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인생

삶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인생을 영화로 만들 수 있다면 장르는 코미디로 정하고 싶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밌는 일이 잔뜩 일어났으면 좋겠다. 코미디에서는 억울하고 비극적인 일도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넘길 수 있으니까. 아니면 로맨스도 괜찮다.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인생은 상상만으로도 달콤하다.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내 인생의 무게를 가늠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코미디나 로맨스는 아닌 듯하다.

엄마는 아빠 없이 상견례를 하자고 했다.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그녀가 한발 앞서 ‘그간 겪은 수모와 설움’ 보따리를 푸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거실에서도, 식당에서도, 명절에도 개의치 않고 등장하는 그 이야기는 항상 한 가지 결말을 고수했다. ‘아빠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아니.’ 엄마는 결혼을 잘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된다면서 나만큼은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생계를 위해 평생을 같은 루틴으로 산 아빠와 달리 엄마는 일분일초도 멈추지 않는 물결처럼 변화무쌍했다. 하고 싶은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보면 파도가 떠오른다. 형태 없이 너울지다가도 금세 물거품을 일으켜 모든 것을 삼키는 파도. 나를 만든 두 사람은 너무 달라서 사는 내내 힘들어했다. 결혼 생활마저, 한 사람은 지키고 싶어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유를 원했다.

그래도 난 상견례에 아빠가 함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사회적 규율을 중요시하는 아빠에게 양가 정식 행사인 상견례가 얼마나 중요할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엄마는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표했다. 아이러니 한 건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고 나서도 걸어서 20분 거리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10분 안에 아빠 집 앞에 도착했다. 1동과 2동에 사는 부모.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초저녁에 시작된 엄마의 이야기는 이튿날까지 반복됐다. 아, 왜 결혼은 집안과 집안이 하는 걸까. 당사자끼리 하면 안 되는 일인가. 정녕 내게 코미디는 허락되지 않는가.

 

 

결국, 엄마를 꺾지 못했다. 아빠를 제외한 가족과 한정식집에서 예비 시댁을 맞이했다. 혹시나 여기서도 엄마의 보따리가 풀어질까 봐 염려한 나는 대화의 완급을 조절하느라 중간중간 역할을 바꿔야 했다. 어떨 때는 장녀로, 어떨 때는 가장으로. 아빠 역할까지 하려니 은근히 분주했다. 내가 가진 패를 부족하게 여기는 탓에 자꾸 여러 역할을 도맡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지영이가 참 예뻐요. 예쁜 딸을 우리 가족으로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유 참. 제가 더 감사하죠. 잘 부탁드려요, 사돈.”

대화가 끊길 즈음마다 다음 요리가 나온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래서 다들 한정식집에서 상견례를 하는구나. 양가 어른들은 결혼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마지막으로 결혼식을 기약하며 자리를 파했다. 그날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잠자리에 들 때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꿈에서는 상견례가 무한 반복되었다. 

2주 뒤, 서둘러 퇴근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같은 한식당에서 또다시 시댁 식구를 마주하고 앉았다. 꿈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옆에 아빠가 앉았다. 그러니까 두 번째 상견례였다. 그 애를 통해 우리 집 사정을 들은 시부모님이 상견례를 두 번 하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하신 것이다. 결혼을 두 번 하는 건 들어봤어도 상견례를 두 번 하는 건 처음 들어봤는데, 그게 내 이야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문제가 해결됐으니 웃어야 할지, 다른 선택지가 없어 울어야 할지 선뜻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이 방법만이 유일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제야 조금 내 인생이 코미디 같이 느껴졌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고 블랙 코미디.

“지영이가 참 예뻐요. 예쁜 딸을 우리 가족으로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저도 감사합니다.”

지글지글 익는 돼지갈비를 앞에 두고, 처음 듣는 듯 가만히 어른들의 말을 경청했다. 두 번째라고 그새 분위기에 익숙해진 게 웃겼다. 말수가 적은 아빠 덕에 이번 상견례는 훨씬 일찍 끝났다. 두 번씩이나 우리 동네로 와주신 시부모님에게 온 마음을 다해 꾸벅 인사를 드렸다.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상견례를 두 번이나 한 이야기도 에피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르는 상관없지만, 메시지는 확실했으면 좋겠다.

‘결혼 한번 하기 힘들죠? 기운 내세요. 상견례 두 번 한 사람도 여기 있답니다.’

결혼을 떠올릴 때 가장 염려스러웠던 과정이, 의외의 방식으로 특별하게 지나갔다.

We Around Project

결혼, 문을 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7,0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 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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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