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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느른 — 유튜버
김제역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평야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건 힘들어서 내뱉는 한숨이 아니었다. 안도와 기쁨 섞인 숨이었다. 크게 호흡하면서 이곳의 폐가 한 채를 덜컥 사버린 그녀의 결심을 가늠해봤다. 왠지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이 느껴진다. 폐가는 ‘오느른’이라는 이름이 붙은 어엿한 집이 되었고, 이곳에 쌓인 추억도 어느새 두 해를 지났다. 평야에서의 산책은 어떨까. 걸음걸음마다 여유와 온정이 철철 흐를 것만 같다.
새소리가 선명히 들려요. 정원이 정말 아름답네요.
정원은 아버지가 다 관리하신 거예요(웃음). 주변이 정말 조용하죠. 여기서 혼자 밥 먹을 땐 씹는 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요.
시골 평야를 보니 마음이 고요해지네요. 오느른 유튜브 채널이 어느새 두 번째 해를 맞이했어요. 동시에 아쉬운 소식이 들려오네요.
오느른은 6월을 끝으로 휴식기를 가지려 해요. 오랫동안 고민이 많았어요. 오느른은 유튜브 채널이긴 하지만 엄연히 MBC의 방송 채널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MBC의 PD이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계기로 이 집을 사게 됐고, 우연히 집을 배경으로 콘텐츠 기획안을 내면서 어떻게 보면 우연히 오느른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속하다 보니 작은 이슈들이 쌓였죠. 회사 차원의 문제도 있고, 한편으론 제가 오느른이라는 채널을 이용해서 이 집을 홍보하고 수익을 얻으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더라고요. 이런 피드백은 극히 일부지만 PD가 시골에 와서 뭐 하냐, 하는 말들도 있었고요. 처음 이 집을 구하게 된 것도 단순히 쉼이 필요해서였는데, 오느른이 콘텐츠가 되면서 PD로서 해야 할 일들을 계속 찾게 됐어요. 멈춘다기보다는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처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요. 이 집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따뜻했어요. 당시에 정읍에 있는 폐가 한 채도 봤는데 그 집을 계약했으면 정읍에서 오느른이 시작됐겠죠(웃음). 같은 가격에 2층 양옥집이었는데 거기는 마을 전체가 텅 빈 느낌이 들었어요. 말 그대로 폐가였죠. 그리고 김제에서 이 집을 보게 됐는데 햇살이 가득 드는 분위기가 편안하고 안락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해와 가까울 일이 거의 없잖아요. 오느른에서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 서울에서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거든요. 빛이 화사하게 드는 이 집을 보는 순간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정말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나 봐요.
그랬죠. 제가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다큐멘터리 PD 일을 하다가 늦은 시기에 큰 회사에 들어간 경우였거든요. 회사에 들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고 먹고살 만해지니까(웃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거죠. 큰 조직 생활이 처음이었고 커리어에 비해 사회 경험이 적은 편이었어요. 모두가 그렇듯 사회초년생의 어려움과 처음 마주하게 된 거예요. 누가 봐도 안정적이어야 하는 시기였지만 저 자신은 굉장히 불안한 때였어요. PD로서 잘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고요.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서른이 넘었는데 뭔가 성취한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불안했죠. 누구나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되고 싶잖아요. 그런데 저는 솔직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성향이라 조직 생활 안에서 크고 작은 트러블을 종종 겪었어요. 나중엔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있나, 하는 걱정들이 쌓였죠. 주변에서 다들 3년만 버티라고 하길래 열심히 버텼는데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다 보니 프리랜서일 때 가졌던 전투력도 조금씩 상실하게 됐어요.
그래서 쉬기 위해 오느른을 시작했는데 일을 더 벌인 셈이 된 거네요(웃음).
그렇죠(웃음).
PD로서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었나요?
개인 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기획한 콘텐츠들은 대부분 저만의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한참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는데 계속 물을 마시라고 하길래, 그때는 물을 잘 마셔야 한다는 정론이 이슈가 되기 전이었거든요. ‘정말 도움이 된다고?’ 하는 물음에서 시작했던 프로그램이 SBS <물 한 잔의 기적>이었어요. 결과가 좋아서 2년 정도 물 이야기만 했던 것 같아요. 20대 후반에는 비혼이라는 키워드가 이슈일 때였는데, 제 주변에는 비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정말 다들 비혼을 원하는 건지 의문이 들어서 결혼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의심으로 출발했던 거네요. 평소에도 고민이 많은 편인가요?
안 그러다가도 작은 것에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조금 피곤한 성격이죠(웃음).
오느른 영상을 보면서 느꼈는데,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움직이시더라고요.
