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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정원 이야기
오경아
식물의 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정원사다. 흙을 다듬고 타버린 잎을 따며 한두 해 후에 더 풍성해질 식물의 시간을 만져주는 사람이다. 정원을 가꾸는 일이란 결국 ‘느림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소박한 시골 정원으로 향했다.
Interview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정원의 이유를
이해하는 일
30대 후반까지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돌연 가든 디자인 유학을 떠났다고요. 그 이야기가 궁금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16년간 방송작가 일을 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모든 게 즐거웠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직업적으로 글을 쓰며 상투성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툭, 건드리면 원고가 나오는 거죠.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보면서, 계속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아깝지는 않았나요?
아까워서 더 힘들었죠. 쉽게 내려놓을 수 없어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 보니 몸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부모님께서 예순도 안 된 연세에 돌아가신 거예요. 그때 문득 우리는 스스로에게 얼마만큼의 삶이 허락되어 있는 줄도 모른 채, 계속 앞날에 대한 계획만 세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 후, 10년 후의 삶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거죠. 먼 훗날 나아지기 위해 참는 게 아니고 지금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마음먹고 유학길에 오르게 됐어요.
원래 정원에 관심이 많았나요?
돌이켜 보면 삶의 대부분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더라고요. 아버지께서는 군인이셨는데, 퇴근 후에는 오랫동안 마당에 머무르며 식물을 가꾸셨어요. 물 주고 풀 뽑고, 낮 시간 동안 받았던 억눌림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하고 계셨던 거예요. 어찌 됐든 저 역시 그런 환경 속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당과 정원이 익숙했던 것 같아요. 유학을 떠날 때도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이 있던 건 아니고, 단지 정원이 좋았던 거고요.
저였다면 너무 늦은 건 아닌지 한참 고민했을 것 같아요.
영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제 나이가 가장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저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 가든 디자인 공부로 전환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패션모델, 정원사, 혹은 패션 디자인을 하다가 가든 디자인으로 바꾼 사람도 있었고요. 헤르만 헤세나 윌리엄 워즈워스 같은 작가들도 가든 디자인 공부를 했죠.
패션 디자인과 가든 디자인의 공통점이 있다면요?
패턴을 만드는 것, 색채를 고르는 것, 질감을 생각하는 것에서 많이 닮아 있어요. 가령 곱고 가는 풀과 굵직한 갈대를 함께 섞으면 어떤 느낌이 날지 고민하는 것과 옷감의 질감을 고민하는 것에서 통하는 점이 있죠.
그런데 왜 영국이었나요?
현재 세계적으로 정원의 메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영국이에요. 앞으로도 한 세기 이상은 영국식 정원이 유행할 것 같고요. 나라 전체가 정원에 호의적이다 보니 교육 프로그램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잘 돼있어요. 특히 전통적인 부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역사는 곧 여러 겹의 레이어(층)로 이뤄진 거잖아요. 그들은 몇 천 년의 레이어 위에 오늘의 디자인이 앉혀지길 바라죠. 단순히 어떤 디자인이 아름답다고 한들 역사적 전통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 가치를 잘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저 역시 그런 관점에 동의하고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프랑스나 독일, 가깝게는 일본까지도 단번에 그려지는 정원의 모습이 있어요. 영국식 정원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17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가 가장 화려한 정원을 꾸미던 나라였어요. 하지만 19세기 이후에는 그 영향력이 영국으로 넘어왔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원의 모습이란 곧 식물의 정원이잖아요. 그 모델을 만든 게 영국이거든요. 독일 정원은 관상용이라기보다는 생태공원의 느낌이 강해요. 환경적인 접근에 관심이 많죠.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의 정원은 일종의 종합선물 같아요. 식물 중심의 영국 콘셉트와 프랑스의 바로크 시대 패턴 위주의 정원, 독일의 생태적 관념이 모두 버무려져 있어요. 최근 많은 각광을 받고 있죠.
