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법

이용재 ㅡ 음식평론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달걀은 모서리에 치기보다 둥근 바닥에 부딪혀야 깔끔하게 깨진다는 것, 가지는 색깔이 너무 진하지 않은 게 좋지만 오이는 진한 편이 신선하다는 것. 그 밖에도 감자, 양파, 두부, 토마토, 닭고기…. 미처 특별함을 발견하기도 전에 익숙함이라는 냉장고에 보관되는 식재료에 대해 잘 몰랐다. 15년 차 음식평론가인 이용재는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재료들의 안부를 살폈다. 같은 재료라도 더 맛있게, 더 알맞게 조리하는 법을 기꺼이 풀어둔다. 그의 말처럼, 알고 나니 더 맛있다.

작년 말 《맛있는 소설》이 출간되었죠. 이후로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세요?

연말연시에 복잡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책을 쓰는 와중에도 단편적인 마감을 치른 터라 휴식이 필요했거든요. 뜨개질로 니트를 만들어보고 아침은 시리얼이나 빵으로, 점심과 저녁은 직접 만들거나 외식을 하며 충실한 ‘생활 요리인’으로도 지내고 있어요. 이제는 슬슬 올해 해야 할 일들에 시동을 걸어보려고요.

 

먼저 《맛있는 소설》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사회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더라고요.

맞습니다. 지금껏 저의 요리 관련 도서들은 음식 비평과 자가 조리를 위한 가이드, 두 갈래로 나뉘어 출간되고 있어요. ‘책에 대한 책’은 두 갈래의 작업이 지겨워질 즈음 기분 전환을 위한 비장의 카드로 남겨두었던 거죠. 작업에 걸린 시간을 앱에 기록해 두는데요. 《맛있는 소설》은 2021년 5월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말까지, 190시간가량 투자해서 완성했네요.

 

《작은 아씨들》, 《노인과 바다》, 《아메리카나》, 《82년생 김지영》…. 고전부터 현대 소설까지, 소재가 된 도서의 폭이 넓던데요. 어떤 기준으로 고른 건가요?

목록의 반 정도는 어릴 때부터 자주 읽은 책이에요.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책을 많이 사주셨어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이 집을 비우시면 할 일이 라디오 듣기나 책 읽기뿐이었죠. 간단히 무얼 해 먹든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중·고등학생이 읽는 ‘세계문학전집’을 사주셨는데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 읽은 《노인과 바다》 같은 고전을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조망해 보고 싶은 마음에 골랐죠. 좋은 책은 10대, 20대 혹은 그 이후에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니까요.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라서, 《아메리카나》는 제가 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느꼈던 혼란과 고민을 빼닮아서 고르게 되었어요.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소설 속 음식을 탐구했다. 각 작품이라는 중심 식재료, 혹은 요리를 중심으로, 식사라는 총체적 경험이 충만해지는 걸 염두에 두었다. 소설이 재료라면, 그에 잘 어울리는 조리법이나 요리 양식을 찾았다. 이미 요리된 상태라면 맞는 집기 등을 준비해 식탁을 아름답게 차린다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 이용재, 《맛있는 소설》 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소설 속 음식을 탐구했다.”라는 소개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어요.

중심은 ‘즉흥성’이에요. 예를 들어 마트나 시장에 갈 때 사야 할 걸 정리하지 않았다면 눈에 들어오는 재료들을 보며 메뉴를 떠올리잖아요. 그처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이나 재료뿐 아니라 식문화까지 폭넓게 보고 다양하게 담고 싶었어요.

 

그야말로 글을 차려낸 거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소재가 있다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음식으로 둘러본 꼭지가 떠올라요. 하루키는 음식 묘사가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해요. 에세이에서는 자신의 기호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소설에서는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나 도구로 음식을 활용하죠. 문제는 그의 책을 전부 읽어야 하는 거였어요. 작품 세계를 흡수한 뒤 빠르게 글을 써야 하는데,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읽는 동안 다 까먹는 거죠(웃음). 결국 정공법이 답이구나 싶어서, 음식이 나오는 모든 구절에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고 제목과 페이지 수를 기록해 정리했어요. 어려운 맘에 끝까지 미뤄두고 부단히 애를 쓴 소재지만, 하루키가 없었다면 책의 등뼈가 빠진 것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맛있는 소설》은 요리 위에 감상이 더해졌다면,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는 요리 위에 요령이 더해진 책 같아요. ‘무던한 식재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요.

