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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게 엄청나게 많은 집이에요!
뭐가 좀 많죠? 좁은 복층 오피스텔이어서 물건을 깔끔하게 두기가 쉽지 않아요. 이 집은 이렇게 꾸미려고 했다기보단 이것저것 모으다 보니 이런 모양이 된 건데요, 요즘 자취 인테리어 하면 온통 새하얗거나 우드 톤인 경우가 많잖아요. 누구나 하는 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서 피하다 보니 알록달록한 집이 되어버렸어요.
오늘 입은 옷이랑 집이 꼭 하나의 퍼즐 같아요.
색이랑 패턴이 좀 강하죠(웃음). 원체 색이 많은 걸 좋아하는데,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해진 건 쿠바 여행을 다녀오고부터예요. 첫 회사를 퇴사하고 쿠바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채도 높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거든요. 모든 아이템이 알록달록한데 가구들은 점잖은 색, 검은색이더라고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 이 집에도 한가운데 검은 테이블을 두었어요.
집 분위기를 딱 잡아 주네요. 집과 옷, 그리고 머리 색까지 에리카팕에게 참 잘 어울려요. 이 희끗희끗한 머리가 자연 모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원래 이렇게 흰머리가 나는데, 회사에 다닐 땐 억지로 검은색으로 염색해야 했어요. 퇴사하고 염색을 그만두니까 이렇게 자리를 잡더라고요. 엄청 편해졌죠. 한때는 저도 외모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감추고 싶어 했거든요. 고3 땐 수능 마치고 친구들이 너도나도 성형을 하니까 저도 안 할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아빠한테 “나 코 수술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빠가 “너 자체가 우준데 왜 너를 바꾸려고 하니?” 그러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는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 긍정하게 됐어요. 아빠는 늘 ‘네가 없으면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하시거든요. 그렇잖아요, 제가 죽으면 이 세상이 남은들 제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얼마 전에 티브이에 출연하셔서 퇴사와 집들이 이야기를 나누셨죠.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요새 더 바빠지셨을 것 같아요.
저도 방송 나오면 부쩍 바빠질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바쁘지 않네요. 제 근황은 ‘예상보다는 덜 바쁘다.’예요. 백수처럼 지내고 있는데 지난주에 코로나19에 걸려 앓아누워만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겨우 직립보행을 하게 된 지 얼마 안 돼서 요 며칠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살고 있죠. 코로나19에 감염된 시즌에 원데이 클래스나 요리 프로젝트 스케줄이 정말 많았어요. 그걸 다 취소해야 해서 좀 속상했거든요. 요즘은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제 힘차게 움직여 보려고요.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에리카팕의 요리 프로젝트 ‘잇어빌리티’와 ‘함바데리카’ 소개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잇어빌리티는 어렵지 않고도 있어 보이게, 멋지게 만들 수 있는 메뉴 레시피를 소개하는 원데이 클래스예요. 회사에 다닐 때 퇴근하고 혼자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있어 보이게 차려서 SNS에 올리면 반응이 오는 게 좋더라고요. 얼마 안 하지만 갖춰 놓으면 삶의 질이 수직 상승하는 조리 도구를 소개하기도 하고, 주스로 5초 만에 샹그리아 만드는 법 같은 걸 이야기해요. 함바데리카는 함바집과 까사데리카가 합쳐진 이름인데요. 요리를 좀더 열심히 하게 된 후에 여성 노동자를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곤 했어요. 세상엔 정말 많은 직업군이 있지만 우리는 그 속내를 다 알진 못하잖아요. 수많은 노동자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마련한 자리예요. 이 프로젝트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뉴스레터 원고로 묶어 ‘에리카팕의 중구난방’으로 발행하기도 하고요.
근데, 아까부터 헷갈렸는데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죠(웃음). 에리카’팍’, 에리카’파앍’.
팍이라고 발음하면 돼요(웃음). 제 본명이 박지윤이어서 어릴 때부터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어요. 연예인만 해도 가수, 아나운서….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부터 유니크한 이름을 만들고 싶었죠. 온니 미, 저스트 미가 되고 싶어서요. 에리카팕은 독립출판을 하면서 갖게 된 이름인데, 저만 검색되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제가 명예욕이 좀 있어서(웃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잖아요. 근데 지윤은 너무 많으니까 저만의 이름이 필요했던 거죠.
에리카는 《분홍 돼지》 원서 제목에서 따왔다고 들었어요.
