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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편혜영
어떤 삶의 이름
소설가 편혜영
자아는 종종 관계로써 정의되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 속에는 다양한 관계가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는 것과 달리, 그녀는 ‘관계의 부재’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 외로움과 불안, 비일상과 균열. 소설 속 관계에 놓여있는 다리의 이름들이다. 그녀는 함께 없음(without)이 결국 함께(with)와 맞닿아 있다고 말하고 있다.
INTERVIEW
편혜영
《홀The Hole》 문학과 지성사 (2016)
주인공 ‘오기’가 사고 후 눈을 떴을 때, 아내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고 가족이라고는 장모와 자신 둘뿐이었다. 그의 의지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깜빡이는 것이다. 평탄하고 안락했던 삶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의 세계는 완전히 전복되었다. 그가 마주하는 것은 온통 자신의 삶에 지금껏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은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뿐이다. 유난히 딸에게 애착이 강했던 장모는 정작 자신의 딸은 세상을 등지고, 불구에 가까운 사위를 보살피면서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아내는 생전 오기에게 해명 받지 못한 ‘오해들’을 그대로 품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오기’에 관한 어느 고발문을 남겼다. 그것은 조금 특별한, 한 인간에 대한 고발문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누군가
작가님 신작 소설이 나왔어요. 소설을 집필하면서 봄을 맞이하셨겠네요.
이 소설의 모티브는 이전에 써놓았던 단편소설이었어요. 집필은 여름에 마쳐서 원고는 그때 떠나 보냈고, 교정을 보면서 겨울을 났죠. 그리고 봄이 왔어요. 보통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들쑥날쑥 시간이 걸리는데, 이번 소설의 경우는 단편으로 주요인물의 관계가 만들어져 있었어요. 인물들 사이의 여백이나 긴장감, 에피소드 등 살을 붙였죠.
소설 《홀》의 주인공 ‘오기’의 가족은 행복해 보이지만 또 때로는 붕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둘 다 가족적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뿐만 아니라 ‘증오’도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오기’의 가족은 그를 중심으로 장모와 아내로 이루어졌어요. 소설 중심에 가족이 있다 보니 가족의 문제나 위기에 관해 접근하는 소설로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오기’라는 인물에게 가족은 일부지 전부는 아니에요. 개인의 정체성이나 자아를 설명할 때 가족이 전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오기가 지니고 있었던 여러 개의 삶이 가족이라는 일부 때문에 무너지는 거죠.개인적으로 장모와 사위라는 관계가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이기는 한데 혈연적 가족이 아니라 법적인 관계인 거잖아요. 언제든지 청산될 수 있어요. 이 둘은 소설 속에서 아내가 죽어버림으로 인해서 청산될 기회 조차 박탈되었죠. 완전한 가족도, 완전한 타인도 아닌 경계에 놓인 거예요.
소설 속 오기는 ‘40대란 완벽히 적응하거나 실패하는 분기점’이라고 합니다. 왜 많은 세대 중에 40대에 그런 표현을 했던 걸까요?
소설에 인용한 허연 시인의 시에, ‘내 나이에는 모든 죄가 어울린다’라는 구절만 보고 저도 모르게 이 ‘나이’는 40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받아들였던 것이 재미있었어요.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 진입의 속도가 점점 늦춰지고 있어서, 30대가 되어야 겨우 문턱에 들어서요. 그에 비하면 40대는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세대가 아닐까 싶었어요. 한편으로 30대에 순탄하게 진입에 성공했더라도 최초로 실패할 수 있는 나이일 수도 있고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분기점이 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40대의 실패는 극복하기 상대적으로 힘든 걸까요?
저도 아직 40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이대가 어떻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다시 무언가를 시도하기에도 썩 늦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물학적으로 수명도 늘어났고 사회 진입도 늦춰졌으니까요. 하지만 오기처럼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하여 단언하는 인물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그는 40대의 실패가 마치 인생 전체의 실패인 것처럼 여기곤 하니까요.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상상도 부족한 일들이 있어요. 출산이라든지, 따돌림이라든지, 경제적 파산이라든지. 나이도 아마 그런 부분 중 하나같아요. 작가님의 40대는 어떠신 것 같아요?
아직 40대 속에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요. 무엇보다 오기가 바라보는 성공의 기준과 제가 바라보는 성공의 기준이 달라요. 오히려 저는 생물학적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시점에 있어요. 30대와 별반 차이를 못 느끼기도 하고요. 소설 속에서 오기는 성공의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아내가 실패했다고 비아냥거리죠. 각자에게 성공의 의미, 인생의 의미가 다른 것처럼 나이에 대한 의미도 달라지겠죠.
오기가 대학원을 이수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동안, 아내는 계속해서 어떤 일을 결심하고 포기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요. 그래서 그런 비아냥을 했던 걸까요?
