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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of Travel
역 근처 허름한 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 시내 한가운데 있었기에 아주 비쌀 것 같았지만 그때의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새벽 늦은 시간에 리스본에 도착했고 불빛이라곤 호텔의 초록색 네온사인뿐이었다. 주인에게 이틀 밤을 묵겠다고 말하고 502호 방 열쇠를 건네받았다. 걱정하던 것보단 숙박료가 싸서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로비 중앙에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형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방이 생각보다 싼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칠이 벗겨지고 갈라진 나무 계단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새벽이라 그런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고, 호텔에는 나 홀로인 듯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방 안엔 침대와 옷장이 전부였고, 오랜 세월 동안 묵은 나무 냄새가 났다. 눈길 한 번으로 훑어볼 수 있는 작은 방이었다. 오랜 비행과 긴장의 피로에 짐을 풀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종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하지만 내 몸은 아직 새벽 속에 있었기에, 그 소리에도 쉽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나 창문을 열어젖혔다. 출근 알람처럼 무뚝뚝하게 들리던 소리가 비로소 청량한 종소리로 들려왔다. 이윽고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걸음소리, 원두를 가는 소리, 내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 100년은 족히 되었다는 트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 낯선 소리들에 비로소 진짜 여행을 왔음을 실감했다. 서울 골방에서 들었다면 그저 짜증스러운 음이었을 이 소리들은 여행의 흥분과 설렘을 가중시키는 배경 음악이 되었다. 노트에 일정을 적으며 조금 더 소리에 집중했다. 옆방에선 알아들을 수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아마 내 또래의 젊은 연인일 것이다. 목소리만으로 그런 것들을 유추했다. 아주 조금도 해석할 수 없지만 흥분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둘 다 기분이 매우 좋은 모양이었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점점 멀어졌다. 지금쯤이면 밖으로 나갔겠지? 난 그 커플이 궁금해 창문 밖을 내다봤다. 금발머리 여자와 갈색머리의 남자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트램에 올랐다. 그들이 만들어놓고 간 여행의 소리가 여전히 맴돌았다. 이제 정말 나가야 했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일정을 적은 노트를 가방에 넣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삐걱거리는 5층 계단을 내려와 로비에 열쇠를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밝다. 하얗게 밝은 날이었다. 눈을 찡그리며 한동안 눈이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다. 방 안에서 들은 트램의 소리가 몇 배는 더 크게 들렸다. 굽이 낮은 신발 아래로 느껴지는 맨들맨들한 바닥의 촉감과, 걸을 때마다 뽀득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문득 위를 올려다봤다. 호텔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어느 노신사와 눈이 마주쳤다. 막 잠에서 깨어 창밖의 소리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 몇십 분 전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에게도 그 연인처럼 설레는 소리가 들렸을까. 언덕 끝에 28번 트램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방 속 카메라를 꺼내 첫 번째 사진을 찍었다. 셔터 소리는 어느 때보다 크고 경쾌했다. 트램에 오르고 나는 그 소리들 속에 스며들어갔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
Pastérs De Belém
www.pasteisdebelem.pt
R. Belém 84-92, 1300-085 Lisboa
+351 21 363 7423
벨렝 지구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위치한 파스테이스드 벨렝은 1837년부터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선보인 곳으로 유명하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전해진 비법을 이어받아,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환상의 에그타르트를 하루에 약 2만여 개가량 팔고 있다. 필자는 리스본에 방문하면 다시 찾을 첫 번째 장소로 이곳을 꼽았다.
글 사진 하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