그 책이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아! 이거예요. 베로니카라는 여자가 주인공인데, 본인이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인형을 사요. 그게 돼지 인형 에리카죠. 두 눈에 사파이어가 박혀 있고, 몸통은 아주 보들보들한 인형이에요. 주인공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인형인데 사람 크기만 해요. 하도 크니까 비행기에 탈 땐 에리카의 좌석을 만들어 주려고 티켓을 따로 끊을 정도인데, 어느 날 자기보다 행복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 인형을 건네주는 이야기예요.
에리카팕도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서 이 이름을 선택한 거죠?
꼭 그렇게 되고 싶다기보단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생긴 편이에요. 저희 가족이 천주교 성골 집안이라(웃음), 공부는 안 해도 성당은 꼭 가야 했거든요. 종교적인 영향 때문에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라는 정신을 많이 접하며 자랐죠. 그래서 베푸는 삶에 관해 옛날부터 계속 생각해 왔어요. 에리카라는 이름을 가진 후 제 삶이 송두리째 변한 건 아니지만 이름 이야기를 할 때면 천주교 정신을 되새기게 돼요. ‘나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지.’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기도 하고요. 요리 프로젝트를 할 때도 그래요. 계속 재미를 주고 싶어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는 아무래도 현장 체질 같다고 많이 느껴요. 사람들 대면하고 직접 요리를 알려주고, 차려주고, 리액션하는 게 항상 재미있어서요. 갑자기 윙크를 날려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도 즐겁고요(웃음). 돌발 상황이 생겨도 대처하는 게 재미있으니 천직이다 싶죠.
함바데리카는 친구가 샐러드나 샌드위치 같은 걸로 끼니를 때운다고 하니까 “우리 집 와서 밥 먹고 가.”라고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문득 샌드위치나 샐러드는 디저트 같기도, 식사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디저트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어요?
어쨌든 ‘단 거’! 샐러드나 샌드위치가 디저트는 아니지만 정식으로 먹는 식사처럼 느껴지지도 않아요. 든든한 느낌은 아니니까 가벼운 식사 같달까요. 하루 한 끼는 밥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마인드가 있는 편이라, 친구한테 제대로 한 상을 차려주고 싶어서 밥 먹고 가란 말을 한 거죠.
잠깐만요, 디저트는 무조건 단 거라고요?
디저트는 식후에 먹는다는 인식 때문인지 가벼운 달콤함이 먼저 떠올라요. 짠 것도 좋지만… 저한테는 무조건 단 거.
지금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디저트?
아이스크림이요. 아, 요새 자주 해 먹는 아이스크림 레시피가 있는데요. 함바데리카 1회 때 오신 분이 알려주신 건데 은근히 중독적이라 자주 찾게 돼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뿌리고 발사믹 식초를 드리즐하는 건데….
음?
말로만 들으면 상상이 잘 안 되죠? 어떻게 보면 올리브 오일도 과즙이잖아요. 아이스크림에 딸기 시럽을 같이 먹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발사믹에 새콤함이 있으니까 단짠단짠에 새콤함까지,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디저트가 되죠. 저희 집에 오는 손님들한테도 몇 번 대접했는데 모두 좋아하시더라고요. 어제도 손님께 한 접시 만들어 드렸는데, 남은 아이스크림이 절반 정도 냉동실에 있을 거예요. 지금 만들어 드릴게요.
(금세 테이블에 디저트가 차려진다.) 예쁜 그릇에 발사믹 식초를 모양내서 뿌려두니 고급 요리 같아요. (한입 떠먹고) 어…? 맛있는데요?
그렇죠? 집에 있는 간단한 재료들만으로 질 좋은 디저트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맛있게 드시니 뿌듯하네요. 그 그릇 참 예쁘죠? 특이한 빈티지 그릇 모으는 걸 좋아해요. 사실 함바데리카 같은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프로젝트잖아요. 그래서 저만의 특색을 찾고자 그릇이라도 특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동묘에 가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찾을 수 있으니까 자주 다녀오죠. 저는 특히 뚜껑 있는 그릇에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에요. (커다란 락앤락 통에서 그릇들을 꺼내며) 여기 그런 그릇들을 모아두었죠. 이건 일본 제품인데 색과 문양이 독특해요. 동남아 느낌도 나고요. 이렇게 그릇에 금박 처리가 된 그릇들은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수 없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근데 이건 바닥에 ‘Microwave Available’ 문구가 적혀 있더라고요. 이렇게 예쁜 그릇을 천 원짜리 몇 장으로 살 수 있으니 동묘는 천국이죠.
