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홍등이 있는데요?

김혜경 — 광고기획자 / 이승용 — 카피라이터

같은 회사에 다니며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같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같이 살아가는 혜경·승용 부부는 퇴근 후 작업실에 나란히 앉아 함께 글을 쓴다. 일본 선술집에 있을 법한 홍등이 밝히는 자리, 알코올이 찰랑대는 이 기묘한 작업 공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아늑하고 따듯한 신혼집이네요. 여기서 얼마나 지내셨어요?

혜경: 이제 3년 되었어요.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되게 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뭐가 막 생기더니 이젠 빈틈이 없네요. 벽에도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자꾸 이것저것 들이고 붙여서 이렇게 빼곡해졌어요.

 

소품도 그렇지만 색감이 참 귀여워요. 그런데… 함께 사는 강아지가 안 보이네요?

혜경: 아, ‘똘멩이’가 겁이 많아서 낯선 사람을 무서워해요. 

승용: 처음 이 집에 오는 친구들이 피를 많이 봤거든요. 특히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사람을 조금 경계하는데, 혹시 몰라서 혜경이 부모님 댁에 맡겼어요.

 

오늘 못 만난다니 너무 아쉬운걸요…. 그럼 두 분 소개로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혜경: 평일 낮에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고, 퇴근하면 집에 있는 책상으로 출근해서 글 쓰는 작가로 사는 김혜경이에요. 작년에 《아무튼,술집》이 나왔지요. 주말에는 술 마시며 시 읽는 <시시알콜>이라는 팟캐스트를 녹음하며 지내요.

승용: 혜경이와 같은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이승용이에요. 퇴근하면 혜경이 옆 책상에서 같이 글 쓰고, 주말엔 팟캐스트 방송도 같이 하고요.

 

정말 모든 일을 함께 하는군요.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나를 대표할 직업으로 어떤 걸 꼽고 싶어요? 

승용: 저는 확실히 직장인 자아가 강해요. 책을 썼다고 누군가 저를 “작가님”이라 부르면, 약간… 두드러기 날 것 같아요(웃음). 회사 일로 늘 바쁘지만 이 일을 좋아하고 일에서 얻는 보람이 커서 카피라이터로 대표되고 싶어요. 

혜경: 하루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회사여서 직업이라고 하면 당연히 직장인이 떠올라요. 절대적으로 회사에 오래 다니기도 했고요. 다만, 글 쓰는 건 회사 일보다는 제가 주체가 되는 일이어서 좀더 마음이 쓰이는 일이에요.

 

두 분 입사 동기로 알고 있는데. 직장인이 된 지 얼마나 됐어요?

혜경: 올해로 9년, 어느덧 차장(웃음)!

 

와, 축하해요. 코로나19로 직장인의 업무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혜경: 저는 재택근무할 때도 있고, 회사로 출근하기도 하고, 외근도 잦은데요. 처음 재택 할 때는 눈치도 보이고 적응도 잘 안 됐는데 이제 차츰 회사도, 저도 시스템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엔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 시킨다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근데 이젠 회사들이 집에서 일한다는 걸 좀 믿어주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집에 작업실을 따로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재택근무도 저 방에서 하나요?

혜경: 승용은 항상 저 방에서 일하는데 저는… 겨울이 되니까 자꾸 거실로 나오게 돼요. 고타쓰(이불이 달리고 안쪽에 전기 히터가 있는 일본식 테이블)를 두어서 자꾸 여기 앉게 되더라고요. 이불 덮고 일하면 아늑하고, 기분도 좋아요. 집에서 일할 때라도 최대한 늘어져야죠. 

승용: (고개를 저으며) 너무 늘어져.

혜경: 몸이라도 편해야지. 

승용: 적당히 늘어져야지.

혜경: 적당히 늘어지는 건 늘어지는 게 아니야! 

 

잠깐, 잠깐(웃음). 회사 얘길 좀더 해볼게요. 같은 공간이어도 직원마다 자리에 특성이 있잖아요. 두 분 자리는 어때요?

혜경: 제 자리는 딱 이 집 같아요. 물건이 엄청 많거든요. 근데 일이랑 관련된 물건은 하나도 없어요. 제 정서에 도움을 주는 모형, 소품, 일이랑 전혀 상관없는 책 더미, 캔… 같은 거로 가득하죠. 회사에서 종종 보안 점검이란 걸 하는데요. 보안에 위배되는 행위는 없는지 살피는 건데, 물건이 많아서 제 자리만 유독 유심히 확인당해요(웃음). 

