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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누가 더 바보처럼 구는지 경쟁하며 논다
뉴진스 멤버 중에 하니를 좋아하지만 더 정이 가는 건 김민지다. 내 동생과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뉴진스 메들리(?)를 듣다가 문득 민지 파트가 나오면 동생 민지가 떠오른다. 그러다가 둘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닫곤 생각을 멈춘다. 영 민지와 올드 민지는 띠동갑 이상 차이가 난다.
올드 민지와 나는 여섯 살 차이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어머, 동생하고 사이좋겠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오빠가 예뻐하잖아.” 하고 반응한다. 하지만 모든 오빠가 동생을 예뻐하는 건 아니다. 어른들 말에 따르면 동생이 갓 태어났을 때 나는 병원 유리 너머의 신생아를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얼굴이 너무 못생겼으니 옆자리 아기로 바꿔 달라고. 끝내 동생은 바뀌지 않았고, 시위의 의미로 나는 한동안 당근을 먹지 않았다.
어릴 때 우리는 꽤 재밌게 놀았다. 멍청한 짓을 서슴없이 했다. 둘 중 하나가 우유를 먹고 있으면 달려가 간지럼을 태웠다. 그러다 코로 우유가 나오면 엉덩이춤을 추며 환호했다. 엄니는 장을 볼 때마다 흰 우유를 고르는 성장기 자식들을 대견하게 여겼다. 단지 ‘코로 우유 뿜기 놀이’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저마다 유통기한이 있는 법. 어느 날 우유를 먹는 동생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옆구리를 간질이려는 찰나, 고개를 돌린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해? 재밌어?” 나는 어정쩡하게 손가락을 구부린 자세로 자리에 굳었고, 우리의 유치한 놀이도 영영 끝이 났음을 직감했다. 동생에게 사춘기가 온 거였다.
사춘기 중학생의 히스테리는 강력했다. 나는 늘 화가 나 있는 동생의 눈에 띄지 않게 자는 척했다. 동생이 질풍노도의 화신으로 흑화 할 무렵 다행히 나는 군대에 가게 됐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던데 어쩐 일인지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동생은 위문편지 말미에 “오빠 보고 싶어.”라고 적었고(얘가 미쳤나?), 나는 부대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다. ‘민지가 글씨는 못 쓰지만 참 괜찮은 아이였지.’ 인간의 기억은 이렇게 허술하다. 100일 휴가 첫날, 동생의 학교에 찾아가 하굣길을 함께 걸었다. 당시 이등병 월급이 3만 3,300원에 불과했지만, 오빠답게 떡볶이를 샀다. 못 본 사이에 동생은 어묵을 두 개씩 집어먹는 버릇이 생겼다. “어, 흠···.” 동생의 젓가락을 막으며 내가 말했다. “네가 남자친구가 생긴 걸 알고 있어. 싸이월드에 사진 엄청 올렸더라. 아빠한테는 비밀로 할게. 오빠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그러면서 편의점에서 산 콘돔을 건넸다. “피임은 꼭 해야 한다.” 동생은 질색하며 소리쳤다. “아, 뭐래! 중학생한테 할 소리냐?” 미국에선 댄스파티에 가는 딸에게 부모가 직접 콘돔을 챙겨준다던데, 아뿔싸 여긴 한국이었지.
한집에 살며 우리는 서로를 귀찮게 하는 방식으로 교류했다. 이런 식이었다. 나는 먼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다음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민지야! 민지야!! 민지야아!!!” 헐레벌떡 동생이 달려왔다. “불 좀 꺼줘.” 그러면 동생은 거의 발작 상태로 분노하다가 불을 끄고 나갔다. 또 다른 날에는 동생이 자기 방에서 소리쳤다. “오빠 이거 뭐야? 이게 뭐지? 오빠 이것 좀 봐줘!” 나는 찜찜하지만 궁금한 마음으로 동생 방으로 갔다. “오빠, 물 한 잔만 갖다줘. 보리차 플리쥬?”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발길을 돌리자 등 뒤에서 동생이 외쳤다. “10, 9, 8···.” 임무 완수의 강박이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물을 떠서 동생에게 건네고 마는 것이다.