뭘 담아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요. 요새는 디저트 중에서도 피낭시에에 푹 빠져 있다고 하셨죠?
맞아요. 피낭시에도 잇어빌리티 게스트로 오신 손님 덕분에 더 좋아하게 됐는데, 구움과자 전문점을 운영하는 분이 오셨거든요. 대화를 나누다 마들렌과 피낭시에 차이가 무엇인지 여쭤봤는데, 무척 좋은 질문이라고 하면서 사용하는 달걀과 버터가 다르다고 알려주셨어요. 마들렌은 흰자와 노른자를 모두 사용하고, 피낭시에는 흰자만 쓴다고 해요. 그래서 제 입에 마들렌은 조금 비리고, 피낭시에는 비교적 고소하다는 느낌이 있던 것 같아요. 또, 마들렌은 약간 녹인 버터를 사용하는 반면, 피낭시에는 태운 버터를 쓴대요. 그래서 포장지를 보면 좀더 기름져 있거든요. 뭐든 기름진 게 더 맛있잖아요(웃음). 처음엔 모양 틀에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걸 알고 나니까 재미있고 좋더라고요. 태운 버터를 쓴다니까 매력이 확….
안 그래도 피낭시에 좋아하신다고 해서 오늘 구움과자점에서 이것저것 사 와 봤어요.
아, 이거 보세요. 피낭시에 끝부분이 까맣게 그을려 있잖아요. 이게 태운 버터를 써서 그런 거래요. 딱 봐도 맛있어 보이네요(웃음). 잘 먹겠습니다.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디저트라는 단어에 알록달록한 편안함과 안락함이 떠오른다.”고 하셨지요.
밥은 정자세로 앉아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디저트는 상에 다리를 올리고 먹어도 될 것 같지 않나요? 그래서 더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디저트 먹을 때면 어딘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 같고, 다리를 올리고 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고. 그리고 디저트는 식사에 비해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비중이 높잖아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밥은 식사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디저트는 그렇지 않네요. 좀더 느슨하고 자유로운 느낌이에요.
한때 투썸플레이스에서 ‘작은 사치Small Indulgence’라는 문구를 사용했는데, 그 말이 정확한 것 같아요. ‘나를 위한 작은 사치’. 이게 딱 디저트의 정의 같지 않나요?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거잖아요. 디저트에 쓰는 돈 역시 써도 되고 쓰지 않아도 되고요. 근데 사 먹으면 확실히 삶의 질이 올라가죠.
여유가 없을 땐 디저트 사 먹을 마음도 잘 안 들고요.
맞아요. 근데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서든 디저트를 챙겨 먹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빡빡해도 하드라도 하나 사 먹으면서 입가심하곤 하잖아요. 사실 구움과자라는 것도 몇 년 전만 해도 흔한 음식은 아니었어요. 구움과자라는 워딩도 사용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요. 그런데 이젠 동네 카페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구움과자 전문점도 많이 생기는 추세예요. 구움과자 전문점을 운영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길, 우리나라에 최근 들어 시간과 돈을 들여 디저트 사 먹는 문화가 정착했대요.
밥 먹고 나면 카페에 가는 게 만남의 수순이 된 것도 같고요. 근데, 생각해 보면 디저트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아요. 한때 유행하던 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하잖아요. 벌집 아이스크림 같은 거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한국인의 특성 같아요. 디저트를 사업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어서요. 디저트를 진짜 좋아해서 가게를 차린 사람이라면 유행이 지났다고 해서 그 사업을 그만두진 않을 것 같거든요. 우리나라는 좀 그런 문화가 있는 듯해요. “이거 요즘 잘되는 사업이래. 사람들이 좋아한다던데!” 하면 너도나도 몰려들어서 해보는 거죠. 열기가 식으면 쉽게 포기하고요. 좀 시쳇말 같지만 ‘진정성’과 연관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런 반면 또 굉장히 오래 자리를 지키는 디저트도 있어요. 새우깡만 해도 그렇고요. 아, 새우깡은 짠 간식이네요(웃음).
