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결말의 사진책

마르시안스토리는 2005년 시작된 대구의 1인 사진책 출판사다. 이곳을 이끄는 설립자이자 사진작가인 서민규 대표를 알게 된 건 그의 사진 덕분. 차갑고 황량한 자연의 한 장면이 시선을 강하게 붙들었다. 의도도 의미도 모호한 조각이 어떻게 나를 작품 속 그곳으로 단숨에 데려다 놓는 걸까. 서 대표를 만나고 싶었다. 그는 대구 남구 대명동의 아름다운 작업실에서 가족,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며 책을 만든다고 했다.

해석을 맡겨두는 마음

서민규 대표는 주로 자연 속 인간의 작은 개입이 보이는 장면을 포착한다. 숲속에 떨어진 페트병이나, 흙길에 찍힌 바퀴 자국 같은 것들.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지만 낯선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초현실적인 모습이다. 그는 작품의 특징으로 모호함을 꼽는다.

“사진 찍을 때 어떤 공간이든 해석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 풍경을 보고 제 속에 그려지는 마음을 찍는 거예요. 사람들도 사진을 감상하면서 각자에게 떠오른 이면을 보길 바라요. 그래서 모호하죠. 답을 주기보다 궁금증을,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거예요.

그는 사진책도 철저한 모호함으로 감상자의 해석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작업한다. 저마다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책.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진책을 만드는 기획, 인쇄, 제작 세 과정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과도하게 뚜렷한 기획이 사진을 압도해 버리거나, 작품이 본래 느낌을 넘어 지나친 품질로 인쇄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공개한 출판물은 90여 권. 그의 사진이 실린 《도쿄 – 나리타, 2004. 2》, 《Le Box / The Doors》부터 사진작가들과 협업한 《Till we have faces》(공지수), 《동부창고》(이재복)까지 다양한 사진책을 선보였다. 마르시안스토리의 작품들은 프랑스 유명 아트북 서점 이봉랑베르, 델피르, 7L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먼 나라의 감상자들도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에 빨려들었을 것이다. 기획자는 그림자가 되어 온전히 독자가 읽어내야 하는 책. 책상 위 가득 펼쳐보고 나만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어졌다.

사진책 개척하기

서 대표는 대학 시절 공업디자인을 전공하며 1990년대 화려함의 정점을 찍었던 LP, 로드무비, 필름 사진에 흠뻑 빠져 있었다. 우연히 접한 미국의 사진책은 문화예술을 탐닉하는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그의 마음을 뛰게 했던 책은 일본 출신 미술평론가 고쿠보 아키라小久保彰의 《현대 사진의 이해》, 《현대 사진의 전개》 그리고 《뉴욕 아트 스케치》. 미국 현대 사진 세계와 사진가들의 관계를 탐구한 책이었다. 그는 미국 사진계를 동양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예술가들의 세계를 동경했다.

출판을 마음먹은 건 사진 전시의 한계를 느끼면서부터다. 당시 전시는 사진을 발표하는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서 대표는 전시가 한정된 공간과 시간 동안 일부 대중에게만 다가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고, 작가가 발표를 꾸준히 지속하기 어려운 형태라고 봤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내밀하게 보여줄 최적의 방법은 사진책이라 여겼다. 알고 지내던 작가들과 함께 한두 권씩 펴내다 보니 벌써 20년이 흘렀다. 먼저 마르시안스토리를 문 두드리는 작가도 여럿이라고. 서 대표가 작가에게 먼저 출간을 제의한 경우는 없었다. 

