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손현 — 토스 콘텐츠 매니저
기록을 실어 보내며
‘에디터의 글쓰기’라는 연재 타이틀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에디터이기 때문이고 제목만 보곤 내용을 감 잡을 수 없던 까닭이다. 에디터에게 글쓰기를 알려준다는 걸까? 에디터가 쓰는 에세이인가? 전부 틀렸다. 글쓴이 손현은 에디터의 글쓰기를 “내 이야기를 세심하게 써보려는 사람들의 가이드”라고 소개한다. 손현은 ‘5년 뒤의 나’를 독자로 두고 한 자 한 자 글을 쓴다. “미래의 나에게 오늘을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써나가는 글은 훗날 그에게 기억의 상자를 열어 볼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집이 참 활기차요. 색이 많아서 기분이 좋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집을 꾸미는 건 전부 배우자의 몫이라 제가 칭찬을 들으니 머쓱하네요(웃음). 출산이 임박해서 아기 용품이 부쩍 많아졌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토스에서 콘텐츠 매니저로 일하는 손현입니다. 에디터라는 직함이 콘텐츠 매니저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토스에서 콘텐츠를 만들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매거진 《B》와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PUBLY’에서 에디터로 일했고요.
요즘 굉장히 바쁘다고 들었어요.
평일엔 출퇴근과 글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주말에 대학원 수업을 들어요. 예비 아빠로도 분주한 시기죠. 지금 제 나이가 생애 주기상 가장 바쁠 때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육아에 매진하기 위해 하나하나 가지치기하며 일상을 재정비하고 있죠.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겠어요. 미리 축하드려요(웃음). 에디터를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 기분이 새롭네요.
저는 오히려 인터뷰이로 매체에 처음 이름을 실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색하진 않아요. 에디터로 일하기 전에 책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를 내고 인터뷰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인터뷰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인터뷰에는 목적이 있고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의 역할이 정해져 있어서 부담이 없고 편안해요. 특정 주제로 뾰족하게 대화하는 건 인터뷰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 같아요. 제가 인터뷰어일 땐 편하게 대화하는 데 집중하는 편인데, 오늘은 인터뷰이지만 편히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좋아요(웃음). 글 쓰는 사람들은 워라밸을 맞추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명제에 집중하다 보면 더 그렇고요.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품질에 욕심이 나게 되죠. 하지만 데드라인은 늘 존재하기 때문에 퀄리티와 시간 사이에서 타협하는 게 항상 일인 것 같아요. 근데 퀄리티엔 상한선이 없고 시간은 한정돼 있잖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 시간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워라밸도 자연스럽게 맞춰지나요?
아니요(웃음). 워라밸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에디터 생활을 한 지 올해로 9년 차인데요. 에디터 커리어는 플랜트 엔지니어 1년 차에 매거진 《B》 객원 에디터를 병행하면서 시작됐어요. 평일엔 본업에 충실했고 주말엔 에디터로 리서치 업무나 기획 기사를 도우며 지냈어요. 투잡을 하다 보니 틈틈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도 그걸 잘못했어요. 모든 시간을 일하는 데 투자했거든요. 요즘은 휴식을 자주 생각하게 돼요. 이렇게 지내다 쉰 정도가 되면 여유를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하고요. 쭉 바쁘게 지내다가 2015년엔 한 해를 푹 쉬기도 했는데요. 그 패턴이 잘 맞아서 5년 주기로 쉬어볼까도 생각 중이에요.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게 좋더라고요.
이직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플랜트 엔지니어가 경제적인 측면에선 더 나았지만 글 쓸 때 심리적 보상이 커서 커리어를 바꾸셨다고요.
