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장기하 — 뮤지션
시름이 없던 어린 시절, 그의 노래 ‘싸구려 커피’를 처음 들었을 땐 재밌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좀더 자라 인생에서 기쁨과 슬픔을 비슷한 빈도로 오갈 땐 ‘등산은 왜 할까’의 가사를 곱씹으며 매사에 덤덤한 나를 바랐다. 이보다 더 시간이 흐른 후, 그와 마주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땐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졌다. 음악을 말할 때마다 빛을 잃지 않는 소년의 얼굴이 되는 사람. 말에서 노래를, 노래에서 말을 짓는 사람. 뮤지션 장기하에게 영원히 고이지 않고 어디로든 흘러가 볼 마음을 배운다.
앞서 사진 촬영할 때는 기하 씨가 건반을 누르거나 휘파람을 부르거나, 멜로디를 흥얼거리던 것 빼곤 고요하더라고요. 이곳을 합주실로 쓴다던데 평소에는 분위기가 어때요?
글쎄요, 고요할 수가 없죠. 음악을 만드는 곳이니까 평소에는 엄청 시끄러워요. 건반이나 베이스, 디제잉 테이블에 드럼도 있으니까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가 오가요.
아깐 데이비드 보위의 ‘Life on Mars?’도 잠시 흐르던데요.
맞아요. 합주실이자 작업실이기도 하니까 여기 앉아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어요. 원래 여긴 밴드 혁오가 쓰던 공간이었고, 저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때때로 ‘장얼’로 표기)’의 전용 합주실을 썼어요. 장얼의 마무리와 함께 그곳을 정리하고 몇 년 쉬다가 다시 음악 작업을 시작할 때 이곳으로 온 거예요. 마침 혁오도 휴식이 필요해서 같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봉제인간까지 세 팀이 하루 중 시간을 나눠서 쓰고 있어요.
오늘의 대화가 책으로 쓰여 읽힐 즈음엔 봄이 시작했을 거예요. 지난겨울은 어떻게 보냈어요?
작년 12월 첫 주에 단독 공연 〈하기장기하〉를 일찌감치 마친 후로는 별거 안 하고 놀았죠, 뭐(웃음).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늘 만나는 친구들 보고. 새 앨범 작업은…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이전과 작업 방식이 좀 달라요. 곡 단위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음반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죠. 아직 정확히 곡을 만든 건 아니지만 일 년 전부터 마스터플랜을 세워보고 있어요.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군요. 언제쯤 듣게 될지 궁금한데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겠어요.
지난해 열린 단독 공연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공연 내내 곡의 끝과 시작을 분명하게 두지 않아서 모든 노래가 그야말로 ‘끊임없이’ 이어졌어요. 마지막 곡을 안내하기 전까진 인사도 안 했죠(웃음).
아, 그 공연을 직접 보셨다고 했죠? 감사합니다. 공연을 준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곡을 계속 이어지도록 만드는 거였어요. 그 아이디어는 디제잉에서 얻은 건데, 일천한 실력이지만 제가 직접 해보거나 디제잉 공연에 가서 들어보니까 음악이 끊기는 경우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몰입감이 높아지고요. 앞 곡의 후주와 뒤에 이어질 곡의 전주를 겹쳐 두는 걸 ‘매시업’이라고 하는데, 그 형식으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죠. 장얼 시절을 포함해서 콘서트를 위해 편곡을 이렇게 열심히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처음에는 멘트나 쉼이 없는 걸 의식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노래에 푹 빠졌어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이 한바탕 논 기분이랄까요.
대중음악 콘서트에서는 한 곡 끝나고 박수받고, 또 한 곡 끝나면 박수받는 형식이 일반적이잖아요. 곡마다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저는 그럴수록 노래하는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 박수하는 사람이 나뉘어 있다는 걸 계속 재확인받는 것 같아요. 그게 단점으로 느껴졌고요. 아까 말씀드린 디제잉 파티에서는 음악을 들으며 춤추다 보면, 누가 음악을 틀어주는지보다 내가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거에 더 집중하게 되거든요. 관객과 가수, 주체와 객체로 굳이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가 돼요. 바라던 대로 공연을 즐겨 주셨다니 더욱 감사하네요.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쓴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서도 공연을 일방적인 행위라고 표현하지 않았어요. 친구들과의 대화와 닮았다고요.
