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엔가 문득, 조금씩

나는 지금 ‘인도의 꿈속’에 있다

우울한 파랑의 도시, 조드푸르

우리는 파랑에 젖은 방에 서식하고 있었다. 푸른 도시의 더위에 수분을 잃은 말린 자두의 달콤함을 빨며. 채 여물지 못한, 선정적이고 무의미한 스물한 살의 농담들이 방 안을 유영하고 사막과 가까운 도시, 블루시티에선 물비린내가 났다. 육지를 탐하던 물고기들의 비늘이 골목골목 쌓여 썩어가는 냄새였다. 

조드푸르Jodhpur는 파란색으로 유명한 도시다. ‘블루 시티’라는, 꽤나 팬시한 별명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 도시에 도착하게 된 여행객들은 시야 가득 밀려오는 컬러감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심지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 구색을 맞추려는 듯 파란색 옷을 즐겨 입는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색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블루시티의 역사에서는 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파란색은 한때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이 주로 사용하던 색이었다고 한다. 브라만 계급은 신과 인간의 다리 역할을 하는 성직자 신분이다. 계급을 뛰어넘어 브라만의 신분으로 살 수는 없더라도 신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고자 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파란색으로 주변을 칠하기 시작했다. 지붕을, 담장을, 가난을, 현실을 파랗게 칠하고 파란 옷을 걸쳤다. 마치 물고기의 보호색처럼.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역사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블루시티 구색을 맞추기 위해 파란색을 칠하거나 입는다고 하지만, 가이드북에 짤막하게 기록된 역사를 읽고 도시를 다시 보니 물결치는 푸른색이 간절하다 못해 애절하게 느껴졌다. 

사막의 율동에 갇히다, 자이살메르

타인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건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는 것처럼 울렁거리는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울렁임은 점점 익숙해져 갈 테지만 언젠가, 그렇게 우리는 맹인이 되어 어둠 속에 서로를 아로새기게 되었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오겠지. 

우리는 맥주를 한 병씩 나눠 마시고, 사막의 밤을 걸었다. 걷고 걸어도 끝이 없는 곳. 가로등 하나 없지만 달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환했다. 취기에 달아오른 뺨에 모래 섞인 사막바람이 스쳤다. 친구가 뻐끔뻐끔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바람 소리 때문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사막 위의 언어는 바람으로 존재했다. 우리는 바람으로 다투고, 바람으로 고백하고, 바람으로 울며, 바람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뻐끔거리는 서로를 보며 웃다가 하늘을 보았다. 보라색으로, 곤색으로, 검은색으로, 또 쥐색으로 울렁거리는 사막의 밤하늘. 그 위로 바람이 걷어간 우리의 목소리와 부끄러움과 시간 따위가 잘게 부서지고 흩어져 반짝였다. 덜 식은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처럼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사막의 밤을 내달리고 싶었다. 모래 위에 남긴 모든 걸음과 그에 닿는 감각의 스펙트럼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기억의 지속>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사막 위에 흐물거리며 늘어진 시계들처럼, 그렇게 누워 물컹이는 밤을 꼭꼭 씹어 삼키자 아침이 왔다. 모닥불로 끓인 짜이와 삶은 달걀로 빈속을 채웠다. 사막의 지평선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낙타의 뒤척이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낙타꾼 하나가 손때가 반질반질한 칼을 들고 낙타 털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낙타 털을 깎으며 아침을 맞는 낙타꾼들의 삶이 건방지게도, 부러웠다.

호수에 떠가는 하루, 우다이푸르

우다이푸르Udaipur의 오후, 호숫가를 떠돌던 개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낮잠을 자고, 골목을 떠돌던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물고 꿈을 꿨다. 이따금 정전이 되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마치 나의 우울과 같이. 호수에 반사된 빛에 누군가는 빨래를 했고, 누군가는 몸을 씻었으며, 누군가는 죽은 아버지를 위해 머리를 깎았다. 망고 씨의 노란 섬유질이 햇살처럼 썩어가고, 시간은 한낮의 몽유병자처럼 걸었다.

