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무

뜻밖의 다정함
예술로 채집한 기억들

우음도에 언니 나무가 있다. 나는 우음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그 나무는 내 나무이기도 하다.

사진

불쑥 사진 수업을 신청했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필름 카메라 수업이었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 작은 똑딱이 카메라 ‘로모’로 사진 찍는 일에 재미가 붙어서 하루에 필름 한 통씩 소진하곤 했지만,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 딸깍 셔터 누르는 것 외에는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조금 아쉬움을 느끼던 참이었다. (필름 한 통에 3천 원, 필름 스캔도 몇천 원이면 가능하던 시절이다.) 사진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쓰시던 무겁고 커다란 카메라가 떠올랐다. 장롱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아버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야겠다! 하지만 작동법을 알아야겠지? 포털사이트에 ‘필름 카메라 수업’을 검색해 신청했고, 어느 토요일 아버지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서울 혜화동 선생님 작업실로 갔다.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그 수업에서 언니를 처음 만났다. 이후 반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어두운 지하 골방에서 열 명 남짓 우리는 사진을 배웠고, 들로 산으로 여기저기 함께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사진을 함께 감상했고, 그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속에서 울고 또 웃었고, 술도 참 많이 마셨다. 

수업 첫날 알았는데, 의기양양하게 가져간 아버지 카메라는 전자동 카메라였다. 수동이 아니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선생님은 괜찮다고 했다. 당장 새것을 사려고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사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게 된 후 나한테 잘 맞는 기종이 무엇일지 살펴보고 천천히 구매해도 늦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좋았다. 선생님은 사진 찍는 기술에 앞서 사진 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무겁고 큰 자동카메라로 선생님이 매주 내준 과제를 따라 사진을 찍었다. 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아버지는 어린 나를 수없이 담았겠지. 수업의 마지막엔 수강생들이 그간 찍은 사진을 모아 소박한 이야기집을 만들었다. 그때 즈음 수동 필름 카메라 FM2를 중고로 구했다. 셔터를 누를 때 나는 찰칵 소리와 집게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둔탁함이 마음에 들었다. 엄지손가락 옆면을 굴려 필름을 감을 때 지익 하는 소리와 지글지글 느껴지던 진동도 좋았다.

선생님이 수업 내내 강조한 건 마음이 가는 대상을 정하고 꾸준히 천천히 찍으라는 것이었다. 그건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다. 어떤 수강생은 가족을 찍었고, 어떤 이는 하늘을 찍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담배 피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찍은 사람도 있었다. 언니는 말라버린 꽃다발과 떨어진 꽃잎, 다시 채워진 찻잔 같은 것들을 찍었다. 나는 무엇을 찍을지 한참 고민하다 FM2를 들고 선운사에 갔다. 그즈음 마음 복잡한 일이 생기면 집 근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선운사로 가서 템플스테이를 하곤 했다. 카메라를 메고 선운사에서 1박 2일을 머물며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담았다. 카메라를 드니, 전과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선운사에 언니와 함께 갔다. 거기 있는 동안 언니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다만 사진을 찍는 내 몇 걸음 뒤에서 고요히 서 있었다. 마치 나무처럼.