새우깡은 저한테 디저트보단 술안주 느낌이에요. 꿀꽈배기는 디저트 같은데 새우깡은 왠지…. 음,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달아야 디저트’라는 건 제 견해라기보단 예전에 영화에서 들어본 말 같아요. 학습된 공식(웃음)?
짓궂게 좀더 묻고 싶은데, 그럼 아메리카노는 달지 않으니까 디저트가 아니에요?
디저트보단 디저트에 곁들이는 음료죠. 사실 아메리카노는 나를 위한 작은 사치보다는 각성을 위한 음료(웃음)?
이렇게 들어보니 디저트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한테는 감자칩도, 누룽지 사탕도, 아메리카노도 디저트거든요.
오, 다른 분들 생각도 궁금해지네요. 이참에 사전을 한번 찾아볼까요? (휴대폰을 켠다.) 프랑스어 사전에는 “치우다.”, “정리하다.”라는 의미도 있네요. 국어사전에는 “양식에서 식사 끝에 나오는 과자나 과일 따위의 음식”이라고 되어 있고요. “식사를 마치다.”, “식탁 위를 치우다.”라는 뜻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서양에선 식사가 끝나면 식탁을 다 치우고 디저트 하나만 내놓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문화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밥 먹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있고, 테이블을 정리하기 전에 과일만 대충 먹고 말 수도 있는데, 서양에선 한 번 테이블을 싹 정리하고 새롭게 차려 내잖아요. 이런 데서 문화의 차이가 보이는 것 같아요.
아까 디저트를 ‘나를 위한 작은 사치’라고 하셨는데 가끔은 큰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요새는 디저트값이 밥값이랑 비등비등하잖아요.
밥보다 비쌀 때도 많죠.
그런데도 우리가 디저트를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좀 낯간지럽지만, 영혼을 살찌우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밥으로 허기는 지울 수 있지만 오늘의 나를 충분하게 살찌운 느낌이 안 들 때가 있거든요. 원치 않는 식사를 하는 날도 있고요. 그래서 영혼이 살찌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디저트를 챙겨 먹게 되는 것 같아요. 밥으론 아직 부족하고, 좀더 윤기가 돌고 싶을 때.
가끔 디저트도 중독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밥 먹고 항상 뭘 사 먹다 보니 하루만 안 먹어도 허전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젠 우리 삶에 할당량이 생겨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조심해야 해요. 디저트는 기본적으로 달기 때문에 열량이 높으니까요. 몇 달 전엔 누텔라 와플에 빠져서 주기적으로 사 먹곤 했어요. 초코 소스 대신 누텔라 크림이 올라간 와플인데, 이게 진짜 악마의 음식이에요. 중독되면 안 되는 디저트인데 한 번 먹으면 주기적으로 찾게 돼요. 끊기까지 꽤 힘들었죠.
이젠 디저트도, 고급 요리도 깊숙이 자리 잡아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도 계속 직접 요리하고 대접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에리카팕에게 요리가 사업적인 수단도 아닌 것 같아서요.
회사에 다니는 동안엔 보람에 목이 말랐어요. 잇어빌리티 프로젝트를 하고 나서 듣는 “재미있다!” 소리가 제일 좋았죠. 회사에선 볼멘소리만 들어야 하고 제가 아무리 잘해도 칭찬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일이 없거든요. “감사합니다.”는 대화를 종료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죠. 사람에겐 평생 들어야 할 좋은 말 할당량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회사에서 못 채우니까 프로젝트에서 채우는 느낌이었어요. 회사에선 에리카팕이나 박지윤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담당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막 대하는 게 있었거든요. 지금은 에리카팕이라고 불리는 것부터가 저한텐 굉장히 기쁜 일이에요. 그렇다고 요리먹구가로서의 제 직함이 계속될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에요. 전 회사에 다닐 때도 2년에 한 번씩 직무를 바꿨거든요. 그게 익숙하기도 하고… 계속 요리를 하고 싶다기보단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찾아 나가고 싶어요.
그럼 에리카팕에게 요리란 무엇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종종 생각하는 건 ‘내가 사람을 많이 만나려고 요리를 했구나.’라는 거예요. 저를 모르던 사람들이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고, 저 역시 새 사람을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죠. 경제적인 자산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자산은 확실히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제 프로젝트 특성상 할 때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게 되는데요. 뭘 먹으면서 대화하면 급속도로 친해지거든요. 그래서 함바데리카나 잇어빌리티를 하면서 만난 분들이 저를 응원하고 좋아해 주실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거기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고요. 인프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생겼으니까 다음 스텝에서 제가 좀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지내는 거죠.