우다이푸르에서 묵은 숙소엔 호수가 보이는 옥상이 있었다. 달이 밝던 그 밤에 바람을 쐬러 친구들과 옥상에 올라갔는데, 인도인 아코디언 악사가 낡은 건반을 두드려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엔 스위스에서는 교사의 신분이지만 이곳에서는 악사의 애인이라는 백인 여자가 바닥에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자를 내려다보며 연주를 하는 악사의 시선이 둥글었다. 백인 여자의 맨발은 호수 위에 아무도 모르게 지어진 사원 같이 하얗게 빛났고, 바닥에 풀어놓은 금발머리는 집시의 것처럼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그들 또한 투숙객이라고 누군가 설명해주었다. 달빛에 호수가 반짝거렸다. 악사와 애인의 주변을 직원 두어 명과 요가를 배우느라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중국인 그리고 내 친구들이 둘러앉았다. 그들은 노래를 듣는 듯했지만 또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심한 얼굴들, 기억들, 익지 않은 고민과 날 선 화음이 호수 위로 던져졌다. 나는 희미한 옥상 조명 아래 책을 읽었다. 단편 소설집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시집이던가? 모르겠다. 이건가, 저건가, 잘 모르겠다 싶은 하루들이 디레 디레, 천천히 천천히 흘러갔고 눈을 붙이기 전에는 그런 시간들이 잘 닦인 돌멩이처럼 하나둘씩 굴러와 뱃속에 쌓여가곤 했다. 

슬픈 북녘의 아이들, 맥그로드 간즈와 마날리

다시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시들은 제멋대로 살을 섞거나 실을 섞어 색색의 팔찌를 만들었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물담배에 비친 얼굴이 끓기 시작했다.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숨이 멎을 듯 깔깔거렸다. 양 갈래로 머리를 곱게 땋은 동양 여자 아이가 나를 쳐다봤다. 퉁퉁 부운 눈에 뺨이 붉은 티베트 아이들이 무서웠다. 그 아이들이 너무나 무서워, 무서워,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마날리Manali는 히말라야 산맥 언저리에 위치한 휴양지다. 백인 집시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이국적인 느낌도 강하다. 또 하나 인상 깊은 점은 유독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여행객이 아니라 티베트 쪽에서 망명 정부와 함께 건너온 사람들이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에 자리를 잡고, 북쪽 전반에 걸쳐 살게 되었다고 한다. 풀린 눈으로 팔찌를 꿰며 노래를 부르는 백인 집시들의 모습과 큰 눈을 껌뻑이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는 인도 아이들, 어딘지 경계하는 듯 멀찍이 서서 바라만 보는 티베탄 아이들의 모습이 대조되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티베트의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맥그로드 간즈의 티베트박물관 한쪽 벽을 보았을 때 느꼈던 싸늘함은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었다. 벽 위에 질서정연하게 붙어있는 사진들은 티베트 정부의 독립을 외치며 분신 자살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 나이였다. 나이는 열여섯 살부터 팔십 먹은 노인까지 다양했다. 그들의 얼굴 속에 동네 골목에서 마주치곤 했던 부은 눈에 붉은 뺨을 한 티베탄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 뒤로 인도에서 동양인의 얼굴을 한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누가 그 아이들의 웃음에 불을 지르게 될지 알 수가 없어 한없이 슬퍼지곤 했다. 

인도를 여행할 때

주의해야 할 몇 가지

1. 사막 도시 자이살메르Jaisalmer에서는 여행사마다 낙타 사파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이드를 따라 사막을 구경하고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 여행자끼리 투어를 나서면 자칫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으니 믿을 만한 남자 여행자들과 팀을 꾸리는 것이 좋다.

2. 우다이푸르Udaipur는 호수와 산맥에 둘러싸여 있어 기온이 비교적 서늘한 편이다. 가격이 저렴한, 에어컨이 없는 방을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3.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에서는 트리운드 힐Triund Hill이라는 설산 트레킹이 가능하다. 2000미터가 넘는 고도에서 바라보는 자연 풍경이 아름답다. 다만 계절마다 풍경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건기에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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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