심리적 보상이 크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금전적 보상이 크지 않았다는 의미예요. 물질 승리가 안 되니까 정신 승리를 한거죠(웃음). 플랜트 엔지니어는 금전적 보상 측면에선 충분했지만 10년, 20년 뒤에 프로답게 잘할 수 있는 분야인지를 물으면 갸웃하게 됐어요. 트레이닝을 받고 공부를 하면 좀 달라질 텐데 적성에 안 맞는단 생각이 드니 공부도 안 하게 됐죠. 반면에 글쓰기는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니까 더 잘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큰 칭찬이라기보다는 ‘너 글 재밌어. 좋더라.’ 하는 정도였는데 그런 피드백이 저를 더 쓰게 했어요. 어쩌면 인정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런 메모를 봤어요. 심리상담 선생님이 ‘왜 잘하려고 하는지’를 물었을 때 ‘나를 인정하지 않는 집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라고 답했다는 내용인데, 이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네요.
에디터로 전향을 결심하고 퇴사를 한 달 앞둔 시점에 사내 심리상담실에서 나눈 대화였는데요.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기보단 새로운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였어요. 저는 글쓰기를 배경으로 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좀 있었거든요. 이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었던 거죠. 아시겠지만 에디터는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고, 원고 쓰고, 협업하고,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죠. 플랜트 엔지니어랑은 업무 내용도, 방식도 다르니까 소통하는 데도 변화가 필요했어요. 작게는 업무 관리 툴부터가 그랬어요. 저는 구글닥스나 스프레드 시트로 작업하는 게 익숙했지만 다른 에디터들은 워드 프로그램으로 문서 작업을 하더라고요. 《B》에서 ‘JOBS’ 시리즈를 기획할 때도 트렐로Trello라는 프로그램으로 전체 기획을 잡았는데요. 아무도 트렐로를 사용하지 않으니 함께 보는 데는 적합하지 않더라고요. 개인 작업은 편한 방식으로 하되 공유할 땐 공동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변환해서 보여주는 적응력이 필요했어요. 그 과정에서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유의했고요.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어요. 커리어 없이 《B》에서 일하게 된데는 입사지원서 대신 제출한 매거진 《손현》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포트폴리오랄 게 없어서 만든 저만의 매거진이었는데요. 판형과 종이 종류까지 《B》와 똑같이 만들었어요. 지금은 《B》도 리뉴얼해서 구성이 조금 바뀌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세 개의 메인 인터뷰가 고정 포맷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인터뷰를 세 개 구성하고, 저를 ‘본캐’와 ‘부캐’로 나누어 셀프 인터뷰했어요. 저는 제가 할 말이 무척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두 번 인터뷰하고 나니까 할 말이 더 없더라고요. 밑천이 떨어진 것도 같고…. 그래서 나머지 하나는 친구를 인터뷰어로 두고 완성했어요.
친구와 인터뷰하는 경험은 어땠어요? 낯설면서도 신선할 것 같아요.
친구도 저도 인터뷰는 처음인 데다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미리 공유하지 않고 시작한 대화였어요. 그래서였는지 대화가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가더라고요.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깨달은 경험이기도 해요. 친구는 사회 이슈를 이야기할 때도 제 글이 계속 가족으로 돌아간다는 데서 범주가 작다고 지적했어요. 약점이 들춰진 기분이었죠. 저는 큰 스케일을 말하기 전에 ‘나부터 잘하자.’는 논조였는데, 친구는 ‘나부터 잘하자.’는 상관이 없지만 ‘나만 잘하면 돼.’는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 글이 그렇게 보인다는 게 충격적이면서도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저는 제 인생을 바르게 살면 이웃에게, 또 나아가 사회에 건강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며 썼거든요. 글쓰기에 대해 여러모로 더 깊게 생각하게 됐죠. 제 삶에도 더 충실해졌고요.
직업을 바꾸면서 금전적인 여유는 줄어든 셈인데, 글 쓰기 시작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간혹 ‘현타’가 올 땐 있어요(웃음).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연봉이 확 낮아졌으니까요. 그래도 첫 직장 연봉은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지런히 노력했어요. 근데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연봉이 인상되는 구간이 작아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건 저나 제가 속한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때 글을 괜히 썼다고 후회하기보단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했거든요. 1년 정도는 시험적으로 외주도 적극적으로 해보면서 사이드 잡을 병행하기도 했어요.
사이드 잡이요? 흥미롭네요. 좀더 듣고 싶어요.
