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소년의 얼굴로

장기하 — 뮤지션

시름이 없던 어린 시절, 그의 노래 ‘싸구려 커피’를 처음 들었을 땐 재밌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좀더 자라 인생에서 기쁨과 슬픔을 비슷한 빈도로 오갈 땐 ‘등산은 왜 할까’의 가사를 곱씹으며 매사에 덤덤한 나를 바랐다. 이보다 더 시간이 흐른 후, 그와 마주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땐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졌다. 음악을 말할 때마다 빛을 잃지 않는 소년의 얼굴이 되는 사람. 말에서 노래를, 노래에서 말을 짓는 사람. 뮤지션 장기하에게 영원히 고이지 않고 어디로든 흘러가 볼 마음을 배운다.

사람은 나에게서 두각이 나타날 때 희열을 느끼잖아요. 
그러려면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게임에서 일등 하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서
가장 먼저 참여하면 그것도 두각이라고 생각해요.

남들 하란 대로 따라가지 않고 인생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은 걸 찾아낸 게 대단하게 느껴지는데요. ‘천재도 밥 벌어먹기 힘든 예술계’인데(웃음). 

사람은 나에게서 두각이 나타날 때 희열을 느끼잖아요. 그러려면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게임에서 일등 하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서 가장 먼저 참여하면 그것도 두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성이 중요한 거죠. 이미 많은 사람이 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드물더라도 내가 잘하는 게임을 자꾸 찾아나가야 했으니까요. 음악을 대할 때도 나다운 걸 하려고 했어요. 그게 어쩌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저만의 편법 아니었을까요? 부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흔히들 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의미의 편법이요. 

 

그 뒤로 시작한 장기하와 얼굴들은 꾸준한 음악 활동을 선보였죠. 장얼의 노래는 뚜렷한 개성으로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질 정도로 인상 깊었고, 또 대중의 사랑도 얻었어요. 10년간 활동 후 매듭지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장얼의 마지막 앨범 [mono]에 들어갈 노래들을 모두 작곡한 이후에 한 결심이었는데요. 노래를 만들어 놓고 보니 굉장히 마음에 들더라고요. 제가 매사에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를 좋아해요. 거기서 희열을 느끼죠. 음악엔 멋있고 좋은 소리가 많기 때문에 뮤지션이라면 한 곡에다가 이것저것 넣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하면 배제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지금껏 만든 것 중 가장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로 완성된 음반이 [mono]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서 마무리를 짓는다면 팬들과 우리에게 좋은 이야기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죠. 나아가 장기하와 얼굴들은 제 목소리가 큰, 독재적인 형태의 밴드였기 때문에 멤버들도 각자 하고 싶거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길 바랐고요.

저는 무얼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그만두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를 설명하는 가장 큰 수식어를 내려둔 이후에는 허전하지 않았어요? 

돌이켜 보면 허전했던 것 같아요. 2018년에는 좋은 마무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던 터라 잘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안도감, 뿌듯함에 젖어 있었어요. 2019년부터는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이 많으니까 혼자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보기도 했거든요. 한 달 반 정도 머무는데 생각만큼 즐겁지가 않은 거예요. 언제나 함께하던 일상을 혼자 보내면서 마음이 텅 빈 것처럼 고독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요. 

 

그 시기를 회상하던 에세이에서는 “고등학교 때는 신을, 대학 초년생 때는 철학 사상을, 그 후에는 음악 그중에서도 밴드를 믿었다.”고 했는데 여전히 무언가 믿는 게 있나요? 

가장 마지막으로 믿은 게 밴드였어요.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무슨 종교처럼 밴드 음악이 다른 장르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생각하지만 믿음은… 무척 위험할 수 있어요. 세상에 백 퍼센트 확실한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확실하다고 믿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인 거죠. 그런 생각이 살면서 더욱 크게 들어요. 어쩌다 보니까 음악을 하고 있지만 이것만이 우월한 길이 아니라 여러 갈래 중 내가 걷는 길일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걷는 길이 모두에게 맞을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죠. 

 

믿는 게 없다는 말이 서글프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만든 거네요. 

더 이상 무언가를 믿지 않더라도 나의 삶에서 흘러가는 것 전부를 소중하게 여겨요. 나에게 익숙하고 중요한 형태의 음악 활동이나 일상, 오늘처럼 대화를 나누는 시간, 작업과 합주를 위한 이 공간 같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거든요. 그것이 절대적일 거라고 신념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하루하루 흘러가는 걸 소중하게 여기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AROUND Club에 가입하고 모든 기사를 읽어보세요.

AROUND는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합니다.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Hae 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