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얼굴을 빚는 사람들

프로파간다

영화의 얼굴을 빚는 사람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간 날, 티켓을 끊지 못하고 포스터 앞을 오래 서성거렸다. 영화관에 붙은 포스터는 기대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쉬움에 혼자서 몇 마디를 늘어놓다가 입장했지만, 사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포스터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모른다.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하나둘 영화관을 떠나는 동안 나는 좋아하던 몇 가지 포스터를 생각했고 얼마 후 그 포스터를 만든 디자이너가 모두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됐다.

INTERVIEW

디자이너 최지웅, 박동우, 이동형

포스터 디자이너라고 하면 포스터만 디자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지웅 보통 영화사에서 사진을 받아서 글자만 얹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시나리오를 책으로 만드는 일이에요. 의뢰를 받으면 시나리오가 한글 파일로 와요. 내지 편집 디자인, 표지 디자인, 타이포 디자인까지 하죠. 이 책이 나오면 고사를 지내고 촬영을 시작하는 거예요. 시나리오북부터 시작해서 포스터, 전단, 광고, 버스 광고, 전국 극장별 배너까지 만들어요. 극장마다 크기가 다 다르거든요. 포스터를 만든다는 건 그런 일들을 포함하고 있죠. 영상과 웹을 빼고 영화 비주얼에 관련된 모든 일이요.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겠네요.
지웅 읽고서 말하고자 하는 걸 잡아내야 하니까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북 디자인한 뒤부터 계속 포스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요.

포스터를 만드는 건 영화 제작 중 어떤 시기에 이루어지나요?
지웅 개봉하기 5~6개월 전부터 포스터를 만들기 시작해요. 시나리오북을 만든 뒤에 약간 비는 기간이 있는 거죠. 포스터에 나올 배우들의 의상, 포즈, 헤어, 세트, 배경까지 다 기획해서 콘티북을 만들어요. 그리고 콘셉트에 맞는 포토그래퍼, 메이크업, 헤어 등 촬영팀을 꾸려서 포스터 촬영을 해요. 그래서 완성된 영화는 보통 최종 시사회 때 보는 편이죠. 독립 영화 포스터를 만들 때는 영화를 보고 할 때가 많아요.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포스터용 사진은 가끔 찍고 대부분 스틸컷이나 영화의 장면을 캡처해서 사용하는 편이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장기적인 프로젝트라 놀랐어요.
지웅 그래서 블록버스터 영화, 배우가 많은 영화는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들어요. 해외 영화제 나가면 그거에 맞는 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요. 보통 하나씩 작업하는 게 아니라 여러 편의 영화가 맞물려 있는 상태죠.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포스터를 만들 때도 다양한 사람과 의견을 나누겠네요.
지웅 네. 배급사, 홍보사, 투자사 다 모여서 회의를 해요. 그때 의견이 정리되면 포스터 촬영을 하는 거죠. <해적> 같은 경우는 배우도 많고, 사극이라 힘들었어요. 배우도 많은데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미리 만들어놓은 콘티북을 보고 찍으니까, 포스터가 기획한 것과 거의 똑같이 나왔어요.

처음에 저는 영화제작사나 배급사에 디자인 부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찾아보니 포스터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회사가 많더라고요.
지웅 거의 99%죠. 수입 배급사 한 곳에 내부 디자이너가 있고, 그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포스터 전문회사에 외주를 맡기는 형태에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내부에 디자이너가 있을 때 소통도 원활할 것 같은데, 없는 이유가 있겠죠?
동우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영화 콘텐츠를 다루는 대기업 중 한 군데에서도 그런 구조를 원했다고 해요. 디자인부서가 내부에 있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느냐고 판단한 거죠. 그런데 실무자들의 입장은 다른 거예요. 영화를 한두 개 하는 게 아니고, 장르도 액션, 코미디, 멜로 다양한데 디자이너가 한정적이면 포스터의 색이 너무 똑같아진다는 거죠. 그것보다 영화와 맞는 특화된 업체에 맡기는 게 효율적이고 포스터도 잘 나오니까요. 그래서 내부 디자이너가 없는 것 같아요.

외국영화의 포스터 작업 과정은 어떤가요?
지웅 해외 포스터를 작업할 때는 주어진 스틸컷 안에서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야 하죠. 그런 게 재미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배우가 다른 포즈를 하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진이 없고, 다시 찍을 수도 없으니 주어진 사진에서 최대한 풀어내는 거죠.

