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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이가 함께 자라는 터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자라는 터
전은주
라디오 프로그램 <영스트리트>, <문단열의 잉글리쉬 카페> 등의 방송 작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전국 80여 곳의 도서관과 학교 강연을 다니며, 그림책이 생애 처음으로 만나는 인문학 질문이고 모든 연령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예술장르임을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웰컴 투 그림책 육아》, 《영어 그림책의 기적》 등이 있다.
직장에 다닐 땐 놀이터 옆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이웃과 대화를 나누는 엄마가 그렇게나 부러웠다. ‘저 집 아이는 놀면서 사회성을 키워나가고 있구나. 저렇게 인적 네트워크가 생긴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도 적응하기 쉽겠지?’ 막상 내가 그렇게 놀이터 파수꾼이 되고 나니 ‘놀이터’란 곳이 때론 전쟁터, 특히 엄마에겐 한 일 없이 피곤하고 기운 빠지는 곳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놀이터로 나가자고 조르는 아이를 보면서 궁금했다. 몇 살이 되면 혼자 나가서 놀 수 있을까? 이제 고등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의 엄마가 되고 나니,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놀이터에서 아이는 집과 엄마 말고 다른 세상, 다른 사람을 향해 첫발을 내딛었지. 놀이터 벤치에서 엄마들은 때로 다투고, 자주 위로와 즐거움을 얻곤 했지. 그러니까, 놀이터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자라는 학교였다.
놀이터의 왕
글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그림 놀라 랭그너 멀론, 옮김 이옥용 | 보물창고
놀이터에서 아이가 울면서 뛰어온다. “엄마. 쟤가 나는 놀이터에서 나가래. 나랑 안 논대!” 그럴 때 침착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엄마 마음속에는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조그마한 아이인 줄 알면서도 진지한 적개심에 한판 붙고 싶다. 그 조그마한 아이에게 가서 내 아이와 잘 좀 놀라고 알사탕이라도 조공해야 하나 고민도 된다. 하지만 《놀이터의 왕》에 나오는 케빈의 아빠는 어느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빠. 새미가 나를 구덩이에 파묻을 거래!” 이르는 아이에게 웃어줄 뿐이다. “그럼, 넌 어떡할 건데? 널 묻기 위해 땅을 파는 동안 가만히 있을 거야?”, “음… 파낸 흙을 도로 차 넣을 거야.”, “그럼 그렇게 하렴.” 케빈이 또 뛰어온다. “아빠. 새미가 나를 집에 가두고 문을 못으로 꽝꽝 박을 거래.”, “그럼 넌 어떡할 건데?”, “음… 뒷문으로 나오지.”, “그럼 그렇게 하렴.”
아빠와 얘기를 나누면서 케빈은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 새미가 괴롭히자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렴.”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이번에는 새미가 더 당황하고 괴로워한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한 케빈의 아빠. 고수다! 어떻게 해야 이런 고수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여보, 당신이 케빈 아빠처럼 되면 안 돼?)
우리 몸의 구멍
글 허은미, 그림 이혜리 |길벗어린이
이 그림책이 놀이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콧구멍같이 생긴 터널도 구멍, 밥을 먹는 입도 구멍, 방귀를 뀌는 항문도 구멍…. 뭐 이런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펴보라. 지금껏 나온 모든 구멍이 한자리에 모인 곳, 바로 놀이터다.
때로 아이를 ‘취조’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오늘 동생이 놀이터에서 맞았다는데, 누구에게 맞은 건지? 오늘 서연이와 현서가 싸웠다는데, 둘이 왜 싸운 건지? 그래서 서연이 엄마와 현서 엄마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내고 싶을 때, 아이에게 마구 물어대면 안 된다. 아이는 놀라서 입을 다물거나 엄마의 극적인 반응을 더 끌어내기 위해 사건을 과장하기도 하니까. 그냥 은근슬쩍 물어보는 게 최고다. 마침 그림책에 놀이터 장면이 나와서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던지는 것이다. “아, 오늘 놀이터에서 재밌었어?”
놀이터 장면이 나온 김에 질서 교육도 해본다. “어이쿠. 이 녀석은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네. 이러면 돼, 안 돼?” ‘취조’는 효과가 있지만, ‘교육’은 효과가 없는 것도 모르고. 바보 엄마.
