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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부암동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저 세상 사람을 만났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이였지만,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을 들춰보다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조금씩 아껴가며 그를 알아왔고 여전히 알아가고 싶다. 그 남자의 이름은 김환기다.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10-8번지
2008년이었나, 9년이었나.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하여간 그즈음에 서울에 상경한 나는 여행하는 기분으로 서울을 걷곤 했다. 아는 사람이 없었고, 할 것도 없었고, 돈 쓰는 법조차 몰랐기에 이리저리 걷는 게 유일한 친구이자 일이고 소비였다. 그렇게 걷다가 부암동이란 동네를 발견한 적이 있다. 시골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고급 맨션이나 높은 담이 있는 동네였지만,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기도 했다. 그곳을 걷다가 멀리 예쁜 나무 하나가 보였다. 담의 안과 밖에 얽혀 있는 나무가 눈앞에 가까워졌을 때, 담벼락에 적힌 ‘부암동 210-8’이란 작은 글자와 ‘환기미술관’이란 푯말도 같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낯선 단어라 “환기”라고 소리 내어 읽어봤다.
미술관 안쪽으로 걸어 올라가 전시관의 유리문을 밀어봤지만 닫혀있었다. 전시가 없는 때에 찾은 모양이었다. 아쉽게 걸음을 옮기다가 미술관 아트숍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했다. 그 안에 들어가 몇 가지 물건을 보고 나서야 ‘환기’라는 단어가 ‘공기를 환기하다’의 뜻이 아니라 ‘김환기’라는 사람의 이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순수하게 말하는 방법을
기억하는 어른
그곳에서 사진엽서 한 장을 발견했다. 키가 큰 남자와 그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여자가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 놓여있는 책 한 권을 펼쳐보고 나서야 사진 속의 남자가 화가 ‘김환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어 든 책은 김환기의 수필을 엮은 것이었다. 뒤적거리다 그와 그의 아내 김향안이 프랑스에서 생활할 때 생겼던 일에 대해 읽게 되었다. ‘1957년 9월초에 남불 니스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다. 니스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고 잇달아 국원이 왔었다. 이제 곧 가서 12시 방송을 해 달라고 했다. 한국 미술가로서 무엇이든 10분 동안만 얘기해달라는 것이었다.’라고 시작된 짤막한 산문이었다. 김환기는 방송에 나가는 것이 초조했고, 아내는 여기엔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자신이 잘 통역을 하겠다며 남편을 안심시킨다. 그 뒤엔 그가 방송에 나가 했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우리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 하늘뿐이 아니라, 동해바다 또한 푸르고 맑아서,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그런 바다입니다. 나도 이번 니스에 와서 지중해를 보고 어제는 배도 타봤습니다만, 우리 동해바다처럼 그렇게 푸르고 맑지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결을 좋아합니다. 깨끗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백의민족이라 부르도록 흰빛을 사랑하고 흰옷을 많이 입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사는 우리들은 푸른 자기 청자를 만들었고, 간결을 사랑하고, 흰 옷을 입는 우리들은 흰 자기, 저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 김환기, 편편상(片片想). 1961. 9
이 글을 읽지 않았다면 사진 속의 김환기를 ‘멋있는 화가 아저씨네.’ 정도로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화가가 한때 세상에 있던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당시 나는 대학에 갓 입학했고 많이 아는 어른들이 말하는 방식에 실망하던 참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순수하게 말하는 방법을 기억하는 어른이 있다는 걸 그를 통해 알았다. 기쁜 마음에 선 자리에서 그 부분을 몇 번씩 읽고 또 읽었다. 그가 보고 느끼고 옮겨둔 세상을 더 알고 싶어졌다.
이 속에서도 우리는 재미나게 살고 싶다
김환기를 알기 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 들뜬 마음에 그가 쓴 책을 모조리 사서 읽어 버렸다. 며칠간 방에 틀어박혀 다 읽었는데 홀가분하기보단 어쩐지 허무하고 아쉬웠다. 그 후론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아끼고 또 아끼는 버릇이 생겼다. 알고 싶은 마음이 참는 마음을 앞설 때가 더 많지만, 기다리다 보면 들뜬 마음이 가라앉고 그 속에 생겨나는 고요한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환기미술관을 찾았다. 옹색하지만 그가 쓴 책을 그곳에서만 읽었다. 책을 사 갖고 집에 가면 단숨에 읽어버릴 것이 빤했다. 아트숍에서는 눈치도 보이고 불편해서 오래 책을 볼 수 없으니 번번이 조금씩 나눠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읽은 것들은 김환기가 쓴 수필을 엮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책과 그 옆에 놓인 김향안의 《월하月下의 마음》이었다. 아트숍을 나올 땐,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연필, 엽서, 머그잔, 수첩 같은 기념품을 사곤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진 못했을 거고 일 년에 몇 번 찾는 손님을 기억할 리도 없지만. 그때마다 환기미술관의 직원들은 늘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었다.
