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K의 아무렇게나 살아보는 여행]

우붓의 원숭이 소굴에서 생각한 것들

이건 퇴사하고 발리로 떠난 후 쓰는 세 번째 이야기다. 나는 발리에서 서핑을 하다 부상을 당했고, 잠깐 쉬는 김에 근교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선택한 첫 번째 여행지는 바로 우붓이다.

발리는 진짜 크다. 제주도 3배 정도의 면적으로, 그 크기만큼 다양한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섬이다. 여행자의 눈으로 봤을 때 발리는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상업 중심지인 덴파사르, 서핑의 성지 남부 해변, 해양 액티비티가 발달한 북동부 해안 그리고 화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우붓 산악 지대가 대표적이다. 대충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분위기가 다른 제주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곳은 발리의 중부 도시 우붓Ubud이다. 우붓의 지명은 허브와 약초의 산지라는 의미를 담은 발리어 ‘우밧Ubad(약)’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숲의 일부라 봐도 무방할 만큼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 우붓은 과거 서양 예술가들이 정착해 활동했기 때문에 예술가의 마을로도 불린다. 곳곳에 미술관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약과 예술, 그러니까 치유와 영감이라는 두 개의 유산이 곧 우붓의 정체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발리 여행을 하기 전부터 우붓은 나에게 익숙한 도시였다. 주위에 우붓을 열렬히 사랑하는 지인들이 몇 있었기 때문이다. 채식과 요가를 즐기는 그들은 종종 나무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발바닥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누르는 모습을 SNS에 올리곤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태그 했다. ‘#우붓 #한달살기 #디지털노마드 #요가 #전갈자세’. 전갈자리인 내가 유독 우붓을 친근하게 느낀 까닭이다.

발리 생활 한 달째, 서핑 실력은 도무지 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 서핑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초보병’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며칠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픈 김에 놀자!’ 피로 골절 진단을 받자마자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발리 긍정왕다운 태도로 우붓 행을 결정하고, 바로 다음 날 작은 배낭을 꾸려 여행길에 올랐다.

우붓은 내가 머무는 남쪽 해변 쿠타Kuta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산골에 있었다. 택시 이용이 일반적이지만, 일행이 없는 나는 버스를 선택했다. 버스는 듬직하지만 둔한 친구였다. 예상 시간을 훌쩍 넘긴 네 시간여 만에 우붓에 도착했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호텔 침대에 누워버렸다. 동료 서퍼들이 알려준 맛집 몇 개가 계획의 전부였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전갈자리지만 전갈 자세는 할 수 없는 내게 요가는 다음 생의 일이었고, 1박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숲속 리조트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라고 쓰고 ‘지갑이 허락하지 않았다’라고 읽는다). 이제껏 여행이 그랬듯 발길 닿는 대로 걷고, 골목을 탐험하고, 지치면 길바닥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게 전부인 시간. 유령처럼 흘러갈 뿐인 여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 게으른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현관 앞 테이블에 조식 대신 빈 그릇 하나가 배달된 것이다. 나는 그릇을 들고 프런트로 갔다. “우붓에서는 아침에 접시를 먹는 전통이 있나요?” 프런트 직원은 호텔 지붕을 가리켰다. “저기 당신의 식사가 날고 있네요.” 지붕 위에는 회색 털 원숭이 세 마리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토스트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바나나 쟁탈전에서 이긴 한 녀석이 지붕 높은 곳에 올라 나를 내려다봤다. 거만한 얼굴이었다. 욱한 마음에 숙소에서 고용한 원숭이는 아닌지 추궁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우붓의 실질적인 주인은 원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원숭이가 보인다고 했다. 특히 도시 중심에 있는 ‘몽키 포레스트’는 악명이 높았다. 힌두교 사원 세 곳이 자리한 몽키 포레스트는 다섯 부족의 원숭이들을 보호하는 우붓의 명소였다.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소매치기도 이곳에서 지갑을 털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타고난 모험가인 내게는 흥미로울 따름이었다. 탐험을 떠나기 전에 유튜브를 찾아봤다. 원숭이에게 각종 소지품을 빼앗긴 이야기부터 쫓기고, 습격당하고, 물려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까지. 하나같이 원숭이의 폭력성을 증언하는 콘텐츠뿐이었다. 과연 이 모든 말이 사실이라면 숲을 폐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조금 두려웠지만 겁쟁이라는 말을 듣기는 싫었기에 씩씩하게 숲을 향해 걸었다.

당연하게도 원숭이의 숲에는 원숭이가 많았다. 나무 위에도 원숭이가 있고, 바위 위에도 원숭이가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엄마 젖을 빠는 새끼 원숭이, 주위를 경계하는 어른 원숭이, 만사가 귀찮은 노인 원숭이가 있었다. 회색 원숭이와 갈색 원숭이, 고구마 먹는 원숭이와 사타구니를 긁는 원숭이도 있었다. 휴대폰을 하는 원숭이도 있었는데, 그건 휴대폰을 잃은 인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영화 <혹성탈출>(1968)의 시저처럼 말하는 원숭이를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한편 이곳에는 원숭이만큼이나 많은 인간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인간, 사진을 찍으라고 호객하는 인간,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는 인간, 원숭이의 먹이를 노리는 인간, 인도네시아 인간과 한국 인간, 국적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양 인간도 있었다. 그 가운데 나는 잔뜩 쫄았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이었다. 길을 걷다가 문신이 많은 덩치를 마주했을 때처럼 최대한 눈을 깔고 걸었다.

숲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걸음을 멈추고 원형 극장에 앉았다. 숨을 고르자 눈이 밝아졌다. 끝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울창한 나무줄기 사이에서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람쥐, 개구리, 새, 나비, 개미, 버섯, 꽃, 이끼, 움직이지 않는 바위와 아주 작은 숨을 쉬는 그 어떤 생명까지. 숲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만의 박동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이 웅장한 생명의 둥지 안에서 나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걸까. 실상 가장 무서운 건 타인의 자연을 무시하는 인간일 터였다. 저마다의 고유한 질서를 온전히 바라보고 침범하지 않으려 노력할 때, 자연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무리에서 떨어진 원숭이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를 필두로 원숭이 두세 마리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삥이라도 뜯으려는 걸까? 오줌이 마려웠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저 감상에 젖어 잠시 아련해진 것뿐인데···. 당장에 뭐라도 바치고 싶었지만 가진 게 없었다. 다행히도 불량배 원숭이들은 내가 가난뱅이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인지 이내 자리를 떴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얘기를 한 것 같은데 하찮은 인간인 나로서는 그게 욕인지 덕담인지 알 수 없었다. 두어 시간 동안의 산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몽키 포레스트의 방점은 몽키가 아니라 포레스트에 있다는 것. 숲을 다녀간 몇몇 인간들은 원숭이의 포악한 실체를 폭로한다며 오두방정을 떨어대지만, 그들은 미처 숲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숭이의 숲에서 인간과 원숭이는 서로를 구경하고, 숲은 그 둘 모두를 지켜본다. 인간과 원숭이와 날짐승과 작은 생명, 이름 모를 무덤이 나무 지붕 아래 함께 있는 것이다. 서로의 영역을 거스르지 않는 상태로, 숲의 일원이 된 자기 자신을 타이르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듯 맹렬하게 솟은 나무 기둥을 보고 있자면, 숲은 어떤 상태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숲이라는 지구의 거대한 뿌리 안에서, 가늠할 수 없이 깊게 뻗은 심연 안에서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저 “개쩐다!” 하고 비속하지만 온전하게 숲을 추앙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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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