디즈니 같은 경우에는 수정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동우 다양성 영화들은 포스터를 따로 만들기도 하는데 디즈니, 20세기폭스, 워너브라더스 같은 경우에는 포스터가 전 세계적으로 똑같아요. 한글 로고만 다르고요. 그대로 써야 한다는 지침이 있어요. 다르게 디자인하더라도 다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고요.
지웅 일본 배우들은 얼굴을 수정하는 걸 싫어해요. 보통 잡티를 지우고, 얼굴선을 다듬기도 하거든요. 영화 〈비몽〉 작업할 때 오다기리 조 얼굴에 있는 점 하나를 지웠는데 다시 살려달라고 한 경우도 있었어요.

고전 영화 포스터도 인상 깊게 봤는데 작업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있나요?
지웅 이만희 감독 40주기 기념전의 경우 한 편만 하는 게 아니고 여러 편을 상영하는 거니까 사진이 좋은 것을 골라 포스터를 만들죠. 좋은 사진을 고르는 것도 디자이너의 능력인 것 같아요.

작업은 보통 한 분이 맡아서 하시나요?
지웅 영화에 따라 달라요. 규모가 큰 영화는 같이 회의하고, 선택된 아이디어를 낸 디자이너가 메인으로 작업하고 나머지는 받쳐주는 거죠. 작은 영화는 혼자 하기도 하고요.

포스터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다가 독립했다고 들었어요.
지웅 박동우 디자이너랑 같은 회사를 6년 정도 다니다가 독립했어요. 둘이 또 6년 하다가 한 명을 더 뽑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세 명이 됐죠.

포스터 디자인 분야는 일을 시작하기에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인가요?
지웅 저희는 이쪽 일을 계속하다가 회사를 시작했으니 초반에 일거리가 조금씩이라도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처음 시작하는 거라면 진입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동우 영화 마케팅 분야는 모험을 하는 곳이 아니에요. 큰 예산이 왔다 갔다 해서 안정적으로 가려다 보니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기보다는 기존에 했던 곳과 많이 하고 싶어 하죠. 저희끼리 보험 포스터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배우 얼굴이 크게 나오는 포스터요. 아무리 저희가 이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안을 낸다고 해도, 그런 보험 포스터는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해요.
지웅 그래서 독립영화 같은 작업을 할 때 새로운 포토그래퍼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랑 많이 하는 편이에요. 큰 영화를 경험 없는 사람과 작업하려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기회에 새로운 사람들과 많이 협업하는 편이죠.

직접 제작한 독립영화 엽서도 그런 일의 연장이었나요?
지웅 그런 셈이죠. 한국 독립영화 시상식인 들꽃영화상이 열릴 때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의뢰해서 함께 작업한 거예요. 사심에 담고 있던 일러스트레이터랑(웃음).

포스터의 카피는 보통 카피라이터가 써주는 건가요?
지웅 네. 보통 영화 홍보팀에서 주는데, 가끔 우리가 막 쓰기도 하고(웃음). 10년 전에는 영화 전문 카피라이터가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홍보팀 내부에서 하는 추세예요. 

카피의 성격이랑 디자인이 어우러지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웅 처음부터 어떤 식으로 영화를 보여줄 거라는 기획을 하고, 맞춰서 쓰기 때문에 완전 이상하거나 다른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간혹 카피가 그림하고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땐 직접 써서 올린 게 되기도 하고 그래요. 전단에 쓰는 글도 그렇고요.
동우 작은 규모의 영화를 할 때는 포스터 이미지를 먼저 보고 카피 쓰는 경우도 있어요.

클라이언트 성격에 따라서 포스터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죠?
동우 완전히 달라지죠.
지웅 100% 맡겨주는 분들도 있고, 배우 표정 하나하나 찾아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서체와 사진 크기까지 일일이 간섭하기도 하죠.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어떤 클라이언트가 좋은가요?
지웅 자유롭게 100% 맡겨주는 클라이언트죠. 그런 곳이 한국영상자료원이에요. 수정도 별로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영상자료원 포스터가 잘 나오는 것도 있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재미있게 하니까.
동우 제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인데, 좋은 포스터는 좋은 클라이언트랑 같이 만드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고요. 그래서 저도 디자이너한테 어느 정도 일임해주는 클라이언트가 좋다고 생각해요. 큰 것들은 같이 논의할 수 있지만, 소소한 디테일은 알아서 할 수 있게.