제안 들어오는 일은 마다하지 않고 쉼 없이 일했어요. 독서모임 커뮤니티인 트레바리Trevari 클럽장도 두 시즌이나 맡고, 여러 매체에 외고를 싣고…. 1년 동안 그렇게 일해서 벌어들인 부수입이 1천만 원 정도였어요. 큰돈 같아 보이지만 주말을 전부 반납한 대가로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연봉의 30-40퍼센트는 될 거라 기대했거든요. 사실 저는 돈을 대하는 태도가 되게 선비 같은 사람이었는데요. 제 삶이 돈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부터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어요. 사이드 잡을 병행하기보단 제대로 커리어를 쌓아서 체계적으로 연봉을 높여보자는 마음도 생겼고요. 대학원 진학도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어요.
대학원에선 어떤 걸 배워요?
카이스트에서 과학저널리즘 석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영어로는 ‘Master’s Program In Science Journalism’ 이라고하는데요. 기자들이 많이 듣는 과정인데, 기초과학 분야를 백그라운드로 쓸 수 있도록 안내하는 학과예요. 미래학이나 바이오공학 같은 걸 개론 수준으로 배울 수 있죠. 이번 학기에는 정보기술전략 커리큘럼도 있고 반도체 산업 구조를 알려주거나 인지과학, 인공지능 같은 걸 배우기도 해요.
별개의 영역 같은데 과학과 글쓰기에 접점이 있나요?
그럼요. 여러모로 영감을 받아요. 폴인fol:in에서 ‘에디터의 글쓰기’를 연재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죠. 간단히 예를 들자면 바이오공학은 생명체의 원리를 배우는 학문이거든요. 우리 몸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배우다 보면 생명체 활동과 사회 활동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고 구조화할 수 있게 되는거죠. 대학원 수업이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면 일상생활은 글쓰기에 영감을 줘요. 밥 먹다가도 문득, 테니스 레슨을 받다가도 문득 글 쓰는 팁을 얻거든요. 얼마 전엔 테니스 코치가 ‘어깨에 힘 빼라, 너무 세게 치려고 하지 마라.’ 하셨는데 글 쓸 때도 적용되는 이야기 같더라고요. 잊히기 쉬운 이야기니까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억하려고 하죠.
메모는 보통 어디에 해요?
체계적인 메모 습관이 있는 건 아니어서 그때그때 달라요. 대개 메모 애플리케이션을 쓰고 들고 다니는 노트에 적기도 해요. 문구류에 욕심은 없어서 선물 받은 노트를 주로 사용하는 편이었는데요. 쓰다 보니까 통일된 노트에 기록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요즘은 A5 사이즈 노트 위주로 사용해요. 좋아하는 제품은 몰스킨 라지 사이즈인데, 오래 사용하고 싶어서 하드커버를 선호하고요. 요즘엔 스탈로지STALOGY도 한국에 유통되기 시작해서 애용하고 있어요.
대화하는 중간중간 메모를 하셔서 슬쩍 엿봤는데 글씨가 무척 멋져요. 어? 근데 왼손잡이인가요?
맞아요. 왼손잡이치고는 글씨를 잘 쓴단 소릴 종종 들어요. 학생 때는 필기하는 걸 좋아해서 자주 쓰는 펜도 따로 있었어요. BIC 볼펜도 많이 썼고, 한창 일제 펜이 유행할 때는 하이테크C도 많이 썼죠. 근데 하이테크C처럼 심이 얇은 펜들은 왼손으로 쓰면 잉크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펜은 각도가 중요한데 왼손잡이랑 오른손잡이는 구조적으로 좀 다른지 잉크가 안 나오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만년필 위주로 쓰게 됐죠. 라미LAMY 사파리 모델은 만년필 중에서도 입문하기 쉬운 제품이어서 요즘도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지금 보여주신 문구류가 전부 검은색이네요.
어, 정말 그러네요? 알게 모르게 검정을 좋아하나 봐요.
