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미한 일상의 새 메뉴

친구 많은 K씨의 일상

나는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맹장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인스타그램에 ‘야미(Yummy)’ 계정을 만들었다. 외식 음식을 기록하는 용도다. 야미 계정에 올린 게시물이 본계정보다 많아질 때쯤, AI로 나의 생활 패턴을 분석했다.

“한식·해산물·육류를 기반으로 동남아 및 중화권 메뉴까지 폭넓게 탐색하는 ‘맛집 아카이버형 사용자’. 안주형 메뉴 선택 비중이 높고 감칠맛과 자극적인 풍미를 선호하는 경향. 염분 및 기름 섭취량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너는 술자리를 많이 갖는 편이고, 조만간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뭐 그런 이슈로 고생할 게 눈에 선하다.’라는 의미였다. 공교롭게도 나는 두쫀쿠나 스초생 같은 디저트에 관심이 없고(카페 아웃), 롤이나 배그 같은 경쟁 게임을 무서워하며(PC방 아웃), 경도 모임에 나가기엔 관절이 낡았다(운동 아웃). 그렇기 때문에 나랑 비슷한 중년 싱글 남성 친구들을 만나 향하는 곳은 결국 술집으로 귀결되곤 했다.

한 달의 절반은 술자리, 나머지 절반은 숙취로 보내는 삶.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루틴이 돼버렸다. “맨날 똑같은 친구들 만나서 뭔 얘길 그렇게 해?” 언젠가 술을 즐기지 않는 친구가 그렇게 물었다. 글쎄··· 내가 뭔 얘길 그렇게 했더라? 염분과 기름 범벅인 안주 시켜 놓고 어제 숙취로 죽다 살아났다는 얘길 하고, 회사 욕에, 친구 욕에, 전쟁광 트럼프 욕에, 외국 축구팀의 선수 기용 패턴까지 욕하고 나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랄까. “숙취로 죽는 사람보다 스트레스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그런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점심, 체기와 배앓이가 동시에 느껴졌다. ‘이번 숙취는 좀 유별나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식은땀이 났다. 배 한쪽이 유난히 아파 검색해 보니, 충수염(맹장염)이 의심됐다. 서둘러 병원으로 기어가 검사를 했다. 역시나 맹장이었다. 의사는 수술을 위해선 공복 상태가 돼야 한다며, 즉시 입원을 명령했다.

몇 년 사이 이런저런 사고로 종종 수술대에 올랐던 터라 긴장은 되지 않았다. ‘이 병원의 수술방은 이런 음악을 트는구나, 멜로디가 경쾌한 걸 보니 수술이 신명이 나···겠···어···.’ 그렇게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병실이었다. 마취가 풀리는 고통에 막 꿰맨 배를 움켜잡고 울부짖었다. 그때 울린 친구의 카톡 메시지. “족발, 소주, 콜?” 앞뒤 재지 않고 용건만 얘기하는 게 딱 내 친구다웠다. 나는 병실 사진을 보내며 짧게 답했다. “맹장 이슈로 오늘은 무리.” 그러자 친구가 답했다. “그럼 다음 주 콜?” 정신 나간 자식 같으니. 요즘 시대의 맹장 수술은 큰 일도 아니라지만, 배에 구멍을 세 개나 뚫었다고!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 “퇴원하고 족소 콜.”