나무

수업이 끝나고 나는 사진 배우기를 그만두었는데, 언니는 다음 수업을 신청했다. 조금 더 깊게 사진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거의 1년 정도 지났을 때, 수업을 들은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사진전을 한다고 했다. 언니를 만나러 홍대입구역 근처의 전시장에 갔다. 무심하게 전시장 문을 열자마자 크게 걸린 언니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찍은 이의 이름을 보지 않고도 언니가 찍은 사진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무 사진이 여러 장 세로로 연이어 걸려 있었고, 모두 같은 나무였다. 건물도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너른 벌판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런데 같은 날이 아니었다. 나무 뒤로 해가 지기도 하고, 구름이 흐르기도 하고, 어떤 하늘은 잿빛이기도 했다. 나무는 풍성한 초록빛이었다가 잎이 점점 줄어들었다. 들판 풀들의 빛깔도 변했다. 태풍이 몰아친 다음 날에도 나무한테 달려갔다는 언니에게 저 나무는 무슨 의미일까? 언니는 왜 그 나무를 찍기로 했을까?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의 경기도 화성의 우음도로 달려갈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어보려다 묻지 않았다. 다만 오래 서서 바라봤다.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 어떤 마음은 사진에 담겨, 보는 이의 마음에까지 배달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배달된 마음이 10년 넘게 내 안에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의 나무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언니는 잔잔하게 웃으며 좋다고 말했다. 문자와 메일로 연락을 했지만, 언니가 웃고 있었다는 걸 안다. 나무 사진을 보내며 언니는 말했다. 언젠가 세상의 끝에 있는 카페에 있다는 나에게 불쑥 연락을 받은 날이 생각난다고.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여행 중에 일행과 떨어져 혼자 카페에 있던 몇 시간…. 그때 내가 언니한테 연락을 했나 보다. 그랬겠네. 웃음이 난다. 그날은 긴 여행에 조금 지친 날이었다. 어쩌면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세세하게 털어놓지 않아도 안부를 전하는 것만으로 털어지는 마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며칠만 보지 않아도 영영 멀어진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은 오래 보지 않아도 늘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언니와 내가 그렇다. 우리가 그런 사이인 데에는 설명하기 힘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사이에 나무가 있어서인 거 같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 주변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도, 해가 뜨고 지고, 폭풍우가 치고 개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하늘빛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나무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바다

제주에서 내가 처음 살던 집은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신도시 임대 아파트였다. 부엌에 난 작은 창문으로 제주 북쪽 바다가 보였다. 그땐 아침마다 일어나면 부엌으로 가서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SNS에 올렸다. 내가 제주에 살고 있다는 알림이었다. 타인보다 나 자신에게 전하는 알림. 저 멀리 바다와 하늘, 그것을 적당히 가리고 있는 어리숙한 상가 건물들 사이로 어느 날은 무지개가 뜨기도 했고, 먹구름이 끼기도 했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었고, 바다와 하늘이 아주 선명하게 나뉘는 날도 있었다. 청명하게 파란 하늘과 만날 때도 있었다. 하늘에 따라 바다 색깔도 늘 달라졌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다른 바다를 담으며, 천천히 제주살이에 적응했다. 사진 찍기는 그 집에 사는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자주 언니의 나무 사진을 떠올렸다. 나에게 배달된 언니의 나무가 더 단단하고 깊게 뿌리내려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지금 사는 곳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수목원에 닿는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도 수목원 입구에 들어서면 항상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봄이 한창이던 4월, 입구에서 보이는 하얀 벚꽃이 너무 예뻤다. 버릇처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다음 날도 찍었고, 그리고 다음 날도…. 그사이 꽃이 떨어졌고, 초록 잎이 가득했다가 지금은 조금씩 낙엽이 지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SNS에 사진을 올린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도, 그곳에서 잘 지내길 바랍니다.

언니

언니를 만나고 올 때면 늘 무언가를 언니 옆에 두고 오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십여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언니의 나무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때 언니가 그 나무 곁에 두고 왔을 마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안심한다. 불쑥 연락을 하려다가도 망설이게 될 때도 있다. 여기는 해가 반짝이지만 저기는 비가 올 수도 있고, 이쪽은 안개 속이지만 저편에는 빛이 찬란할 수도 있으니까, 내 흐린 마음이 옮겨 갈까 봐, 나의 태양에 눈이 부셔 휘청이는 마음을 배려하지 못할까 봐 그렇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무지개가 뜨고 해가 나고, 잎이 물들고 떨어지고 다시 새싹을 틔우며, 나무도 언니도 잘 지낼 것이라고.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불쑥 또 연락을 하면, 그날이 비가 오는 날일 수도 있고 해가 반짝이는 날일 수도 있지만, 언니는 또 슬며시 웃을 거라고. 언니 나무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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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