‘김환기는 편지를 참 잘 쓴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다감한 글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정이 넘쳐 흐르는. 그러나 나는 곧 답장을 쓰지 않았다. 그러면 일방적으로 또 편지가 왔다. 나는 그의 편지를 몇 번씩 받으면 한 번씩 답을 썼고, 그러는 동안에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던 우리는 편지로서 가까워졌다.’
– 김향안, 정(情)이 넘쳐 흐르는 수화의 편지
얼마 전에 어느 할아버지가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나이가 좀 있는 남자가 멋있으면, 그건 그 옆에 있는 여자가 만든 것일 가능성이 크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를 ‘만든’ 김향안을 그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술을 마시든 게으름을 피우든 아무 소리가 없다. 돈을 못 벌어오는 데도 아무 소리가 없다. 먹을 것이 있든 없든 항상 명랑하고 깨끗하다. 아내는 능금을 좋아하는데 궤짝으로 사다 두고 먹여 본 적이 없다. 과용하고 돌아오는 길, 가다가 몇 알 사들고 와서 손에 쥐어 주면 그만 어린애같이 좋아한다. 나는 아내가 능금을 움푹움푹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
– 김환기, 산처기(山妻記). 1952. 3
가끔 미술관을 찾아 읽었기에 목차를 보고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읽었다. 읽은 내용을 또 읽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뒤죽박죽 내 머릿속에 기억되는데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가 않다. 그렇게 읽은 이야기 중 수년간 오래 남는 것은 ‘가시 울타리랑 걷어치우고’다.
‘우리도 좀 재미나게 살 수는 없을까. 사는 것이 신바람이 나는 그러한 방법은 없을까. 사람은 혼자만이 재미있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서로 어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알아보고, 가시 울타리도 걷어치우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중략) 수도 서울에서 촛불을 켜고 우물물을 먹으며 통행금지 속에서 산다. 원시적이고 보다 화기애애한 생활을 하는 운치로 보아 왔지만 이 속에서도 우리는 재미나게 살고 싶다.’
– 김환기, 가시 울타리랑 걷어치우고. 1953. 3
내가 아는 김환기와 김향안은 가난했고 때로 고독했다. 예술가와 그의 아내로 살아가며 불어 닥치는 일들에 어쩔 줄 모르는 밤도 있었다. 사고 싶던 청자를 사고 밥을 굶은 날엔 사는 게 퍽 서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끝엔 어김없이 ‘재미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놓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는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詩 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통해 그는 ‘그리움’을 노래한다. 절친했던 시인 김광섭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김환기는 친구가 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림, 그러니까 노래를 시작한다. 더는 보지 못할 사람을 그리며 하나의 점을, 그와 이야기 나누던 서울의 어느 방을 그리며 두 번째 점을, 함께 보았던 하늘을 그리며 세 번째 점을…. 그런 식으로 수많은 점이 모여 그림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걸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환기도 세상을 떠났다.
그 그림은 후에 한국을 대표하는 점화가 된다.파란 점들이 무수히 모여 완성된 이 그림은 멀리서 보면 밤하늘이나 푸른 바다를 떠오르게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아름다운 색과 점의 그림일 수도 있지만, 그가 일찍이 프랑스에서 얘기했던 ‘아름다운 한국의 푸른 빛’이나 우정과 사랑을 대하는 순수함을 알게 되면 그런 마음으로만 보기 어려워진다.
이 그림엔 푸른 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재미나게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살아온 평생,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온 그 삶의 그리운 것들이 점으로 남았다. 그는 무엇을 그리워했을까. 추측해볼 순 있지만, 누구도 그 점들을 완전히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오롯이 그만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 푸른빛이 슬프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그리워할 것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 없는 이를 두고 어떤 것도 확신해선 안되겠지만, 그 점을 하나씩 찍어 내려가며 그가 내내 고통스러워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운 것들의 얼굴을 그리다 보면 그것을 다신 볼 수 없어도 미소를 짓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296x216cm짜리 여백이 주어졌다면, 점 대신 흰 부분이 더 많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워할 것이 무수한 삶을 누구나 살아보는 것은 아니겠지.
별이 많은 밤하늘을 볼 때는
그를 기억하곤 한다
김환기 작품은 경매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그림이 고가로 경매에서 팔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살아생전에 그가 보았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곤 한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정말 기뻐했을까? 묻고 싶지만, 그는 답이 없다.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 김환기, 편지와 일기. 1968. 1
그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고 싶지만, 아직 몇십억짜리 작품을 살 형편은 못 된다.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곤 한다. 우선, 그림을 보며 울고 웃는다. 특히 점화들은 그 점 하나하나를 뜯어 보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곤 한다. 때론 그게 오해일지라도. 얼마 전엔 그의 그림이 들어 있는 5만 원짜리 우산을 샀다. 5천 원짜리 밥을 사 먹는 내게 그 우산은 과분한 사치였지만,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고 그걸 샀다. 그가 좋아했던 동네에 있는 환기미술관을 종종 찾는다. 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점, 그러니까 별이 많이 박힌 밤하늘을 볼 때마다 그를 기억하곤 한다.
환기미술관
whankimuseum.org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0길 63
Tel 02 391 7701
Open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에디터 박선아
자료제공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