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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해리 포터》
첫 번째 시리즈가 쓰이고 20년이 훌쩍 지난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프리벳가 4번지에 사는 더즐리 부부는 매우 감사하게도 그들이 완벽하게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저에게 부엉이는
언제 오나요
하필 ‘마법’이다. 마녀 고깔모자에 투명 망토, 날쌘 용과 마법 지팡이, 약초학 공부에 빗자루 게임까지. 인간이 오랜 시간 열망하고 궁금해해 온 미지의 세계이자 환상 끝판왕, 마법이라는 거다. 《해리 포터》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살면서 한 번쯤 상상해본 장면들과 언뜻 비슷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자 조앤 K. 롤링Joanne K. Rowling은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소년 마법사’에 대한 조각을 맞추어 나갔다. 1997년, 《해리 포터》가 처음 출간된 이후 2007년 일곱 권의 시리즈로 완간되었고, 지금까지 전 세계 67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발간 20주년을 맞이하던 지난 6월 26일, SNS를 통해 그녀가 말했다. “나 혼자 살았던 세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린 날이에요. 그동안 아주 멋졌어요. 모두 감사해요.”
그녀 머릿속을 헤매던 해리가, 이 사람들 곁으로 도래한 순간이었다.
<해리 포터> 영화 시리즈는 2001년을 시작으로 장장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작, 상영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10년을 이야기해보자면, 책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할로윈데이에 코스튬 플레이를 하거나 결혼식 청첩장을 호그와트 방식으로 만드는 등 문화 소비의 주체 세대로 자랐고, 두 명의 배우가 세상을 떠났으며, 삼총사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향유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정을 지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모습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해리 포터를 생각한다. 깊은 산골짜기 구석 어딘가에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도 믿으면서. 우리들의 초대장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부엉이가 사람들을 찾아갈까. 혹여 초대장을 받지 못하면 내게도 헤그리드가 찾아올까.
해리,
너는 마법사야
《해리 포터》는 이야기가 가진 다양한 측면의 가치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스토리노믹스Storynomics’ 측면이 가장 뛰어나다. ‘이야기Story’와 ‘경제Economics’가 합쳐 만들어진 신조어로, 스토리텔링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야기가 지닌 경제적 가치를 나타낸다. 독자와 청중이 감정을 적당히 이입할 수 있으면서 이야기 안에 녹아내린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해리는 아주 외로운 소년이었다. 어릴 때 볼드모트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고 자신을 천대하는 친척 두들리 가에 맡겨진다. 늘 체구보다 큰 헐렁한 옷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이어 붙인 안경을 끼고 다녔고, 그에게 허용된 공간이라고는 그저 벽장 속 한 뼘 채 안 되는 작은 틈이었다.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도, 그림자를 보여도 안 된다. 아동 학대에 내몰려 소외되고 사랑에 굶주린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해리가 열한 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에 그를 찾아온 헤그리드가 말한다. “해리, 너는 마법사야.”
소설 《해리 포터》에 내재된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자아 정체성’과 밀접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해리 앞에 누군가 나타나 ‘마법사’라는 말을 처음 건네는 순간, 아주 많은 것이 송두리 째 바뀌었다. 수많은 《해리 포터》 팬들이 해리에게 이입하고 자신과 동일화할 수 있던 것은 이 소설의 세계관에서는 자기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번은 누군가 롤링에게 물었다. “호그와트에도 성소수자가 있나요? 호그와트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이 많으니까 왠지 LGBT*에게 안전한 곳이지 않을까, 종종 상상하고는 해요.” 이 물음을 본 롤링이 답했다. “《해리 포터》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그 누구도 벽장 속에서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이죠.”
*LGBT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딴 말로, 성소수자를 의미한다.
그의
주변으로
이야기 속 결핍으로 점철된 소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응원과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건 성장 소설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문법이기도 하다. 이건 해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생존하는 것 자체가 고역 같았던 그의 주변으로 많은 이들이 둘러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매한가지로 같다. ‘그의 지난한 날들을 보듬어 주고 싶은 것.’ 머리가 노란 ‘론 위즐리’는 엉뚱한 소년으로, 대가족에서 태어나 타인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뽐낸다. 해리가 두들리 삼촌 때문에 여름 방학 내내 집에 갇혀 학교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론은 형과 함께 마법의 차를 타고 2층 창문을 깨부쉈다. 해리를 해방시킨 뒤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해리, 생일 축하해.”
그의 엉뚱함의 근원인 론의 엄마는 무척이나 다정해서, 해리를 처음으로 따뜻하게 안아 준 인물이기도 했다. 론을 비롯한 그의 가족은, 해리의 가족이기도 한 셈이다. 식사는 잘 했는지, 안무를 묻고 지내는 사이는 역시 그 안으로 안정과 평온을 기원이 오간다. 머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해리에게 늘 용기를 전해 준다. 많은 게 필요 없다. 그저 한번의 뜨거운 포옹만으로 충분하다. 한번은 해리가 ‘퀴디치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헤르미온느만이 그의 대기실로 찾아가 그에게 조심하라는 안부를 전했다. 비록 둘의 포옹은 파파라치 마법사에게 걸려 헤르미온느와 해리가 사귄다는 신문 기사가 실리고 말았지만. ‘맥고나걸’ 교수는 겉으로 아주 엄격하고 무서운 교감이자 기숙사 그리핀도르의 사감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두지만, 그녀는 학생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해리의 빗자루가 부서졌을 때, 사비를 들여서 가장 최신형 빗자루인 ‘님부스2000’을 사준 것도 그녀였다. 티는 잘 안 내지만 늘 학생들 뒤에서 따뜻하게 걱정하고 보듬는 것이 꽤나 ‘츤데레’스러운 인물이다.
주변인과 함께 어울렁더울렁 지내는 해리는 어느 새 타인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구축해내는 어른이 된다.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오해도 푼다. 표정 없는 소년이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되었다. 그의 정서적 성장은 단연코 그의 주변에 머무른 이들 덕분인 것이다.
*머글 마녀나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인간
지난 19년 동안
그 흉터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죽음의 근원이 탄생이듯, 모든 시작은 결국 끝맺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해리 포터》는 소설은 2007년, 영화는 2011년으로 끝을 맺었다. 정확히 10년이 걸렸다. 마지막 촬영이 끝났을 때 모든 영화 제작자와 배우들은 부둥켜 안고 울었고,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도 그 마음을 함께 나누어 가졌다. 《해리 포터》가 지난 10년 동안 남긴 것은 단순히 가상 인물의 일대기와 권선징악을 드러내는 교훈만은 아니다. 그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현실의 세계가 마법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달했다. 마법의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은 물리적, 기술적인 현상일 뿐이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지키고, 자신 마음의 집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사활을 거는 것은 이곳에나 저곳에나 동일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오늘이 괜찮아지고, 위로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17년 9월 1일. 모든 게 끝이 났다.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마지막 날짜가 훌쩍 지나버렸으니, 《해리 포터》의 세계가 이제는 정말 끝이 난 것이다. 앞으로 해리와 그의 사람들이 그리울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나간 나날들을 되새기고 곱씹는 것뿐이다. 전처럼 ‘다음의 것’을 기다리는 일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해리가 감내해야 했던 모든 고난 또한 드디어 끝이 났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의 마지막 책,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지난 19년 동안, 그 흉터는 한번도 아프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사했다.
《해리 포터》에 대한 이야기를 여덟 페이지에 담아 내는 동안, 한 페이지만은 사심이 듬뿍 담긴 글을 넣고 싶었다. 해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꼭 담겠다고.
에디터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