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어디서든 너 자신을 잃지 마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나도 모르게 아들 녀석들에게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어느새 육아 경력 9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뒤뚱거린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에 비하면 여유가 생긴 것 같지만 ‘오늘보다 더 쉬운 육아는 오지 않는다.’라고 했던 육아 선배 말이 무슨 의민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하루하루를 산다.

나에게 주는 선물

엄마가 되기 전, 나는 방학이 되면 긴 여행을 떠나고 하루 일과를 마치면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떠들기를 즐겨 하던 사람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투박한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끄적이기 좋아하고 그런 시간을 주기적으로 만들며 살았다. 그러다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다는 것은 내 예상보다 무게감 있는 말이었다. 그 무게를 감당하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 갈 시간조차 방해받기 일쑤였으니 엄마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란 그야말로 금쪽같은 것이었다. 남편이 일찍 집에 들어와 마음 편히 샤워를 할 수 있는 날에는 혼자 있고 싶어서 일부러 오래 샤워를 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도움(주로 엄마, 가끔 남편)이 있어야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나는 첫아이의 첫돌을 치르고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행을 보내달라고. 혼자 여행을 갈 수 있게 우리 아이를 돌봐달라고. 그 무렵에 나는 이대로 지내다간 내 자신을 잃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던 것 같다. “어디서든 너 자신을 잃지 마.” 남편이 내게 해준 말 중에 가장 깊이 마음에 담아둔 말이다.

남편은 기꺼이 그 시간을 만들도록 허락했다. 뒷감당의 팔 할은 친정 엄마의 몫이 될 거라 예상됐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타이베이행 항공권을 결제했다. 목적지가 타이베이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3박 4일 일정으로 갈 만한 도시 중에 비행기로 두세 시간이면 도착하고 가본 적 없는 곳을 찾으니 딱 타이베이였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나만을 위해 3박 4일을 지내려니 꿈만 같았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사진을 찍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 여행. 엄마로 일 년을 살아낸 나에겐 진정한 휴가였다. 짧지만 느슨한 여행. 아무 일이 없어도 혹은 무슨 일이 생겨도 혼자 여행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이후부터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 안에서 어떤 감정들이 오고 간 걸까? 그 감정들을 달래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여행 내내 나는 왠지 모르게 자주 울컥했고, 타이베이는 실컷 울고 싶던 도시로 기억에 남는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적절한 시기가 되면 ‘어디로 가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고민을 하며 일상을 버티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이 주는 힘이라고나 할까?

혼자여도 충분해

두 번째 여행은 둘째 아이를 낳고 일 년이 될 무렵에 하는 걸로 혼자 마음을 먹었다. 목적지는 홍콩. 내게 홍콩은 쇼핑하러 가는 곳 혹은 다른 나라로 건너가기 위한 경유지일 뿐이었다. 그런데 여행지로 홍콩을 선택하니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매력적인 도시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매력적인 도시에서 만족스러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꽉 찬 2박 3일의 비행기 스케줄, 혼자서 뒹굴뒹굴하기에 깨끗하고 전망 좋은 방. 이 두 가지를 준비하면 나머지 일정은 느낌 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면 되었다. 

“여행의 첫날. 평소와는 다른 시작을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공항 가는 첫차를 타고 환전을 하고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아이들을 잠시 잊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한다. 비행기 기체에 떨어진 햇빛 조각에도 쉽게 흥분이 된다. 홍콩에 도착한 나는 크게 한 번 숨을 내쉬고 구글 지도를 열어 숙소까지 가는 길을 찾는다. 지도를 보고 내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다시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건 꽤 즐겁다. 내가 가야 할 곳을 마침내 찾았을 때 묘한 성취감이 느껴진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나왔는데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홍콩의 우기가 시작됐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비가 쏟아지지만 나에게 다음은 없다. 지금이어야 하고 오늘이어야 한다. 비를 뚫고 양조위의 단골 국숫집을 찾아가 배를 채우고, 분홍 아파트와 야자나무 그리고 새소리가 가득하던 골목길을 찾아 잠시 머물고, 발이 젖은 채로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고 싱거운 야경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잠들기 전 다음 날 일정을 대충 계획한다. 알람은 세 번 맞춰두지만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진다. 둘째 아이가 자다 일어나 우유를 찾는 시간이다. 창밖 날씨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잠이 달아난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지도 없이 골목을 걸어 다니며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여행지에서의 나의 일상이 된다. 2박 3일 여행에서 이틀째 되는 날은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가장 홍콩스러운 이동수단인 트램을 타고 느낌 가는 대로 가볼 작정을 한다. 일종의 의식처럼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며 화장을 하고 호텔 방을 나선다. 트램의 2층 맨 앞좌석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매력적인 도시를 감상한다. 출출하다 싶어 찜해둔 카페를 찾아간다. 구글 지도가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내가 가고 싶은 곳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신기한 세상이다. 1950년대부터 영업 중인 미도카페에서 밀크티와 프렌치토스트를 시킨다. 밀크티는 생각보다 밍밍하고 토스트는 예상대로 느끼하다. 여행이 너무 완벽해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건지 이대로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관광객 모드로 피크트램도 타기로 한다. 피크트램을 타려고 한참 줄 서 있다가 친구를 만든다. 여행의 기술이다. 중국에서 온 그녀와 함께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분위기 좋은 루프탑바를 찾았다. 로맨틱한 공간에서 모히또를 한잔하니 여행을 완성한 기분이 든다.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온 나는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다.”

두 번째 혼자만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기록을 정리하니 2박 3일간의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곧 땅으로 내려가면 또다시 엄마로서의 삶이 계속되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다. 가끔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한 나는 해마다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짧은 여행을 하고 있다. 아들아.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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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사진 전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