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말하는 안내서

영화 속 그녀에 대하여

여자를 말하는 안내서

영화 속 그녀에 대하여

어떤 영화는 단 번에 마음 한 켠으로 들어오고, 또 어떤 영화는 여러 번을 보아도 아리송하다. 그렇게 우리 주변을 계속해서 맴도는, 영화 속 어떤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8

김이경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미친 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래.”

인생을 살면서 기회라든지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다고 친구는 말했다. 자기에게는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고,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결혼일 거라고. 나는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친구에게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환상이나 “나를 어떻게든 좀 해줘 봐.”라는 탈출구로 결혼을 선택한 건 아니었으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의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내가 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기에. 

맨해튼 외곽에 위치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한 가족이 있다. 첫눈에 반한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이 동네의 가장 아름다운 집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산다. 누가 봐도 그들은 부족할 것 없어 보이지만 이들에게도 깊은 골이 있다. 남자는 단조로운 일을 하는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고, 여자는 연극배우다. 연극대신 집안일을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는 이 따분한 일상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한다. 결국 남편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파리행을 제안한다.

“아뇨, 여보. 이게 비현실적이죠. 당신같이 멋진 사람이 억지로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며 이런 곳에 사는 것, 나 역시 이런 생활 싫어요. 우린 특별한 게 없어요. 우리도 결국 굴복했잖아요. 아이가 생기면 인생이 끝날 거라는 어리석은 통념이에요. 그리곤 서로를 원망했죠.”

첫 만남에서 나눴던 희망 가득한 이야기를 더는 이어나갈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상대가 변했다고 말한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내뱉던 처음 모습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서로의 마음을 숨긴다. 파리행을 결정한 이유가 남편 프랭크 때문이라고 말하는 에이프릴은 사실 연극배우로 실패한 삶의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프랭크 역시 마찬가지다. 파리행을 포기한 이유로 회사에서 승진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내가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실이 좋은 게 뭔지 알아? 아무리 오래 거짓되게 살았어도 진실은 잊히지 않는다는 거야. 진실은 잊히지 않는다고. 그저 사람들이 거짓말을 더 잘하게 될 뿐이야.”

프랭크가 에이프릴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줬다면 어땠을까. 그는 그녀를 지지하거나 응원해주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해 보인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속마음을 더 이상 남편에게 꺼낼 수 없게 된다. 이 영화는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부부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그건 단순히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 수 있다. 표정 변화 없이 보청기의 소음을 줄여 이야기를 듣지 않는 그녀의 남편. 이 노부부의 갈등은 소리 없이 조용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없이 귀를 막았을 뿐이다. 에이프릴의 말처럼 우리는 살면서 거짓말을 더 잘하게 된다. 더는 충돌하고 싶지 않거나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점점 내보이지 못한다. 평화로운 현실과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상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비틀거리면서 나아가는
프란시스 하 Frances Ha, 2012

김혜원

“나 정말 잘 지내.”

프란시스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영화관에서 <프란시스 하>를 보고 나오며 메모장에 이런 문장을 적었던 것도 같다. “아마,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한 나는, 술에 취해 지하철역 안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그녀의 옆에서 망을 봐줄 수도 없고 거리에서 춤추는 그녀와 함께 리듬을 탈 수도 없으며 함께 ‘싸움 놀이’를 해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린 너무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로 프란시스가 떠오른 건 왜냔 말이다. 나에게 ‘사랑스러움’이라는 점은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진 지점에 찍혀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스러움은 언제나 그렇듯, 조금은 이상하고 어딘가 결핍되어 있으며 왠지 모르게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시스는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브루클린에 사는 프란시스는 운이 좋지 않다. 부자가 아니면 예술 하기 힘들다는 뉴욕에서 예술(무용)을 하는데,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무용으로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고 높은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이런 시대에 태어난 것부터가 불행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와 아파트를 나눠쓰던 단짝 친구는 “널 떠나는 게 아니라 동네만 옮기는 거야.”라고 말하며 그녀를 떠났고, 견습단원으로 일하는 무용단에서는 임시 해고를 당한다. 월세를 낼 수 없어 친구 집에서 얹혀살다가 결국엔 졸업한 대학교의 기숙사에서 조교로 일하며 그곳에 머문다. 프란시스의 인생은 삐걱거리며 계속 바닥으로 치닫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녀는 말한다. “나 정말 잘 지내.” 나는 프란시스가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을 건네고 태연한 표정을 짓거나 크게 웃을 때마다 왠지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프란시스는 계속 길을 걷거나 달린다. 뒤늦게 발견한 취미인데,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이 글을 쓰며 영화를 다시 보니 어쩌면 우리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꽤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녀가 나에게 함께 살자고 말한다면, 기꺼이 응할 테다.

맑은 시절, 그 여자들
써니 Sunny, 2011

이자연

“어이! 소녀시대!”