공연을 직접 하거나 좋아하는 뮤지션을 보러 갈 때마다 늘 그렇게 생각해요. 그 순간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냥 노는 거라고요. 가만 보면 친구들이 모여 보내는 시간과도 비슷하죠. 친구들끼리 만나면 작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농담을 주로 하고, 어떤 사람은 리액션 담당이라 엄청 웃어요. 그렇지만 그게 백 퍼센트의 몫은 아니에요. 역할이 조금씩 바뀌었다가 합쳐질 때도 있으니까요. 그것처럼 우리에게 약간의 역할은 주어졌을지 몰라도, 공연자만으로 공연할 수 없고 관객만으로 공연할 수 없으니까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두어 시간 재미있게 보낸다는 생각으로 해요.
그런데 “나는 미리 연습한 대로 노래를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 순간 관객들의 눈치를 살핀다.”고도 말했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런 거예요?
예를 들어 대화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농담을 하면 친구들을 웃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근데 막상 반응이 예상과 다르면 그땐 수습을 해야 돼요(웃음). 센스 있는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센스가 부족한 친구들은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다가 되려 수습이 어려워지기도 하거든요. 관객들은 표정이나 몸짓, 박수와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전해줘요. 당연히 저는 그걸 받아들고 그다음에 해야 할 행동을 결정하는 거예요. 똑같은 노래도 차분히 부를 때가 있고, 혹은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부를 때도 있죠.
가끔은 내가 원하는 대로 관객이 따라오지 않는 느낌도 받을 것 같아요.
그럼요. 상황마다 다를 텐데요.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때 제가 과도하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분위기가 풀리면서 재밌어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관객이 쉽게 이끌리지 않는 느낌마저 의도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어요. 공연을 거듭하면서 저도 관객과 대화하는 센스를 조금씩 더 배워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무리수를 던지지 않는 거예요. 제가 관객으로 머물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음악으로 재미있게 해주고 있지도 않으면서 목소리 크게 하라고 소리치면 오히려 반감이 들더라고요.
맞아요.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하고 싶죠. “싫은데?”
“아니, 너 뭔데? 잘하면서 그런 말 하든가.” 이렇게도 생각하고요(웃음).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공부하라는 말 들으면 하기 싫은 것처럼 잘 놀고 계신 경우에는 가만히 제 할 일을 하는 게 제일이고, 수줍어하는 분위기라면 조금 등 떠밀어 드리는 게 제 몫이에요. 같은 공연이라도 그날 공연장에 흐르는 무드라든지 날씨라든지, 함께하는 사람들이나 여러 가지 영향을 줄 만한 것들의 조합이 어떠냐에 따라서 제 모습이 좀 달라질 테고요. 그래서 눈치를 보는 거예요, 무얼 해야 하는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한 장기하의 기본이네요.
그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물론 그 밖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연자들도 있겠죠. 그래도 저는 이왕 모였다면 그날 모인 조합에 맞게 적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같이 재미있게 놀고 싶어요. 맨날 똑같이 하는 것보다 분위기를 잘 맞추는 게 낫지 않나요?
그래서 기하 씨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고요. 공연의 끝자락,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집에 있다가 합주실로 가는 순간, 무대에 도착하는 순간 뭔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 했는데 어떤 의미예요?
음… 모든 공연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단독 공연을 앞두면 거기에 집중하려고 다른 일정을 확 줄이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오히려 더 한가해지거든요. 합주하는 시간 말고는 별거 안 하고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고 혼자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집에 가만히 있으면 다 똑같잖아요. 릴스 보다가 몇 시간 흘러가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웃음) 누워서도 하루가 금세 흘러가죠.
그러니까요. 그러다가 공연이 시작하면 뭐랄까…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니까 그날의 나와 이전의 나 사이에 간극이 더 커진다고 할까요? 내가 이런 사람일 때도 있고, 저런 사람일 때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장기하의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거잖아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어요.
문득 어릴 때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궁금해져요. 지금의 모습을 상상했을까 싶고요.
상상할 수가 없죠. 이렇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어릴 때 친구들과 노래방 가는 거랑 가요 듣는 걸 정말 좋아하긴 했거든요. 실시간 유행 곡은 다 좋아했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를 했어요. 그래서 서태지와 아이들 팬 출신이고요. 지금도 친한 이적 형이 패닉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했는데 나오자마자 굉장히 센세이션했어요. 만든 사람의 개성이 느껴지는 음악들이 좋아서 십 대 때 한창 들었고, 이후로는 H.O.T.처럼 아이돌 1세대 노래도 즐겨 들었죠.
기타나 드럼처럼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생긴 것도 십 대 시절이라고 들었어요.