평범하고 익숙한 재료를 조금만 알면 더 맛있게 요리할 수 있거든요. 어제는 트위터에서 블루베리 머핀 반죽 사진을 봤어요. 반죽 위에 블루베리를 올려두었던데, 그 상태에서 섞으면 워낙 연한 열매라 다 터져버려요. 블루베리 머핀이 스머프가 되어버리는 거죠.

 

어머나!

그러니까 그걸 막으려면 블루베리를 한 30분 정도 냉동실에 얼리고 쓰면 되거든요. 우리는 달걀이나 소금, 과일과 채소처럼 일상적인 재료들을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알맞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아요. 미시적인 접근에서만 머무는 거죠. 너무나 친숙해진 식재료도 다시 보면 많은 사람들이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충분히 연구해 두었어요. 저는 그런 자료들을 20년 넘게 찾아보고 실천해 봤기 때문에, 조리 요령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서 쓴 책이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예요.

재료를 더 알맞게 사용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건 결국 요리를 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이 책을 발판 삼아 궁극적으로 ‘자가 조리’를 독학하는 방식에 대한 가이드를 전하고 싶어요. 저는 ‘밥’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밥을 못 하는 남자들이 많은데, 노인 복지의 일환으로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나눠주면 할머니들은 다음 반찬이 올 때까지 관리를 잘하지만 할아버지들은 무척 어려워하신대요. 즉 조리라는 건 기술의 범위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 요령이라는 말이죠. 식재료 다루는 법을 아는 게 삶을 꾸려나가는 요령이 쌓이는 것과 같은 거예요.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이기에 제가 알고 있는 걸 축약된 지식과 정보로 전하고 싶어요.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로 단연 마늘종을 꼽으시더라고요.

혹시 마늘‘쫑’이 아니라 마늘‘종’인 거 아셨어요? 마늘쫑이 더 맛있는 느낌이 드는데 말이에요(웃음). 저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마늘종 생각이 나요. 겨울에 마트에서 중국산을 봤는데 여러 번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내려놨어요. 그건 배신이거든요. 국산 마늘종은 향이 솔솔 나서 생으로 먹어도 맛있어요. 언젠가 용인에서 유명한 들기름 막국수집에 갔다가 나오는데, 주차장에서 플라스틱 테이블에 대충 마늘종을 널어두고 파는 분을 만났어요. 보통 2,500원 정도 하는 마늘종을 말도 안 되는 가격인 8,000원에 팔고 있는데 맛있겠다는 직감이 오더라고요. ‘아, 이걸 놓치면 나 평생 후회한다!’ 싶어서 얼른 사고 돌아오는 길에 생으로 향긋하게 먹었죠. 아주 우연한 계기에 좋은 식재료를 발견하면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푸릇한 채소의 싱싱한 맛이 상상돼요. 봄에는 수분이 많은 오이도 맛있겠어요.

오이도 마늘종만큼 좋아하는 재료인데, 발효된 오이의 익은 맛을 좋아해요. 발효라고 하면 김치를 먼저 떠올리실 텐데, 오이소박이는 이름처럼 채소를 갈라 소를 박는 과정이 번거로워서 잘 안 하게 돼요. 대신 썰어서 절인 오이를 한꺼번에 버무려 김치를 담가 먹어요. 이때 중요한 건 오이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야 뭉크러지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러고 보니 책의 많은 분량을 채소가 차지하던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대체로 생채소를 먹어야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날것으로 먹으면 많이 먹기가 힘들어서 간단한 방식으로 조리해 주는 게 좋아요. 한국에서는 아쉬운 게 의외로 채소가 다양하지 않아요. 가지나 당근은 한 가지, 오이는 많아야 두 종류가 취급되고 있거든요. 식재료가 단순해지고 있어요. 게다가 세계적으로는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재배지가 뒤바뀌고 있잖아요. 이미 경북에서 바나나가 자라니, 곧 서울에서는 망고가 날지도 모르죠. 먹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제한이 점점 더 커질 거예요.

