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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
ONE
DAY,
A
CAT
어느날,
어떤 고양이
고양이 주변에는 끝없는 이야기가 맴돈다. 싫어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행복에 관해 말하는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할퀴고 점프하고 쥐를 잡는 것 말고도 고양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먹을 것을 주고 이불을 덮어주며 우리는 종종 고양이들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더 큰 도움을 받는다. 모두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몇몇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여기에 소개한다.
졸린 고양이의 마법
박소언
졸린 고양이 옆에 턱을 괴고 누우면, 그저 졸린 고양이와 그 옆의 내가 될 수 있다. 꼬리를 물던 복잡한 고민이 멈추고,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던 질문도 잠잠해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동그란 졸린 눈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뜰 때, 고양이의 동그란 졸린 눈도 천천히 감겼다가 다시 커진다. 그러다 보면 일러준 사람도 없는데 내가 찾던 답이 조금씩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종종 위로하거나 위로 받는 순간에 놓인다. 위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기타 소리일 수도 있고, 가까운 이와의 대화, 혹은 그저 달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때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졸린 고양이 옆에 나란히 눕는 일이 그렇다. 내 앞의 고양이를 한참 바라보다 보면 나는 종종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나를 안아주는 일이다. 누군가 아픈 마음으로 내 옆에 누웠을 때 졸린 고양이의 마법처럼 나도 그 마음을 동그랗게 안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린 만나지 못했을 뻔 한 영원한 친구
전진우
회사 동료가 상수역 근처에서 구조한 작은 고양이. 사람을 경계했지만 오래 굶주렸는지, 포기하듯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니 잠시 맡아줘요.” 내가 거절하면 이 작은 고양이는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일단 안아 주었다. 동료는 분명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는데 숨이 가빴다. 내려 놓자마자 어두운 구석에 들어가 나오지 않던 고양이와 그렇게 두 달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게 달라져 있다.
숨는 게 여전히 취미지만, 내 팔에 매달리는 시간도 많아졌고, 딱딱한 사료도 씹어 먹는다. 양말에도 쉽게 들어갈 만큼 작은 몸이었는데 금세 살이 쪄서 이제는 귀여운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하는 마음으로 넣었다가, 괴롭히는 꼴이 되어 그만 두었다. 양말뿐 아니라 좋아하던 구석에도 이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그 대신 창가까지 뛰어 올라갈 힘이 생겼다.
밖을 쳐다보며 비둘기들이 어디로 가는 지 기억해 두는 취미가 있다. 아마 문을 열어주면 그리로 곧장 뛰어가겠지. 골목에서 태어났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명주가 선물해준 화분은 건들면 잎이 움직이는 신경초인데, 고양이 앞에서 그 재주를 뽐내는 바람에 지금은 잎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살아있긴 하지만, 그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움직이지 말지.’ 그런 말을 하려다가 누른다.
얼마 전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집 안에서 몇 분 동안 쉬지 않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양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만 믿고 출근길에 뒤도 보지 않고 나가곤 했는데, 이 녀석은 매일 이렇게 울다가 잠이 드는 게 아닐까. 젖은 빨래를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엔 건강을 찾아준 뒤 좋은 주인을 찾아주려 했는데, 어느 날 나는 그게 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인국의 미우
샤샤미우
지금은 곁에 없는 고양이 ‘미우’는 6년을 함께 지낸 덩치 큰 고양이다. 큰 덩치에 비해 내가 사는 집이 너무 좁아서인지 늘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답답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종종 밖으로 나갔는데, 엉망진창이 되어 귀가하곤 했다. 그래도 신기하게 꼭 집으로 돌아와 주었다. 그런 미우와 함께 있을 때 나는 항상 안심이 되었다.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태평하게 누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푹신해졌다. 밖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집에 돌아오자마자 영문도 모르는 미우를 안고 펑펑 울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았다. 그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힘이 나곤 했다.
미우와 함께 보낸 기억들을 떠올리며, 혹은 미우를 그리워하며 그림 그릴 때, 나는 여전히 안심이 된다.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는 일
김이경
이제까지 나를 스쳐 지나간 고양이는 총 10마리였다.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고양이가 있다. 마치 어젯밤 내 배 위에서 잠을 잔 것 마냥 생생하다.