자료를 찾아봤는데, 한국식 정원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소쇄원 같은 민간 정원만 보더라도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한 최대한의 자연을 지향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 정원 문화가 있었나, 의문이 생겼어요.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토론이 있었어요. 아예 극단적으로는 우리에게 정원 문화가 없다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다만 서양식 정원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어요. 주거지를 둘러싼 모든 자연이 곧 정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스스로 만들기보다는 정원이 될 만한 자연을 먼저 찾았어요. 내 집 안에 식물을 하나도 심지 않았더라도, 담장을 낮추면 주변 풍경이 곧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정원이 되는 거죠. 경치를 빌려온다는 ‘차경借景’이라는 개념이 거기에 해당돼요.
차경의 개념을 빌리자면 ‘정원은 과연 자연스러운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서양에서 바라보는 정원은 울타리 안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거예요. 각자의 주거환경을 가장 예술적인 방법으로 꾸미는 거죠. 그래서 애초에 정원은 자연스러울 수 없는 공간이에요. 다만 식물이 기후에 영향을 받다 보니 자연의 물성을 갖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굉장히 인위적일 수밖에 없죠. 생각해보면 멕시코나 시리아같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식물들이 모두 모여 혼숙을 하는 거잖아요. 식물에게도 자연스러울 수 없는 환경인 거죠.
예술이라는 말에 이미 인위성이 담겨있는 거네요.
맞아요. 예술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상징의 기법들이 정원에 묻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죠.
정원을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니까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일본의 어떤 정원은 실제 들어갈 수는 없고 멀리서 관람만 할 수 있더라고요. 미술관에 가까운 형태였어요.
정원을 일종의 문화로 이해하는 게 빠를 거예요. 방금 말씀하신 일본 정원은 사찰 안에 조성되어 있어요. 누군가는 안에 들어가 동심원을 그려야 하겠죠. 그것을 일종의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명상을 하고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는 행위로써 정원을 꾸미는 거예요. 그 화려함에 마음이 현혹되지 않도록 꽃이 없는 정원을 만들기도 하고요. 그 정원이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유를 이해하려는 것이요.
인문학, 철학적 바탕 위에서 정원을 디자인하려 해요. 한 줄의 선을 그을 때도 ‘왜?’라는 물음을 갖는 거죠. 왜 그 장소에 정원을 만들어야 하는지 먼저 생각한 후에 ‘어떻게’, 즉 방식과 형태를 결정해주는 거예요. 정형적 디자인을 가질지 곡선을 이용할지, 작게 할지 크게 할지, 색채를 화려하게 둘지 차가운 톤을 유지할지, 모든 결정의 순간마다 저만의 이유를 생각하죠.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정원은 어떤 원칙으로 만들게 되었나요?
매일 들여다보기에 편안한 정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마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더욱 좋고요. 그런 걸 고려하다 보니 정원에 두드러진 디자인을 넣지 않게 됐어요. 오래된 마을, 150년도 더 된 한옥에 모던한 요소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심으려 했죠. 만약 도심 속 정원이었다면 다른 디자인을 고려했을 거예요. 최근 가든 디자인의 표절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데, 공간마다 성격과 이유를 다르게 생각하고 주변 환경과 사람에 포커싱을 맞추면 똑같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거든요.
구체성 없는 ‘책상 위의 디자인’이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맞아요. 저 같은 경우 영국의 대학에서 조경학을 공부한 후에 큐 왕립식물원Kew Gardens에서 일했어요. 대학 수업의 한계가 느껴졌거든요. 도면에 식물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정작 식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보니 피상적인 그림이 나오는 거예요. 아무렇게나 심은 것처럼 보여도 식물이 가진 색과 질감을 조율하고, 각자가 가진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했죠.
그때의 경험이란 결국 식물을 이해하는 일이겠죠?
식물을 이해하는 일은 식물의 자생력을 이해하는 일이에요. 정원에 심는 건 디자이너의 몫이지만 결국 거기서 살아줘야 하는 건 식물 자신이니까요. 아무리 멋지게 디자인했어도 1~2년 후에 갔을 때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실패한 식물 디자인이라고 봐야겠죠. 그래서 실제 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 건축과 원예, 디자인 공부를 병행해요. 어느 한 가지 공부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인내심이 필요할 거 같아요.
정원은 시간의 예술이에요. 처음 식물을 심어서 연출을 하면 2~3년 후의 풍경이 예상되거든요. 초기에는 모내기를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거지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완성은 늘 자연이 스스로 하는 거예요. 바람과 구름, 햇빛에 따라 정원의 완성도가 달라지므로 협상을 잘 해야 해요.