승용: 제 자리는 정신 상태를 좀 반영하는 편이에요. 일이 많고 정신이 없을수록 더러워지죠. 두어 달에 한 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대청소하듯 치워요. 종잇조각부터 시작해서 먹다 남긴 간식, 캔… 정신없을 땐 별게 다 있죠. 한번은 먹다 남긴 커피를 오랫동안 방치해 놓은 적이 있는데 어느 날 보니까 곰팡이가 피어 있더라고요.

혜경: 와, 너무 싫어! 집에서는 매일 쓸고 닦는데 회사 자리는 왜 저렇게 지저분한지 모르겠어요.

승용: 회사 자리는 ‘내 자리’라는 인식이 덜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제 것이 아니니까요.

혜경: 이 집도 우리 건 아닌데? 집주인이 아니잖아. 

승용: 그래도 저 책상은 내 돈 주고 산 거잖아.

잠깐, 잠깐(웃음). 두 분은 광고 회사의 광고기획자, 카피라이터잖아요.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고 있어요? 

혜경: 광고기획자는 너무 많은 걸 해서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카피라이터가 뭐 쓸지 알려주는 것도 수많은 업무 중 하나예요. 예를 들어 물을 광고한다고 무턱대고 “물에 대해 써주세요.” 할 수는 없잖아요. 광고의 방향성이나 물의 특성 같은 걸 정리해야 하는데,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광고주와 직접 만나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저예산 프로젝트의 경우엔 제가 카피를 쓰기도 해요. 

승용: 저는 제작본부 소속이고 혜경이는 기획팀 소속인데 보통은 제작본부와 기획팀이 협업하며 일해요. 최근엔 같은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데, 가끔 혜경이가 저한테 뭘 툭 던지면서 “야, 이거 내일까지 되지?” 그래요. 오전에 업무를 주면서 오후까지 달라고 한 적도 있고요. 제가 무슨 카피 자판기도 아니고….

혜경: 아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보통은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서 미팅을 요청하고 조정도 하고…. 얘는 일하는 속도가 빠르고 그 시간 안에 된다는 걸 잘 알아서 빨리 해달라고 부추기는 거예요. 무엇보다 편하고요. 저, 그렇게 막 일하는 사람 아닙니다(웃음).

 

카피를 빨리 뽑는군요. 전 가끔 제목이 엄청 안 써지던데(웃음) 혜경 씨는 어때요?

혜경: 전 일할 때 예열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시작하면 그렇게까지 속도가 느리진 않은데… 그냥 일하기가 싫은 것 같아요(웃음). 글쓰기도 그래요. 쓰기 시작하면 진도는 빠르게 나가는데 작업실에 앉기까지가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예열하는 루틴이 있어요?

혜경: 아침에 무조건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요. 꼭 회사 지하에서 마셔야 하는데, 회사가 이태원에 있어서 주변에 좋은 카페가 많거든요. 커피 마실 공간이 주변에 널려 있는데 저는 그런 커피는 ‘가짜 커피’라고 불러요. 맛있고 기분도 고양시키는 커피는 가짜 커피, 회사 지하에서 마시는 커피는 ‘진짜 커피’(웃음). 진짜 커피를 마셔야만 일할 수 있는 뭔가가 세팅되는 것 같아요.

승용: 저는 좀 딴짓을 해요. 보통은 유튜브 켜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는데요. 영감…은 사실 핑계고, 30분 정도 딴짓하다 보면 마음이 다급해지잖아요. 정말 ‘안 되겠다.’ 싶은 순간까지 미루다가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에요.

 

집이 마포구에 있어요. 이 집은 어떤 기준을 두고 구했어요?

승용: 혜경이가 이 동네에 좋아하는 술집이 많아요. 친구들도 주변에 많이 살고요. ‘신혼집은 꼭 이쪽에 구하고 싶어.’라는 욕구가 있어서 계속 주변을 둘러봤어요. 근데 아무리 다녀도 마음에 딱 드는 곳이 없더라고요. 열 군데 넘게 돌아다니다 지쳐서 다른 집을 계약할 뻔도 했죠. 좀더 찾아보자 싶었는데, 그때 한눈에 반해서 들어온 게 이 집이에요. 집을 고르기가 좀 힘들고 웃겼는데요. 저는 방이 몇 개고, 수압은 어떻고, 난방은 잘되는지…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는데, 혜경이는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방문을 열고 딱 그 생각만 해요. ‘내가 여기에 앉아서 술을 먹을 수 있을까?’