최근에 조금 인정하게 됐는데 저는 혼자서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지는 사람이더라고요. 몰랐는데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계속 할 일을 찾나 봐요. 오느른을 시작한 것도 그런 까닭이에요. 휴대폰도 배터리가 없을 때 그냥 두면 결국엔 꺼지잖아요. 충전기가 꼭 필요한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물론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일 말고 다른 일을 통해서 영감을 받고 에너지를 얻는 일이 저에겐 휴식에 가까워요.
오느른 채널을 운영하는 건 휴식이 되었나요?
정말 많은 힘이 됐죠. 말 그대로 혼자 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채널을 통해 구독자분들의 피드백을 받고 더 힘을 얻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제 고민으로 출발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왔듯 오느른도 순전히 제 고민으로 시작했는데 늘 제가 가진 고민이 저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외로울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오느른을 통해 깨닫게 된 거예요.
맞아요. 저도 오느른을 알게 된 게, 한참 서울 생활에 지쳤을 때였어요. 힘들어하는 저에게 친구가 오느른 영상 링크를 보내주더라고요. 결국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오느른에 모이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만약 힘듦 지수 게이지가 최대 10까지 있다면 예전에는 10을 꽉 채워 올라갔는데 지금은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은 여전하지만 깊은 고민으로 빠지지는 않아요.
오느른 덕분에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맞아요. 몰랐던 제 모습들과 마주하기도 했어요. 사실 오랫동안 콤플렉스였던 게 나만의 취향이 없다는 거였거든요. 특히 PD들은 각자 개성이 뚜렷한 동료들이 많아요.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평론가들이 할 법한 대화가 오가는데, 저는 가요 Top 100을 듣는 사람이거든요(웃음). 오느른을 통해 영상 속의 제 모습을 보면서 타자화된 자신과 마주하면서 몰랐던 제 모습을 너무 많이 보게 된 거예요. 제가 저를 계속 관찰하는 거죠. 바보 같은 면들이 그대로 영상에 실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의아했어요. 부족한 제 모습도 곧잘 반겨 주시더라고요. 자존감이 점점 커졌죠. 그 전에 제 고민은 계속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의심하는 거였잖아요. 많은 공감을 받게 되면서 못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다 열어놓고 보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나한테 이런 면도 있네, 혼자 긍정적인 시선을 찾아갔어요. 전에도 분명히 그런 면이 있는 사람이었을 텐데 미처 발견할 여유도 없었고 봐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겠죠. 이제 좀 저 자신이 납득이 되면서 제 취향을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있어요. 오느른 채널에 제 모습이 기록되는 것 자체도 되게 큰 자산이라고 느껴요. 문득 옛날 영상을 다시 볼 때가 있거든요. 이때는 저런 생각을 했구나… 아, 생각해 보니 아직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많네요(웃음).
어떤 건가요(웃음)?
지금은 쓰라고 해도 못 쓸 것 같은 말들이 많더라고요. 왜 그랬지, 이때 많이 지쳤나(웃음). 하여간 너무 힘들었나봐요. 서울에서 심리 상담을 1년 정도 받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 과정을 기록해 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해요. 이미 멀리 와버린 사람은 과거의 자신을 기억 못 하잖아요. 과거의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게 힘들었는지 기록해 두는 게 단순히 저 자신을 치유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면 그 일엔 묵직한 의미가 담겨요.
정말 뜻깊은 의미를 만들어왔어요. 이제 이번 호의 주제어 ‘산책’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김제 옥정리에서의 산책은 어떤가요?
일단 온통 논과 밭뿐이죠. 간판이 하나도 없어요. 작은 차이인데 뭘 살지 고민하며 걷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저 옷을 사 말아, 올리브영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데(웃음), 여기서는 남의 집 마당에 핀 꽃을 보고 벼가 얼마큼 자랐나 관찰하는 일뿐이에요. 되게 사소한 부분인데, 서울에서는 알게 모르게 그런 점들이 피곤하게 다가왔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서 산책을 하며 깨달은 거죠. 그리고 생각이 단순해져요.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도 안 든다는 말에 동의하거든요. 도시에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잖아요. 이곳에서는 논이 비어 있든, 벼가 익든 모든 풍경이 다 그대로인 느낌이에요. 작은 변화들도 그저 바라보게 하는 여유로운 태도로 이어져요.
이제 서울로 다시 가야 하는데 이런 점은 아쉬울 것 같아요.