우리 안에
정원을 갖는 일
정원학교를 운영하시잖아요. 영국 유학 시절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게 다를 것 같아요. 앞서 말한 바람과 구름, 햇빛까지도요.
중복되는 식물과 개념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한국식 정원과 맞지 않았어요. 영국에서 배운 소스를 어떻게 응용할지 계속 고민하는 중이에요. 정원을 꾸밀 주거지의 환경, 특히 기후에 따라 정말 많은 게 달라지기 때문에원하는 대로 식물을 고집할 수 없거든요.
단순히 식물을 가져다가 심는다고 끝이 아닌 거네요.
식물은 저마다 태생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달리아는 멕시코가 자생지예요. 이 아이는 다년생인데도 땅에 심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잘 자라지 않아요. 멕시코에는 추위가 없다는 걸 감안해서, 겨울이 되면 뿌리를 캐내어 따로 보관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식물에 대한 공부가 중요한 거예요.
‘정원사의 시작은 가을이다’라는 글을 봤어요. 무슨 뜻인가요?
많은 분들이 새싹이 돋는 봄을 계절의 시작으로 봐요. 하지만 봄에 돋아난새싹은 실은 가을에 심은 구근에 의한 거예요. 마치 패션쇼처럼 두 계절 전에는 그 해의 컬렉션을 완성해야 하는 거죠. 식물의 70퍼센트 이상은 가을에 씨를 내리고 생명주기를 끝내요. 끝나며 동시에 씨앗이 시작되는 거죠.
일반적으로 사계절을 ‘봄·여름·가을·겨울’로 놓고 생각하잖아요. 겨울은 황폐하고 메마른 계절처럼 여겨지는데, 순서를 바꿔서 ‘가을·겨울·봄·여름’으로 보니 겨울 역시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인 거네요.
그게 식물의 주기인 거죠. 인위적으로 정해놓은 순서로는 식물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흙은 어떤가요?
사람이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흙이 식물을 키운다는 얘기가 있어요. 정원사란 실질적으로 흙을 돌봐주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흙에 쏟는 노동량이 많기 때문에 영국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의 비율이 더 높죠.
정원이라면 어쩐지 건장한 남자보다는 타샤 할머니처럼 주름진 손을 먼저 떠올렸는데 의외네요.
꽃을 일종의 여성성의 상징처럼 생각해서 그런 오해들을 많이 해요. 하지만 꽃은 기본적으로 암수가 섞여있죠. 그리고 최근에는 꽃을 감상하는 정원보다는 잎의 정원을 선호해요. 잎이 꽃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해주거든요. 물론 꽃이 피기도 하겠지만 잎을 감상하는 어느 사이에 지나가는 거죠.
그런가요? 애초에 잎은 정원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에요. 그래서 잎의 다양한 질감을 어떻게 조합할지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화려한 꽃만을 고집한다면 빌딩 사이사이 조화롭게 심은 푸른 잎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겠죠.
저희 집에는 식물이 없어요. 아무래도 벌레가 꼬일까 봐 두렵기도 하고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식물을 키울 때 두려워하는 부분이 벌레나 곤충이에요. 저 역시 느닷없이 벌레가 나타하면 깜짝 놀라거든요. 하지만 무언가에 놀라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이미 놀랐는데 뭘 어쩌겠어요(웃음). 다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는 게 인간이 지구를 점령하라고 명령 받지 않은 이상 다른 어떤 존재와도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단지 깜짝 놀라게 한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면 안 되겠죠. 그리고 ‘공영식물Companion Plant’이라고 해서 함께 심으면 서로를 보완해주는 종류가 있어요. 토마토 옆에 파슬리를 심으면 해충이 줄어드는 경우죠. 잘만 짝을 지어주면 관상용으로도 훌륭한 조합이 될 수 있어요.
정원 혹은 식물의 즐거움은 뭘까요?
정원은 기본적으로 ‘가꾼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잖아요. 운동이 자기 자신의 몸을 즐겁게 하는 거라면 식물을 가꾸는 건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때 느끼는 즐거움인 것 같아요. 두 생명체 사이에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이 생기는 것.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어쩌면 동물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식물은 배를 드러내거나 꼬리를 스치며 지나가지도 않잖아요. 무언가 즉각적인 반응이 없어서 조금 시시할 것 같아요.