첫 기타는 중학생 때 아버지가 사주셨어요. 아버지도 대학교 때 밴드 하시면서 음악을 좋아하던 분이라 한번 해보라고 툭 사주셨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조금씩 혼자 쳐보곤 했죠. 그리고 다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청소년 시기에 악기를 친근하게 접하기 좋은 곳이 바로 교회나 성당이거든요. 교회에서 연주하던 형들이랑 가까워지면서 드럼에 흥미가 생겼고, 기본 교재를 따라 해보니까 어떻게 연주하는 건지 알겠더라고요. 교회 친구들이랑 모여서 밴드를 하고 CCM 자작곡도 만들어 봤죠. 그때는 일주일 중에 주말 새벽에 제일 일찍 일어났어요(웃음). 노래를 듣고 부르기만 하다가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남들 앞에서 공연하는 게 재밌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내가 무얼 할 때 즐거운지 알았다면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히 떠올랐을 텐데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음대를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했어요. 그랬더니 “네가 어느 정도 소질이 있는 건 알겠지만 천재는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천재라도 벌어먹기 힘든 게 예술계라고요. 그 말이… 너무 맞는 말인 거죠.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거지, 천재라는 근거는 전혀 없으니까. 대학교 가면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말씀을 듣고 일단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한 거예요. 그렇게 대학에 가고 어느새 3학년이 되었는데 하고 싶은 게 음악밖에 없더라고요. 취직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지고, 남들이 말하는 직업이나 돈 버는 일 생각해 봐도 다 싫은 거예요. 음악 빼고 재미있어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드럼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좀더 연습해서 먹고살 수 있는 실력을 가져야겠다고요. 밴드 ‘눈뜨고코베인’과 함께하면서 프로 뮤지션이 되어야겠다는 희망을 가진 게 그즈음이죠.
그때는 부모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눈뜨고코베인의 드러머로 활동할 때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어느 정도로 음악에 진지하게 임하는지 집에서 알 수 없었어요. 그래도 제가 먼저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켰으니까 부모님도 취업하라며 압박하기보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셨죠. 아마 그땐 놀 만큼 놀았으면 할 일 하겠지 하셨던 것 같은데(웃음),제대 후에 장기하와 얼굴들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약간은 당황하셨지만 있는 그대로 봐주셨어요.
남들 하란 대로 따라가지 않고 인생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은 걸 찾아낸 게 대단하게 느껴지는데요. ‘천재도 밥 벌어먹기 힘든 예술계’인데(웃음).
사람은 나에게서 두각이 나타날 때 희열을 느끼잖아요. 그러려면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게임에서 일등 하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서 가장 먼저 참여하면 그것도 두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성이 중요한 거죠. 이미 많은 사람이 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드물더라도 내가 잘하는 게임을 자꾸 찾아나가야 했으니까요. 음악을 대할 때도 나다운 걸 하려고 했어요. 그게 어쩌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저만의 편법 아니었을까요? 부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흔히들 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의미의 편법이요.
그 뒤로 시작한 장기하와 얼굴들은 꾸준한 음악 활동을 선보였죠. 장얼의 노래는 뚜렷한 개성으로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질 정도로 인상 깊었고, 또 대중의 사랑도 얻었어요. 10년간 활동 후 매듭지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장얼의 마지막 앨범 [mono]에 들어갈 노래들을 모두 작곡한 이후에 한 결심이었는데요. 노래를 만들어 놓고 보니 굉장히 마음에 들더라고요. 제가 매사에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를 좋아해요. 거기서 희열을 느끼죠. 음악엔 멋있고 좋은 소리가 많기 때문에 뮤지션이라면 한 곡에다가 이것저것 넣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하면 배제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지금껏 만든 것 중 가장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로 완성된 음반이 [mono]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서 마무리를 짓는다면 팬들과 우리에게 좋은 이야기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죠. 나아가 장기하와 얼굴들은 제 목소리가 큰, 독재적인 형태의 밴드였기 때문에 멤버들도 각자 하고 싶거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길 바랐고요.
저는 무얼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그만두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를 설명하는 가장 큰 수식어를 내려둔 이후에는 허전하지 않았어요?
돌이켜 보면 허전했던 것 같아요. 2018년에는 좋은 마무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던 터라 잘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안도감, 뿌듯함에 젖어 있었어요. 2019년부터는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이 많으니까 혼자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보기도 했거든요. 한 달 반 정도 머무는데 생각만큼 즐겁지가 않은 거예요. 언제나 함께하던 일상을 혼자 보내면서 마음이 텅 빈 것처럼 고독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요.