주말에는 다시 돌아와요(웃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마을 청년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도시 청년들의 고민은 주거 문제가 크잖아요. 열심히 노력하지만 원하는 집에서 살기란 너무 어렵죠. 로컬 청년들도 도시 문화권을 누리고 싶은 니즈가 있고요. 서로의 고민을 보듬어 줄 해결책을 오느른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여러 콘텐츠를 모색하고 있어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천천히 멀리 보았을 때 대안점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오느른의 또 다른 역할이 생기겠네요. 오느른 채널을 통해 김제라는 지역에 생긴 변화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로컬 자체에 변화를 주는 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이야기예요. 종종 김제나 주변 다른 학교에 특강을 나갈 때가 있는데요. 시골 학생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로컬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낮은 경우가 많아요. 그런 친구들이 오느른 영상에 담긴 김제를 보고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대해 꽤 뿌듯함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오느른이 좋은 변화를 주고 있는 건 분명하죠. 반대로 생각했을 때 김제에서 생활하면서 서울이 참 좋은 곳이라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인프라도 좋고 문화권도 가깝고요.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권태를 느끼지만 잘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저는 그러지 못해서 김제에 왔지만 서울에서도 가까운 자연을 찾아 잘 쉬어 가는 건강한 친구들의 이야기도 많거든요. 각자의 방법을 찾아 지루해진 일상과 거리를 두는 게 중요해요. 이런 부분이 ‘쉼’과 ‘취미’라는 카테고리와 이어지겠죠. 잠깐은 멀어져 봐야 다시 돌아와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오느른에서 생활하면서 일과 자아실현을 분리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느 순간 PD로서 뭔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내가 행복하면 되는 건데, 여기서 작은 서점을 차려 살아도 저는 행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제가 이뤄온 것들을 한 번에 놓아 버리는 것도 충동적인 선택이니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을 지키되, 자아실현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어떤 자아실현일까요?
단순히 제 꿈이라는 걸 직업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했더라고요. 어릴 때 꿈이 PD였으니 막연히 PD라는 직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살아왔어요.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했던 거죠. 결국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점이더라고요. 요즘은 굉장히 명확해졌어요. 회사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안정을 주는 일로 확실히 구분을 하고 거기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예요. 그 외의 시간에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되고요. 쉽고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최근까지도 무척 어려운 자아실현이었어요.
만약 우리에게 100퍼센트가 있다면, 그 안에서 퍼센티지를 나누어 일과 자아를 분리한다는 걸까요?
그 100퍼센트 안에 경계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100이 아닐지도 모르죠. 사람의 잠재적인 에너지가 꼭 100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겠죠.
자아실현 중에 하나가 출판이었을까요? PD를 꿈꾸기 전에는 작가가 꿈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유튜브 채널과 동명의 책을 내기도 했죠.
작가는 아주 어릴 때 꿈이에요. 엄마가 작가셨거든요. 책들이 늘 주변에 있었고, 엄마를 따라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었어요. 엄마와 저는 베스트 프렌드였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엄마 손을 잡고 매일 도서관으로 갔어요. 글을 잘 쓰면 칭찬을 받는 일이 가장 뿌듯했죠.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작가는 갑자기 못 이룰 꿈이 되어버렸어요. 당시에 모녀 작가로 활동하자는 출판사의 제의도 있었는데 엄마가 자리를 비우시자 모든 게 무산이 되어 버렸죠. 그때 상처를 많이 받고서 PD를 꿈꾸게 됐어요. 돌이켜 보면 인생의 중요한 타이밍에 늘 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글과 가까웠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지금도 쉴 때는 꾸준히 서점에 가서 책을 봐요. 꼭 글을 읽지 않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무슨 생각하고 지내나, 이런 고민들이 있구나, 살피면서 혼자 위안을 얻기도 해요.
작가로서의 오느른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오느른을 통해서 도전하는 일이 덜 두려워졌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요즘의 크고 작은 도전들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저에게 ‘워라밸’은 뒤늦은 이슈인 것 같아요. 워낙 워라밸을 못 지키던 사람이라 큰 도전이기도 하고요. 친한 친구가 인권 변호사인데 자신은 공익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라는 인식때문에 ‘돈을 잘 벌고 싶다’고 말하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일을 하면서 그만큼 정당하게 돈을 버는 일이요. 인권 변호사라고 해서 꼭 검소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런 지점들이 저희 세대가 가진 전체적인 의문점일 거라고 생각해요.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삶인지, 또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싶긴 한데 그게 어느 정도여야 안정된다고 느낄지, 어느 정도 이상은 또 사치인지, 이건 되고 저건 왜 안 되는지, 기준이 모호하니까요. 저도 그렇거든요. PD로서 사회적인 지위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에 PD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도 벌고 싶지만 쉴 때는 쉬고 싶어.” 누군가 이 말을 했는데 너무 공감이 돼서 웃기더라고요. 누구나 원하는 삶이죠.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비슷한 맥락에서 오느른에서 생활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낀 일이, 돈을 벌지 않고도 먹을 것을 수확해서 식사를 해결한 일이었어요.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쓸모가 있는 어른이구나, 시골 생활 나름의 반전이었어요. 이런 게 왜 도시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울까 하는 고민들도 생겼고요.
