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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뽀대 작살이었던 사람
세상에 처음 눈을 떴을 때 나는 발가벗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그걸 당연하게 여길 정신이 내겐 없었다. 잔뜩 옷을 껴입은 어른들이 신생아실 유리 너머에서 나를 구경거리로 삼는 게 영 불쾌했다. 그래서 더 크고 서럽게 울었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도, 아버지도, 똥강아지 쪼꼬도, 저 멀리 칭기즈칸도 처음엔 자기만의 옷이 없었다. 발가벗고 태어났을 땐 모두가 평등했다. 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으니까.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하지만 문명사회에선 모두가 옷을 입는다. 나같이 저질스러운 몸을 가진 사람에겐 특히 더 두꺼운 갑옷이 필요하다. 자신을 더 멋지게 감추기 위해 나는 옷을 산다.
어릴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맥도날드에서 시급 2천 백원을 받아가며 모은 돈으로 동대문에 갔다. 당시에는 인터넷 쇼핑이나 스마트폰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옷가게로 발품을 팔아야 했다. 밀리오레, 두산타워, 프레야타운까지, 동대문은 온갖 짝퉁과 보세 옷이 난무하던 쇼핑의 메카였다. 딱 달라붙는 아디다스 저지와 카키색 비니, 허리춤에 힙색까지, 그곳은 ‘핫 패숀 피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모인 최첨단 쇼핑센터였다. 동대문에서 산 옷을 입고 학교에 간 날이면 친구들은 말했다. “너, 뽀대 작살이다!(맵시나 모양새를 이르는 ‘본때’와 ‘작살난다’의 합성어로, ‘레알로 멋드러진다’는 뜻을 갖는다. 이 용어는 이후로 ‘간지 와방’, ‘킹왕짱’ 등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요즘의 패션은 감히 따라갈 수가 없다. 딱 달라붙는 바지가 유행이래서 샀는데 한 해가 지나면 촌스러워 입을 수 없고, 큰맘 먹고 산 패딩도 계절이 지나자 한물간 디자인이 돼버렸다. 올해는 와이드핏과 벌룬핏 바지가 유행이라는데, 그런 알리바바 마술사 같은 옷은 차마 소화할 수가 없다.
홍대에 살고 있어서 출퇴근길마다 ‘요즘 아이들’을 본다. 요즘 아이들의 패션은 전부 뉴진스 같다. 나도 젊어 보이고 싶어서 남자 아이돌의 패션을 눈여겨보는데, 그들은 나와 체형 자체가 다르다. 저 아이들은 대체 뭘 먹고 자란 걸까? 나도 어릴 때부터 아보카도나 올리브유 같은 걸 먹었다면 다리가 좀더 길어졌을까? 문득 성장기 어린이에게 청국장과 물김치만 먹인 할머니가 원망스러워졌다. 그렇지만 돌아가신 분을 그런 식으로 추념하는 건 무례한 일이다. 80년대 밀리오레 키즈가 주제넘게 홍대에 사는 탓에 이런 고민도 하는 것이다.
패션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도시에 살 때 아버지의 옷장에는 날이 바짝 선 정장 바지와 깨끗하게 세탁한 흰색 와이셔츠가 가득했다. 서랍에는 와이셔츠에 어울리는 넥타이와 검은색 장목 양말이 말끔히 정리돼 있고, 깔끔한 키높이 구두는 늘 광이 났다. 그야말로 아버지는 모던한 도시 회사원의 표본이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귀농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장 정리였다. 선물로 받은 고급 와이셔츠를 비롯해 금빛 넥타이핀, 다림질 선이 바짝 선 정장 바지를 처리했다. 경조사용 정장 한 벌을 남겨두고 필요 없는 옷을 버리자, 아버지의 옷장에는 옷이 세 벌도 남지 않았다. 텅 빈 옷장을 보며 아버지는 어쩌면 자신의 커리어가 전부 사라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옷뿐이라는 사실을 통감했을 때 아버지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한번은 대학교 동아리 정기 모임에 소싯적 강남 나이트클럽의 댄싱퀸이었던 선배 누나가 나타났다. 아이 셋의 엄마가 된 누나는 동남아에서 산 코끼리 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누나는 ‘패션’이라는 단어를 아예 잊은 사람처럼 보였다. “언니, 요즘 많이 힘들지?” 미혼인 후배의 말에 누나는 티셔츠에 묻은 이유식 자국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니들도 애 키워봐, 내 거 살 돈으로 애들 옷 하나 더 사게 돼.” 그때 누나 옆에서 유부남 동창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결혼 직후 20킬로그램이 불었다고 했다. 누군가를 챙겨야 한다는 건 자신에게 소원해지는 일이겠지. 나는 유부남의 웅장한 뱃살을 꼬집으며 가능한 한 오래 나 하나만 돌보기로 다짐했다.