현장 전문가의 이야기를 담는 폴인에서 ‘에디터의 글쓰기’를 연재하셨죠. 읽으면서 글이 참 체계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격 유형이 ENTP던데 ENTP에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성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글에는 아무래도 글쓴이의 성격이 많이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MBTI의 특정 유형이 글 쓰는 데 적합하다고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요. 저는 성격도 그렇지만 감정이 글쓰기의 핵심 동인이라고 생각해요. 기쁘거나 슬플 때, 혹은 감정이 요동칠 때 그 안에서 여러 생각이 들잖아요. 그럴 때 많은 사람이 글로 표출하려고 하거든요. 그렇다고 감정을 너무 날 것 그대로 담는 건 조심해야 해요. 물론 저도 그렇게 글 쓸 때가 있는데요. 그러고 나면 쳐내고 깎는 과정을 꼭 거쳐요. 감정이 움직여서 쓰는 일이 잦아질수록 ‘글은 드라이하게 쓰자.’고 마음먹게 되더라고요. 감정이 지나치게 들어간 글은 며칠 지나면 우스워 보여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감정적으로 글을 쓴 이후엔 한 번 더 정제하는 과정을 꼭 거쳐요.
또 글 쓸 때 주의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기본적으로는 유행어나 비속어는 안 쓰려고 해요. 저는 평소에도 욕을 안 하는 편이에요. 욕을 하면 그 순간엔 시원해지겠지만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특히 SNS에서는 쉽게 욕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나중에 지운다고 해도 분명히 웹 캐시로 남을 테니 조심해야 해요(웃음). 유행어도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워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죠. 주제 의식 측면에선 모르는 영역에 좀더 신중해지고요. 저는 글쓰기에 맞고 틀리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글쓴이의 생각이 틀릴 뿐, 글 자체가 틀렸다고 보진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잘 모르는 분야를 언급해야 할 땐 더 잘 아는 동료나 배우자에게 조언을 구해요. 특히 젠더 이슈 같은 경우에요.
조언을 듣는 게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다루는 주제가 사회적으로 찬반이 갈리는 첨예한 사안에서만 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글 스타일을 다듬는 데도 도움이 돼요. 제 안 좋은 습관 중 하나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는 거거든요. 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저것도 알려주고 싶고, 주워들은 이 이야기도 언급하고 싶고… 글이 비대해지면서 결론이 왜소해져 버리죠. 그때 타인에게 읽혀 보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어요. 제 배우자는 가까운 사람이다 보니 격식 차리지 않고 “왜 이렇게 쓸 말이 많아?” 하고 지적해 주곤 해요. ‘이거 다 지적 허영이고 허세’라면서(웃음).
혹시 글쓰기에 롤모델이 있나요?
네. 김훈 작가요. 그분이 강연한 내용을 갈무리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나는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쓴다. 내면을 드러내서 그것이 남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으면 소통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와 남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와 남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도 크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그 글을 읽으면서 ‘문장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글 스타일도 궁금하네요.
음… 차가운 이성을 배경으로 삼되 ‘생각보다 따뜻하네?’ 싶은 글을 좋아해요. 이성적이지만 그 안에서 낭만이 느껴지는 글이요. 최근에 금융인 김동조 트레이더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의 문체가 꼭 그래요. 금융이라는 분야를 다루지만 휴머니즘이 묻어나서 더 애착이 가요.
얼마 전에 에디터의 글쓰기 연재를 마쳤어요. 소감이 어때요?
너무 기뻐요(웃음). 매 주말을 반납하면서 썼거든요. 주말에 대학원 수업이 있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두 시간이라도 쓰려고 노력했어요. 주간 연재다 보니 미룰 수가 없어서 배우자한테 신세를 많이 졌죠. 매주 1만 자씩 쓴 셈인데 꾸역꾸역 써내면서 글 쓰는 훈련이 되기도 했어요. 에디터의 글쓰기 에필로그를 발행하고 그 다다음 날 신문 칼럼 마감이 있었거든요. 1,700자였는데 쓰는 데 부담이 없더라고요. 연재가 끝난 뒤엔 그동안 소홀했던 집안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지금은 머리 쓰는 걸 좀 줄이고 몸을 좀 써보려고요. 매일의 워라밸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대신, 이런 식으로 바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해요.