말 그대로 자급자족인 거죠(웃음). 어느새 서울 토박이에서 시골 동네의 일원이 되었네요.
그렇죠. 고향의 개념이 처음 생긴 기분이에요. 서울 사람들은 서울을 고향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목동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목동이 고향이란 얘긴 잘 안 하죠. 여기서 자리를 잡고나서부터는 잠시 어딜 가더라도 오느른으로 돌아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해요. 이곳이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거죠. 조금 오버스럽지만,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공천 욕심이 있는 거 아니냐 농담도 해요(웃음). 오느른 덕분에 정체성이 좀 확장됐다고 할까요. 생각보다 더 큰 안정감을 얻고 있어요.
오느른 같은 시골 생활을 하려면 배우자가 필요하다고 말하셨는데, 조금 의외의 답이기도 했어요.
정말 필요한 존재죠. 오느른 콘텐츠를 만들어 가면서 농담처럼 말하는 게 인류의 발전사를 직접 겪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웃음). 마치 심시티 게임처럼 오느른 집이 생기고, 직원들이 늘어나고, 사무실을 차리고, 카페가 들어서면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뭔가 하나씩 늘어가는 걸 보니까 교과서에서 보던 발전사를 그대로 배우는 것 같더라고요. 배우자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선 사람 한 명이 정말 큰 노동력이에요. 도시에서 살 땐 정상가족이라고 불리는 개념이 조금 틀에 박힌 것 같고 한편으론 부정적인 인식까지 있었는데, 그런 거부감이 사라졌어요. 가족을 꾸리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혼자 사는 삶, 비혼이라는 테마가 이슈지만 곧 결혼 자체가 오히려 ‘힙한’ 개념으로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에 대한 롤모델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결혼에 대해서는 점점 동경의 시선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슬픈 부분이기도 하죠. 결혼이 점점 더 어려운 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저도 요즘 점점 결혼 생각을 조금씩 하고 있기도 해요.
꾸리고 싶은 가족의 모습이 있나요?
평범하고 평온한 가정이요.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평범한 엄마로 아이와 잘 지내고 남편과 적당히 잘 지내는 게 꿈이라면 꿈이죠.
벌써 마지막이 되었어요. ‘오늘을 사는 어른’은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하며 마무리해 볼게요.
처음엔 ‘오느른’이 아니라 ‘오늘은’이었어요. 시골 생활의 느릿느릿한 속도감을 담고 싶어서 오느른이 됐고 그러다 ‘오늘을 사는 어른’이라는 부제가 생긴 거죠. 그러나 보니 ‘어른’이라는 키워드가 빠질 수 없게 된 거예요. 어른이라는 말을 단순한 명사로만 여기다가 곱씹으면 씹을수록 명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자신을 어른스럽다, 어른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그 대상이 타인일 때 자주 하는 이야기가 되었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행복이 되게 추상적인 개념인 것처럼 어른도 정말 어른이라는 게 있나, 모호하게 느껴졌어요. 모두가 고정관념처럼 어른스러워질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어른스러워진다는 걸 ‘최선의 나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단계’로 생각한다면 모두가 어른스러워지고 싶지 않을까요. 어른이라는 건, 어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속하는 거죠. 저는 항상 그때그때 선택이 쌓여 저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아주 작은 선택이도 그 선택이 반복되어 나의 오늘이 만들어지는 거죠. 결국 어른스러운 자신을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게 정말로 의미 있는 게 아닐까요?
망해사
“멀리 바다가 보이는, 늪과 강 하구가 펼쳐져 운치가 느껴지는 곳이에요. 정말 조용한 절이죠.”
A. 전북 김제 진봉면 심포리 1004
부안 상설 시장
“오래된 전통 시장으로 지역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지역의 문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죠.”
A. 전북 부안 부안읍 시장1길 6-11 우진수산
오느른오피스
“얼마 전에 재오픈을 했답니다. 그냥 내어드리고 있으니 망해사로 가기 전에 들러 커피 한잔 하세요(웃음).”
A. 전북 김제 죽산면 죽산리 600-56
소우
“고마제 저수지를 끼고 있는 소바 전문 식당이에요. 창밖으로 윤슬이 뜬 강가가 보이는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에요.”
A. 전북 부안 동진면 고마제로 143 1층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