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유어예遊於藝 가족
어떤 가족의
차 마시는 시간
유어예遊於藝 가족
티하우스 ‘유어예遊於藝’가 있는 고성 홍류마을은 서울에서 버스로 네 시간이 걸리고, 읍내에서 다시 십여 분 마을로 들어와야 하는 곳이다. 근처가 아닌 먼 곳에서 오려면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장소나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된다.
아버지의 그릇을 담는 곳
어느 블로그에서 우연히 바깥으로 논이 펼쳐진 카페의 큰 창과 짙은 색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봤다. 영화 속에 나오는 곳 같은 장소가 궁금해서 몇 번 검색하다 그곳이 ‘유어예’라는 이름의 티하우스라는 걸 알게 됐다. 우연히 그곳을 운영한다는 한 가족의 사진도 보았다. 그게 거의 6개월 전의 일이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두 장의 사진이 종종 떠올랐다. 서울에서 네 시간이 걸리는 경상남도 고성에 가게 된 건 그 두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사진 속 모습 그대로의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정갈한 점심상을 차려놓고 내가 어떤 반찬을 먹는지, 먹지 않는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
유어예는 아버지인 박용태 작가의 도자기 브랜드 ‘천광요天光窯’에서 시작됐다. 그가 창작 가마 도자기를 시작한 나이는 부인인 김미순 씨의 말에 따르면 ‘모든 생활을 버려두고 도자기에 몰두하기에는 조금 위험한 때’였다. 젊었을 때부터 도자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그가 망설일 때 부인과 딸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가족들의 지지는 독학으로 도자기를 배우는 그가 자신의 세계를 빨리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원래는 유약을 바르지 않는 무유 작업을 주로 했지만, 가족들의 의견을 따라 요즘은 백자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하동백토를 주로 사용하고 다완(찻사발)을 만들 때는 주변에서 나는 흙을 채취해 쓰기도 한다. 빚어놓은 도자기에서 그의 눈매와 닮은 고운 선과 소박한 멋이 느껴졌다.
보통 도예가들은 개인 다실을 가진 경우가 많다. 천광요에서도 개인 다실을 운영했지만 사람들이 쉽게 찾아오기 쉽지 않고, 편안한 공간이 되기에 힘든 점이 많았다. 유어예는 그런 아쉬움을 담아 많은 사람에게 쉽고 편안하게 천광요의 그릇을 알리고 싶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천광요 작업실에서 박용태 작가는 도자기를 만들고, 작은 딸인 예슬 씨도 함께 도자기 수련하며 도예가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유어예에서는 엄마가 차를 내고, 큰 딸인 혜림 씨가 전통 차과자를 만든다. 생활하는 집과 작업장, 찻집이 모두 함께 모여있는 구조다
차가 있는 생활
밥을 먹고 난 후에 자연스레 유어예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인 미순 씨가 다정하지만 절도 있는 품으로 차를 내려주었다. 그녀가 차를 따르고 있으면 자주 침묵이 흘렀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곧 그것이 ‘다도’의 예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에게 차는 생활이다. 이런 생활은 다시 도자기로 이어진다.
“다도를 배우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요. 전에는 다기가 예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체계적으로 다도의 태도나 행위를 배우니까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이런 것을 천광요에 반영하다 보니 초기 다기에서 많은 점이 개선되었죠. 그래서 도예를 하는 분들은 본인이 직접 다도를 배우기도 해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 차례 마치고 사진을 찍고, 차를 마시고, 천광요 작업실을 구경하고, 그런 다음에는 다시 차를 마셨다. 다섯 시간 동안 총 세 번의 차 시간이 이어졌다. 박용태 작가가 도자기를 하기 전부터 차를 마시는 것은 가족의 일상이 깊이 스며든 일이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마트에서 티백 차를 마시다가 관심이 생겨서 서서히 배우게 됐어요. 차를 준비하는 과정은 수고가 많이 들지만 저는 그게 좋더라고요. 다기를 준비하는 일도 즐겁고, 차를 마신다는 계기로 탁자에 꽃 한 송이도 꽂을 수 있고요. 차를 알기 전에는 그 멋을 몰랐어요. 아이들이 홍역이나 건선으로 앓을 땐 차를 써서 열을 내리기도 했으니 가정상비약이기도 했죠.”
이곳에 오기 전 후기를 몇 개 검색해보았다. 인상적으로 느낀 건, 다녀간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족의 태도와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 특별히 손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있는지 물었다.“찻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라 저희 집에 오는 손님을 대한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집에서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자연스럽게 내 집 손님한테 하듯 대하게 돼요. 처음엔 어색해서 ‘어서 오세요.’란 말도 잘 안 나와서 그냥 미소만 지었어요. 서투른 점이 많은데 좋게 봐주시니까 감사하죠.”
