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밑줄 긋는 남자

연두색 밑줄 긋는 남자

시를 못 읽는 내가 시 읽는 방법

내게는 고약한 독서 버릇이 하나 있다. 연두색 색연필이 없으면 책을 읽지 않는 것. 특히 시를 읽을 때 유난스럽다. 시를 쓰지도 못하고 읽기는 더 못하지만 나는 시가 좋다. 확실한 전언, 지혜와 교훈, 성공을 위한 지름길 같은 것은 시에 존재하지 않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서 시가 좋다. 아무렇게나 밑줄을 그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시가 어려운 이유는

내가 간디가 아니기 때문에

“요즘도 시 읽어?” 친구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시보다는 산문이 더 편해.” 그러면서 요즘 시는 난해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며,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혼자서 말했다. 시가 어렵다는 고민은 비단 친구의 경우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퇴근 후 시 수업 강좌를 들은 적 있는데,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강생들은 ‘짧은 것’, ‘공감할 수 있는 것’, ‘눈물이 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젊은 시인 선생님은 “그럼 긴 것은 시가 아닌가요? 나와 다른 것은 시가 아닌가요? 슬프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닌가요?” 되물었다. 고요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누군가 “시가 너무 어려워서 한 줄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하고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맞다. 요즘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은 한글이니까 소리 내서 읽기는 하겠는데, 머릿속으로 들어오면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최근에 그 실마리를 찾았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문보영 시인의 말 중에서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문보영 시인의 말이다. 타인의 겨드랑이에 난 점을 보며, 그곳에 달린 손잡이를 열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그녀가 유일할 거다. 내가 간디(어쩐지 세상 모든 걸 포용할 것 같은 이미지)가 아닌 이상에야 처음 마주하는 상상의 문고리를 거부감 없이 소화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낯섦’이라는 감정에 그다지 관대하지 못하다.

해독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느 날 동생이 내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나는 이제껏 그녀가 책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몇 권의 소설책과 시집을 추천해줬는데, 그녀는 시집을 보며 “오빠, 이렇게 긴 것도 시야?”, “왜 마침표가 없어?”, “이건 책이 너무 예쁘다.” 하면서 정작 내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시를 좀 아느냐고 묻자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통째로 외울 수 있다고 말했다(동생아, 그건 가요를 안다며 ‘오빠는 풍각쟁이야’를 말하는 경우와 같단다). 그나마도 가수 마야의 노래를 통해서 외우게 됐다고….

〈진달래꽃〉을 검색해보면 갈래와 율격, 어조 같은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온다. 구글은 〈진달래꽃〉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이별의 정한과 그 승화’. 그렇다. 〈진달래꽃〉은 이별의 정한과 승화다. 그런데 나는 이런 간소화 과정 속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김소월(문보영)이 아닌데 어떻게 한 사람의 우주를 쉽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작품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닙니다. 해석은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다. 예술가는 독자가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공감하며, 위로해주기를 바란다. 너무 쉽게 들키면 모양이 빠지니, 가능한 한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둔다. 자신만의 독특한 암호를 걸어둔 채 독자가 해독해주길 기다린다. 하지만 시를 읽으며 반드시 시인이 만든 함정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활짝 열린 뒷문을 놔두고 굳이 두꺼운 자물쇠 앞에서 끙끙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다는 것. 해독을 포기하면 시가 즐거워진다. 그가 무엇을 의도했든 내 마음대로 상상할 것. 그것이 내가 시를 즐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새벽녘,

내가 그은 연두색 밑줄

새벽 네 시쯤 꼭 한 번은 잠에서 깨어난다. 서둘러 시계를 보고, 첫 번째 알람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내일의 중요한 미팅, 갑자기 찾아온 허기 같은 걸 의식하다 보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새벽녘의 괴로운 선명함 속에서 머리맡의 스탠드를 켠다. 그리고 시집을 읽기 시작한다. 이때 조건이 있다면 ‘반드시 소리 내어 읽을 것, 이해하려 하지 말 것. 연두색 색연필과 심이 얇은 샤프를 준비할 것.’ 정도다. 마침 요즘 내 머리맡에는 백은선 시인의 《가능세계》가 있다. 