저는 오히려 깐깐하게 누군가 봐줄 때 당시엔 힘들지만 놓쳤던 걸 보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지웅 그런 경우도 있어요. 원래 저희가 작업한 게 좋다고 계속 우겼는데, 클라이언트가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 번만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해봤는데… 괜찮은 거야(웃음)!
동우 그러면 ‘미안합니다.’ 하고 그렇게 하죠. 사실 그런 간섭이 싫다고만 할 수는 없어요.

작업한 포스터가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경우도 있겠네요.
동우 그렇죠. 설득해보려고 해도 전혀 통하지 않는 곳도 있고요.
지웅 아니면 감정에 호소하고(웃음).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마음속에 있던 애정을 버리고 끝내 버려요. 포트폴리오에도 안 올리고. 작업이 돈벌이로 바뀌는 거죠.

포스터를 보다 보니 더 대담하고 디자인 요소가 강한 작업물은 독립영화 포스터이거나 재해석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포스터가 사람들에게도 반응이 좋은 것 같고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의 간섭이 적어서 그런 건가요?
지웅 그렇죠. 상업 영화보다는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요. 원빈이 나오는데 누군지 알아볼 수 없도록 포스터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규모가 큰 영화들은 자율성이 부족한 편이고, 그래서 안전하게 가려고 하는 게 있고요. 오히려 작은 영화들은 눈에 띄어야 하니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죠.

포스터를 직접 만들고 싶다고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지웅 많죠. 거의 감독들에게 연락하죠. 예를 들어 부산 영화제에 갔다가 영화를 봤는데 좋았던 영화 있으면 연락해서 포스터 하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많고요. 부산에서 하면 거의 1년 뒤에 개봉하거든요. 

그렇게 나온 포스터가 어떤 건가요?
지웅 <옥희의 영화>, <피에타>, <지슬>이 그렇게 만든 포스터예요.

포스터에 쓰이는 서체도 직접 만든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해요.
동우 직접 레터링한 뒤에 스캔해서 일러스트로 따는 경우도 있고, 영문 서체나 다른 언어의 서체를 받아서 거기서 조합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한글로 완벽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 느낌에 맞춰서 수정을 계속하죠. 한글 조합이 어렵잖아요.
지웅 손글씨 같은 경우에는 종이에 여러 번 쓰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스캔해서 옮기는 거죠. 감성적인 영화나 사극에는 손글씨를 쓰고, 어울리지 않으면 쓰지 않는 거고요. 그 판단도 저희가 하는 거고요. 시나리오북을 디자인할 때는 폰트로 했는데, 나중에는 손글씨로 가는 경우도 있어요.

하나의 영화만을 위한 서체를 만들고 나면 그 서체를 폰트로도 만들고 싶을 것 같아요.
동우 그건 폰트를 만드는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디자인 업체에서 만든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영문 같은 경우엔 트랜스포머체, 반지의 제왕체, 해리포터체 등 그 영화의 폰트가 나오잖아요. 그런 게 부럽긴 해요. 알파벳만 만들면 되니까요.
지웅 한글 폰트를 만들려면 글자 조합을 몇만개 만들어야 해요. 거의 1~2년 잡고 해야 할 거예요. 한글이 어려운 게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많잖아요. 자음, 모음이 앞에 나올 때랑 뒤에 받침일 때 모양이랑 다르고. 그래도 어떤 작업을 할 때는 그 영화만의 서체만 만들어서 모든 이미지 작업에 쓰고 싶죠.

지웅 씨는 수집광이라고 들었어요. 영화에 관한 인쇄물을 모은 것들이 작업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되나요?
지웅 옛날 타이포그래피들이 뛰어난 게 많아서 작업할 때 많이 참고하는 편이에요. 7~90년대에는 ‘영화카드’라는 게 있었어요. 지금은 A4 크기의 전단을 준다면 예전에는 영화 포스터가 앞면에 있고 뒷면에 달력이나 지하철 노선도가 있는 이런 카드를 나눠줬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걸 모았어요. 그런데 영화 카드가 90년대 초반에 없어졌죠. 그래서 제가 <족구왕>이라는 영화 디자인할 때 홍보물로 카드를 다시 만들었어요. 부활한 거죠(웃음).
동우 로고는 정말 옛날 것이 훌륭해요. 요즘 나오는 것보다 훨씬 세련됐고 지금 봐도 멋있고요. 저 같은 경우엔 책도 많이 보고, 음반 커버도 참고하는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영화의 어떤 것을 포스터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웅 영화의 성격과 분위기죠. 그걸 가장 매력적이고 함축적인 비주얼로 담아내야 하는 포스터 디자이너의 일이고, 그걸 해내는 게 어려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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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