내가 다닌 중학교는 인천의 작은 여학교였다. 학교 옆으로 작은 골목이 있어서 그 안으로 등·하굣길마다 아이들이 북적였고 가끔씩 누가 그곳에서 담배 태우다 걸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계절마다 크고 작은 꽃들이 잘게 피었고 긴 세월을 견딘 소나무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볕이 학교 밑으로 그대로 가라앉았고, 땅거미가 지면 학교에서부터 점점 어두워졌다. 모든 것이 학교에서 시작되고 학교에서 끝나는 시절이었다. 얼핏 보면 그곳이 하나의 두터운 세계쯤으로 보였던 것 같다. 하나의 세계. 맞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한 공간에 모여 집에 돌아가는 시간을 빼놓고 모든 것을 공유하던 시절. 예쁜 샤프를 사거나 앞머리를 자르러 가는 사소한 일도 같이 하던, 별것 아닌 게 별것이 되는 시절. 

암 투병 중인 춘화를 우연히 마주친 나미는 그녀를 위하여 ‘써니’를 한 명씩 찾으러 다닌다. 사는 게 바빠 서로 잊고 지낸 친구들은 이제 머리칼에 새치가 오소소 올라오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장미, 진희, 금옥이, 복희, 수지. 어쩌다 잃어버린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난 뒤에야 그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 교복 대신에 사복 ‘빠숑’과 ‘뽕’이 격하게 이입된 앞머리. 나이키 농구 가방과 프로스펙스 운동화. 촌스럽기 그지없는 것들을 한데 모아두니 눈물 나게 그립다. 겪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 그리운 이유는 이러나저러나 저 나잇대의 모습은 결코 변하는 법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마침 옆에 있어서 어쩌다 친해진 누군가들. 마침 마음이 맞아 더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관계. 마침 함께 있으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 우연한 마침이 여러 번 반복되고 난 뒤에야 어색한 얼굴에 별명이 하나씩 생기고, 자기네들만 아는 이야기가 생긴다. 그렇게 써니는 만들어졌다.

도종환 시인의 <어릴 때 내 꿈은>이라는 시를 보면,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학교 안팎으로 서로의 허물을 너르게 허물던 시절을 떠올리면 나뭇잎 냄새가 어디선가 올라온다. 잎사귀 같던 시절. 새싹도 아니고 낙엽도 아닌,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여리던 푸른 잎사귀 같은 소녀들 말이다. 각자의 집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를 틀어두고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내 마음 한편에 접어둔 장면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친구들과 작당모의를 하는 것을 퍽 좋아했다. 그때 과학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이 모두 미혼이었는데 괜한 마음으로 그 둘을 이어주고 싶었다. 과학 시간이 되면 밖에서 반장이 교실로 조금 늦게 들어오면서 캔커피를 과학 선생님께 건넨다. 그리고 “체육 선생님이 이거 전해 드리래요.”라는 반장의 딱 한마디. 나머지 일동은 반장 뒤통수 너머로 걀걀대고 웃었다. 걀걀. 이런 전략은 체육 시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물론 그 둘이 사랑에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지금 보다 나을 게 거의 없다. 열악한 지갑 사정, 좁은 시야, 미숙한 판단 능력, 새로운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치졸함까지. 하지만 그때보다 좋은 건 또 무얼까. 지리멸렬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친구들만으로도 하나의 탄탄한 세계가 만들어지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춘화가 결국 투병 끝에 생을 다한 뒤에, 비로소 써니의 모두가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여자’가 아닌, ‘여자들’이라는 단어의 힘을 믿게 되었다. ‘소녀’가 아닌 ‘소녀들’. 그러니까 혼자로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돌아보니 분명히 ‘우리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웠던 때가 있었다는 거다. 써니가 그랬다.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고.

침묵의 무게
피아노 The Piano, 1993

오혜진

“당신이 듣는 이 목소리는 내 말소리가 아니다.”