그리고 주의가 산만한 너와 나는 잃어버린 새벽을 찾아 떠나기로 했어 그리고 우리는 육십육번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곧 계획을 위한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을 거야 //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끝없이 누군가를 속으로 부르는 이상한 기분이 될 테지, 그리고의 행렬 안에서 자꾸만 실족하는 (중략) 그리고 비 그리고 오픈카 그리고 라디오 그리고 청각 그리고 실험 그리고 비키니 그리고 낙엽 그리고 색연필 그리고 잇몸 그리고 마사지 그리고 물고기 그리고 손목시계 그리고 스테레오 그리고 목도리 그리고 그리고 물질에 매혹된 부피 부피를 잃은 바깥 커다란 공백

– 백은선, 〈어려운 일들〉 중에서

일곱 페이지짜리의 시 안에는 모두 59번의 ‘그리고’가 등장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마침표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시집 여백에 이렇게 썼다. 

1. 강박적인 접속사 ‘그리고’. 마침표가 없는, → 마침표를 두려워하는 강박은 아닐까? → 꽉 막힌 것, 빈틈없이 네모난 ‘상자’에 대한 공포 → 아마도 이 시를 말하는 사람은 문 닫힌 방을 무서워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2. 상자: 모서리가 있다 → 단단하고 뾰족한 것 → 뼈 → 뼈를 말하지 않으며 뼈를 드러내기, 감추며 드러내는 방식 → 끊임없이 은유하는 버릇 → 시인의 천성
3. ‘그리고’는 끊임없이 유예하고 싶은 마음의 다른 표현 → 무언가를 계속해서 들려주고 싶은 조용한 수다 → 마음 한 구석, 시한부를 사는 다정한 사람
4. ‘그리고’를 계속해서 발음했더니 ‘그레고리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 단어를 함께 외우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물론 이는 아무 의미 없는 낙서다. 타인은 모르는 자신만의 영감. 나는 〈어려운 일들〉이라는 시를 통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백은선을 상상한다. 하얀 방에 앉아있는 수다스러운 한 사람, 시인과 그리고와 그레고리력과 얼굴 없는 여자아이의 추억. 이것들은 언젠가 내가 쓰게 될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가 될 것이다.

오해할수록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대학교 필수과목으로 시 수업을 들을 때면 나는 항상 구석에 숨었다. 아무리 해도 시인 지망생들의 ‘오타쿠스러움’을 따라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에게는 특수한 눈꺼풀이 몇 개 더 있어서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처음에는 감각은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주 오래 훈련된 것이었다. 마치 사진가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프레임을 재듯, 시인들 역시 무엇이 ‘시적인 것’인지 그 각도를 고민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답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시인들에게 좋은 시를 묻는다면 그 답은 시인이 말한 단어의 개수만큼 나온다. 

시인과 평론가에게 각각 다른 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둘 사이의 교수법은 조금 달랐다. 하나의 시를 놓고도 평론가는 역사나 미학, 성취 같은 거시적인 의미를 찾는 반면, 시인은 세세한 표현 방식에 주목했다. 무엇이 더 좋은 시인지 교수와 학생이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편 내가 쓴 낙서 같은 것에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의미를 붙여주기도 했다(그때만 해도 내가 재능이 있는 줄 알았지).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나는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주파수가 있어서, 같은 시를 놓고도 미세하게나마 호응이 나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범수의 가창력을 좋아하는 사람, 나얼의 소울을 좋아하는 사람, 우원재의 음침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각각 다르듯, 시 역시 저마다 성격과 감상 포인트가 달라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친구야, 부디 다시, 시를 읽기를 바란다. 잘못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더 많이 오해할수록 시는 풍성해진다.”

시를 잘 모르는
친구에게 추천해준
네 권의 책

가재미
문태준 | 문학과 지성사

친구야 네가 생각하는 시란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서정적이지만 신파는 아니고, 상상 가능한 세계 안의 가장 진솔한 묘사. 시를 읽는 동안 내게도 있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여운이 오래 간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 문학과 지성사

〈가재미〉가 감정에 호소하는 시라면, 진은영의 시는 감각을 자극한다. 시인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꼭꼭 씹어 먹은 다음, 그때 파생되는 감정을 다시 하나로 모으면, 시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 문학과 지성사

꼭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 시다. 어떤 시는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아주 오래 기억되곤 하는데, 내게는 허수경의 시가 그렇다. 이 시를 읽고 ‘킥킥’과 ‘당신’이라는 말은 내게 가장 슬픈 단어가 됐다.

소란
박연준 | 북노마드

여전히 시집이 힘들다면 시인이 쓴 수필은 어떨까? 시집보다는 친절하고, 소설보다는 감각적인, 그 중간 어느 한 지점에 놓여있는 책이다. 이름과는 달리 아주 조용한 소란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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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