식물은 느리지 않아요. 정원을 걸으면 식물이 무언가 반응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볕이 강한 날에는 끝자락이 타들어 가면서 지금의 상태를 그려내기도 하고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쉽게 생각해서 물만 주면, 혹은 볕만 좋으면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식물 스스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자연을 버티며 자라주는 거거든요. 대견한 마음이 생기죠. 과학적으로도 식물을 돌봤을 때 나오는 힐링 에너지가 동물의 경우보다 높다고 해요.
《정원생활자》라는 책을 쓰셨잖아요. 사실 도시에 살면서 정원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정원이라는 게 실은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부엌이나 거실, 아주 작은 공간도 정원이 될 수 있어요. 서양 사람들은 식물을 가까이하는 게 습관화됐어요. 슈퍼마켓에서 장 보고 나오는 길에 꽃 한 다발을 사서 식탁 위에 꽂아두거든요. 고흐의 그림을 봐도 고급스러운 집에 꽃이 있던 게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으로써 존재했던 거예요. 꽃은 색채의 신선함뿐 아니라 일종의 영감을 선물해주죠. 가끔 드라마에서 꽃을 선물해주면 털털한 캐릭터의 배우가 ‘먹지도 못하는 거 웬 꽃? 차라리 고기를 사오지.’ 같은 말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고기랑 꽃이 병렬 관계로 논의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대사 한 줄에서도 국민 문화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서양 사람들은 다른 이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감사의 의미로 꽃을 선물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죠.
하긴 저도 꽃을 선물한다는 생각은 잘 안 해봤는데, 만약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속상하지 않을까요?
식물을 죽이는 데 너무 지나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보통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인데요. 사실 식물은 자생지를 떠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이 한정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접하는 식물들은 원래 수명대로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죠. 당연한 거예요. 죄의식을 느낄 거 같으면 소고기도 못 먹고 돼지고기도 먹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소한테는 어떻게 죗값을 치를 거예요(웃음).
그러고 보니 오늘 닭발 먹기로 했는데(웃음).
그렇다니까요.
이런 상상을 해봤어요. 정원을 식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꾸민다면 어떨까?
사실 저는 식물로만 정원을 꾸미는 타입은 아니고, 식물과 함께 사람의 손길이 들어간 구조물이나 조각물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는 걸 좋아해요. ‘아트 앤 크래프트 가든Arts and Crafts Garden’이라고 해서, 기성품을 전혀 쓰지 않고 장인의 수공예품으로만 공간을 채우는 양식이 있어요. 토담을 쌓았던 장인, 함석공, 돌을 쌓는 석공에 이르기까지 한국에도 굉장히 다양한 장인들이 있어서, 그걸 어떻게 하면 한국식으로 변형해 디자인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저기 바깥 쪽 저희 정원에도 수공예로 만든 아치와 식물이 서로를 감싸고 있어요. 문제점을 보완하며 함께 살아가는 거죠. 조화롭잖아요.
그녀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사람을 위한
세 권의 책
정원생활자
궁리 | 2017
식물, 정원, 역사 등을 한 데 묶은 정원의 설화집이다. 호흡이 짧고 종합상식이 많아 간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다.
정원의 발견
궁리 | 2013
원예의 기초를 다룬 책이다. 정원 식물을 건강하게 잘 키우고 관리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었다. 원예 디테일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가든 디자인의 발견
궁리 | 2015
정원 디자인 사례집이다. 영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정원을 추려 특징과 수종 등을 소개한다. 가든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정원 일은 요즘 세상과는 반대로 가는 일이다. 빠르고 간단하게가 아니라 느리게 천천히 가는 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마지막 추위가 다 지나갔다고 일기예보가 장담을 해도 한 번 짚어가는 답답한 느림, 누렇게 빛 바래가는 잎사귀가 보기 싫어도 식물 스스로가 이제는 됐다고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주는 무던함, 잘라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한 후 가위를 드는 신중함. 그게 정원의 일이다.
– 오경아, 《소박한 정원》 중에서
오경아의 정원학교
H. blog.naver.com/oka0513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