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K의 가소로운 일상 기행]

자기만의 책상을 가지세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커다란 책상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책상이 사라졌다. 만우절에 일어난 일이다.” 대학 시절에 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사무실에서 자신의 책상을 도둑맞은 회사원의 끔찍한 하루를 그린 걸작이다. 소설의 결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소설을 가르쳐 주었던 편혜영 선생님의 첨삭이 생각난다. “책상은 그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해. 회사원의 하루가 엉망이 되어버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거지.” 의도하고 쓴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해석이 마음에 들어서 그 말을 오래 담아두었다.

에디터 일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이 대부분은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은 가죽 냄새가 잔뜩 배어 있는 공방이기도 했고, 커다란 설치물을 놓아둔 폐공장이기도 했으며,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비밀의 방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작업실을 가진 노인 한 명이 떠오른다. 그는 젊은 나이에 출판사를 차린 후 50년 동안 ‘돈이 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책’을 펴내는 사람이었다. 여든이 넘는 나이임에도 반듯하게 다린 와이셔츠가 근사하게 잘 어울렸는데, 어쩌면 그건 체형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가꿔온 그의 몸가짐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노인의 작업실에는 고전으로 빼곡한 책장과 아주 커다란 책상이 하나 있었다.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공간인 듯했다. 탭댄스를 춰도 될 만큼 넓은 책상 위에는 오래된 전등과 만년필 한 자루, 책 몇 권이 전부였다. 나는 어쩐지 압도적으로 큰 책상과 왜소한 노인의 대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노인과 마주 앉아 네 시간여 동안 대화를 나눴고, 주의가 흐트러질 때마다 책상 밑으로 손을 내려 두껍고 단단한 나무의 질감을 더듬었다. 80살이 되면 나도 이런 책상을 가질 수 있을까? 노인의 성취를 귀담아들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책상을 갖게 되면 내 삶도 저절로 근사해지지 않을까?

그날 이후 커다란 책상만 있으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마침내 노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자기만의 책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사를 하며 집에 거실이 생겼기 때문이었고, 이직을 하며 월급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오늘의집’에 나오는 MZ세대의 집을 훔쳐보며 너무 저렴하지도, 또 너무 고상하지도 않은 6인용 테이블을 골랐다. 그와 어울리는 책장과 조명도 구입했다.

“너는 왜 거실에 소파랑 텔레비전이 없어? 혼자 사는 남자한테는 그게 국룰 아니야?”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물었다. 나는 책상 위의 노트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책상이 내 작업실이야.” 그러자 친구는 테이블 한쪽에 ‘일부러’ 올려둔 몽테뉴의 《수상록》을 들춰보며 말했다. “역시 에디터는 다르구먼!”

원하던 책상을 갖게 된 뒤 3년이 지났다. 그날의 부푼 마음처럼 내 삶은 정말 멋지게 변했을까? 책상이 없던 3년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책상은 글을 읽고 쓰는 용도보다는 오래된 시트콤을 보면서 라면을 먹거나 친구들을 불러 모아 술을 마시는 데 더 많이 사용됐다. 책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는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 대신 《미스터 초밥왕》 완전판이 꽂혀 있다. 좋은 책상을 가지면 저절로 괜찮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연말에 세 번째 이사를 했다. 이전 집주인이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아서였다. 겨울이라 매물이 없어 여러 곳을 헤매다 결국 공덕동 어느 언덕배기에 집을 구했다. 지하철역에서 족히 30분은 걸어야 하고, 언덕 높은 곳에 있어 창문을 부술 듯 바람이 불어오며, 집주인이 바로 아래층에 사는 악조건에 놓인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건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책상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거실이 꼭 있어야 하나요? 이 보증금에는 힘들 텐데.” 처음 집을 구할 때 부동산 중개인은 ‘고작 책상 하나 때문에’ 집을 결정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집에 맞는 가구를 고르는 거지, 가구에 맞춰 집을 구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도 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만우절에 책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끝내 지키고 싶은 자기 정체성이랄까. 아무튼 그런 게 있었다.

주변에 멋진 책상을 가진 사람을 몇 알고 있다. 한 친구는 직접 만든 나무 테이블 위에 애인이 좋아하는 시구를 적어 두곤 한다. 그가 적은 문장만 모아도 웬만한 시집 한 편은 나올 정도다. 또 다른 친구는 뜨거운 차를 테이블에 조금씩 흘려가며 마시는 습관이 있다. 차가 나무에 스며들며 더욱 깊은 무늬를 갖게 될 거라나 뭐라나. 그런 걸 볼 때마다 그건 단순히 책상을 아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침 책상을 놓아둔 방향이 서향이라 저녁 무렵이 되면 제법 아늑한 분위기가 된다. 그 느낌이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제법 몽글몽글한 마음이 되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팔베개를 만들어 끌어안듯 책상에 엎드렸다. 당장은 이렇게 기댈 수 있는 용도로만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밤이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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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