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K의 가소로운 일상 기행]

어떤 편지는 계속 읽다 보면 현실이 된다

오래된 상자를 뒤지다가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분명 귀찮음이 묻어나는 편지인데 이상하게도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정리의 왕이다. 책장과 옷장, 신발장과 냉장고 속 모든 사물의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내 책장 속 한수희 작가의 에세이를 나이키 창업자의 자서전 옆에 꽂아두고 간다면, 그와는 오래 볼 수 없겠다 생각하는 타입이다.

정리벽의 시작은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오른다. 초딩 김건태는 등교를 한 직후, 그러니까 1교시부터 똥이 너무 마려웠다. 하지만 ‘학교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면 평생 놀림감이 된다’라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에 속수무책 참을 수밖에 없었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보낸 후 하굣길, 처음 빙판을 걷는 새끼 펭귄처럼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 끝에 달려간 곳은 화장실이 아닌 옷방이었다. 무엇에 홀렸는지 김건태는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 옷걸이에 걸고, 가방을 풀어 교과서를 쌓아두기 시작했다. 당장 죽을 것 같아도 눈앞의 정리가 더 중요했던 거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위기를 탈출했을 때 그는 가지런히 걸려 있는 옷가지들을 보며 세상 가장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강박을 가진 내게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편지와 사진이다. 어제의 내가 부러울 것 같아 함부로 열어보지도 못하고, 내일의 내가 후회할 것 같아 무작정 버리지도 못하는 기묘한 상자. 그 금단의 상자를 정리하려면 확실한 계기가 필요했다.

마침 이사를 코앞에 두고 묵은 짐을 정리할 기회가 왔다. 큰맘 먹고 그동안 받은 편지들을 바닥에 쏟았다. 그러고는 종량제 봉투에 한꺼번에 버리려는 순간, 내 손가락이 제멋대로 편지들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J로 시작해서 P로 마무리되는 1인.) 결국 그간에 받은 편지들을 모두 정독했고, 조금 울었고, 그때 그 시절의 사진까지 몽땅 찾아보며 추억 속에 빠져버렸다. 급기야는 콧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이 가여워 거울에 비춰 보기도 했다. 이사하다 말고 청승 떠는 게 완전 구리면서도 웃겼다. 그나마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네, 생각하면서 편지는 고스란히 상자 속에 담아두었다.

버리지 못한 수많은 편지 중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이전 직장 편집장에게 받은 것인데 사실 편지라기보다는 모든 직원에게 나눠주는 연하장이었다. 그는 직접 찍은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그 뒤에 간략한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입사 2년 차에 받은 새해 첫 편지는 이랬다.

“나름 힘들게 한 식구가 되었네. 난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서 훌륭한 편집장이 될진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하나쯤은 자유로운 편집장과 잡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물론 그 자유 역시 자유가 아닐지도 몰라ㅎ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고, 내가 뭘 보고 좋았는지, 언제 행복했고, 어떤 공간에서 웃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우리 회사 사람들도 그랬음 좋겠어.”

두 번의 입사 면접에서 탈락하고 세 번째에 합류하게 된 회사였다. 전임자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힘들어하던 내게 편집장은 조금 더 자유로워져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과물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일하자는 세련된 업무 지침이었다. “누군가를 대체하기 위해서 건태 씨를 뽑은 게 아니야. 그러니까 건태 씨만의 목소리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어.” 

그의 말을 적극적으로 오해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그날 이후로 누구보다 자유롭게 일했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자유롭게 취재하고 자유롭게 글을 썼다. 자유롭게 넘어지고 자유롭게 춤췄다. 자유롭게 지각하고 땡땡이도 쳤지만 그건 아주 가끔이었다. 자유로운 선배 밑에서 자유로운 동료로 자라났다. 이전 직장과 비교해 더 느슨한 환경에서 일했음에도 결과는 더 나을 때가 많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미술관을 소개하기 위해 외국에 나갔는데 연휴에 걸려 일정 안에 취재가 불가능했을 때, 눈썰매를 타기 위해 협찬까지 받았는데 취재 당일 눈이 다 녹았을 때, 편집장은 무리한 취재를 요구하거나 대안을 찾으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그 안에서 좋았던 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말하는 쪽이었다.

이미 충분히 멋지고 괜찮은 것들을 뻔지르르 다시 포장하는 것보다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에 독자는 반응했다. 때로는 그의 말랑말랑한 태도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의심할 때도 있었다. 기우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그곳은 이전보다 더 느리고 단단하게, 반짝이며 나아갔다.

“난 새해 엽서도 이렇게 늦게 쓰지만 내가 마음 내킬 때 쓰니 좋다. 어라운드랑 같이 건태 씨도 자라나면 좋겠어. 괜히 손으로 썼나 봐. 팔 아파. 행복한 2015년 보내. ― 이경.”

최근에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많았다. 혼자 하는 일이라면 메시 뺨치게 잘할 자신이 있지만 유독 팀플레이에 약한 성격 탓이었다.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더 나아가 한 팀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구성원들과의 관계 설정에 특히 애를 먹었다. 능력은 있지만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팀장, 뭐든 좋은 게 좋지만 우유부단한 팀장, 권위로 무력함을 감추려는 팀장, 수많은 유형의 선배 중에 온전한 롤 모델을 찾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사실 팀장은 숨만 쉬어도 욕먹는 존재다. 동료들과 함께 술자리 안주로 씹던 그 역할을 맡으려니 마음이 복잡했다.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면서도 후배들에게 사랑받는 동료로 남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건 욕심일까?

관계에 치이고 일에 지칠 때마다 편집장의 담백한 마무리를 떠올린다. ‘새해 엽서를 2월에 주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팔이 아프다고 하는 거 보니까 내 엽서를 마지막에 썼나 보네?’ 하고 콧방귀를 뀌다가도 문득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괜한 폼을 잡으며 으스대는 팀장이 아니라 동네에 하나쯤 있는 ‘만만하지만 나름 괜찮은 바보 형’ 같은 동료가 되면 어떨까 하고.

언젠가 어라운드 식구들과 함께 제주에 놀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비가 억수로 오던 날 카페 계단에서 촐랑거리다 우당탕 미끄러졌다. 모두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계단이 부서진 건 아닌지 걱정된 카페 주인까지 달려 나올 정도였다. 무릎이 꺾이고 등이 쓸리고 무엇보다 미친 듯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엎어진 상태 그대로 미리 준비한 듯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터질 듯이 웃기 시작했다. 손가락질하며 ‘관종’이라고 놀려댔다. “응? 뭐가? 여기 책 읽기 좋아서 잠깐 앉아 있는 건데?” 비가 내려 책이 다 젖고 돌계단에 까진 등이 쓰라리기 시작해도 개그를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상처는 모두 씻은 듯 사라졌지만 그날 함께 웃었던 동료들의 행복한 얼굴만큼은 잊지 못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일, 자유롭게 일하고 자유롭게 춤추기, 어떤 공간에서 웃었는지 기억하기. 의식한 적 없지만 어느새 편지의 문장 대로 살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삶의 지침이 되는 작은 말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그는 그 편지를 기억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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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