다양하고 좋은 식재료를 구할 만한 장소가 많지 않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마음에 드는 식재료는 백화점 식품 코너에 있어요. 신선도나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이 좀더 낫거든요. 그런데 이곳마저도 신선 식품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어요. 물가는 비싸지고 채소를 먹으려면 그저 그런 선택을 해야 하고, 신선 식품의 자리는 수입 과자들이 채워버렸죠. 온라인 식재료 마켓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고요. 식사는 언제나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최대한의 결과를 얻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만, 요즘은 참 여러모로 밥 해 먹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장 볼 때 알아두면 좋을 만한 팁이 있을까요?

기본 식재료를 갖춰두고 나머지는 필요에 따라 때맞춰 구입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냉동 보관이 쉬운 고기 종류,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달걀이나 참치 등을 갖춰두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채소 한두 종류를 사보세요. 준비된 기본 아이템들을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조합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오늘은 냉장고에 무가 있는데 무생채를 할까, 반은 국을 끓여 먹을까…. 저도 20년 넘게 요리를 해도 아직도 맛없는 재료들을 살 때가 있어요. 얼마 전 말린 나물을 한 보따리 샀다가 먹지도 않고 어쩌나 싶죠(웃음).

 

쉬운 일이 아니네요(웃음). 식재료를 골랐다면 맛있게 먹는 법도 알아야 할 텐데요. 레시피에서 주재료만 떠올리곤 했는데 조미료도 아주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조미료는 다다익선이에요. 다양할수록 풍미를 더욱 올려주고 감칠맛도 살려주거든요. 식초도 양조 식초, 와인 식초, 애플 사이다 식초, 흑식초처럼 다양하고 소금도 간을 하는 데 쓰거나 고기에 얹어 먹는 게 따로 있어요. 소금은 생각보다 좀더 넣으면 간이 화사하게 살아나는 지점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저만의 팁이랍니다. 조미료는 한꺼번에 세트처럼 사면 재미없으니까, 요리 실력을 늘려가면서 새로운 도구를 사용해 보듯 모으는 걸 추천해요.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왠지 더 들어줄 만하다. 반주도 한몫하지만 핵심은 마이크 걸려있는 리버브다. 목소리에 울림과 잔향을 더해 궁극적으로는 촉촉함을 보태줌으로써 내 목소리는 물론 노래 전체가 더 그럴싸하게 들리게 해준다. 감칠맛은 말하자면 맛에 걸어주는 리버브다.
그 자체의 맛이 없지는 않지만 다른 네 가지 맛(단맛, 짠맛, 신맛, 쓴맛)을 북돋아줘 음식과 맛의 경험 전체를 훨씬 더 만족스럽게 승화시켜 준다. 따라서 감칠맛을 이해하고 쓰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이용재,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중에서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는 감칠맛을 노래방 마이크의 ‘리버브Reverb’로 빗댄 게 재밌었어요.

제가 취미로 전자 기타를 치는데 리버브라는 이펙터가 있어요. 리버브가 있어야지만 우리가 듣는 소리에 공간감이 생기거든요. 눈에 보이거나 명확하게 감각되지 않아서 존재가 없는 것 같지만 입체감을 만들어주는 부분이 감칠맛과 닮았다고 생각해서 쓴 표현이에요.