그렇죠. 그런데 아내의 실패도 돌이켜보면 대단한 실패는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은 대개 하고 싶은 것들을 자주 바꾸잖아요. 오기의 아내도 별반 다른 게 없어요. 아내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지, 결정의 번복이 곧 실패인 것은 아니거든요. 그저 오기의 시점에서 아내의 실패인 거죠. 그래서 다른 걸 해보라고 권유할 때도, ‘실속 있는 것’을 강요하고 싶었겠죠. 아내가 계속해서 결핍을 느꼈던 것은 그런 부분일 수 있어요. 그래서 아내도 오기에게 비아냥거리죠. “늙어서 성장하는 것은 암뿐이야.”
오기는 이름도 하필 ‘오기’예요.
‘오기를 부리다’의 ‘오기’를 염두 하고서 썼던 것은 아니었어요. 주인공 이름은 소설을 쓰는 동안 계속 불러줘야 하는 이름이잖아요. 제 입에 잘 붙고 또 이름을 부를 때 발음이 편했으면 했어요. 그래서 받침이 없고 단모음으로 이뤄진 이름을 짓고 싶더라고요. 오기라는 이름을 만들어 불러보는 순간 입에 자연스럽게 붙더라고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던 단편소설에서의 주인공 이름도 오기였어요.
인물들 이름을 설정하는 것에도 굉장히 공을 들이시는 것 같아요.
이름을 짓는 게 어려워요. 소설을 처음 쓸 때에는 등장인물 이름이 거의 없었어요. 무엇보다 이름의 의미가 단일하게 해석되는 것이 조금 불편해요. 우리한테 친숙한 이름일 경우에 관습적으로 의미가 부여될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수빈’이라고 하면 예쁘고 여성스러울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올려요. 그래서 구체적인 이름을 짓는 일에 늘 조심해요. 이 소설 중에서도 오기 외에는 아무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들의 역할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아내, 장모, 아버지, 어머니처럼요. 동료들이 이니셜로 나타나는 것은 개인의 개성보다 하나의 집단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니셜로 붙여줬어요.
소설 속 오기에게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또 마지막엔 나름의 반전을 기하는 아내가 오히려 주인공 오기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내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오기 중심의 관계를 드러내느라 소설에서 말하지 못한 아내의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녀가 처음에 오기를 오해하게 된 배경이나,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포기하는 과정이라든지 그런 세부사항이 빠졌어요. 저 역시 궁금하기도 했지만, 오기에만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어요.
그들이
만들어 낸 관계
인물들 중에서 조금 더 연민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오해로 점철된 삶을 살며 훗날의 걱정을 미리 했던 아내, 그런 딸을 잃고 딸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해지는 장모, 오해를 직접 키워간 오기, 그리고 오기의 어머니까지. 각자의 입장이 굉장히 분명해서 누구의 편을 들지 못하겠어요.
저는 역시 오기예요. 소설 속에서 그는 아내에 의해 속물로 과장된 면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주변을 돌보지 않고 자기 삶의 안락함, 직업의 성취감 등으로 성공을 판단하는 게 딱히 잘못한 것은 아니거든요. 오기에게 가해진 폭력이 더 커지면서 확고하게 속물로 몰리죠.
그 폭력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오기를 정확히 안다고 확신하는 인물들이겠죠. 아내와 장모일 수도 있고요. 두 인물이 ‘오기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라고 단정 지으며 자신의 잣대로 해석하고 비난하거든요. 오기는 그 자신이 했던 행동에 비해서 지나치게 과한 비난을 받는 것 같아요.
책을 읽다가 오기가 너무 외로워 보였어요.
저도 그랬어요. 오기가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은, 혹은 아무도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모습은 결국 오기의 전 인생이 축적해 오면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오기라는 인물은 부모로부터 양육되지 못했고, 거기서부터 외로움을 느꼈을 거예요. 다른 사람의 약점을 캐물을 수도 있고, 자신의 편의에 따라 타인을 활용해 오면서 그가 처해진 상황도 사실은 오기의 삶이 만들어 낸 결과인 거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인과로 만들어지잖아요. 오기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되물었지만 그 시작점을 찾기는 힘들겠죠.
오기의 외로움이 날 것 그대로 느껴졌어요. 그간 쓴 소설 중에 인간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다른 소설에도 ‘남에게 제대로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두려움에 관한 사건을 다룬 적이 있어요. 〈서쪽 숲에 갔다〉라는 단편 소설은 주인공이 삶을 쇄신해 보려고 다른 장소로 이주해서 일을 시작하고, 어떻게든 가족들과 함께 살려고 아등바등 애를 써요. 하지만 과거에 했던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면서 삶이 속절없이 무너져 버리죠. 비슷한 맥락 같아요. 그간 삶에 축적해 오고, 누적된 것들이 어느 날 한순간에 자기 앞에 들이닥치는 거죠.
