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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즐거운 봄이 왔다.
지금 양평에서는 딸기축제가 한창이다. 하루 종일 딸기만 보고 올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날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모습은 아마 마주한 사람들의 웃음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딸기를 따고, 고기를 잡는 건 생각보다 많은 웃음이 필요한 일임을 다녀온 사람만이 알겠지.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문득 그날의 사람들과 내가 생각나서 입술이 흐물흐물 춤춘다. 즐거운 봄이 왔다.
우리의 만남은 어색했지
용문면에 있는 민물고기 학습관 앞. ‘숲 속의 명품 마을’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이 적힌 현수막 앞으로 사람들이 쭈뼛쭈뼛 모여 섰다. 아이가 있는 가족 두 팀과 커플 두 팀. 주말 방문객은 보통 200명이 넘는다는데 평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겨우 12명이 전부였다. 넉살 좋은 담당자 아저씨 덕분에 서로 어설프게나마 눈인사를 나누고 바로 딸기농장으로 이동했다. 자동차를 타고 10분 남짓 이동하자 조그마한 농장이 보였다. 주택 너머로 이어진 비닐하우스 앞에는 솜 뭉치 같은 강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앉아 있었다.
‘벌말 농원’이라는 이름에 맞게 하우스 안에는 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주인아주머니는 너무 겁먹지 말라 당부하며, 딸기 따는 법을 알려주었다.
“사람의 손으로 인공수정을 하는 것보다 벌을 통해 자연수정을 하는 게 수정률이 더 높아요. 여태껏 벌한테 물린 사람은 없으니까 걱정은 말고! 딸기는 윗부분을 잡고 손목을 이용해 위나 아래로 살짝만 꺾으면 됩니다. 손이 많이 닿으면 금세 무르니까 딱 딸 것만 정하고….” 아주머니에게 받은 투명한 곽에 딸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딴 것을 엄마에게 자랑하는 아이, 서로가 큰 것을 따려고 다투는 연인, 네 개의 박스를 채우기 위해 서둘러 따는 부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입에 빨간 딸기를 물고서 허리를 굽혀 딸기를 관찰하는 모습은 귀여웠다. 각자의 기준으로 가장 맛있는 딸기를 고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색이 선명하고 예쁜 모양의 딸기를 발견하면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입에 먼저 넣어주는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먹으러 왔던가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곳은 엉뚱하게도 이장님 댁이었다. 최소 20명 이상일 때는 지정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적은 인원일 때는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이장님은 수줍은 목소리로 “차린 건 없지만,많이들 잡숴~”라며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의 대사를 읊으셨다. 하지만 말씀과는 반대로, 상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차려진 음식이 많았다. 봄나물 무침, 깻잎장아찌, 달래 된장국 등 푸짐한 시골 밥상이 차려졌다. 머슴이 먹을만한 고봉밥은 옵션이었다. 매번 피자나 파스타 같은 음식만 찾던 내가 갑자기 ‘춘삼이’ 같은 이름이라도 내려받은 사람처럼, 반찬이든 밥이든 푹푹 잘만 들이켰다. 겸상을 한 사람들도 말없이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질 음식들을 모르고 우리는 그렇게 먹고 또 먹었다.
담당자 아저씨는 앞서 이번 프로그램의 취지를 ‘먹고 죽자’라고 소개했다. 그 말이 허풍이 아니었나 보다. 다음 일정은 피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담한 회관 안에 들어서자 어딘가 긴장한 듯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그녀는 오늘 자신과 함께 고르곤 졸라 피자를 만들 것이라며 먼저 치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 여러분 고르곤 졸라, 많이 들어봤지요? 이탈리아의 고르곤 졸라라는 마을에서 처음 만들어진 치즈에요. 흔히들 피자에 넣어 먹지요….” 교과서를 외운 듯 정직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호호할머니가 떠올랐다. 작고 통통한 체구에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었다.
