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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에 부쳐
얼굴 없는 스승에게
《더불어숲》에 부쳐
세계를 유랑한 시대의 지성,
故 신영복 선생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얼굴 없는 스승에게
아마도 선생께서는 저를 모르실 겁니다. 저 역시 선생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주고받는 서신 속에 선생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겠지요. 그렇다 한들 꼭 한번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선생이 선택한 첫 번째 여행지가 궁금합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이름 모를 청년에게
오늘은 멀리 이베리아 반도 끝에 있는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이 엽서를 띄웁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첫 번째 엽서입니다. 첫 번째 엽서일 뿐만 아니라 나의 첫 번째 해외 출국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 그리고 20년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던 나라를 처음으로 벗어나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이곳을 가장 먼저 찾아온 이유는 이곳이 바로 500년 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출항한 항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시절의 융성함도 사라지고 인적마저 드문 바닷가에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으로 떠났던 ‘산타마리아 호’의 모형만 파도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출항은 본격적인 식민주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식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와 똑같은 동류同類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그리고 자기를 추종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곳은 지중해를 벗어난 유럽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도도하게 전개되는 세계화 논리의 출발 지점입니다.
‘콜럼버스는 왜 서쪽으로 갔는가?’ 이 물음은 한마디로 답변하기 어려운 역사의 덩어리입니다. …… 그가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에 자행된 1,600만 명에 달하는 신대륙 원주민의 살육과, 같은 수의 아프리카 흑인을 대상으로 한 인간 사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에 행해진 가상 재판에서 콜럼버스는 유괴와 살인을 저지른 침략자로 단죄되고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이 폐기되었습니다. ‘신대륙’이 아님은 물론이며 ‘발견’이 아닌 ‘도착’이었기 때문입니다.나는 산타마리아 호 선상에 올라가 멀리 대서양을 바라보았습니다. 신대륙은 물론 보이지 않고 대서양의 푸른 물결만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신대륙이 아닌 고난의 대륙이 바다 저편에 있을 것입니다. 눈앞의 무심한 바닷물과는 반대로 귓전을 스치는 바람 속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항변이 들려옵니다. …… 그리고 지금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신대륙을 찾아 비행기로 이륙하고 있는 수많은 콜럼버스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 신영복, <우엘바 항구의 산타마리아 호> 중에서
얼굴 없는 스승에게
첫 번째 편지 잘 받았습니다. 선생의 편지를 읽으며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표현이 얼마나 오만한 사고인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건 타인의 문화를 다름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 잘못이겠지요. 문득 저의 첫 번째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공항에서 밤을 새고 나와 처음 맞는 호객꾼들,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지던 노파와 아이,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 사이클 릭샤의 뺨을 때리던 뚱뚱한 사내, 머리를 스치듯 날아다니는 독수리와 까마귀, 벌거벗은 남자, 길거리 한쪽에서 대소변을 보는 사람들, 털 빠진 미친개와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 내 뺨에 염소 피를 바르던 가짜 사제까지.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당혹을 넘어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혼란이 잊히지 않습니다. 선생의 콜카타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곳 낯섦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궁금합니다.
이름 모를 청년에게
콜카타 공항에 내리면서 나는 제일 먼저 시간을 맞추는 일에서부터 인도를 시작했습니다. 손목시계를 풀고 시계바늘을 돌려 시차를 조정하면서 문득 평소에 천동설로 생활한다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는 평소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천동설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시차와 지동설은 여행객에게 지나지 않는 나의 과학일 뿐, 이곳에서 낮과 밤을 보내고 맞는 인도 사람들에게는 역시 천동설이 과학임이 틀림없습니다. 내가 인도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이 바로 이 ‘생각의 시차’입니다.
콜카타는 사상과 예술의 도시이며 동시에 ‘인도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식민 도시에서 인도의 정직한 얼굴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내게 ‘인도의 얼굴’을 보여 주려고 애썼던 유학생의 친절을 잊지 못합니다. 그 중 하나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와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거처하는 성당에는 늦은 밤인데도 환히 불 밝힌 기도실에서 사랑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자꾸만 바깥으로 옮겨 갔습니다. 성당 바깥의 도로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인근의 빈촌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남루한 사람들의 얼굴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아직도 시차를 좁히지 못한 나만의 생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그들은 결코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거나 사랑의 손길을 고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인도의 얼굴은 ‘사랑의 선교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인도에 온다면 맨 먼저 걸인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손들에게 포위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인도에서 거지만 보고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수도승들의 탁발 전통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들의 당당함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가난과 남루는 물론이며 심지어 삶과 죽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인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정서가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난은 아름다움을 묻어 버리는 어둠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빛이 되기도 합니다.당신이 인도를 찾아올 때는 많은 것을 벗어 두고 올 것을 권합니다. 먼저 시계를 풀어 두고 오기 바랍니다. 그리고 옷을 벗어 두고 와야 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입혀 놓은 보이지 않는 옷까지 벗어 두고 와야 합니다.