요새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프로젝트들은 소규모로 진행하는 게 편해서 솔직히 수입이 많지는 않아요.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살 정도로만 벌고 있어서 수익 구조를 만드는 걸 고민하고 있어요. 프로젝트의 연장으로 뉴스레터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고민 중인데, 잇어빌리티는 돈이 되든, 되지 않든 지금은 계속 끌고 가야 하는 트랙이라고 생각해요. SNS로 지금처럼 계속 활동을 업로드하면서 제 이미지를 구축하고, 거기서 발전시킬 수 있는 광고 같은 걸로 수익을 얻어야겠죠. 적은 품으로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니까 SNS에서 제 이미지를 잘 구축해 가는 데 관심이 있어요.
SNS를 긍정적으로 잘 이용하는 것 같아요. 근데 세간에서는 SNS가 보여주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부정적인 얘기도 있잖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교양과 상식의 차이라고 생각하죠. SNS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 걸 알고, 이걸 수단으로서만 쓸 수 있어야 해요. 근데 저도 막상 붙들고 있으면 안 될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좋은 모습, 행복한 모습만 올리니까 그걸 보면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많고요. 그래서 저는 SNS에 나쁜 것도 많이 올려요. 회사 다닐 때 힘들던 것도 시시콜콜 올리니까 그게 오히려 진정성 있게 가 닿은 것 같아요. 에리카팕이란 사람을 좀 가여워해 주시는 것 같아서요. 노리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회사 생활에 지쳐 있던 제 이미지 때문에 더 잘되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시는 분도 많았어요.
이야기 나누는 동안 시간이 훌쩍 흘렀네요. 이번 호 주제어가 디저트잖아요. 디저트엔 달콤하고 포근한 이미지가 있으니 기분 좋게 마무리해 볼까요? 에리카팕의 디저트 베스트3!
음… 어렵네요. 가장 먼저 아이스크림이 떠올라요. 이탈리아에 3개월 정도 머물 때 돈이 없어서 곧잘 끼니를 건너뛰곤 했는데요. 밥은 굶어도 이상하게 아이스크림은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며칠 동안 밥은 안 먹고 젤라토만 먹으면서 살기도 했어요. 이탈리아에 그롬GROM이라는 젤라토 체인점이 있는데, 거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거의 모든 맛을 먹어보며 지냈어요. 2유로면 살 수 있어서 밥 대신 많이도 먹었죠.
저도 한때 이천 쌀 아이스크림에 빠져서 젤라토 가게에 수시로 드나들었는데(웃음). 그다음은요?
고등학생 때 자주 가던… 그, 식빵 구워 주는 생과일 전문점 이름이 뭐더라…. 아, 캔모아! 한때 캔모아가 ‘힙’의 상징이었잖아요. 친구들이랑 반윤희 바지 같은 거 입고 놀러 가던 곳(웃음). “좋은 데 가자!” 하고 마음먹고 찾는 곳이었죠. 식빵이랑 생크림 리필이 되니까 계속 받아먹던 기억이 나요. 그땐 디저트가 저를 의기양양하게 해주는 요소였어요. 나를 위한 최고의 사치!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에 있을 땐 돈이 없어서 디저트만 사 먹었는데, 고등학생 땐 멋 부림과 사치의 요소로 디저트를 즐겼네요.
어떤 의미에선 꽤 상징적인데요? 대망의 마지막 하나는!
마지막은 제가 요새 꽂혀 있는 디저트 얘기를 해볼게요. 세시셀라의 누텔라 밀크쉐이크인데요. 드셔 보셨어요? 진짜, 진짜, 정말, 정말 맛있어요. PMS 기간이면 무조건 생각나는 곳이죠. 영혼까지 살찌는 맛인데, 웬만해선 멈출 수가 없어요. 누텔라 와플 다음으로 빠져버린 악마의 디저트죠. 요즘 요리 동호회 모임을 분당에서 하고 있는데, 분당에 세시셀라 매장이 있거든요. 만남에 앞서 꼭 한 잔씩 먹게 되더라고요. 한 잔에 만 원 가까이 하는데도 그만한 가치를 해요. 맛도 그렇고, 만족감도 그렇고, 양도 그렇고요. 아, 얘기하니 생각나네요. 조만간 또 사 먹으러 가야겠어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