그랬던 그의 작업 방식을 깬 사람은 우리나라 1세대 사진가 무허舞虛 정해창 선생이다. 개인 사진전이 전무하던 1929년 ‘예술사진 개인전람회’를 열었으며, 평생 ‘조선적인 것’을 추구했다. 그가 유리건판(흑백 필름의 원형으로, 빛에 노출되면 변화를 일으키는 액체를 유리면에 발라 만든다.)으로 찍은 조선의 일상은 먹으로 그린 한 폭의 풍속화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을 사진책으로 내는 일은 서 대표의 오랜 꿈이었기에 정 선생의 시선을 모은 작품집을 기획했다. 하지만 선생의 사진을 표현하기에 우리나라 인쇄 기술은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예술 서적 및 분판 전문 출판사인 ‘유화컴퍼니’의 유화 대표와 손을 잡고 출판사 ‘뮤뮤MUMU’를 설립했다. 국내에서도 한 발 더 나아간 분판 인쇄를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분판이란 이미지를 색상별로 분리한 뒤 인쇄해 원본의 색감과 깊이를 최대한 재현해 내는 기술이다. 사진의 깊이를 한층 깊은 차원으로 구현할 수 있어 역시 다르다는 인상을 자아낸다. 

서 대표는 뮤뮤의 활동과 사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자 제주로 떠날 계획이다. 그간 작품 활동을 위해 제주와 대구를 오가며 지냈지만, 이제는 거처를 옮긴다고. 대구 작업실은 그대로 마르시안스토리에 두고 제주에서 다양한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하려 한다. 대구에서 심긴 소망이 자라도록 가꾸고 매만진 이는 이제 더 많은 열매를 맺으러 고향을 떠난다. 그리운 곳으로 남을 대구를 뒤로하고 나아간 새로운 터전에서, 서 대표는 꿈을 꾸고 또 꿀 것이다. 

《Park, Myungrae / Photographs》

박명래 | 마르시안스토리

얼음과 바위, 갯벌을 흑백 필름으로 포착한 박명래 작가의 사진집. 마르시안스토리와 유화컴퍼니가 출판사 뮤뮤 설립 전 처음으로 힘을 합쳐 제작했다. 박명래 작가는 자연물의 결과 깊이를 세밀하게 포착할 수 있는 대형 필름을 사용한다. 서민규 대표는 작품의 디테일을 그대로 살리는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가 가진 분판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그러나 유화컴퍼니가 함께하면서 탁하게 인쇄될 수밖에 없는 흑백 필름이 맑게 표현됐고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인쇄물에 담겼다.

《Jung Haechang_Landscape / Still Life》

정해창 | 뮤뮤

마르시안스토리의 서 대표, 유화컴퍼니의 유화 대표가 함께 시작한 사진책 출판사 뮤뮤의 첫 사진집이다. 사진예술가 정해창 선생의 100년 전 사진을 되살려 한 권에 담았다. 기획, 편집, 재촬영, 복원, 제작까지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2년 동안 제작했다. 정 선생의 후손에게 직접 전달받은 자료를 받아 사진을 엮은 것으로, 1934년경 정 선생이 제작한 화첩에서 사진을 발굴, 복원했다. 그는 자연과 삶의 모습이 어우러진 장면을 수집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기개에서 작가의 개척 정신과 우직함이 드러난다.

《인수인계引受引繼》

이재복 | 마르시안스토리

이재복 작가는 사진책 《동부창고》에서 청주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사라질 청주 동부창고(옛 연초제조창의 담배 창고)를 포착했다. 《인수인계引受引繼》는 동부창고를 주제로 한 두 번째 사진집이다. 한적한 새벽, 흑백 사진으로 건물을 담는 작업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진행됐다. 글이 거의 없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사진으로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종이와 사진, 글자 사이의 조형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흑백 인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비도공지(코팅 처리를 하지 않은 종이)에 흑백 잉크 다섯 가지 색을 사용했으며, 《동부창고》를 다룬 첫 번째 사진책에는 장소의 특징을 표현하고자 향도 입혔다.

《LITMUS STORY Issue. 04》

서민규 외 | 마르시안스토리

마르시안스토리가 발행하는 사진 잡지. 서 대표와 교류하는 사진작가들의 아날로그 작품과 에세이를 소개하는 비정기 간행물이다. 2022년 발간된 네 번째 호는 박상용, 박재현, 서민규, 알란 에글링턴의 사진을 담았다. 발간에 맞춰 전시도 병행한다. 아날로그 필름의 깊이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작가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잡지. 다음 호는 어떤 장면으로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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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