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방, 아빠의 카페

윈드스톤 이언정, 유준영 가족

엄마의 책방, 아빠의 카페
이언정, 유준영 가족
윈드스톤 운영

제주도 애월읍 광령리의 카페 겸 책방 ‘윈드스톤’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토요일인데도 학교 운동장에는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빠 유준영 씨가 웃으며 맞아준다. 자리에 앉아 부드러운 맛의 따뜻한 아몬드라떼를 거의 다 마셨을 때 즈음 카페 문이 열리고 엄마 이언정 씨와 시우, 나우 남매가 들어섰다. 책방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언정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준영 씨는 손님들께 내어줄 커피를 내리느라 분주했고, 수줍어하던 시우는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가 놀다 왔다. 나우는 엄마 옆에 앉아 인형 놀이를 하다 단골손님 손을 잡고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사탕을 사와 나눠주었다. 한 가족의 주말 오전, 나는 그들 옆, 자연스러운 시간 속에 함께 앉아있었다.

원래 제주도에 사셨어요?

아니요, 원래는 서울 효자동에 살았어요. 거기에서 아들 시우를 낳고 키웠지요. 제주에는 2015년 1월에 내려왔으니까 벌써 3년이 넘었네요. 그때 딸 나우가 배 속에 있었어요. 제주로 이사 오고 한 달 후에 나우가 태어났어요. 나우는 고향이 제주도예요.

시우, 나우 남매 이름이 예뻐요. 

시우는 작명소에서 지은 흔한 이름이에요. 첫 아이라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유명한 작명소를 찾아가서 비싸게 지은 이름이죠(웃음). 나우는 남편이 지은 이름이에요. 저희가 직접 짓고 싶어 고민이 길어지는 바람에 나우는 태어나고 한 달 넘게 이름 없이 지냈어요.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에 내려오시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요.

남편이랑 저 둘 다 10년 이상 회사 생활을 했어요. 특히 저는 한 회사를 이직 없이 12년을 넘게 다녔어요. 시우가 태어나고 1년 반 동안 육아 휴직을 한 후 복직하면서 어쩔 수 없이 평일에는 시우를 시댁에 맡겼어요. 둘 다 회사를 다니고, 또 야근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육아가 쉽지 않았거든요. 주말에만 세 가족이 함께 지냈는데, 시우가 두세 살 때부터 할머니 댁에 가기 싫어하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어르고 달래며 보냈죠. 반년 정도 그렇게 지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둘 다 회사를 그만뒀어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우리가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웃음). 

저는 어린이 책 편집 디자인 일을 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도 프리랜서로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요. 남편은 제주도에서 여행 관련 일을 시작한 친구를 도와 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2주에 한 번 정도 제주에 내려가 일하는 동안 저는 시우랑 둘이 계속 서울에서 지냈어요. 그러다 1~2년 제주에서 살아보자 하고 다 같이 내려오게 된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큰 각오를 하고 제주에 온 건 아니었어요. 나우가 태어나면 육아 때문에 프리랜서 일도 한동안은 하기 어려울 테니, 그 시간 동안 제주에서 네 가족이 함께 지내자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죠.

처음부터 카페와 서점을 할 생각은 아니었네요?

네, 제주도에서 오래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윈드스톤’은 아주 우연히 시작됐어요. 남편이 커피에 관심이 많았어요. 10년 넘게 집에서 직접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먹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거든요. 언젠가 카페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꿈을 미루고 다른 일을 하며 살았죠. 그러다가 이 공간을 발견한 거예요. 지금 저희가 앉아있는 책방 자리는 원래 구멍가게였는데, 학생 수가 줄고 아이들이 구멍가게에서 준비물을 사는 일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은 지 한참 지난 상태였어요. 카페로 쓰이는 곳은 살림집이었고요.

공간이 먼저였군요! 

그때 시우가 이 옆에 있는 광령초등학교 부속 유치원을 다녔어요. 매일 아침 시우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같은 길을 오고 가다가 어느 날 불쑥 부동산에 들어갔어요. 집을 이사할까 고민하던 참이었거든요. 나우를 등에 업고 부동산에 들어갔는데, 분명 집을 구하려고 들어간 거였는데, 음, “이 근처에 상가 같은 거 나온 거 없나요?”라고 제가 묻고 있더라고요. 그때 부동산 사장님이 “어제 학교 옆에 구멍가게가 매물로 나왔는데 관심 있나?”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 순간 이건 내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어요. “지금인 거 같아.” 바로 지금이 우리가 카페를 할 때라는 느낌이 들었죠. 즉시 계약하고 공사를 시작했어요.

커피가 정말 맛있었어요.