– 신영복, <인도의 얼굴> 중에서
얼굴 없는 스승에게
지난 설날에는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특히나 이번 명절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여서 우리는 ‘아이언 맨’과 ‘안경 선배’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마루에서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이에 대화가 한창이었습니다. 정치 이야기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었죠.
가만히 듣다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조근조근 반박을 하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작은아버지가 먼저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떠났고, 저 또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토론의 내용은 잊고 서로의 잘못만 꼬집은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눈먼 소문에만 의지해 아집을 부리는 기성세대가 답답했고, 기성세대 또한 자신들이 겪은 오랜 고난의 시절, 그 귀중한 경험을 깔보는 젊은이의 태도가 얄미웠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단지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 사회 전체에 드리운 배타적 사고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깝게는 지역 간의 갈등을 비롯해, 진보와 보수, 노인과 청년, 남자와 여자, 더 멀리는 인종과 종교 간의 다툼까지. 우리는 늘 나와 조금 덜 닮은 상대에게 적의를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나 남과 여, 노인과 청년, 힌두와 이슬람이 서로의 반대말이 아닌데, 왜 서로 무섭게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내야 하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이름 모를 청년에게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 희망봉에는 이름과는 달리 거센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칩니다. 바람에 떠밀려 온 이랑 높은 파도가 암벽에 부딪쳐 자욱한 포말로 일어섭니다. 세상을 하직하러 ‘지구의 끝’을 찾아온 노인 관광객들이 거센 바람에 밀려 발을 떼어 놓지 못합니다. 이곳을 ‘폭풍의 곶’ 대신 희망봉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이 궁금합니다.
희망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절망의 섬’이 있습니다. 해안에서 약 6킬로미터, 뱃길로 30~40분 거리에 있는 로벤 섬이 그곳입니다. 로벤 섬에는 넬슨 만델라가 27년의 구속 기간 중 17년 동안 갇혀 있던 감옥이 있습니다. …… 희망봉과 절망의 섬이 서로 지척에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지만 내게는 참으로 뜻 깊은 것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듣는 피아노 선율은 내게 흑과 백의 조화를, 그리고 반음과 온음의 조화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 피아노는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반伴을 의미합니다. 동반同伴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환희’는 절반의 비탄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희망’은 절반의 절망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승리’는 절반의 패배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희망과 절망,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신영복, <아프리카의 희망봉과 로벤 섬> 중에서
얼굴 없는 스승에게
절반은 곧 동반이라는 의미, 깊게 새겨들었습니다. 물론 그 바탕에는 화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요. 지금 한국은 ‘미투 운동’이 커다란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당사자에게는 아주 큰 용기가, 그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에게는 위로와 공감의 행동이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의 미투 운동을 보며 떠오른 몇 개의 장면이 있습니다. 지난겨울 어둠 속에서 빛나던 촛불,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 둘러진 목도리, 노란 리본의 기다림 같은 것들. 각각의 시작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함께 모여 목소리를 모으는 것,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의 연대야말로 단단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선생은 인류가 겪은 커다란 슬픔의 장소를 여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이름 모를 청년에게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들어갈 때보다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이 비극의 현장을 돌아보는 모든 방문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침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분노와 경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허탈에 가까운 표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자행한 만행이라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에 대한 분노나 충격을 넘어선,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좌절이라고 해야 합니다.
가스실과 교수대를 돌아 나오는 나를 맞아 준 것은 바로 장미꽃 화단이었습니다. 별로 크지 않은 화단입니다. 긴 화단을 가득히 덮고 있는 장미꽃은 이 참혹한 현장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 같기도 하고 이곳에서 숨져 간 300만의 영혼 같기도 합니다.
나는 장미꽃 화단 옆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이 비극의 현장은 이처럼 먼 폴란드 땅에다 둘 것이 아니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라인 강의 기적과 나란히 놓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범죄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죄는 엄숙할 정도로 철저한 것이 사실입니다. … 그러나 폴란드 오지에 있는 아우슈비츠는 아무래도 세상에서 너무 먼 것 같았습니다. ……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입니다.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책임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청산입니다.
아우슈비츠는 단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찬미하는 모든 ‘번영의 피라미드’에 바쳐진 잔혹한 희생의 흔적을 드러낸 증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신영복, <아우슈비츠의 붉은 장미> 중에서
마침 겨울방학을 맞아서 원고를 다시 읽어 보고 서문을 쓰는 일을 강원도 산골짜기 외딴 집에서 하고 있습니다. 궁벽한 산중이어서 지난 해의 적설 위에 계속해서 신설이 쌓입니다. 이곳은 봄이 올 때까지 내내 설국雪國입니다. 밤이면 세찬 겨울 바람이 나목을 뒤흔듭니다. 동토凍土에 발목 박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 신영복, 《더불어숲》 중에서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