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K의 아무렇게나 살아보는 여행]

뒷모습 도둑

물욕 없는 내가 유일하게 애지중지하는 것은 뒷모습이다. 낯선 이의 뒷모습 사진을 보며 여기에 없는 누군가를 한없이 그리워한다.

나는 원래 까맣다. 선천적으로 채도가 낮은 얼굴이다. 게다가 한 달간 발리의 태양을 듬뿍 받았더니 한층 정열적인 페로몬 인간이 됐다. “형은 얼굴만 보면 30년 차 서퍼 같아요.” 캠프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생이 말했다. ʻ겉모습만 화려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속으로 사과했다. 어쩐지 분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징크(서핑용 선크림)를 사러 비치워크에 갔다. 

비치워크는 쿠타Kuta 지역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다. 제복 입은 사내가 입구를 지키고, 어느 매장에나 에어컨이 빵빵하게 터진다. 쾌적한 환경 덕에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남는 게 시간뿐인 나는 매장 앞 벤치에 앉아 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람 구경을 했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한국인으로 보이는 커플을 발견했다.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무언가 피하고 싶은 심리가 생기는 탓에, 나는 가사도 모르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한국인 커플은 내 앞을 지나가며 다 들리는 소리로 수군거렸다. 

“저 쪼리, 오빠랑 똑같은 거다.”,
“어, 그러네. 발리 사람들도 무신사 하나 봐.” 

그러면서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나를 ʻ도촬’하기 시작했다. 애써 모른 척했지만 연사 모드의 촤르륵 소리가 심히 거슬렸다. 커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조금 알쏭달쏭한 기분이 됐다. 원래 까만 얼굴이 조금 더 탔기로서니 발리 사람으로 착각하는 건 심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며 쇼윈도에 얼굴을 비춰봤는데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사실 거슬리는 건 따로 있었다. ʻ어플 없는 셀카는 죽어도 안 돼!’라는 나름의 신념을 가진 나로서는, 내 비루한 얼굴이 SNS에 태그 되는 건 견딜 수 없었다. ʻ#발리, #원주민, #무신사’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연사 모드 남자와 내가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신발 취향을 공유하는 것은 차치하고, 타인의 얼굴을 훔친다는 점에서 우리는 쌍둥이나 다름없었다.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지며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ʻ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되뇌며 낯선 이들의 얼굴을 수집했다. 미스터리한 유적도, 신바람 나는 액티비티도, 세련된 브랜드를 취재할 때도 사진 어딘가에 사람을 담아야 마음이 편했다. 평범한 개인의 드라마를 전달하는 것이 곧 ʻ에디터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협소한 직업관을 가진 사람의 자기합리화였고, 막상 그 대상이 되니 썩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전에도 사진 때문에 문제가 생긴 일이 종종 있었다.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시장으로 나갔을 때였다.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해 허락 없이 카메라를 들이민 게 문제였다. “아니, 시방 뭐 하는 짓이여? 어디서 나왔어.” 상인 아저씨가 버럭 화를 내며 카메라를 낚아챘다. 아저씨 팔뚝의 문신을 발견한 나는 몹시 당황했고, 순간적으로 전두엽에 문제가 생겨서 아무 말이나 해버렸다. “아… 제가 맛집 블로그를… 아니, 인스타… 아니, 카카오스토리… 아, 죄송합니다.” 기사를 위해 사용할 거라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일을 키운 거였다. 결국 취재는 망했고, 꾸역꾸역 완성한 기사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무신사 도촬 사건 이후로 왠지 모를 경각심이 생겨 한동안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카메라가 없으니 기록하고 싶은 장면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골목길에서 고양이 백 마리가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동네 꼬마들이 맨발로 건물을 뛰어넘고, 발리 해변에 UFO가 나타났다. 세상 모든 순간이 기록해야 할 작품으로 보였다. 결국 다시 카메라를 챙겼다. 다만 그날의 언짢았던 기분을 기억하며 한 가지 규칙을 세웠다. 사진을 찍을 때 가능한 한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할 것. 혹시나 얼굴이 나오면 사진을 찍은 후 허락을 구할 것. 허락받지 못한 사진은 외부에 공개하지 말 것. 그건 ʻ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누구에게도 행하지 않겠다.’라는 최소한의 윤리였다.

그 후로 나는 타인의 뒷모습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등으로만 인사하는 사이였기에, 웃는지, 우는지, 혹은 감추고 싶은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 애써 묻지 않았다. 가려진 반쪽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그게 이 수집의 숨겨진 규칙이었다. 그런 걸 모아서 무얼 하느냐고? 그저 사진을 찍고 폴더를 만들어 넣어둔다. 아주 가끔 생각날 때 열어본다. 그게 전부다. 정말이지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하찮은 일들이 의외의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누군가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 하지만 만날 수는 없을 때(이를테면 헤어진 애인, 집 나간 엄마, 돌아가신 할머니), 사진 속 타인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 없는 이를 떠올리는 거다. 그러고는 그가 세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다고 마음대로 상상한다. 화룡점정으로 궁상맞은 눈물까지 한 방울 흘리고 나면 두둥실, 마음 한쪽이 환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사진과 눈물, 그리움을 극복하는 데 이것만큼 좋은 재료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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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