혜경: (웃음) 술 먹는 그림이 그려지는지가 중요해요. 

승용: 그래서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조건도, 가격도 좋고 다 괜찮은데 혜경이가 “여기선 술 먹는 그림이 안 그려져.” 그러면 끝이었거든요.

 

“술 먹는 그림”이라는 게 어떤 거예요?

혜경: 말로 설명하기는 진짜 힘든데, 뭐라 그래야 되지…. 일단은 거실이 넓어야 해요. 방이 좀 좁더라도 친구들이 왔을 때 거실에 다 같이 둘러 앉을 수 있고, 술 마시고 퍼져 있을 수 있는 그림을 원했거든요.

퇴근하면 작업실로 출근한다고 했는데 작업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방이잖아요. 공간을 따로 두는 게 도움이 되나요?

승용: 작년에 ‘글을 꾸준히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실에 저렴한 책상을 하나 들였는데 책상 하나로 많은 게 변했어요. 그 이전엔 글을 써도 식탁에 앉아 하다 보니까 기분이 안 났거든요. 근데 책상에 앉으니까 본격적으로 글 쓴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카피를 쓰니까 집이나 회사나 글을 쓴다는 맥락은 같은데요. 집에서 에세이나 칼럼을 쓰는 건 방향성이 많이 달라요. 회사에선 명확하게 저한테 요구하는 지점이 있고 광고주를 설득할 카피를 써야 하지만, 집에서 쓰는 글은 내가 즐거워서 쓰는 거다 보니 모드 전환이 필요하죠. 그래서 장소를 바꾸는 게 ‘난 이제 다른 글을 쓸 준비가 되었어.’라는 마음을 먹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작업실에 책상을 들인 이후로 훨씬 열심히 써요. 계약서도 많이 쓰게 됐고요(웃음).

혜경: 애초에 이름부터가 ‘식탁’이어서 부엌에선 글 쓰는 모드로 전환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식탁이 멋스러운 것도 아니고요. 저는 ‘멋있다.’라는 상태에 돌입해야 좀더 몰입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작업하는 걸 누가 보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작업하는 내가 멋있어야 집중이 되더라고요. 근데 사실, 환경이 갖춰지고 나니까 오히려 거실에 앉아서 쓰는 일이 더 많아졌어요. 작업실을 ‘보면서’ 쓰는 거죠(웃음). 저기 들어가서 쓰는 건 너무 본격적인 것 같아서 적당히만 일하고 싶을 땐 거실에 앉게 되더라고요. 초고는 거실에서 써도 퇴고는 작업실에서 한다, 이런 느낌?

 

그럼 작업실에 들어가는 게 스트레스이지 않아요? 

혜경: 그래도 글을 쓰려면 들어가야 하니까 일부러 좋아하는 걸 다 저 방에 몰아 넣었어요. 좋아하는 소품이랑 술병이 저기 제일 많아요. 술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라도 들어가게끔 만든 거죠. 정부터 붙이려고요.

 

용도가 남달라 보여요. 문 대신 발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방 안엔 일본 선술집에 달려 있을 법한 홍등이 있던데요.

혜경: 발이 있으면 어쨌든 헤치고 들어가야 하잖아요. 작업실에 들어갈 땐 좀 ‘어나더 월드’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들어가 보실래요?

 

(작업실로 들어선다.) 모니터에 타이머가 달려 있네요. SNS에 50분 글쓰기, 10분 휴식 패턴으로 작업한다고 쓰신 걸 봤는데 또 어떤 규칙이 있어요?

승용: 엄격한 규칙이 있는 건 아닌데, 둘 다 타이머 맞춰놓고 글 쓰는 걸 자주 했어요. 요새는 바빠서 시간 잴 필요가 없어졌죠. 주어진 시간 안에 빨리 써서 넘겨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요새는 좀… 치기랄까, 자꾸 딴짓에 눈독을 들이게 돼요. 제가 게임을 전혀 안 하는데요, 게임 유튜브를 봐요. 우연히 추천 영상으로 뜬 스타크래프트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유튜버가 한때 유명한 프로게이머였다더라고요. 그가 좀 특이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기는 걸 보는데… 묘한 쾌감이 있는 거예요.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혜경: 글쓰기나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비생산적인 걸 하면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계속 바쁘게 지내서인지 그런 시간에 안정이 되더라고요. 작년 하반기엔 숨도 못 쉴 정도로 바빴는데요. 어느 정도였냐면, 화장실을 못 가는 건 당연하고 계단 내려가다 잘못 디뎠는데 ‘여기서 구르면 좀 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웃음).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모바일 게임이 생각나는 거예요. 사실 할 시간이 없으니까 화장실 갈 때나 커피 마실 때 잠깐 꺼내서 하려고 ‘쿠키런 킹덤’을 시작했거든요. 24시간을 저당 잡힌 거 같을 때 간간이 했는데 하다 보니 지금 길드장까지 됐어요(웃음). 쉬는 시간이 진짜 필요했나 봐요.