그 시기를 회상하던 에세이에서는 “고등학교 때는 신을, 대학 초년생 때는 철학 사상을, 그 후에는 음악 그중에서도 밴드를 믿었다.”고 했는데 여전히 무언가 믿는 게 있나요?
가장 마지막으로 믿은 게 밴드였어요.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무슨 종교처럼 밴드 음악이 다른 장르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생각하지만 믿음은… 무척 위험할 수 있어요. 세상에 백 퍼센트 확실한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확실하다고 믿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인 거죠. 그런 생각이 살면서 더욱 크게 들어요. 어쩌다 보니까 음악을 하고 있지만 이것만이 우월한 길이 아니라 여러 갈래 중 내가 걷는 길일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걷는 길이 모두에게 맞을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죠.
믿는 게 없다는 말이 서글프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만든 거네요.
더 이상 무언가를 믿지 않더라도 나의 삶에서 흘러가는 것 전부를 소중하게 여겨요. 나에게 익숙하고 중요한 형태의 음악 활동이나 일상, 오늘처럼 대화를 나누는 시간, 작업과 합주를 위한 이 공간 같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거든요. 그것이 절대적일 거라고 신념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하루하루 흘러가는 걸 소중하게 여기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요.
밴드를 마무리 지은 뒤 안식년을 보냈다곤 하지만, 첫 에세이도 출간하고 영화 음악 작업도 했죠. 꾸준히 바빴던 거 아닌가요?
이것저것 했는데 사실 휴식을 취한 건 맞아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쉴 때는 소설을 쓰지 않고 번역을 했대요. 그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땐 ‘이게 무슨 말이야?’ 싶었는데 나중에는 그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저는 저한테 가장 중요한 직업 활동이 공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3년간은 남들 앞에서 노래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쉰 거죠.
무대에 서지 않아도 앞으로 ‘장기하’라는 이름으로 어떤 음악을 보여줄지는 쉬는 동안에도 계속 탐구했죠?
맞아요. 밴드로 활동한 10년을 뒤로하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해 봤어요. 가장 중요한 결론은 ‘최대한 멋대로 해야겠다!’. 그게 저한테는 초심 같은 거기도 하거든요. 물론 제가 ‘초심 따위 개나 줘 버려’라는 가사를 쓰긴 했지만(웃음). ‘싸구려 커피’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만들 때는 그걸로 돈을 벌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내 취향은 대중성과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눈치를 보지 않고 표현하고 싶은 걸 한 건데, 예상치 못하게 반응을 얻어서 소위 말하는 ‘데뷔’를 하게 된 거고요. 견물생심이라고, 연예인이라 불리고 방송에도 나가니까 누가 바란 것도 아닌데 다음에 보여줄 음악도 반응이 좋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마음속에 그런 종류의 군더더기가 10년 동안 많이 붙어서 쉬는 시간에는 그걸 다시 최대한 덜어내려 했어요. 완벽히 처음과 같은 마음일 순 없겠지만, 솔로 앨범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아무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요.
그러고 보니 첫 솔로 EP 앨범 [공중부양]이 나왔을 때 소개글에 이런 말을 썼어요. “다 만들어 놓고 보니 대체로 뭔가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중략)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뜬 삶.”
일단 베이스가 들어간 곡이 하나도 없거든요. 밴드 음악이라고 하면 드럼이나 베이스, 기타, 건반을 예상하고 저도 당연히 그 악기들을 습관적으로 떠올렸는데, 이번엔 목소리 한 개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목소리부터 쭉 녹음하고 편곡 과정에서 대중음악으로 들리기 위한 최소한의 악기 사운드만 추가했죠. 드럼 비트는 ‘쿵짝쿵짝’ 정도로 단순하게, 화음도 복잡하지 않게요. 그리고 1절에서 할 말 다 했으면 굳이 2절로 넘어가지 않았어요.
기하 씨 음악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목소리와 노랫말이 이룬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 목소리를 가장 나답게 활용하고 싶어요. 사람의 말에 운율이 이미 존재한다는 거 느끼세요? 저마다 리듬이 있고 감정을 많이 담을수록 또는 강조하고 싶을수록 그 리듬이 강해져요. 제 작업들은 말 자체에 스민 운율을 활용한 게 거의 대부분인데, [공중부양]에서는 그걸 더욱 보존하고 강화하는 방식을 취했어요. 나아가 아예 제가 평소에 말하는 음높이 범위에서 노래를 만들었죠. 노래와 일상에서 통용되는 음높이에 차이가 나는 게 일반적인데 그중에서도 저는 말하는 목소리가 꽤 낮은 편이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기존보다 낮은 음역대의 목소리가 곡을 채우다 보니까 베이스 역할을 해주면서 굳이 악기 소리를 더하지 않아도 됐던 것 같아요.