수술 이후 몇 번의 통원을 했다. 소독하고, 실밥 뽑고, 다시 소독을 하러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내 질문은 한결같았다. “선생님, 이제 술을 먹어도 되나요?”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장이 안정화되려면 3주는 걸려요. 술은 절대 안 됩니다.”, “하지만 연초라 술자리가 많은걸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 질문에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정 못 참겠으면 차를 드세요.” 나는 ‘차’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술 얘기를 하는데 차를 대답하는 그는 어떤 사고 회로를 가진 사람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에 온통 물음표가 그려졌다. 문득 차라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검색창을 채우는 건 낯선 단어들뿐이었다. 산지에 따라 이름이 바뀌고, 물의 온도 1도에 맛이 갈라지는 예민한 세계. 다기를 갖추고 물의 성분까지 따지는 사람들의 글을 보며 창을 닫았다. 혹시 차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환각 성분이 있는 걸까?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초보자가 마시기 괜찮은 차 추천.” 자동완성에 보리차가 떴다. 마트에 들러 차를 파는 매대에 섰다. 선택지가 많아서 잠깐 굳었는데, 그냥 제일 앞에 있는 걸 집었다. 집에 돌아와 뜯어 보니 식수용 대용량 티백이었다. 하는 수 없이 수납장 안쪽에 묵혀 있던 대형 주전자를 꺼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게 없어서 식탁에 앉았다. 조용한 거실, 햇살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를 셌다. 술자리였다면 벌써 취기가 올라 개다리춤을 췄을 시간이었다. 왠지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수행자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더 이상 물어뜯을 손톱이 없어 양말까지 벗으려는 찰나, 삐- 하고 주전자 신호음이 들렸다.

주전자 불을 끄고, 대용량 티백을 넣고, 골고루 우러날 때까지 또 기다렸다. 진하게 우러난 보리차를 옮겨 담고 호로록 마시는데, 너무 뜨거워서 앞니가 녹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 식을 때까지 또 시작된 기다림. 차를 준비하고 30분이 지나서야 첫 모금을 삼켰다. 아아··· 역시나 보리차는 특별한 맛이 없었다. 정확히는 맛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지극히 익숙하고 수수한 맛이었다. 그저 따뜻한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가 식도를 매만질 뿐이었다. 일본 영화에 나오는 시골 할머니처럼 경건하게 무릎을 꿇었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호호 불어 다시 한 모금. 그러자 전보다 조금 더 구수한 향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역시 모든 건 자세의 문제다.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의사 선생님이 말한 3주를 지켰다. 술을 끊고 차를 마시자 몸의 변화가 생겼다. 아침이 편안해졌고, 샤워할 때 머리가 조금 덜 빠졌다. 술값을 아끼는 건 덤이었다. 얼굴이 보리 색깔로 변한 것도 같지만 그건 기분 탓일 것이다.

3주간의 금주 끝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마주한 영롱한 녹색 병. 상추와 깻잎 카펫 위에 야들야들한 족발 한 점 새우젓 찍어 고이 올리고, 알싸한 편마늘과 아삭한 고추를 쌈장에 푸욱 찍어 데코 한 후, 와앙&우걱우걱, 그리고 소주 한 잔.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졌다. 그런데 뭔가 살짝 아쉬웠다. 내가 기억하는 소주의 맛이 아니었다. 공업용 알코올 향이 입안에서 날뛰는 느낌이랄까. 나는 가만히 잔을 내려다봤다. 어쩐지 몸에게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은 왜일까? 종업원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혹시 그거 있나요?

그 일본 아저씨가 먹는 거요.”, “네?”, “그, 뭐였더라. 〈고독한 미식가〉 고로 상이 자주 먹는 차 있는데.” 다행히 종업원 선생님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고, 그는 잠시 후 우롱하이를 내어왔다. 친구는 족발에 하이볼이 웬 말이냐며 역정을 냈다. “하이볼이 아니고 우롱차야. 술이 아니고 차라고.”

친구는 픽 웃더니 소주잔을 들었다. 술자리는 소란스럽고, 나는 여전히 야미 계정에 올릴 만한 자극적인 안주를 좋아한다. 3주간의 수행 후에도 딱히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예전에는 술기운이 오르지 않는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 깡소주를 들이켰다면, 이제는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던 그 지루한 30분을 떠올릴 줄 알게 됐다. 그리고 술자리 옵션에 주문할 수 있는 메뉴 하나가 추가됐다. 그게 비록 차의 탈을 쓴 술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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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