우리의 첫 만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안면도 텃밭을 관리하러 종종 내려가곤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금색 무늬를 띤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졸졸 쫓아 오는 게 아닌가. 그곳을 여러 번 갔었고, 많은 고양이를 봤었지만 이 금색 무늬의 아이는 처음 봤다. 황금빛에 가까운 갈색 몸통에서는 윤기가 돌았고, 출중한 미모와 동그란 눈을 가졌다. 이 아이는 내 다리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 애교까지 부리며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결국, 스스로 차까지 올라탔다. 그리고 뒤에 한가득 실린 짐을 끌어안고서는 무척이나 평온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상경한 고양이와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금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당시 코리안숏헤어(한국 길 고양이를 줄여서 ‘코숏’이라고 부른다)는 이미 두 마리(콩이, 호이)를 키우고 있었고, 페리시안(빵이)에 친칠라(까미)까지 합치면 총 네 마리의 식구가 있어서 더는 늘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먼저 다가온 금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섯 고양이는 사무실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금이는 유독 애교가 많았다. 하지만 다른 고양이와는 좀처럼 친해지지 못하고, 계속 내 무릎에서 잠을 자곤 했다. 종종 집에 데리고 와 주말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준 유일한 상대였다. 내가 침대에서 자면, 내 옆에 다가와 벽 쪽으로 기대어 잠들거나 배 위에 올라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이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구토와 혈변을 시작한 것이다.
놀란 마음에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 전에 다른 고양이도 아팠던 적은 많 았지만, 그저 별다른 탈 없이 잘 넘어가곤 했기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수의사의 권유로 검사를 이것저것 해봤다.
“범백(범백혈구감소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게 뭐예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물었다. 열심히 설명을 해주시긴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려준 처방은 수액을 맞고, 집에서 계속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금이를 집으로 데려와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많이 무서워졌다. 범백은 바이러스감염 중에 하나로 백혈구 감소증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치사율 70%이상이라는 엄청나게 무서운 병. 게다가 치료제는 없고, 집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고양이가 스스로 잘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계속 금이를 보살폈다. 수의사의 지시대로 주사기에 습식사료와 황태 불린 물을 넣어 입에 억지로 먹여도 주고, 구토를 할 때마다 체크했다.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정성을 들였다. 그러자 금이가 조금씩, 스스로 물도 사료도 먹기 시작했다.
“우리 금이가 이겨냈구나”
너무 기쁜 마음에 금이를 끌어안았다.
‘이쯤에서 멈춰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금이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금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이번에는 복막염이라고 한다. 범백을 이겨내면서 면역력이 약해졌고 합병증이 온 것이라고. 주사기로 배에 가득 찬 물을 빼내면 생명을 조금은 연장할 수 있겠지만, 이내 다시 물이 찰 것이고, 물이 차면서 숨을 쉬는 게 힘들어 질 거라고 했다. 한 달을 매일같이 병원에 다니면서 항상 표정 없었던 수의사는 처음으로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살기 힘들 것 같다고. 나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알겠다고 말하며 현실을 수긍해야했다. 수액도 거절하고 집으로 그냥 데려왔다. 금이의 마지막은 병원이 아닌 내 곁에서 보내주고 싶었다. 그렇게 금이를 데리고 왔는데, 화장실을 갈 힘도 없어서 패드를 깔아주면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수의사의 말에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계속해서 금이를 봤다. 금이도 나를 봤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이는 점점 숨쉬기 힘들어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역시 숨쉬기가 힘겨웠다. 결국에는 패드가 없는 이불에도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동공이 풀린 눈이였지만 금이는 나를 보며 눈키스를 해주었다. 울고 싶지 않아 나도 계속해서 눈키스를 보내주었다. 숨쉬기 힘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도 얼굴을 한 번씩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의 눈 깜빡임과 몇 번의 자리 옮김을 반복했다. 어두운 새벽, 금이가 내 옆으로 올라왔다. 평소에 자주 잠들던 침대 벽쪽, 내 옆자리였다. 겨우 올라와서는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도 그 숨에 맞춰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힘겨워 보이는 금이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 편하게 쉬어도 돼. 미안해 금이야. 다음 생에도 꼭 내 고양이로 태어나줘.” 내 말을 들은 걸까. 금이는 있는 힘껏 숨을 크게 쉬기 시작했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침대 벽 쪽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면서 몹시 힘들어했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나와 같이 잠들었던 바로 그자리에서. 나는 금이의 마지막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내 눈에 담았다.
금이를 잊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지켜봤다. 그렇게 사랑하는 금이는 세상을 떠났다. 신기하게도 나머지 고양이들은 범백 항체를 가지고 있어 지금도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금이를 잊지 못한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나는 몇 번 더 길 고양이를 구조했다. 그렇지만, 내내 창 밖만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는 다음 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주곤 했다.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새로운 길 고양이를 키우기에 내 마음이 아직 열리지 않은 탓도 있었을 거다.
만약 금이가 안면도 밭에서 자랐다면 더 행복했을까? 아직 살고 있었을까?
나의 욕심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자책도 했지만, 나와 함께 있어서 분명 더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힘든 숨을 내쉬며, 숨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금이니깐.