매일 피아노를 쳤다. 의사는 손가락 마디가 굽거나 튀어나올 수 있으니 그만둬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 입을 막아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처음부터 고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되는 건 자칫 폭력이 되고 만다. 비슷한 이유로 스스로 입을 막아버린 한 여인이 있다. 여섯 살 이후로 말이 없었으니 선천적인 벙어리는 아니다. 대신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아노는 에이다의 목소리이자 분신 같은 존재다. 그녀가 살아가는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란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겉으로 드러나는 평판과 체면이 우선시되는 남성 중심의 시대. 미혼모인 그녀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아홉 살 난 딸과 단둘이 낯선 땅 뉴질랜드에 당도한 에이다. 피아노만 있으면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남편 스튜어트는 무겁다는 이유로 피아노를 해변에 버려둔다. 거친 숲과 질척한 늪, 뾰족한 시선들이 있는 섬에서 에이다의 마음을 읽는 건 오직 한 사람. 뉴질랜드 원주민과 유럽 이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베인즈뿐이다. 그는 그녀를 위해 피아노를 운반하고 조율한다. 에이다는 피아노를 연주하러 베인즈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하고, 어느새 욕망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베인스는 문맹이고 에이다는 벙어리지만 둘의 대화에는 문제가 없다. 침묵은 언어의 범주를 벗어나고, 그 바깥에는 피아노가 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치고 싶은 대로 쳐요. 그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베인즈에게 마음을 여는 에이다.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긴 치마와 장갑, 모자를 벗고 오로지 맨몸으로 그의 앞에 선 날,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굴레도 함께 벗는다. 때로는 진부함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는데, 사랑이야말로 위태로운 삶을 전복시키는 구원임을 증명하는 그들이 그렇다. 뒤늦게 두 사람의 유대를 알게 된 스튜어트는 질투와 위기의식에 휩싸인다. 급기야 에이다의 유일한 소통수단인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내는데. 엄마의 부정을 알린 딸은 오열했고, 에이다는 초연한 얼굴로 고통을 감내한다. 비로소 욕망을 거세했다고, 그녀를 정복했다고 여기는 스튜어트. 하지만 그 일로 아내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온몸으로 저항하는 내면의 외침이었다. 내 의지가 무슨 일을 낼지 두려워요, 너무나 낯설고 강력해요, 나는 가야 해요. 망연자실한 스튜어트는 에이다 모녀와 베인즈를 추방하듯 떠나보낸다. 피아노를 실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는 세 사람. 에이다는 아픈 손을 부여잡고 이제 필요 없으니 피아노를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다 떨어지는 피아노 밧줄에 발이 묶여 바다에 함께 빠지고 만다. 어둡고 고요한 침묵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에이다. 피아노가 바닥에 닿을 때쯤 그녀는 문득 생의 의지를 느낀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건 또 다른 ‘선택’이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한 여성의 해방. 두 번째 생을 선택한 에이다는 새로운 터전에서 피아노를 가르친다. 그리고 다시 말을 배운다. 밤이 되면 심해의 어둠과 침묵이 엄습하지만 더는 두렵지 않다. 내면에 닻을 내린 피아노가 있고, 담담히 그 존재를 느끼며 살아갈 뿐.

내가 하고 싶은 사랑과 피하고 싶은 사랑
그녀 HER, 2013

전진우

“어디로 가는 건지 설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당신이 그곳으로 올 수 있다면, 날 찾아와요. 그러면 아무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테니까.”

누군가의 편지를 대신 적어주는 게 직업인 남자 테오도르. 섬세하고 감동적인 문장을 적어 타인의 행복을 돕지만, 자신의 삶 안에서는 큰 공허를 느끼며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직관을 가진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하는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간,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위로받고,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내용에 감동을 느끼지 않았을까. 사만다는 이해능력을 가진 OS로 그려졌지만, 어쩐 일인지 내내 어떤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지켜본 나는 앞으로의 내 삶에서 피하고 싶은 사랑과 추구하고 싶은 사랑을 정해놓게 되었다. 

행복하던 그들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은 사만다가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다는 걸 테오도르가 알게 되는 장면일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괴롭더라도 모든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자를 대보듯 자주 꺼내는 어떤 기준을 생각하면 사만다는 분명 사랑을 무너뜨린 당사자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만큼 사랑을 하고 있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문득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이 떠올랐고, <우리도 사랑일까>의 미셸 윌리엄스도 떠올랐다. 그들 역시 미친 사람, 불륜녀, 배신자, 죄인인 동시에 사랑에 빠져 있는 솔직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있는 사랑의 범위가 무척이나 좁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믿는 사랑도 물론 소중했지만, 어쩐지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그 사랑에 비추면 얼굴이 빨개질 만큼 창피했다. 연애나 결혼이라는 단어에 갇혀 있었고, 또 지금 내 주변에 갇혀 다른 곳의 사랑은 이상한 사랑이라고 조용히 확신하고 있기도 했다. 

사만다를 이해하기 위해서 내가 한 일은 또다시 사만다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녀의 대사를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이건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아요. 내가 깊이 사랑하는 책이죠.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책을 아주 천천히 읽어요. 그래서 단어와 단어 사이가 정말 멀어져서 그 공간이 무한에 가까운 그런 상태예요. 물리적 공간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존재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여긴 다른 모든 것들도 존재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이 날 보내줬으면 해요.”

그들이 함께한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영원히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내게, 사랑은 더 이상 손에 쥐고 있다고 해서 증명할 수 있는것도 아니었고 비슷한 모습이어야만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지는 일이다. 가장 두려운 일은 과연 그들을 잃는 것일까. 사만다를 만난 이후에 나는 그것보다 힘든 일이 하나 있다고 믿는다. 그건 좁기도 넓기도 한 공간, 바로 내 삶에 그들을 가두는 일이다. 그래서 내 옆에 머물며 혹은 이제는 곁에 없지만 잠시라도 내 옆에서 행복을 느꼈던 이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게 행여 641명이더라도 한 명 한 명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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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이경 김혜원 오혜진 이자연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