전부 알려주는 셈이네요. 그럼 이연 씨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둘 다요. 서문은 ‘나도 이런 거 알아!’ 할 만한 공감의 이야기로 시작하고요. 그다음엔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이렇게 투자 공부를 하세요. 퇴근 후에 사이드 잡을 하세요.” 같은 건 이제 누구나 알 법한 사실이잖아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요. 예전에 유튜버 친구 한 명이 그러더라고요. 네 가지 솔루션을 말할 거면 세 가지 정도는 보편적이어도 한 가지는 완전 처음 듣는 걸 이야기하라고요. 최근에 제가 ‘만만해 보이지 않는 방법’에 관한 콘텐츠를 올렸는데요. 저는 여기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을 만큼 아까운 사람이 돼라.”고 했어요.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했다면 대부분 ‘내가 순하게 생겨서. 말을 잘 들어서. 만만하게 보여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어쩌면 그 사람에게 자신이 엄청 귀한 사람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거든요. 저는 그런 것들을 말하려고 해요. 

 

결국 흥미를 유발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겠네요. 

그렇죠. 그런 건 계속해서 생겨난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건 제가 겁먹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거겠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계속해 준다는 건 다정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책에서 다정이 후천적이라고 했는데, 그걸 알려준 사람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초등학생 때 스승의 날이라기에 에이포 용지에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께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정사각형으로 접어서 리본 모양을 그리고는 편지를 선물처럼 만들었죠. 그걸 갖고 등교했는데 교탁 위에 선물이 수북한 거예요. 저 어릴 땐 부모님이 선생님 선물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전달하곤 했는데, 그걸 까맣게 몰랐던 거죠. 산처럼 쌓인 선물을 보니까 좀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선물 구석에 제 편지를 두고 왔는데요.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셔선 선물을 쫙 보시더니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선생님은 이런 선물이 제일 좋아.” 하시면서 제 편지를 들어 올리시는 거예요. 와, 정말 감동적이었죠. 그때 느낀 다정함 덕분인지, 지금도 손 편지 쓰는 걸 좋아해요. 편지는 그걸 쓴 당사자도 다시 볼 수 없는 글이잖아요.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것 같아요. 

 

편지도 하나의 흔적일 텐데요. 글이나 그림, 영상 같은 흔적을 남기는 이유가 ‘사후에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서’라고 했어요. 

영화 <디태치먼트>(2011)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을 처음 보자마자 이런 질문을 해요. “내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추모할 것 같은지 한번 적어보아라.” 저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언제나 제가 가져가고 싶은 태도로 살고 있으니까요. “이연? 걔 사람 좋아하고, 사람들한테 잘해줬어. 위로하는 메시지도 많이 남겼지. 생각해 보니 걔가 선물도 많이 줬다?” 하고요.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군요. 

맞아요. 저는 항상 곁에 귀여운 사람들을 많이 두고 싶어요. 외형적으로 앙증맞다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도 있고, 애쓰는 모습도 있고, 다정한 마음도 있는 그런 사람들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아우슈비츠에 가면 불자 같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대요. 절대 망가지지 않는 고고한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 저는 애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주적인 거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거기도 하죠. 저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요. 많이 애쓰는 사람들을. 

 

“나는 이연의 최신판이 언제나 마음에 든다.”고 했지요. 오늘도 오늘의 이연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그럼요. 예전의 저는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목감기가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삶의 매뉴얼을 갖게 되는 게 너무 좋아요. 몇 번 감기에 걸려 보니까 제 감기는 목에서 시작해서 코로 나간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지금 코맹맹이 상태니까 이게 내일 정도면 나갈 거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수 있어요. 감기에 걸리면요, 하루하루 깨어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점점 나아지는 느낌이거든요. 그러니까 또 최신판 이연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는 거죠. 내일은 또 내일의 저를 가장 좋아하게 되겠죠?

Book —《매일을 헤엄치는 법》 이연 | 푸른숲

《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다 읽고 내내 마음에 남은 말이 있다. “잘해낼 줄 알았어. 고마워.” 이연이 이연에게 보낸 말이 나에게로 건너와 오래 마음에 고였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눈썹과 어깨 모양이 비슷한 각도로 축 처질 때, 입꼬리가 자꾸 아래로 주저앉을 때. 이제 그런 내가 보여도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해줄 거라 믿는다. “잘해낼 줄 알았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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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