승용: 우리 너무 매몰되기 시작했어. 조금씩 끊어야 돼.

9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같이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같이 술 먹고, 같이 사는데 글도 나란히 앉아 쓰신다고요. 함께하는 데서 어떤 시너지가 있어요?

승용: 초반에는 시너지보다 다툼이 많았는데, 팟캐스트만 해도 벌써 6년째 하고 있어서 이젠 틀어질 게 별로 없어요. 요새는 회사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게 특히 좋아요. 지금 삼성 모바일 광고를 함께 하는 중인데, 서로 잘 아니까 소통이 편하고 일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요. 문제가 생기면 집에서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서로 원고 피드백도 자주 한다고 들었어요.

승용: 그것도 처음엔 우여곡절이 좀 있었어요. 저희 첫 책이 같이 쓴 《시시콜콜 시詩알콜》인데, 그때 혜경이가 쓴 글을 보고 제가 별생각 없이 회사에서 피드백 주듯 “이 부분은 마음에 안 들고,이런 게 좀 아쉬워. 이렇게 바꿔보는 게 어때?”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혜경이가 컴퓨터를 딱 끄면서 “너 혼자 써.” 그러는 거예요.그때 글에 대한 피드백을 어떻게 주고받으면 되는지 좀 알게 됐어요.지금도 글을 완성하면 한 번씩 보여주는데, 혜경이 입에서 “괜찮네.” 소리가 나오면 안심이 되더라고요. 반대로 혜경이 반응이 별로면 ‘많이 고쳐야겠네.’, ‘다시 써야겠네.’ 생각하게 되죠.

 

꾸준히 쓰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잘하고 있다는 확신도 생기나요?

승용: 음, 스킬이나 확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 보는 눈은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작년 3월에 저, 혜경이, 우다영 소설가, 구현우 시인 넷이 부산에 간 적이 있어요. 제가 택시 조수석에 앉고 셋이 뒤에 앉았는데 그 당시 연재하던 제 글을 읽고 피드백해 준다면서 셋이 이것저것 날카로운 얘기들을 하는 거예요. 제 뒤통수에 대고 한 명씩 “이건 좀 별론데?”, “다시 써야겠는데?” 하니까 나중엔 너덜너덜해지더라고요(웃음). 근데 그 시간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지금도 글 쓰고 나면 친구들 목소리가 저절로 들려요.

혜경: 사실 전 피드백을 하는 쪽이고 듣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피드백을 해달라는 건 “잘 썼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예요(웃음). 생각해 보면 저는 회사에서도 제작물을 받아서 “이거 수정해 줘.” 하는 역할이지 피드백 받을 일은 딱히 없거든요.

승용: 반대로 저는 회사에서도 피드백을 받아서 카피를 수정하는 역할이에요. 저한테 피드백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수정이 어려운 일도 아니거든요. 피드백 관련해서 어려웠던 경험은 딱 한 번 있어요. 혜경이가 《아무튼,술집》 원고를 책으로 엮기 전에 저한테 먼저 보여줬거든요. 거기 ‘라면 먹고 갈래?’라는 챕터가 있는데 이전 연애에 대한 이야기더라고요. …그땐 진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었어요.

혜경: 사실 그것도 피드백을 바라기보다는 ‘책 나오기 전에 네가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냐.’ 그런 심정이었어요(웃음).

야근하는 날도 있을 텐데 매일 작업실로 들어가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혜경: 이제는 오히려 힘이 안 들면 나태해진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때 회사 일과 원고 마감이 겹쳐서 정말 바빴던 적이 있어요. 새벽에 퇴근해서 미룬 마감을 꼭 끝마쳐야 하는 일정이었죠. 그날 새벽 4시까지 원고를 쓰는데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엄청 울고 잠들었는데, 그게 뭐랄까… 헬스로 따지면 ‘빡센’ 트레이닝을 해서 근육이 잡힌 느낌이더라고요. 그 시간은 솔직히 너무 힘들었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근육을 만들어줬단 생각이 들었어요.