봄 숲 놀이터
글 이영득, 그림 한병호 |보림
아이를 키울 땐 역세권보다 숲세권이 더 좋다. 늘 나무가 보이고, 조금만 걸으면 숲속으로 갈 수 있는, 그래서 아이가 봄 숲과 여름 숲, 겨울 숲이 어떻게 다른지 알면서 자랄 수 있는 곳. 아파트 숲에서 자란 딸아이를 마음먹고 큰 숲으로 데려갔을 때가 생각난다.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꿈꿨는데, 아이는 그곳이 낯설 뿐이었다. 먼지가 싫고, 벌레가 무섭다나? 옷에 흙이 묻는 것도 싫다 하여 안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아이는 금방 숲에서 친구를 찾아냈다. 비단 주머니같이 예쁜 금낭화, 불을 밝힌 것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돌배나무 꽃, 양지쪽에서 잘 자라는 양지꽃…. 바로 꽃이었다. 다람쥐를 쫒아가는 강아지를 따라 숲으로 간 강이도 봄 숲에서 예쁜 꽃들을 발견하고, 동물 친구들도 만난다. 함께 예쁜 꽃밥을 만들어 먹고 그네도 타러 간다. 줄거리는 특별할 게 없는 책이지만, 그저 아이가 신나게 노는 곳이 숲이라서 좋다. 숲에 자주 갈 수 없다면 책으로라도 자주 만날 일이다. 책 마지막에 QR코드가 있어서 꽃 사진도 볼 수 있다. 이 정도 장치만 해도 아이들이 훨씬 책에 흥미를 가진다.
알사탕
글·그림 백희나 |책읽는 곰
《알사탕》에 나오는 놀이터가 우리 아이들이 현실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모습 아닐까? 방부목으로 만든 탑에 튜브 모양 플라스틱 미끄럼틀 모양새도 익숙하지만, 그 아래 어딘가 혼자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도 익숙할 것이다.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친구들은 구슬치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만날 자기들끼리만 논다. 그래서 그냥 혼자 놀기로 했다.” 재미있어야 할 놀이터에서 가장 외로운 주인공.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한 번씩은 다 느껴보았을 그 기분. 백희나 작가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의 속마음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술 사탕을 선물한다. 늘 잔소리하는 아빠의 속마음은 “사랑해.” 알고 보니 나뭇잎도 말을 걸고 있었다. “안녕.” 하지만 가장 목소리를 듣고 싶은 친구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아이는 먼저 말을 건다. “나랑 놀래?” 노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 사귀는 법, 용기 내는 법. 그리고 성장하는 법. 아이들은 모두 놀이터에서 배운다.
공룡을 지워라
글·그림 빌 톰슨 |어린이아현
비 오는 날, 심심하게 텅 빈 놀이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세 아이가 마술 분필을 발견한다. 뭐든지 그리는 대로 실제가 되는 건 멋지지만, 그런데 왜 하필 공룡을 그린 거냐고오~ 그것도 가장 사나운 티라노사우루스라니! 끔찍한 공룡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던 아이들이 꾀를 냈다. 마법 분필로 공룡과 맞설 수 있는 걸 그리는 거야. 과연 아이들이 그린 것은 무엇일까? 작전이 성공하여 공룡을 없앤 후 평온해진 놀이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눈빛이 어쩐지 아쉬워 보이는 건 왜일까?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초식공룡을 그릴 걸 그랬나? 브라키오사우르스는 순하다는데.” 아서라 얘야. 브라키오사우르스의 거대한 꼬리로 한 대 맞으면 어쩌려고. 하지만 아이의 마음도 이해된다. 위험할수록 모험은 흥미진진하니까. 앞일을 모를수록 모험은 의미 있으니까.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사진처럼 생생한 이 그림이 컴퓨터그래픽도 아니고 손그림이라는 것도 놀랍다.
록사벅슨
글 앨리스 멕레란, 그림 바바라 쿠니, 옮김 아기장수의 날개 | 고슴도치
록사벅슨은 마을 뒤편에 있는 언덕이다. 모래와 바위, 선인장과 덤불만 있을 뿐이지만 그곳에서 뛰어노는 마을 아이들에겐 세상 전부였다. 아이들이 돌멩이로 선을 만들면 그곳은 가게도 되고, 회사도 되고, 심지어 감옥도 되었다. 자동차도 있었다. 핸들로 쓸 둥근 것만 있으면 되니까. 속도위반을 하면 감옥에 가야 하는데, 아이들은 감옥에 가고 싶어서 일부러 속도위반을 하곤 했다.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 다 있던 그곳. 록사벅슨은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경상도 시골 우리 동네에도 록사벅슨이 있었다. 그곳에서 ‘서울내기’인 척하고 논 적이 있다. 사투리 대신 “넌 어디에서 왔니?”, “당연히 서울이지. 차를 오래 타고 왔더니 디다(피곤하다는 뜻의 사투리).” 같은 서툰 서울말을 하면서, 먼 도시를 꿈꾸던 꼬마 여자아이를 떠올려본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록사벅슨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하다. 나보다 장난감을 열 배는 많이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에디터 김현지
글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