군더더기가 없는 걸 좋아하는 성향대로 가사에도 쓸데없는 걸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죠. 혹시… 일이 아닌 일상에서도 그런가요?
쓸데없는 이야기를 아예 안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되도록 안 하려고 노력해요. 과연 내가 이 말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 보는 습관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과잉된 표현이 필요한 순간도 있잖아요.
기하 씨가 와인을 좋아하시니까 예를 든다면, 너무나 맛있는 와인을 발견했을 때 온갖 미사여구로 그 기쁨을 표현할 수도 있죠.
물론 그럴 때는 온갖 마음을 담아서 말하고 싶은데요(웃음). 내가 느끼지 않은 걸 말하고 싶진 않아요. 똑같이 와인을 예로 들면, 마시기 전에 이런저런 설명을 듣곤 하잖아요, 잘 익은 딸기 향이 난다든가. 직접 먹었을 때 와닿는 맛이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건지. 자연스레 내가 느낀 건지 헷갈릴 때가 있죠. 그럴 때 급하게 표현하려다 보면 느끼지 않은 것도 말하게 되는데,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기하 씨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과 노랫말은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말과 노랫말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경계선이 굉장히 모호한 채로 내버려두는 편이. 모든 말이 노래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말을 하는 순간에는 이미 거기에 음악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지금 봐도 잘 지었다 싶은 가사가 있어요?
이건 때마다 답이 달라질 텐데 지금은…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그 노래를 만들고 나니까 저에게 그 말이 주는 영향이 더욱 커졌거든요.
자주 듣는 노래라 그 말을 듣자마자 멜로디가 떠오르네요(웃음). 장기하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세상살이에 초연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현실에서 이러쿵저러쿵 마주하는 불안이나 고민에도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 같고요.
오히려 좌지우지되는 것 아닐까요? 막 버티려고 하기보다 좌로 밀면 좌로 넘어가고, 우로 밀면 우로 넘어가고. 저는 실제로 매사에 초연하지도 않고, 불안과 고민을 잘 피하지도 못해요. 휩쓸릴 만한 순간이 다가오면 지금이 그런 시기구나, 오늘은 또는 이번 달은 이렇구나 하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건 분명 회의나 냉소와는 다를 거예요.
그럼요. 겉으로는 별로 휘둘리지 않는 척, 쿨한 척해도 속으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믿는 태도가 회의나 냉소 아닌가요? 분명히 그럴 거라고 믿는 ‘믿음’의 문제인 거죠.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우리가 하는 일들이 잘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무조건 안되는 게 아니라 잘될 수도 있는데 지금은 알 수 없다는 것, 그저 모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듣는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가 되기도 해요. 《AROUND》는 이번에 100호를 맞이해서, 일의 의미에 대해 들어보려고 해요. 사람은 왜 일을 할까요?
아, 너무나 큰 질문인데요. 그걸 알아낸다면 거의 논문감인데….
(웃음) 그럼 세상에 ‘사람’은 너무나 많고 제각기 하는 일이 다를 테니까 빼기로 해요. ‘장기하’는 왜 일이나 작업을 할까요?
(잠시 고민한다.) 자기의 존재 가치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평소 하는 음악은 놀이와 일 사이에 머무는 것 같아요. 제가 요새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데 남들 앞에서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취미 활동이자 다음 창작에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고 하는 거거든요.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거나 확장하길 기대하면서요. 그게 돈을 벌어다 줄지 아닐지는 모르죠. 반면에 영화 음악 작업을 두 편 내리 할 때는 확실히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한 집단의 일부로서 내가 기능을 해야 되는 의무가 있었거든요. 같은 음악이지만 나의 쓸모를 느끼게 한 건 후자였어요.