승용: 저는 이런 작업들이 오히려 회사 일을 좀더 열심히 하게 해주는 동력이 돼요. 팟캐스트나 책 작업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사실 회사 일은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거잖아요. 근데 신기하게 회사 일이 잘돼야 개인 작업도 잘되고, 개인 작업이 잘돼야 회사 일도 잘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개인 작업이 잘 풀릴 때 회사에 애정을 느끼기도 해요. 물론 일이 늦게 끝나서 마감할 시간이 부족하면 너무 힘들지만, 만일 글 쓰는 게 생업이라면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때때로 공간은 제약이기도 했는데, 어느덧 공간 없이 일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 같아요. 작업 환경은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까요?

혜경: 저는 오히려 공간이 더 중요해진 시대 같아요. 만나지 않고도 화상으로 미팅이 가능해졌지만, 카메라 화면 안에 존재하려면 어쨌든 제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좀 역설적으로, 지금은 나만의 공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내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져서 작업 공간이 없던 사람도 오히려 그런 공간을 원하는 시대 같기도 하고요.

승용: 그래서 점점 더 작업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닐까요? 예전에는 작업 공간이 외부에 있었지만 지금은 집에서 작업하게 되었으니까요. 유튜브만 봐도 이미 그런 욕구는 많아진 거 같아요. 예전에는 다들 깔끔한 책상 정도를 원했는데 지금은 모니터 화면에 반응하는 조명이라든지, 듀얼 모니터 같은 기술적인 제품을 들여놓더라고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대여서 오히려 내 작업실, 개인 공간이 더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사람들이 작업 환경을 좀더 전문적으로 가꾸는 거 같아요.

승용: 혜경이가 묘하게 좀 그런 걸 좋아해요. 저희 작업실에도 혜경이 책상에만 모니터 거치대가 두 개 달려 있거든요. 사실 문서 프로그램 쓰는데 저렇게까지 좋은 기계가 필요한가 싶고(웃음). 저한테는 그런 아이템이 키보드인 것 같아요. 키보드에 따라 타이핑하는 느낌이 다르니까 글 쓰는 기분이나 마음가짐도 달라져요. 그래서 저 작업실에도 제 키보드만 세 개예요.기분에 따라 바꿔 쓰고 있죠.

혜경: 작업실에 물건은 점점 많아지는데 공간이 이미 가득 차서 아마 더 넓은 집으로 가게 된다면 그때 좀 다른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책장도 키우고,좋아하는 물건도 더 넣고요.

 

그때 또 초대해 주실 거죠? 앞으로는 또 어떤 작업이 예정돼 있어요?

승용: 작년에 밀리의 서재에 오리지널 전자책으로 《헛소리의 품격》을 출간했는데요. 올해 종이책으로도 출간 예정이어서 지금은 열심히 책 작업 중이에요. 아마 올해 상반기에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외에도 계약된 책들이 있어서 마감의 연속이지 않을까요? 아, 조만간 우다영 소설가, 구현우 시인이랑 이 집에서 마감 캠프를 하기로 했어요. 각자 마감할 원고를 갖고 모여서 마감하는 마감인들의 모임! 같은 파자마를 맞췄는데 그거 입고 여기서 각자 글을 쓸 것 같아요.

혜경: 저도 상반기에 나와야 할 책이 있어서 열심히 마감 중이에요. 저 작업실이 이 집에선 가장 생산성이 높은 공간이니까 저는 또 저 안에서 뭔가를 쓰고 있겠죠? 저희에겐 나름 ‘신성한’ 공간이니까요!

“술 따르는 모습 한 컷 찍어도 될까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떤 술을 프레임에 담을지 고민하는 두 사람. 몇 번 의견이 오가고 술병을 가지고 나오며 “오늘도 마셔야겠네!” 해사하게 웃는다. 빛이 잘 드는 거실에서 두 사람은 몇 번쯤 목을 축이며 “맛있다.”, “아, 근데 정말 맛있다.”를 반복해 말한다. 그 소리가 꼭 이 집의 BGM 같아 듣기에 참 좋았다. 매일의 한 모금이 이들을 작업실로 들어가게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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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