처음 이 공간을 만들 때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리라고 생각 못했지만, 주 고객층은 20~30대라고 한다. 가족들은 고마운 마음을 내비치는 동시에 걱정 섞인 얼굴을 짓기도 했다. 그저 찻집 유어예로만 즐기다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요즘은 그들이 유어예에서 도자기와 차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어떻게 천광요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의
가업
가업은 대대로 물려받는 집안의 생업, 혹은 한 집안이 이룩한 재산이나 업적을 이르는 말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뜻은 아니지만, 나는 그들에게도 ‘가족의 일’이라는 뜻에서 가업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딸은 스스럼없이 “아빠가 크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아빠는 가마가 열리는 날을 ‘혼나는 날’이라고 칭하면서도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처음에 그들이 “아빠를 중심으로 가족의 모든 일이 돌아가요.”라고 이야기할 때 혹시나 그게 가부장적인 가치를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곧 가족이 서로의 일을 마음 다해 존중한다는 의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만든 도자기, 그 일을 잇는 딸, 그 도자기에 차와 음식을 담는 딸과 엄마. 가족의 일상은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나눠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함께 굴러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늘빛처럼 자연스러운 도자기를 만든다는 천광요의 뜻과 닿아있다고 느껴졌다. “유어예를 열면서 일을 한 가지씩 맡게 되니 역할이 더 분명해진 것 같아요. 서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예의도 생기고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내 품 안의 자식이었다면, 지금은 가족 이전에 좋은 친구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평범함이나 특별함이 아닌
아름다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좋아 보이는 그들에게도 극복해야 하는 시선이 있었다. “자기 길을 가야 하는아이들을 산골에 붙잡아 두고 있다는 말도 들었어요. 왜 경쟁사회에 내놓지 않고 부모 품에 끼고 있느냐고요. 아이들을 무능력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시선을 극복하느라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런 분들도 나중에는 저희처럼 함께 사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세상은 이것도 저것도 정답이 아닌데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 이 가족의 모습을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특별함’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평범하다거나 특별하다는 말로 무엇을 묶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평범함이나 특별함은 어떤 것에 비추어 봤을 때의 얘기니까 말이다. 긴 이야기를 마칠 때 즈음, 자료를 찾다 우연히 본 미순 씨의 글이 떠올랐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것들뿐입니다. 관계의 깊이를 생각했습니다. 계산 없이 마음이 일으킨 사이입니다.’ 그 말을 생각하며 가족이라서 닮은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모습을 좋아해서 닮아있는 이 가족을 특정한 단어로 묶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도 바보같이 어떤 말이 떠올랐는데 그건 ‘아름답다’는 말이었다.
도자기와 차를
함께 즐기는 법
유어예는 천광요 그릇에 차를 낸다. ‘예술에 노닐다’라는 뜻대로 도자기와 차를 함께 즐기기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중국 차는 다기 세트와 함께 내고, 한국 차는 1인용 다완(찻사발)에 낸다. 사발에 차를 마시는 것은 다도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단계로, 쉽게 접할 수 없는 방식이다. 중국 보이차는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가격대에서 부끄럽지 않게 낼 수 있는 차를 선택한다. 차과자는 모두 요리를 전공한 혜림 씨가 직접 만든다. “한국 차를 내다보니 전통 차과자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따로 공부도 하고 약과는 서울에 가서 배우기도 하고요. 제가 배웠던 이탈리아 요리와 장르는 다르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도움돼요. 예를 들어 구운 약과 같은 경우에는 페이스트리를 올리는 것처럼 겹겹이 반죽하고 오븐에 구워서 만들거든요.” 그녀는 서양 디저트가 만드는 기술을 강조한다면 우리나라는 재료를 준비하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힘이 실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유어예에서는 차과자와 더불어 고성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지어진 쌀을 이용한 아이스크림과 말차 아이스크림도 즐길 수 있다.
01 말차 | 1만 5천원
500년 전통 일본 ‘三星園上林三入’의 최고급 말차
02 곶감말이 | 2천원
친환경 덕산곶감에 국산호두를 넣어 말은 쌈
03 구운 약과 | 3천원
유기농 밀가루와 쌀조청으로 오븐에 구워낸 개성 모약과
04 다식과 백자편 | 다식 1천 오백원~2천 5백원, 백자편 3천원
송화, 새우, 코코넛, 흑임자, 서리태를 이용한 다식과 가평 잣으로 만든 잣강정
05 돌감잎차 | 7천원
야생 귀감잎으로 덖어 만든 차
유어예
경남 고성군 고성읍 월평3길 265
T. 070 4120 0431
O. 11:00~19:00(월, 화 휴무)
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