잘 꾸미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아무래도 돈일 거다. 어릴 땐 돈이 궁했다. 나이키 신발 하나를 사려고 몇 개월 동안 알바를 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해외 직구도 아무렇지 않게 주문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번다. 하지만 새 옷보다 급하게 돈 쓸 일이 계속해서 생긴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잇몸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임플란트를 권했다. 멀쩡한 이를 뽑고 잇몸의 병균을 긁어내고 가짜 이를 심는 데 몇백만 원이 깨졌다. 한 달 뒤 건강검진에서는 대장의 용종을 떼어내는 데 또 몇십만 원이 깨졌다. 최근에는 부러진 쇄골에 박아 넣은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했다. 이번에도 몇백만 원이 깨졌다. 고장 난 몸을 고치느라 새 옷을 살 여력이 점점 사라져갔다. 해가 지날수록 혈압은 높아지고 노안에, 탈모에, 관절염까지, 신체 구석구석 고쳐야 할 부위가 늘어갔다. 젊을 때는 돈이 없고, 나이가 들어선 건강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좋은 옷을 사는 것보다 나쁘지 않은 몸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기왕이면 근육이 좀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크로스핏을 등록했다. <피지컬: 100> 속 우람한 덩어리를 보면서 ‘나도 조금만 하면 저런 몸이 돼버리는 건가?’ 하고 긴장했다. 큰 착각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입에서 피맛이 날 정도로 운동했는데, 한 달 후 인바디에 찍힌 내 근육량은 놀라울 정도로 작고 귀여웠다. 충격적인 자아 성찰 이후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개미 코딱지만 한 근육 좀 얻겠다고 매일 욕 나오는 자기 관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수십 년 그러던 것처럼 소파에 누워 감자튀김이나 씹다가 잠들 것인가.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혼자 사는 40대가 누추해지지 않으려면 생활 습관 전부를 개선해야 했다. ‘패션은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를 만들고 배려하는 삶의 기술’이라던 패션 큐레이터의 말처럼, 나 자신에게 무례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관리해야 했다.
오래된 수건을 바꾸고, 베갯잇을 자주 빨래하고, 치실을 사용하고, 어울리는 향수를 뿌리고, 외출할 때 선크림을 바르고, 옷에선 항상 섬유유연제 향이 나도록 하고, 손발톱이 길게 자라지 않게 자르고, 눈썹의 장수털을 자르고, 겨드랑이를 제모하고, 음식을 씹을 때 입을 벌리지 않도록 하는 일련의 습관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멀리하고, 부정적인 언어를 말하지 않는 노력. 개선해야 할 일들을 한꺼번에 적으려니 갑자기 남은 생이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왜 신은 나를 차은우로 만들지 않아서 좌절하게 하는가.
인터넷 명언을 찾아보니 ‘마음이 변하면 태도가 변하고, 태도가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라고 한다. ‘당신,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변할 거 같아?’ 생각하다가도 일단 속는 척 마음 정도는 먹어보기로 한다. 일단 쿠팡에 접속해 코털 가위를 주문하는 것부터 시작. 선크림을 주문하고, 치실을 주문하고, 송월타월을 주문하고, 그렇게 인생 준비물을 담아낼수록 내 안의 허기는 깊어져 갔다. 나는 홀린 듯 빅맥과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이게 진짜 마지막 감튀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기합을 넣었다. 습관은 습관이고 감자튀김은 맛있으니까. 마침 라지 사이즈가 다 떨어져서 미디엄 사이즈를 주문했다. 안 그래도 튀김 좀 덜 먹으려고 했는데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즐겁게 먹으면 영 칼로리니까, 나는 오늘도 원영적 사고를 흉내 내며 합리적인 인간인 양 연기한다.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