또 어느 주말엔 클럽에 다녀와 늦잠을 자는 동생의 방문을 빼꼼 연다. 방(이었던 그 공간)은 질서를 찾을 수 없는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문득 동생을 확실히 괴롭힐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세상모르게 자는 동생의 눈을 벌리며 외쳤다. “민지야, 일어나! 눈 화장 지우고 자야지. 안 지우면 트러블 나.”, “지웠어, 지웠다고! 아이라인 반영구라고!”, “어, 미안.”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방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동생의 옷을 하나하나 개어서 옷장에 넣어주었다. “그냥 두라고. 일부러 거기 둔 거라고. 또 입을 거라고!”, “아니야, 이렇게 놔두면 옷 다 상해.”, “아, 쫌 나가!” 참다못한 동생이 일어나 내 팔뚝을 물고 난 뒤에야 소동은 멈췄다.
동생이 나를 괴롭히는 방식은 조금 더 진화했다. 그는 내가 어떤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잘 알았다. 어느 날 대학 과제로 시를 쓰고 있는 나의 방에 들어와 앉았다. “오빠, 오빠는 정확히 무슨 공부를 하는 거야?”, “너가 말하면 알아? 시 모르잖아.”, “나도 시 알아!” 그러면서 동생은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달래꽃!”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진달래꽃을 이야기한다는 건, 가요를 안다면서 ‘오빠는 풍각쟁이야’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진달래꽃 작가는 알아?”, “마야!” 동생은 마야의 ‘진달래꽃’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동생을 보고 있자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멍청한 사람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이상형은 ‘생각보다 똑똑한 사람’이 됐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각자 셋방을 얻어 독립했다.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에 살기에 1년에 한두 번, 서로의 생일에 만나서 술을 마셨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입맛도 비슷하고 주량도 비슷했다. 다만 동생은 여전히 단순하고 긍정적이었다. 잘 자고, 잘 웃고, 야망도 없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준말)’의 대명사였다. 심이 뭉툭한 2H 연필 같았다.
그런 동생의 생일에 참치집에서 실장님 코스를 먹었다. 동생은 대뱃살 두 점을 한꺼번에 집으며 말했다. “오빠, 나 고민 있어.” “고민의 뜻은 알아?” 동생은 참치에 고추냉이를 듬뿍 올리며 말했다. “결혼이 정말 하기 싫어.” 의외였다. ‘결혼은 이혼의 한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나와 달리, 동생은 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그런 동생이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아버지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겠지만, 나는 오빠니까 잠자코 동생의 말을 기다렸다. “경력 단절이 되는 게 무서워.” 헤어디자이너로 이제 막 자기 궤도에 오른 동생의 고민은 결혼과 임신을 하면 손이 굳고 고객도 떨어져 나갈 거라는 거였다. “엄마 아빠가 이혼했잖아. 그래서 나도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이렇게 진지한 동생은 난생처음이었다. 너한테도 나와 같은 고민이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동생의 코에서 우유가 나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마냥 어린애 같던 동생이 갑자기 자라버린 것 같았다. 그가 어른(시련)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 같아서 조금 쓸쓸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아무렴 생일인데, 생일에는 이렇게 궁상맞게 구는 거 아닌데, 하면서도 동생을 위로해 줄 말이 내 안에는 없었다. 궁리 끝에 나는 금지된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오물오물 앞니에 김을 붙이고 영구 흉내를 내는 거였다. 허를 찔린 동생이 코로 청하를 뿜었다. “코에 와사비 들어갔어!” 컥컥대며 우는 동생의 모습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개다리춤을 췄다. 가게 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동생을 위한 바보 춤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런 게 바보 남매 1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기 때문이다. 참치를 다 먹고 동생을 집에 데려다주며 미리 준비한 봉투를 건넸다. 동생 나이만큼의 현금이었다. “매년 생일에 서로 나이만큼 용돈을 주는 게 어때?” 술에 취한 동생이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내 나이가 더 많으므로 나로서는 이득인 장사였다. 우리는 지장을 찍고 손바닥 복사도 했다.
가끔 나는 부모가 영영 사라진 세계를 상상한다. 같이 살지도 않고 자주 연락하지도 않지만, 그들이 살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그럴 때마다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보다 오래 살 테니까, 나한테는 죽을 때까지 가족이 있는 셈이다. 가끔 혼술을 하며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부디 나보다 오래 살아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면 동생이 말한다. “오빠 뼛가루는 내가 수습할게.”, “아니야, 화장하지 말고 들판에 던져서 독수리 밥으로 줘.” 그러면 동생은 수화기 너머로 깔깔대고 웃는다. 오늘도 동생을 웃겼군, 뿌듯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는다. 둘이 합쳐 70이 넘는 나이, 우리는 여전히 세상 둘도 없는 바보처럼 논다.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