에디터의 글쓰기에서 짧은 글 쓰기와 긴 글 쓰기에 대해 다룬 적이 있죠. 많은 사람이 긴 글 쓰기만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왜 이런 인식이 생기는 걸까요?
독자들이 보는 건 결과물뿐이어서가 아닐까요? 블로그에 발행된 글은 완성된 한 편의 글이기 때문에 글쓴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썼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일필휘지로 긴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블로그에 긴 글을 쓸 때도 대부분 한두 단락의 쪽글을 이어 붙여서 쓸 거예요. 트위터에서 140자 글쓰기를 여러 번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죠. 그런데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려는 사람은 화면 가득 글로 채워야 하는 흰 화면이 띄워지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짧은 글쓰기를 여러 번 해서 이어 붙이면 되는 건데 UI만 보고 겁을 먹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짧은 글 쓰기와 긴 글 쓰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거군요.
그렇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잖아요. 트위터를 흔히 ‘아무 말 대잔치’라고들 하는데 아무 말이어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글이 공식 입장문처럼 딱딱하고 형식을 갖출 필요는 없어요. 남들이 보는 공간에 쓰는 게 싫으면 작은 수첩에 써도 되는걸요. 그것조차 어렵다면 필사부터 시작해 보세요. 마음에 드는 책 구절을 필사하다 보면 몇 문장 안 썼는데도 노트 한바닥이 채워지는 걸 경험하게 될 거예요. 적은 글을 베껴 썼는데 노트가 꽉 차는 걸 보면 긴 글을 쓰는 데도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에디터의 글쓰기에 실린 고수리 작가 인터뷰도 재밌게 읽었어요. 작가님이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현 씨는 왜 글을 쓰세요?
어렵네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두 가지 이유가 떠올라요. 첫째는 기고 요청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후손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예요. 지금은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데요. 어느 날 이모할머니가 할머니·할아버지 해주신 적이 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할머니가 젊을 때 국밥집을 한 이야기나 할아버지가 한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미처 알 기회가 없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제 이야기는 후손을 위해 글로 아카이빙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상이지만 구체적인 독자를 두는 거네요.
맞아요. 글쓰기를 할 땐 구체적인 독자를 정하는 게 많은 도움이 돼요. 근데 그걸 정하는 게 참 어렵잖아요. 그게 누굴까? 누구지? 가장 쉬운 방법은 5년 뒤의 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에디터의 글쓰기는 결국 ‘내 이야기를 쓰고 알리는 법’을 두루 알려주는 연재였다고 생각해요. 나를 잘 알기 위해선 내게 질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지금 스스로 질문 한 가지를 던져 본다면요?
“아빠가 될 준비됐니?”
오, 됐나요?
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육아 스킬은 언제든 배울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저는 독립심이 강한 편인데 제 아이도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개별적인 존재로 대하려고 연습 중이죠. 아이가 사춘기가 오고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하나 걱정될 때도 있는데요. 이런 고민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때그때 최선을 찾아가 보려고요. 그러는 과정에서 글 쓸 거리가 많아질 거란 기대감도 있어요(웃음).
아이가 태어나고 글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네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죠. 앞으로는 이 강력한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싶어요?
우리는 은연중에 글을 참 많이 읽어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어도 SNS나 인터넷 뉴스 같은 걸 접하게 되잖아요. 하다못해 광고판이라도 읽게 되고요. 저는 현재 금융 업계에 있기 때문에 금융 쪽 이야기를 좀더 쉽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어려운 용어도 적확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죠. 또, 최근에 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프로페셔널 계정으로 전환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카테고리를 ‘업무 지원 서비스’라고 해두었는데요(웃음). 자기 PR이나 브랜딩을 남들보다 먼저 고민한 사람으로서 제가 경험한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글 쓰는 사람으로 지내겠단 다짐처럼 들리네요.
네. 한 번 업을 바꾸었기 때문에 다시 바꿀 생각은 없어요. 이제 글쓰기는 제 평생 직업이에요. 앞으로 이 맘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현재에 충실해야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할 수 있을 테니 일단은 꾸준히 써보려고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