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K의 아무렇게나 살아보는 여행]

나의 작업실 관찰기

머문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궁금해서 둘러보는 나의 동네, 나의 공간 이야기.

얼마 전에 홍대로 네 번째 작업실(집)을 구했다. 따로 집을 구해 사는 동생을 불러 저녁을 먹었다. 포장한 광어 회를 집으며 동생이 말했다. “근데 오빤 왜 집이 항상 똑같아? 가려놓고 봐도 딱 오빠 집이라는 걸 알겠어.” 지난 10년간 연남에서 망원으로, 망원에서 공덕으로, 공덕에서 홍대로 이사했다. 집의 크기도 가구도 달라졌지만, 동생 눈에는 네 집이 모두 똑같아 보인단다. 나도 모르는 새 취향이랄까, 고집 같은 게 생긴 걸까. “근데 오빠도 참 이 동네를 안 벗어난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네 곳 모두 서울 서쪽에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각각 분위기가 다르다. 

먼저 연남은 하늘이 잘 보이는 동네다. 노인정과 작은 심야 식당이 이웃하고, 걷기 좋은 공원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연남은 변했다. 동네 주민보다 동네 바깥의 사람이 더 많은 동네가 됐다. 프랜차이즈 상점이 들어섰고, 내가 살던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은 진즉에 허물어져 빌딩이 들어섰다. 

두 번째로 망원은 골목이 많은 동네다. 골목 사이사이 식물 상점과 반려동물 병원과 자전거 수리점이 있다. 시장에는 나물 반찬을 사는 주민과 꽈배기를 포장하는 연인들이 혼잡하게 엉키곤 했지만, 그들에겐 저마다 규칙이 있어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저물녘 한강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안심이 되는 곳이었다.

공덕은 프로페셔널한 동네다. 아침이면 우르르 회사원이 모이고, 저녁이면 우수수 흩어졌다. 그들은 점심으로 백반을 먹고 저녁에는 족발을 먹다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규칙적으로 끼니를 챙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덕오거리의 거대한 빌딩 산맥을 보고 있으면 미래 세계에 불시착한 원시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사는 홍대는 편리한 동네다. 집 앞에 이마트24와 올리브영이 있고, 소이연남(줄 서는 맛집)이 배달된다. 단점이라면 옆집에 건물주 할머니가 산다는 것이다. “택배 박스는 테이프를 떼어서 버리세요, 늦은 시간에는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 돌리지 마세요, 자전거는 주차장 구석에 세워두세요.” 그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종종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어서 친절하게(비굴하게) 답장한다. ‘네, 선생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푸하하하프렌즈의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생각한 대로 그려지고, 그려진 대로 지어지고, 지어진 대로 살아간다.” 어느 분노 많은 건축가의 좌우명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주변 환경에 구애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는 듯 보여도 실은 가진 만큼 먹고 입은 만큼 행동하고 받은 만큼 일한다는 의미로 읽었다. 조신하던 복학생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껄렁해지고, 내가 업무 시간에 월급 루팡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주어진 공간만큼 살아간다는 건, 다시 말해 공간을 보면 그 안의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대답을 찾기 위해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 나의 작업실(집)을 관찰했다. 

우선 나는 커다란 책상과 커다란 침대를 가졌다. 방구석 심리학자의 ‘뇌피셜’로 해석하자면 커다란 책상은 성공 지향성을, 커다란 침대는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나는 커다란 가구를 가지면 결핍이 채워진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책상에 머무는 시간보다 소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아 이번 생은 글러 먹었다. 침대에 관해선 딱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넓은 침대를 가진 뒤로 더 공허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단단하고 커다란 책장도 두 개나 가졌다.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읽지도 않는 책을 그득그득 채워놓았다. 소설, 시, 에세이, 인문학, 매거진, 사진집, 만화책이 꽂혀 있고, 오타쿠 시절 심취했던 판타지 롤플레잉 게임 세트도 버리지 못했다. 마음속 어딘가에 문학청년의 오기 같은 게 남아 있어서 자기계발서는 들이지 않았다. 얼마 전 선물로 받은 ‘마흔에 꼭 읽어야 한다’는 철학자 시리즈는 받자마자 당근마켓에 올려버렸다. 선반 위에는 선물로 받은 바이닐과 캔버스 그림, 우주인 모형이 있다. 

