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건 먹어야 돼

순이 씨 레시피

순이 씨는 섬마을 종갓집의 4남 1녀로 자랐다. 어깨 너머로 배우고 맛본 요리법을 체득하면서 어느덧 동네 제일 가는 요리 솜씨를 갖게 되었다. 전라도의 화끈하고 감칠맛 넘치는 맛으로 주변인의 마음을 사로잡던 중, 그녀는 막내딸에게 자신만의 비법을 전수하기로 결심했다. 딸랑구야, 기다려!

내가

왕년에 말여

1965년 뜨거운 여름, 순이 씨가 세상에 태어났다. 무뚝뚝한 교장 선생이었던 아버지는 새까만 사내아이들 사이로 하나뿐인 딸을 귀하게 여겼다. 집 오른편에는 등이 가파른 산을 두었고, 굽은 언덕을 몇 번 두르면 물 맑은 작은 해변, ‘하누넘’이 나왔다. 하늘이 넘실거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농익은 나무와 밭을 가까이 두었고, 잗다랗게 핀 풀꽃의 이름을 쉽게 외웠다. 섬마을 생활은 생기에 넘치고 친숙하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녀를 풍요롭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전라도 밥상이었다. 땅과 하늘의 기운을 꾹꾹 채운 채소와 직접 키운 가축으로부터 얻은 귀한 고기, 가문에 대대손손 전해지는 전통적인 요리법이 만나 다채롭고 건강한 끼니를 채웠다. 

섬마을에 산 햇수보다 도시 생활의 햇수가 더 길어질 즈음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체득한 맛의 진리를 깨달았다. 먹고 누린 경험이 그녀의 손에 그대로 익은 것이다. 강남에서 유명한 국숫집 사장님은 순이 씨를 찾아와서 국수 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호소했고, 압구정의 전통 술집에서는 전라도 특유의 맛깔 나는 음식을 전수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다달이 돈을 벌었던 것은 오히려 요리가 아닌 외국어였지만, 그녀 인생에서 도저히 손맛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순이 씨는 언제나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의 꿈은 엄마가 담은 김치를 예쁘게 자수가 새겨진 보자기에 싸서 고마운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거야. 내 주변 사람만 말고, 우리 딸랑구들 주변 사람들한테도!”

순이 씨

저의 숟가락 점수는요

그날 저녁 상에는 매생이 무침, 돼지 보쌈, 냉이된장찌개 이외에 무생채와 가리비찜이 덧붙여서 올라왔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함께 저녁을 나누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음식은 결국 사람들을 그러 모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고기를 썰고, 냄비 뚜껑과 프라이 팬을 끊임없이 들었다 내렸다 하는 그녀의 손을 보면서 아주 많은 밥을 지으면서 들였을 주름을 생각했다. 그 주름의 반할은 나의 몫일 것이다. 곳간을 침입한 새앙쥐처럼, 어미 새만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어느 날 주어진 밥상을 아무런 의식 없이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시절은 무슨. 지금도 그렇다. 레시피를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면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한 끼의 밥상을 채워내기 위해서 얼마나 무수한 생각과, 조합과, 고민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모든 집안의 밥상은 저마다 레시피가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역시나 각자의 생각과, 조합과, 고민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의 밥상을 선물 받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순이 씨의 배가 부를 리는 없다. 그것은 모성애 추앙이 만들어낸 거짓이다. 하지만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을 그녀를 위해서라면,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이 예의인 건 틀림없다. 언제나 그랬듯 오늘의 숟가락 점수는, 만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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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자연

일러스트 전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