그 기분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대중음악가로서 먹고살 수 있다는 건 대중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건 굉장한 운이 따라준 거예요. 그저 제가 하고 싶었던 걸 표현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오다 보니까 스스로 직업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할 때가 있어요. 내가 너무 대충 하고 있나, 잘하는 것도 아닌데 운으로 때우고 있었나 싶죠. 반면에 영화 음악 작업은 정말 까다롭거든요. 작업량도 많고 감독님 요구 사항도 많아요. 하지만 한 편을 다 만들고 나면 저 자신이나 대중이 아니라 이 집단의 보스가 만족했다는 컨펌을 해주는데, 거기서 직업 음악인으로서 충분하다는 자각을 얻어요. ‘이 필드에서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구나!’ 이렇게요. 그러고 나니까 다시 돌아와 제 음악을 만들 때도 그저 근거 없는 운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닌지 싶던 의심이 사라진 것 같아요.
사람은 일을 할수록 좀더 능숙해질 텐데,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해 보면 어때요?
분명히 능숙해지는 것들이 있죠. 관객을 살피고 상황에 대처하는 건 무대 경험이 쌓일수록 탁월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음악을 이해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꾸준히 작업하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의 범위를 넓혀가면서 아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요. 반면에 변함이 없는 건… 에디터 님이 보기에는 저한테 변함없는 부분이 있나요?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일을 하려는 것?
맞네요. 그건 확실해요, 하기 싫은 건 하기 싫다!
저는 지금까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작은 ‘꼼수’가 생겼어요. 인터뷰이에게 사전 질문지를 전할 땐 몇 개 없는 것처럼 간략하게 보내고 현장에서는 ‘진짜 질문지’를 꺼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데요.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신 거였어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하지만 맞아요. 기하 씨에게도 하나의 일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얻은 꼼수가 있는지 궁금해서 털어놨어요.
에이, 에디터님 이야기는 겸손하게 표현하면 꼼수고 실은 노하우죠(웃음). 저는… 원체 꼼수를 좋아하지 않아요. 꼼수가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는 마음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행위나 방식에 익숙해져서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하게 되면 한 우물에 고이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습관적으로 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그런 걸 완벽히 떼어내진 못해도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달리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도 언제나 기꺼운 마음이에요?
일이나 창작에 관련되어 말하자면 주변에서 그동안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곧잘 받았어요. 연기도 해보고, 책을 쓰거나 영화 음악을 만들어 봤으니까요. 이제는 분야를 넓히기보다 깊어지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커요. 어느 분야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창작자로서 더 깊어지길 바라는 거죠. 음악이나 공연처럼 원래 하던 걸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날이 더 커지고 있어요.
일과 일을 대하는 마음에 관해 나눈 긴 이야기도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네요. 〈하기장기하〉에서 기하 씨가 문밖으로 사라지고 공연이 막을 내린 것처럼, 자신이 사라지고 자신의 작업물만 남은 세상에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작업이 사람들 마음속에 얼마나 오래 남을지는 모르는 거죠(웃음)? 지금도 이미 기억에서 완전히 잊힌 작업물도 많은걸요. 그래도 저보다 적어도 몇 년은 더 살겠지만요. 기억이란 건 그런 거니까. 음… ‘만들어 놓은 걸 보니까 괜찮은 사람 같던데?’, ‘만나서 얘기해 봤다면 꽤 괜찮았을 것 같은데?’ 이런 느낌이면 충분해요.
장기하의 음악은 하루 중 적재적소에 떠오른다. 그에게 우리네 보통의 순간에 추천하고 싶은 자신의 곡이 있는지 물었다. 노랫말 따라 몇 마디 툭 내뱉어 보면, 어떤 하루를 보냈든 그만하면 봐줄 만하게 느껴진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모든 게 지겹다라…. 이 경우에 불편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현재 상황이 잘못된 것 같다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거거든요. 이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드는 거죠. 제 생각엔 하고 싶은 게 없으면 그냥 안 하면 돼요. (에디터의 덧붙임. 이 노래는 단 한 문장이 열여덟 번 반복된다.)
“그와 마주앉으면 오랫동안 준비했던 그 얘기를 건네야겠지마는….”
―‘말하러 가는 길’
저와 처음부터 함께 일한 지금의 회사 대표님이 남한테 껄끄러운 진심을 말하는 걸 참 어려워하는 분이세요. 저한테 처음으로 조금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십몇 년 전에 들려준 적 있는데요. 지금까지도 대표님은 그 얘기를 가끔 하세요.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그건 니 생각이고’
아무리 완벽한 날을 보냈다고 해도 잠들기 전에 뭘 하겠어요? 휴대폰 들고 인스타그램 보겠죠? 피드를 내리다 보면 그 생각이 깨질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하루를 더 잘 보낸 것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나의 완벽함이 불완전하게 보이거든요. 그런 생각과 거리를 두기에 좋은 곡 같아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Hae 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