소설 속에는 다양한 관계가 등장해요. 주로 가족이죠. 어머니, 아내, 장모, 아버지, 시아버지. 오기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에요. 보통 가족이란 울타리가 한 인물에게 거대한 영향을 주는 관계인 거겠죠?
그럼요. 육아기와 아동기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단연 가족이에요. 가족 내 관계나 분위기 등이 한 개인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동기 때의 교육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인간의 생후 몇 년이 평생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하면 너무 무섭거든요. 유아기와 아동기를 지나 앞으로 훨씬 더 긴 시간을 지내게 될 텐데 그런 식으로 결정된다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솔직히 소설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어요. 왜일까요?
무섭죠. 의지가 충분히 있는 개인이 자신의 그 의지를 박탈당하고 자기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을 목격해야 하니까요. 아주 두렵죠.
물리적인 폭력이나 잔인한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돼요. 새벽에 읽다가 무서워서 체온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져서 날 밝을 때 읽을까 고민도 했거든요. 장모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는 게 특히 무서웠어요. 장모가 죽은 아내의 방에서 본 것은 아내가 쓴 오기에 관한 고발기였을까요?
7장 이후부터 장모가 무서워지죠. 장모가 본 게 고발기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내가 기록한 모든 메모와 글은 오기라는 인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설명한다기보다는 아내 관점으로 마음대로 쓴 거예요. 그래서 오기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내의 오해가 장모에게 그대로 인식되는 것이었죠. 중요한 건 뭘 오해했는지 정작 그는 모르기 때문에 더욱 답답하고요. 장모는 아내의 미래의 모습일 수 있어요. 아내가 죽고 장모가 둘이 남았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거든요. 그들에게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늙었을 때 젊어서부터 그렇게 오해를 축적해온 아내의 모습이 장모와 같을 수 있죠.
병원에서 오기는 의식이 깨어날 때 아내의 냄새를 맡거든요. 그게 혹시 장모인가요?
그건 오기의 환상일 수도 있고요, 장모일 수도 있고요. 처음에 쓸 때에 저는 장모라고 상상하며 쓰기는 했어요. 장모가 자고 있는 오기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 무섭더라고요.
약간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선호하시는 편인가요?
저의 소설에는 불안해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죠. 불안이라는 감정은 공포랑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어요. 불안하다는 것은 두렵다는 것이니까요. 특정한 상황에서 한 인간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를 쓰다 보면 내가 겪고 싶지 않은 장면이 연상 돼요. 거기서 이상한 공포가 느껴지죠.
우리는 모두
틈을 갖고 있다
소설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치고 오기의 속마음만 말해줘요. 아주 상세하죠. 궁금한 건 무서운 장모인데(웃음).
이 소설에서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내가 오기를 왜,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걸 너무 자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고 오기가 가진 불안의 종류로서 묻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의사선생님은 유난히 주인공에게 끊임없는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아요.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오기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라면 겪는 과정’이라는 것이었어요. 그 순간 오기가 단순히 소설 속의 오기로만 보이지 않았어요. 버겁다고 느껴지는 것을 짊어지고 있는 불특정 누군가에게 실제로 또 다른 누군가가 응원을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오기한테 물리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줄 인물이 있어야, 그가 자신의 삶을 쇄신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하려고 노력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인물이 의사고요. 보통 의사의 화법이라기보다는 소설 내에서 특정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죠.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할 때 가족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외부에서 타인에게 응원을 받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게 또 힘이 되고요. 가족이 아닌 의사에게서 위로의 말을 듣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 힘이 된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오기가 지금 당장 의존할 수 있는 말은 의사의 말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유일하게 긍정적인 말이거든요.
‘Hole’의 정체가 궁금해요. 저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어요. 오기의 생활에서의 구멍 혹은 빈틈, 그리고 장모가 만든 실제적인 구멍이요.
맞아요. 대게 구덩이라고 하면 물리적인 형태만 떠오르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제목을 홀, ‘The Hole’이라고 지었어요. 어떤 것을 연상해도 좋아요. 하나의 의미로 정해지는 것 보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거든요. 오기가 빠진 구멍, 인물과 인물 사이에 있는 빈틈, 어느 누군가 맞닥뜨린 균열, 일상에서 느닷없이 틈을 보이는 것, 아내의 부재처럼 어떤 존재 자체의 구멍 등등 다양해요. 인간들이 가진 각개의 빈 구석 같은 구멍일 수도 있고요. 각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죠.
가족을 떠나 살고 있는데 가끔씩 혼자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어요.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과의 거리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정말 가족에게도 거리가 필요할까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개인과 거리, 개인과 집단의 거리는 유지되어야 하죠. 누군가에게 가족은 일부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소설은 오히려 ‘함께 없음(without)’에 놓이면서 인간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계의 파멸이랄까요.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잘 안 해요. 자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어떤 관계가 피곤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되돌아보는 것 같아요. 오기 또한 모두가 떠나고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나서야 자신에 대해, 가족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죠.
에디터 이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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