피자를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토르티야Tortilla 위에 고르곤졸라를 얇게 펴 바르고 아몬드, 땅꽁, 해바라기씨를 골고루 뿌린 뒤 피자치즈를 올리면 완성이었다. 할머니의 설명을 귀담아듣고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고 있었는데, 언제 오신 건지 이장님은 답답하다는 듯 숟가락을 뺏어 치즈를 둥그렇게 펴주었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아 함께 피자를 만들었다. 재료를 집어먹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나름 짧은 팔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자를 회관 옆에 자리한 화덕에서 구웠다. 완성된 피자는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어딘가에 표시했는지 다들 각자의 피자를 잘 찾아냈다. 내가 만든 피자를 마지막으로 각자 자리에 앉아 피자를 맛보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은 부족한 것 같은 재료에 맛이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제법 훌륭한 맛이었다. 그 위에 농장에서 갓 따온 딸기를 돌돌 말아 먹으니 다양한 풍미가 느껴졌다. 어느새 이곳을 찾은 이유를 잊고, 체험자들 사이에서 열심히 참여하고(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밖으로 나오자 노릇하게 익은 피자 냄새가 마을에 넓게 펴져 있었다. 무언가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한국의 시골풍경과 진한 피자 냄새라니, 다소 어색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머리를 맞대고서먼 나라의 음식에 대해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어설픈 흉내라 할지라도 모두 괜찮다고 말할 것 같았다. 체험을 위해서라기보다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결국엔 다 같이
마지막 체험은 ‘송어 잡기’였다. 미리 잡은 물고기를 일정한 공간에 풀어놓고, 손으로 잡는 식이었는데 사실 좋은 체험은 아닌 것 같았다. 구석으로 도망가는 물고기를 보며 괜스레 생기는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또 그것을 잡을 자신도 없어서 지켜보고만 있기로 했다. 먼저, 찬물에 발을 담그기 전에 간단한 체조를 시작했다. 어른과 아이 모두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데 어쩐지 그 모습은 영화 <안경>에 나온 한 장면 같았다. 영화에는 주인공들이 모여서 메르시 체조라고 부르는 요상한 동작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우리는 별다른 동작을 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아이들은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숨넘어가듯 웃어댔고, 어른들은 언제인지도 모르는 유년시절 때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어떤 커플 중 한 명은 텔레비전에 나온 큰 송어축제를 생각했다며, 선글라스와 짧은 반바지 차림을 하고 왔다. 작은 수로 같은 곳을 보고 본인도 머쓱했던지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여자친구에게 큰 물고기를 잡아주겠다며 소리치던 그는 결국 가장 마지막에 한 아저씨의 도움으로,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겨우 잡았다. 어쨌거나 서로 돕고 도와 모두의 손에는 물고기가 담긴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할아버지가 능숙한 솜씨로 손질해 준 송어를 들고 장작이 있는 주변으로 모였다. 처음에는 어느 누가 큰 것을 잡았나 힐끗힐끗 보곤 했는데, 결국에는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함께 구워 먹었다. 양은 주전자에 담긴 걸쭉한 막걸리도 나눠 마시며 꽤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축제는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다
12명이 참가한 딸기 축제는 반나절이 돼서야 끝이 났다.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박스에 담긴 딸기를 야금야금 꺼내 먹었다. 그리고 ‘내가 딸기를 좋아했었나?’ 또, ‘축제를 좋아했었나?’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여전히 딸기를 놓지 않으면서. 사실 나는 둘 다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짧은 추억으로 인해 생각이 바뀐 것 같았다. 낯선 이들과 함께한 추억은 금세 휘발될 것이라 여겼던 마음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한때는 내가 가지지 못한 행복을 보는 것은 배 아프고 괴로운 일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내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얇은 머리카락을 나풀나풀 흩날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볼 때 내 어린 시절도 떠올랐고, 티격태격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연인을 보는 동안 지나간 사람과의 시간이 머릿속에 맴돌기도 했다.
어쩌면 혼자 왔기에 느낀 일시적인 외로움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이 된 듯했다. 갖고 싶은 명품가방이 진열된 쇼윈도 앞에 서 있는 모습이랄까. 언뜻 비치는 내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문을 열고 그곳에 들어가 보려 한다. 사지 못해도 만질 수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어느 날 경험한 어설프고 웃긴 축제가 내게 행복에 가까이 가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 또한 예상치 못한 우스운 일이지만 이제는 적어도 ‘사랑’, ‘웃음’ 같은 단어를 말하는 내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바야흐로 즐거운 봄이 왔다.
딸기체험 예약하기
양평마을 곳곳에서 딸기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마다 일정이 다르므로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체험이 있는 마을을 찾아서 예약하면 된다. 보통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쯤에 마무리되지만, 진행내용은 마을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전화로 문의하는 것이 좋겠다. 축제는 5월 31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 517
festival.ypnadri.com
Tel 031-774-5427
에디터 이혜인
포토그래퍼 박소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