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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신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싶은 밤이 있다. 작은 방 안의 적막을 견딜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소설책을 챙겨 집 앞 카페로 나서곤 했던 날들. 혼자서 견딜 수 없는 밤이라면 친구를 불러내 야식을 먹거나, 함께 도란도란 담소하며 강아지풀 나란한 밤길을 걸으면 좋았을 텐데. 막 자취를 시작했을 때의 나는, 외로움에 혼자서 말라가면서도 그것을 지그시 견딜 줄 알아야만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내 손을 잡아달라 말하는 일이 부끄러웠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누군가의 말에 상처 입은 하루를 일기장에 조용히 새기는 방법도 있지만, 타인의 따스한 목소리로 녹여버릴 수도 있다는 걸. 다시는 혼자서 행복할 수 없을 만큼 타인에게 기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래요?”
<밤에 우리 영혼은>의 애디는 외로움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는 할머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지내다가, 역시 혼자 된 지 오래인 루이스를 찾아가 함께 이야기하다 잠들자고 제안한다. 애디는 주위 사람들이 ‘나이들 먹고 뭐 하는 짓이야’라며 수군댈 걱정은 덮어두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이 끔찍한 밤을 함께 견디자는 애디의 제안에 루이스는 자못 놀라지만, 이내 받아들인다.
“뒷문으로 들어오지 마세요.”
지난 삶을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밤이 흐른 지 며칠째, 이웃들이 볼까봐 매번 뒷문으로 들어오는 루이스에게 애디는 단호히 말한다. 우리 그동안 너무 오래 남들 눈치를 보며 살지 않았느냐고, 죄짓는 일도 아닌데 앞문으로 들어오라며. 애디의 당당한 태도는 루이스에게 옮겨 가고, 둘은 산뜻하게 차려입고 보란 듯이 데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흔에도 다시 빛나기 시작하는 관계가 있음을, 내일이 기다려질 수 있음을, 심장이 내려앉던 젊은 날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은 아님을 알아간다.
“내 가족이잖아요.”
팔에 맞닿는 체온이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애디의 아들 딘이 찾아온다. 부인과 헤어진 그는 아들과 자신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며 애디에게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애디는 루이스와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애디는 이제 겨우, 자신의 욕망대로 살기 시작했는데 가족 때문에 주저앉은 것일까? 아니, 그녀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 그녀는 “그래도 내 가족이잖아요”라며 루이스에게 말한다. 애디는 청바지에 페이즐리 무늬 셔츠를 입고 데이트를 즐기는 여자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방황하는 내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머니의 책임감, 그 정체성도 지켜내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아들의 집으로 이사한 후, 애디는 루이스에게 휴대폰을 선물 받는다.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없음은 아쉽지만 그들의 다정한 밤은 목소리를 나누며 이어진다. 스스로 선택한 삶에 오롯이 책임진 낮이 지나고, 밤에 타인의 목소리에 기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밤은 때로 혼자 견디기엔 끔찍’하니까.
에세이《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2019, 새움출판사)를 썼습니다. Humans of Seoul 인터뷰어, MBC 다큐스페셜 취재 작가로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며 ‘글로 나와 타인을 위로하며’ 살고자 합니다. 다 그만두고 싶어질 때마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워왔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혹은 애달파서 응원하는 영화 속 여자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글 도상희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