남편은 카페가 아닌 ‘커피집’을 하고 싶다고 항상 얘기해요. 그래서 메뉴에 커피가 아닌 건 두지 않아요. 뒷마당이 있어서 아이가 있는 가족 손님이 많이 오거든요. 아이들이 마당에서 편하게 뛰어놀 수 있기도 하고, 또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올 경우 울거나 떼를 쓰면 바로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달래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주스나 빙수 같은 메뉴를 찾는 손님들이 꽤 많은데, 남편은 커피에 집중하고 싶어 해요. 저희 카페에서는 커피 메뉴만 다뤄요.

책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처음에는 카페만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준비를 하다 보니 ‘놀면 뭐하나, 뭐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방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다독가도 있고, 책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서울에서 10년 넘게 책 만드는 일을 해오면서 저한테 책은 그냥 삶의 한 부분이었어요. 그때 제주도 북쪽 칠성통에 라이킷, 제주 남쪽 위미리에 라바북스, 그리고 동쪽 종달리에 소심한책방이 있었어요. 지금처럼 제주에 책방이 많지 않았고, 특히 서쪽에는 책방이 없었죠. 내 작업실 겸 책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역을 나누게 된 거예요. 언젠가 이곳에서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주로 어떤 책을 가져다 두나요? 

제주의 다른 서점들에서 많이 다루는 독립출판물은 거의 없어요. 제주도 서점에서 잘 팔지 않는 책을 가져다 두려고 해요. 그래서 매거진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고요. 그리고 나머지는 순전히 제 취향이에요. 어린이 책을 만들던 이력을 살려 동화책도 많이 가져다 두고, 에세이도 있고요.

사실 요즘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시대잖아요.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우리가 평생 학교에 다닐 수는 없어요. 매일 여행만 하며 살 수도 없잖아요. 책은 평생 배울 수 있는 학교가 되어줄 수 있어요. 그리고 책을 통해 당장 가볼 수 없는 곳을 여행할 수도 있지요. 또 책을 읽다 보면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아름다운 글귀에 감동 받을 수도 있어요. 이런 책을 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제가 어릴 때 엄마가 이런 공간을 운영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시우와 나우도 책이 있는 이 공간을 좋아하나요?

책방을 하면 아이들이 늘 책 옆에서 지내니까 책을 많이 읽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아요. 시우는 축구와 수영을 좋아하고, 나우는 인형을 좋아해요. (시우는 요즘 외계인에 관심이 아주 많다고 했는데,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외계인 의사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엄마의 책방보다는 창문 밖의 운동장이나 마당을 더 좋아해요. 시우는 학교 끝나면 카페로 와서 가방을 아빠에게 맡기고 다시 학교로 가서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노는 날이 많아요. 운동장에 수백 년 된 큰 나무들이 있는데, 나무도 타고 축구도 하고요. 서울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학교 운동장에 항상 아이들이 있어요.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다가 책방으로 와서 아빠랑 같이 퇴근하는 날이 많죠. 정말 많이 놀아서 지쳤거나 친구들이 다 집으로 가면 들어와 책을 보기도 하지만요(웃음). 아무튼 이 기억들이 쌓이면 언젠가 나중에 끄집어내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우도 그럴 거고요. 

언정 씨가 그랬던 것처럼 시우와 나우에게도 책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 될 것 같아요. 엄마가 책방을 시작하고 나서 아이들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 시우는 여섯 살, 나우는 한 살이었어요. 아직 어려서 책방 운영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 지 느끼기는 어려워요. 다만, 우리 아이들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 위주로 서가를 채울 때 행복해요. 시우나 나우가 보고 싶어 하는 책들을 구해줄 때 뿌듯하고요. 이런 제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거라 생각해요.

 

조금 뻔한 질문이지만, 책 읽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책을 통해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지요. 또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볼 수도 있고요. 그런 부분에서 상상력이 발달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돼요. 그리고 책을 읽으려면 일정 시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독서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데에 좋은 훈련이 되기도 해요.

책방 엄마로서 시우와 나우의 독서 흥미를 이끌기 위한 비법이나 노하우가 있을까요?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사실 저도 잘하고 있지는 못하지만요. 부모도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책 봐라, 공부해라.’ 소리를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가족 모두 함께 책 읽는 시간을 매일 갖는 것이 중요해요. 독서도 습관이니까요.