집 앞의 고양이
김세진
아파트 주차장에 자주 나타나던 길 고양이다. 낮이면 마치 광합성을 하듯 자동차 사이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집을 나서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꼭 나를 배웅해주는 것마냥 내 다리 사이를 기분 좋게 왔다 갔다 하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이면 자동차 보닛 위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곤 한다. 마중 나온 것처럼. 작년 이맘때 특히 자주 마주쳤는데 요즘엔 볼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꼬리가 잘려진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내가 키우던 고양이는 아니지만, 자주 인사하고 가끔 밥도 챙겨주며 정이 든 아이다.
고양이의 재발견
이강인
빤히 바라보다 훌쩍 사라지는 날렵한 모습은 내게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양이는 나와 다른 존재라고 여겨왔다. 우아하지만 왠지 공감하기 어려운 생명체. 늦은 밤 쓰레기를 버릴 때 흠칫하며 마주하는 경우를 빼고는 만날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내 곁에는 나와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는 남자친구가 있다. 야릇한 몸가짐을 애교로 여기고, ‘조심스런 성격이라 그렇지 한번 친해지면 얼마나 다정한지 모른다’며 사랑에 빠진 눈으로 운을 뗀다. 그러다 언젠가, 올레길을 걷는 도중 돌담 너머 앉아있는 두 마리 고양이를 만났다. 바람이 매섭도록 차던 날,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풍경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남자친구의 얘기도 생각나기도 해서,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봤다. ‘고양이가 참 예쁘다.’ 다른 관점에서 고양이를 보기 시작한 그때부터, 세상이 훨씬 더 넓게 느껴진다. 고양이의 재발견,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칼라파테의 고양이들
박두산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 칼라파테Calafate에 도착하니 계절은 갑자기 겨울이 되었다. 5월에 마주하는 겨울이라니, 내가 지구 반대편에 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눈길을 헤치고 호스텔에 들어서니 라디에이터가 수증기를 내뱉고 있다. 뽀얗게 서리가 낀 창문 밖으로 여기저기 눈꽃이 피어났다. 마당에는 고양이가 많았다. 녀석들은 부엌 옆 쪽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바람을 피하며, 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스텔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떼 지어 돌아다니는 길 고양이들이라고 했다. 몇몇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듯 털을 세우고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이미 아랫목에 자리를 잡은 녀석은 내 슬리퍼를 깔고 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퉁명스러운 녀석들, 쓰다듬거나 안아보는 일은 더욱 어림도 없다. 비록 밥과 쉼터는 신세를 질 지 언정 애교까지 팔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손톱과 이빨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고기 냄새를 맡았는지, 문 앞에 하나 둘 모여 앉는다. 이번에는 측은한 눈빛 공격을 보내온다. 아, 그 눈빛을 어찌 당할 수가 있으랴. 육수를 내고 남은 고기를 던져주니, 고기가 땅에 닿기도 전에 서너 마리가 동시에 뛰어올랐다.
몇 점인가 더 주었지만 덩치 큰 몇 놈이 독점할 뿐, 두어 마리 새끼 고양
이는 순서를 계속 놓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아내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 고기를 주려다가 성급히 뛰어드는 놈에게 결국 손등을 물리고 말았다.
호스텔에서는 고양이들에게 하루 한 끼, 아침 식사만 제공했다. 다툼을 막을 요량으로 사료를 일렬로 길게 흩뿌려 놓으면 고양이 열 마리가 나란히 앉아 흡입하듯 먹었다. 호스텔 매니저가 늘 늦잠을 자는 턱에 끼니 때가 미뤄지기 일수였는데, 그럴 때면 이미 마당에 늘어서 있던 녀석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찔렀다. 배고픔에 민감한 아내는 아예 매니저에게 이야기해 밥 당번을 자처했다. 안타깝게도 하루 배급량은 정해져 있었고 결코 충분한 양이 아니었다. 하긴 고양이 열 마리의 사료값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있는 동안이라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가지고 다니던 사료를 조금씩 더 얹어 주었다.
발톱과 이빨이 날카로웠어도 예쁜 아이들이었는데, 별 일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2004년의 어느 날부터
김은영
‘키케루’가 언제 왔는지조차 생각나질 않는다. 그 계절이 여름이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최근에 느낀 게 있다면, 키케루가 스스로 정말 잘 자라주었다는 사실이다.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닫게 된다. 그들의 집에는 각종 장난감과 고양이 소품들이 집의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었고, 고양이들을 애지중지 대하고 있었다. 우리 집을 둘러보면 어쩐지 비교가 된다. 키케루의 밥그릇, 찢겨진 벽과 쇼파, 털을 잔뜩 묻힌 침대를 제외하고 나면 결코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라고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함께 졸다가 잠이 들고, 일어나고, 대화하고, 동시에 밥을 먹는 사이였다. 익숙하긴 하지만, 사진조차 몇 장 없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이렇게 사연을 적고 있다. 어라운드 매거진에 빼꼼할 영광을 키케루에게 안겨주고 싶다.
에디터 전진우
포토그래퍼 박소언·전진우·샤샤미우·김이경·김세진·이아립·이강인 ·박두산·김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