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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New York
다들 그러지 않나.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여행의 꿈이 있지 않은가. 현실에 치이고 휴가는 뜻대로 되지 않고, 돈은 돈대로 문제. 이것저것 따지면 아무것도 못 하게 마련이다. 여름의 ‘바쁨’을 미리 감지하고 4월에 미리 떠난 휴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상 도피와도 같은 여행이었지만 나에게는 막연한 그림이 있었다. 홍대 거리를 걷는 것처럼 뉴욕 곳곳을 거니는 상상, 이방인이지만 그 속에 동화되고 싶은 일체감, 그럼에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현실에의 안주. 그게 뉴욕에 대한 나의 그림이자, 뉴욕을 서른 살의 첫 여행지로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공항철도 안 캐리어를 든 사람들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고수하는 여행의 법칙이 있다면 단 두 곡의 노래를 계속 반복하는 것. 마이 앤트 메리의 ‘공항 가는 길’과 김동률의 ‘출발’이 그것이다. 사람의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아서, 10년 전부터 이 노래들은 여행길의 동행이 되어주었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뉴어크Newark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에는 JFK, 라과디아La Guardia, 뉴어크까지 세 개의 공항이 있는데 3분의 1씩 출·도착 업무를 나눠 가진다고 했다. 라과디아 공항은 김포 공항처럼 국내선 위주, JFK와 뉴왁 공항은 국제선을 맡는다. 공항 밴을 타고 맨해튼Manhattan 중심부에 있는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룸메이트들에게 인사를 한 후, 거리로 나왔다. 무작정 걸었다. 뉴욕의 길은 애비뉴Avenue와 스트리트Street로 구획이 나뉘고 동서남북으로 끝없는 길이 나 있다. 평소 한국에서도 걷기를 좋아하고, 모르는 버스를 타고 훌쩍 떠나는 이상한 취미가 있는데, 낯선 타국의 도로와 처음 보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더할 나위 없었다. 그저 내 운동화와 두 다리가 버텨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뉴욕에 대해 잘 아는 친구는 내가 맨해튼보다 브루클린Brooklyn을 좋아할 거라 했다. 서울로 따지면 명동과 성수동, 부산에 비유하면 해운대와 남포동의 상반된 분위기가 두 곳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더럽기로 유명한, 그러나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 뉴욕의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서 브루클린으로 건너왔다. 뉴욕 최고의 포토존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를 찾기 위해서였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포스터로 유명하고, <무한도전>의 달력 배경이 된 곳이다. 교각 사이로 작게나마 뉴욕의 상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담을 수 있는 그야말로 기막힌 장소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유명한 장소보다 더 나를 설레게 한 건, 고즈넉한 브루클린의 거리였다. 여행의 감흥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라 ‘눈으로만’ 담고 싶었다. 카메라가 끼어들 여유는 없었다. 족히 100년은 되었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건물들, 정갈한 창문들,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은 분에 넘치게 아름다웠지만 사실 건물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건축물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마주할 때의 기쁨은 여행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다시 강을 건너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타임스퀘어보다 꼭 찾고 싶은 공간이 있었다. 14년 전 테러로 인해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이 있던 두 개의 공간에는 하나의 건물과 하나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2014년 문을 연 9/11 메모리얼 뮤지엄9/11 Memorial Museum이 있고, 다른 한 곳에는 인공 호수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있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이었다. 호수로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 앞에서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2001년, 언니의 생일이기도 한 9월 11일 뉴욕에서는 이토록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다. 궂은 날씨에도 뮤지엄을 찾는 방문객들의 끊임없는 발길은 오히려 큰 위안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묵념하는 것으로 애도를 대신했다.
사실 여행은 뉴욕이 전부가 아니었다. 뉴욕에서 비행기로 2시간가량 떨어진 시카고가 제2의 목적지였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학회 일정 때문에 시카고로 왔고, 그 시기가 나의 여행과 공교롭게도 겹쳤다. 일주일의 여행 가운데 23시간을 할애해 시카고로 떠났다. 왜 외국에만 나오면 나라 사랑이 깊어지는지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걸린 태극기가 내 마음을 잠깐 흔들어놓았다. 그리고 시카고의 별칭인 ‘윈디시티’에 걸맞게 해운대 바닷바람보다 매서운 칼바람이 격렬하게 반겨주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해야 했다. 원조 시카고 피자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에 있는 극장을 구경하며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영화 마케터라는 직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극장이라는 공간과 영화라는 매개는 언제나 나를 들뜨게 만든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만 남았을 무렵, 일주일 내 쌀 섭취를 못 한 나는 강한 무언가에 이끌려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일어나 공항에 가야 했지만 김치전과 김밥, 김을 전부 먹어버린 건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이토록 행복할 수가. 서툰 영어로 주문을 하고, 고국의 맛을 잠시나마 즐겼다. 그렇게 마지막 특식을 뒤로한 채 신혼여행은 꼭 뉴욕으로 오리라 기약 없는 다짐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위스 호텔
Wythe Hotel
80 Wythe Ave, Brooklyn, NY 11249
한인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 1박 가격은 평균 5~6만 원 선. 일주일 동안의 숙소가 필요한 내게는 1박에 50만 원을 웃도는 뉴욕 시내 호텔 10분의 1 수준의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꼭 가고 싶던 호텔은 브루클린의 ‘Wythe Hotel’. 1900년대 초 방직 공장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주말이면 호텔 루프탑에 입장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지어 서 있을 정도다. 인원 제한이 있어 여유 있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음료 가격도 5~14달러로 합리적이다.
글 사진 김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