일터와 집이 멀지 않아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요, 시우네 가족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집과 책방이 걸어서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요. 남편이 아침에 먼저 카페로 와서 오픈을 해요. 저는 시우와 나우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책방으로 출근하죠. 저희는 일터와 생활 공간을 최대한 분리하려고 해요. 그래서 카페에 아이들이 오래 머물지 않게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나우가 네 시, 시우가 다섯 시 정도에 수업을 마치면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요.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토요일엔 저는 출근하지 않고 남편이 카페와 책방을 함께 운영해요. 일요일은 다 같이 쉬는 날이고요.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손님이 뜸한 사이 유준영 씨가 옆에 와서 앉았다.) 항상 여섯시가 되면 정확하게 문을 닫아요. 걸어서 오분 거리 집으로 가면 저녁을 먹어도 일곱시가 채 되지 않아요. 저녁 시간이 길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도 그렇게 피곤한 걸 잘 모르겠어요.

두 분 모두 지금 생활에 만족하시나요?

네, 좋아요. 계속 제주에서 살게 될 것 같아요. 우리 부부가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긴데도 다툼도 거의 없고요. 그 점을 동네 어르신들이 신기하게 보시기도 하죠.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가족들이 있어서 서로 의지하고 있어요. 대부분 제주도로 이주해 사는 가족들인데, 그 아빠들끼리 모여서 시간을 자주 보내요. 그러니 술 한잔할 친구들도 있고, 부족할 게 없죠. 제주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시우는 제주도 어때요? 서울에서 살던 거 기억나요? 

시우 저는 워터파크에 가고 싶은데, 제주에는 없어요. 그거 말고는 좋아요.

아, 저도 워터파크 가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주도에는 놀이동산 같은 게 없으니까요. 그런 걸 좀 아쉬워해요. 시우보다 더 커서 제주에 온 아이들은 서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큰 편인데요, 시우는 어릴 때 와서 서울 살 때의 기억이 많진 않아요. 아, 워터파크 대신 여름이 되면 서핑을 해보려고 해요. 조금만 나가면 바다니까요.

마당 뒤쪽 창고를 활용해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기획하시는 것 같던데요.

네, 저 창고는 사실 우리 가게에 속한 건물은 아니고, 뒷집 창고예요. 경운기를 보관하던 장소인데 저희 쓰라고 빌려주셨어요. 담을 허물고 우리 마당이랑 연결시켰어요. 거기서 ‘원 데이 스쿨’ 같은 것도 하고 사진이나 그림 전시도 해요. 꼭 뭘 하지 않더라도 친구들이랑 모여서 술도 마시고, 탁구도 치고(웃음). 책상을 사려다가 대신 탁구대를 놓았거든요. 서울에서 어린이 미술 워크숍을 운영하는 친구가 제주도에 여행을 왔을 때, 제주에서도 워크숍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해서 수업을 열면서 처음 창고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날이 따뜻할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플로리스트 친구가 플라워마켓을 열기도 했고요. 사진이나 그림 전시를 하기도 해요. 올해는 공연을 한번 해보려고요. 시골 마을에서 보기 어려운 단비 같은 좋은 공연을 열어보고 싶어서 작년부터 조금씩 계획해보고 있어요.

책방 엄마에게 책 추천을 받아보고 싶어요. 책을 추천하는 일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다면요?

얼마 전에 《심플하게 산다》를 읽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어요. 항상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 살아온 삶을 반성해보게 되었지요. 집은 언젠가 쓰일지도 모를 물건들로 가득 찬 창고가 아니라 휴식의 장소, 영감의 원천, 치유의 영역이라는 거예요. 그걸 우리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미래를 걱정하며 놓쳐버리는 현재가 없기를 바라요. 적게 먹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철학과 지혜를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집착을 버리고 소유를 포기할 수 있고, 그런 것에 초연해지기를 희망해요.

성장 과정에서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요?

너무 정답 같지만, 《삼국지》를 추천하고 싶어요. 다양한 캐릭터와 방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좋은 책이지요. 배경은 과거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힘과 지혜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재와 미래의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히 대처하는 방법을 알 것 같기도 해요. 인생 예상 문제집 같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연대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인터뷰를 읽고 있을 다른 엄마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프랑스 부모들의 십계명》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싶어요. 작년 연말에 출간된 책인데, 저희 책방에 입고돼 있어요. 성서처럼 늘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읽고 또 읽어도 좋을 책이에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학교가 끝나면 책방으로 달려온다는 시우와 책방 한쪽에서 인형 놀이를 하는 나우를 보면서,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환경과 닮은 곳, 손에 잡히는 곳에 늘 책이 있는 일상 속에서 자라는 이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궁금해졌다. 이 환경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 줄 아느냐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책방 건물을 품에 끼고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200살이 넘은 나무처럼 그냥 지켜봐야지 마음먹는다.

윈드스톤
제주시 애월읍 광성로 272
070 8832 2727
instagram.com/ytterp_wind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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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