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K의 아무렇게나 살아보는 여행]

인간적으로 집밥은 집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나의 엄마는 이은자요, 아부지는 김종원이다. 너무 평범해서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 평범한 이름들이 나의 식구다. 한때 함께 식사했던 사이고, 앞으로도 가끔 함께 식사할 사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밥을 나눠 먹게 될까? 종종 그 끝을 생각한다.

아부지는 구식 자동 응답기 같다. 가끔 통화를 할 때면 늘 정해진 말만 하다가 끊기 때문이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네, 파스타 먹었어요.” “얘가 밥을 안 먹어서 어떻게 해.” “에? 밥 먹었다니까요.” “밥을 먹어야지. 밥을.” 트러플을 잔뜩 묻힌 파스타를 먹고, 열두 가지 재료로 삶은 한방 족발을 먹었다 해도 아부지는 쌀이 아니면 안 된다는 주의다. “요즘 애들은 밥을 안 먹어서 큰일이다.” 한국전쟁 피난민 같은 말만 되풀이하지만 아부지와 나는 고작 25살 차이밖에 안 난다.

아부지의 밥에 대한 집착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아부지는 동생과 나를 먹여 살리는 일에 최선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끼니를 챙기는 데 진심이어서 단 하루도 아침을 거르게 하지 않았다. 하루는 아침으로 아부지의 특급 요리, 3분 카레밥이 나왔다. 인스턴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늘 잠이 부족했던 나는 카레에 얼굴을 박은 채 기절해 버렸고,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첫 번째 목격자가 소리쳤다. “아빠! 오빠 죽었어!” 살인 사건을 기대했던 동생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살았다. 살아서 하루 종일 얼굴에 인도 뒷골목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녔다.

돌이켜 보면 아부지에게 끼니를 챙기는 일이란 일종의 속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혼 뒤 자신의 과오를 자책하며 자식들에게 희생하는 역할, 그런 빛바랜 통속이 아부지에게는 있는 것 같다. 안정과 평균을 중시하는 아부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혼 가정의 자식이라는 유니크한 상황이 좋다. 왠지 사고를 쳐도 ‘부모가 이혼했는데 어쩌라고요!’라며 까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이혼은 별일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하루에 526쌍이 결혼하고 255쌍이 이혼한다. 늘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아온 나는 결혼도 전에 이혼을 걱정한다.

카레 참사 이후, 시간은 무럭무럭 흘러 아부지와 동생과 나는 서로를 떠나 각자의 식탁을 갖게 됐다. 동생은 엄마와 결합해 엄마랑 밥을 먹고, 아부지는 새엄마와 살며 새엄마랑 밥을 먹는다. 나는 〈맛있는 녀석들〉을 보며 ‘배달의민족’을 먹는다. 매일 다채로운 메뉴를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내 집밥은 아주 훌륭하다. 내로라하는 셰프들의 음식을 소파에 누워서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인지 아부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요즘에야 ‘집밥’이라는 단어가 온기와 향수의 키워드처럼 여겨지지만, 나는 집밥을 생각하면 술안주가 먼저 떠오른다. 아삭하게 버무린 골뱅이무침과 자글자글 삼겹살 김치전골,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닭발 같은 것들. 초등학생 아들 생일상에 골뱅이를 내어준 엄마는 당신이 좋아하는 술안주에 있어선 백종원 선생 뺨치는 실력자다. 하지만 단지 그뿐, 평범한 음식엔 영 소질이 없다.

얼마 전 명절엔 엄마가 동생과 함께 식사를 하자며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다. 명절엔 한국 전통 요리를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LA갈비와 잡채를 요청했다. 엄마라는 존재는 당연히 LA갈비와 잡채쯤은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갈비는 짜면서 싱거웠고, 희끄무레한 잡채에는 목이버섯이 빠져 있었다. “나는 살면서 목이버섯이 들어간 잡채를 먹어본 적이 없어.” 엄마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빙초산 장아찌며 파프리카 된장찌개 같은 음식을 보고 있으면, 엄마에겐 자기만의 요리 철학이 있는 듯하다. 엄마는 한때 고향인 제주에서 작은 식당을 연 적이 있다. 메뉴는 제주식 고기 국수 하나였다. 메뉴가 단출했기에 사람들은 동네에 엄청난 실력자가 나타난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국수는 너무나 집밥 같았다. 집에서 먹기엔 괜찮지만 밖에서 사 먹기는 애매한 그 무언가. 주위에서 조금 더 자극적인 맛을 요구해도 엄마는 묵묵부답이었다. “요즘 사람들한테는 집밥이 필요해.” 하지만 정말 집밥이 필요한 사람들은 집 밖에 나오지 않았고, 엄마의 식당은 빛의 속도로 망했다. 두 번 다시 고기 국수를 만들지 않았으므로 엄마의 고기 국수는 전설 속의 메뉴가 됐다.

TV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만두를 복원하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할머니의 고향 시장을 돌며 단서를 찾고, 대기업 연구원들의 집요한 실험 끝에 제법 완성도 있는 레시피를 추출했다. 할머니가 없는 식탁에서 그녀의 딸과 손녀가 함께 만두를 빚는 장면은 눈물 없인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촉촉해진 눈가를 닦으며 배민으로 불고기 피자를 시켰다. 감동은 감동이고 맛있는 건 불고기 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할머니의 맛이 있다. 살아생전 할머니는 새우젓을 잔뜩 넣은 생선찌개를 즐겨 끓였다. 짠맛을 느끼지 못하는 할머니의 미뢰 덕에 우리의 식사 시간은 거의 도파민 파티였다. 음식이 너무 짜서 얼굴이 마비될 지경이었는데, 그 맛에 중독돼 나중에는 삼다수에서도 새우젓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할머니의 찌개, 아부지의 카레, 엄마의 잡채를 떠올리면 식구란 인내심이 좋은 사이를 말하는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부족한 음식도 참아줄 수 있는 사이, 그 경험을 추억으로 곱씹을 수 있는 사이, 음식은 거들 뿐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귀해진 사이. 부모가 이연복 선생이었다면 조금 더 훌륭한 집밥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부모를 바꾸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부모 역시 미슐랭 레스토랑 하나 못 데려가는 자식이 부끄러울지 모른다. 그러니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가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종종 부모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을지 헤아려본다. 1년에 한두 번, 엄마와 아부지가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앞으로 30번 남짓한 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쓸 때마다 차감되는 발 마사지 회원권처럼 한 끼 한 끼 소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명절엔 엄마한테 고기 국수를 주문해 볼 생각이다. 최대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국물까지 쭉쭉 다 마신 다음 기뻐하는 엄마를 향해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여전히 전설적인 맛이로군. 집에서만 즐기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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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