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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특별함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상의 작고 반짝이는 것을 곧잘 발견하고, 그것을 온전히 자기만의 감각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 그런 당신께 이 영화들을 건네고 싶다. 넓은 광야 속 아름다운 자연과 인물을 조명한 그의 영화들. 구태여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자유롭게 여행하는 마음을 마침내 얻을 수 있도록.
안개가 내려앉은 폐허, 낡은 벽, 성당 안의 고요한 어둠까지. 고르차코프의 여행은 차갑고 눅눅하다. 여행을 낯선 풍경에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라 여긴다면, 고르차코프는 낯선 여백에 덩그러니 놓인 스스로가 당황스러운 듯 보인다. 러시아에서 이탈리아로 떠나온 그는 생경한 곳에서 고향에 대한 깊은 향수를 느끼며 떠돌아다닌다. 그가 머무는 방은 아름답고 소박했다. 작은 창 하나, 넓은 침대, 나무 의자가 덩그러니 놓인 욕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물로 채워진 곳이지만 그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것은 없었다. 입고 들어온 코트를 벗지도 않은 채 창을 여닫고, 텅 빈 옷장 문을 열어보는 그. 활짝 열린 창으로 비가 들이친다. 바닥은 금세 빗물로 젖었고 고르차코프는 피로한 몸을 침대에 누인다.
몇 없는 여행의 기억에서 가장 설레는 일은 낯선 서랍에 익숙한 내 물건을 두는 일이었다. 처음 겪는 공간에 매일 보던 물건을 놓아 결국엔 편안함을 찾는 그런 일. 어떤 여행은 온통 새로움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일일지 모르겠다. 고르차코프는 여행지에서 계속 꿈을 꾼다. 돌아가지 못한 러시아 집과 그 집에 살던 가족들의 여러 장면이 계속 여행 내내 맴돌아 그를 여행하지 못하게 한다. 장소는 곧 기억이고 기억은 과거. 과거는 그를 어디에도 닿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오래된 마음을 꺼내보게 한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 영화를 꼭 포함하고 싶다. 작은 순간의 장면까지도 아름다워 영화를 보는 행위만으로 여행하듯, 침잠해 있던 감각이 일깨워진다. 몇 가지 장면을 묘사해 보겠다.
1. 붉고 따뜻한 노을 하늘과 짙은 초록의 숲속, 나무 울타리 위에 걸터앉은 여인의 뒷모습. 그녀는 손에 흰 담배를 쥐고 있다. 넓은 들판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온다. 나지막이 들리는 새소리.
2. 어두운 오두막집에서 식사하는 두 아이. 까만 고양이는 식탁 위 엎질러진 새하얀 우유를 핥는다. 고요히 타오르는 촛불, 희미한 빛이 드는 창가의 화병.
3. 차가운 비 내리는 숲속 농장. 그 한가운데 활활 타오르는 헛간. 여인은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윽고 깊은 우물의 물을 떠 얼굴을 씻어낸다.
〈거울〉은 한 남자의 기억과 꿈, 과거와 현재,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다. 〈거울〉을 한 편의 여행기로 본다면, 영화 속 장면을 기억의 장소로 삼아 순례하듯 걸을 수 있다. 비와 물, 바람과 불, 자연의 침묵을 손에 쥐고 자유롭게 풀어 보이는 그의 영화엔 일상에서 흔히 보는 원소를 특별하게 감각하게 한다. 비는 슬픔으로, 불은 소멸로, 바람은 잊혔지만 계속 살아 있는 그 무엇으로. 타인의 꿈속을 여행하는 기분을 어느 여행지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장면과 함께 흐르는 시와 같은 내레이션을 여기에 옮겨본다.
길은 바닷가와 나무 사이로 이어진다. 굵은 자갈로 덮인 땅, 자전거 바퀴 자국은 그 위에 얕은 물웅덩이를 만든다. 알렉산더와 아들이 천천히 걷는다. 하늘은 회색빛으로 물들고 파도가 가볍게 밀려온다. 바람은 느리게, 풀을 낮게 휘젓는다. 오래된 회화처럼 한 편의 시와 같은 장면. 스웨덴의 고립된 해안 마을, 알렉산더의 가족과 지인들은 생일을 맞이해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핵전쟁 뉴스가 전해지고 절망에 빠진 그들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세상의 종말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이 세계는 어떻게 비칠까. 곧 사라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과 하늘에 대한 아쉬움으로, 후회로, 떠나보낼 수 없는 절박함과 두려움. 그렇게 결국엔 사랑으로 읽히는 모든 장면이 〈희생〉에 그려졌다. 〈희생〉은 말 그대로 잘 그려진 영화다. 섬세한 붓질로 아주 오랜 시간, 현상을 지긋이 바라보며 애정과 슬픔을 담아 그린 그림처럼.
장면 장면에 깊은 이야기가 새겨졌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린 어디에도 가지 않지만, 결국 모든 곳을 향해 떠나기도 한다. 우리의 눈이 되는 카메라는 고요히 움직여 스크린 속 모든 순간을 깊이 담는다. 영화를 통해 명상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은 시간을 그대로 봉인한 이 세계의 끝에서 장면들이 일종의 여행지로 느껴지는 경험. 그 안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우리 내면을 통과하게 만드는 기이한 경험. 드넓은 들판의 나무 집. 알렉산더의 거처가 불에 타고 있다. 불꽃은 빠르게 타올라 검은 연기를 뿜고 창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진다. 알렉산더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 불은 조금도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완전히 집을 집어삼킨다. 이 세상의 끝이 두려웠던 알렉산더는 희생을 택했다. 말도 잃고, 가족과도 멀어지며 자신의 몸을 누이던 집을 활활 불태워버렸다. 그렇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 세상에게 보내며 이 세상을 구한다. 종말 직전의 세계는 다시 현재를 찾았지만 알렉산더와 아들의 나무는 앙상하게 말라 쓰러졌다.
〈희생〉은 우리의 현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맑게 빛나고 있는지, 세상의 종말에 괴로워하는 인물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여행을 단지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일상이 아닌, 매일 지나온 평범한 일상을 생생히 감각하게 하는 일이라 여기면 어떨까. 세계의 끝과 마주한 사람은 오히려 현재를 끌어안는다. 알렉산더의 아들이 죽은 나무에도 물 주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 것처럼. 떠나지 않고 떠날 방법을 가까이서 찾는 일이 중요하다 여기며.
글 김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