사실 선물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생일 시즌이 되면 여느 겨울생이 그렇듯 목도리나 핸드크림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목도리를 하지 않는다. 올해 생일에는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숨겨버렸다. 그랬더니 부담스러운 선물과 문자가 더는 오지 않았다. ‘이렇게 잠잠한 생일이라니, 꽤 편안한걸?’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조용해서 서운했다. 한편 내 작업실에서 가장 큰 공간은 옷방이다. 크기에 비해 다양성은 부족하다. 티셔츠, 바지, 외투, 속옷, 양말, 한 벌 있는 정장까지 모두 검은색이다. 저승사자의 관 같다. 신발장에는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닥터마틴이 있다. 신발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베스트 아이템만 신는 경향이 있다. 하루는 직장 동료가 “건태 씨는 왜 맨날 똑같은 신발만 신어요?”라고 하기에 마음먹고 다른 신발을 신었는데, 출근길 쇼윈도에 비친 모습이 어색해서 집으로 돌아가 평소대로 갈아 신었다. 지각을 했고 다시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나의 작업실에서 가장 애착이 없는 공간은 주방이다. 냉장고 속에는 직접 끓인 보리차뿐이다.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직접 요리를 하던 때도 있었는데,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 걸 본 다음부터 요리를 끊었다. 지금 나는 ‘배민’의 노예다. 반복적으로 구입하는 먹거리가 정해져 있다. 임팩타민, 락토비프, 밀크시슬, 프로틴, 무지방 우유, 오곡푸레이크, 쟈뎅 아메리카노, 티즐 자몽블랙티, 탄산수, 씻어나온 콩나물, 감자면, 사천 짜파게티, 하리보 해피그레이프. 배달은 서브웨이, 피자스피릿, 미미족발, 소이연남, 달짜국수, 순살만공격, 현선이네떡볶이, 한사바리해장국. 소주는 참이슬, 맥주는 홉하우스13 위스키는 아드벡. 그중 가장 자주 먹는 원투는 임팩타민과 참이슬이다. 열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몸이다. 

작업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저물녘의 책상이다. 책상을 둔 방향이 서향이라 저녁 무렵이면 제법 아늑한 분위기가 된다. 그 느낌이 좋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죠지와 쏠의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린다. 책상 위에 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보고 시를 읽는다. 온갖 청승을 다 떨다 보면 순식간에 몽글몽글한 마음이 되면서 하품이 터진다. 그런 다음에는 하품 때문에 살짝 고인 눈물이 보이도록 셀카를 찍는다. 그렇게 모은 자기 연민의 셀카가 사진첩에 한가득이다.

종합해 보자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 큰 책상과 침대, 쓸데없이 많은 책에 비해 부실한 냉장고를 가진 사람. 성공한 기업가처럼 한 가지 패션만 고집하지만 그들의 성공기는 읽지 않는 사람. 영양제와 술을 번갈아 챙겨 먹으며 몸을 극단적으로 단련하는 사람. 정리는 좋아하지만 청소는 싫어하는 사람. 저녁이면 울적한 마음으로 시를 쓰고 다음 날 찢어버리는 사람. 취향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꽤나 구체적인 고집을 가진 사람. 

“오빠 잠깐.” 동생이 말을 끊는다. “집 소개를 하다가 왜 갑자기 자의식 과잉이 된 거야?” 청하 잔을 비우며 동생이 말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결론이라···. “그러니까 집은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네 방이 더러운 이유는 곧 네가 더럽기 때···.” 갑자기 동생이 마늘을 잔뜩 넣은 쌈을 내 입에 쑤셔 넣는다. 나는 우걱우걱 입안 가득한 마늘을 씹으며 동생의 잔을 채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좀더 맑은 얼굴이 되길 바라면서, 천천히 술잔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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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