 

주관적인 성격이 강한 맛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전에 독학으로 요리를 배우면서 레시피를 다양하게 읽어봤고, 미국에서 지낼 때는 하루 종일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혼자 만들어본 적도 많아요. 해외 요리 서적들을 번역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레 레시피의 규율이 머리에 입력되어 있어요. 경험한 걸 글로 써야 할 때는 머릿속에서 입력된 장면이 보여주는 길을 따라가면 돼요. 채소 볶음을 예로 들면, 기름을 팬에 어느 정도로 둘러서 언제까지 달구고, 채소를 어슷하게 썰어 넣어 얼마간 볶는다는 길이 보이니까요. 아주 가끔은 어려울 때도 있는데 먹고 쓰는 일이 직업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 요리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실버 스푼》 등 다수의 요리책을 번역하셨는데요. 다른 식문화권의 책을 번역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낯섦을 최대한 걷어내야 한다는 거예요. 두 가지의 낯섦이 있을 텐데요. 첫째는 요리책이 낯설지 않도록, 읽는 사람들에게 조리 과정이 시각화가 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정리를 해줘야 하고요. 둘째는 필요 이상으로 더 낯설게 만들면 안 돼요. 흔히 사용하는 ‘슬라이스Slice’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써는 것만이 아니라 햄 같은 걸 얇게 저민다는 의미도 있어요. 앞뒤 문맥에 따라 어느 쪽 방식인지 번역해 줘야 하는데 곧장 ‘슬라이스하다’로 쓰더라고요. 의미가 불분명한 단어 선택인 거죠. 그리고 ‘숏 립Shot Rib’이라는 고기 부위를 갈비라고 번역하지 않고 굳이 그대로 쓰기도 하고요. 그걸 본 누군가는 갈비를 눈앞에 두고도 숏 립을 찾느라 헤맬지도 모르고, 간단히 할 수 있는 요리가 더 낯설어질 거예요. 그런 방식의 번역은 피해야 해요. 반대로 좋은 예시도 하나 떠오르는데요. 소설 《나를 찾아줘》에서 ‘브뤼셀 스프라우트’라는 작은 양배추가 등장하는데, 그 채소를 ‘방울양배추’로 옮겼다고 해요. 모양과 명칭이 직관적이라 이해하기 쉽고 이제는 모두가 그 낯선 재료를 방울양배추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죠.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식재료를 가운데 두고 일과 일상, 문화까지 둘러보고 있는데요. 문득 작가님은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요.

맛있는 음식은 내재적인 균형이 알맞아야 해요. 균형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단맛과 짠맛, 신맛, 쓴맛이 전반적으로 이루는 조화도 있겠지만 각각의 재료가 가진 균형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생각해 볼까요? 산미가 많은 원두에서 내린 커피라 신맛과 쓴맛이 나는데, 그 안에 과일의 향과 단맛이 숨어 있기도 하죠. 컵이 시스템이라고 말한다면 그 안에서 맛이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식사 시간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쉬는 날, 점심 메뉴를 정해야 한다면 무얼 드실래요?

음, 오늘 상태의 냉장고라면 지난주에 장을 보고 아무것도 못 만들어서 쓰지 못한 재료가 많을 거예요. 브로콜리도 있고 알배추도 있으니, 일단 브로콜리를 데치고 간만에 카레도 끓여 먹을 것 같아요. 그거 두 가지면 점심으로 충분할 듯싶네요. 끼니를 위한 요리는 30분 안으로 해결하곤 하거든요. 도마를 쓸 일이 있을 때는 키친타월을 적셔서 짠 후에 밑에 깔아두는 게 습관이에요. 아 참, 그리고 요리할 때 꼭 노래가 필요해서 인디 락 장르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두었어요. 이후에 해야 할 작업이 있다면 간식으로 당근이나 92퍼센트 다크 초콜릿을 먹을래요. 생각보다 되게 맛있거든요.

 

요즘에는 밥 먹는 게 귀찮아서 알약 하나로 대신하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아유, 저는 절대 안 해요(웃음). 아무 맛도 의미도 없는 것보다 제대로 차려낸 한 끼를 먹는 게 좋아요. 먹고 맛을 느끼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고요. 직접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요리를 사 먹거나 나눠 먹는 것도 좋아요. 좋은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공이 있는데, 그걸 내가 얻는다면 참 행복한 일 아닌가요?

 

그럼요. 저도 아무리 귀찮더라도 알약 한 알은 그다지 내키지 않네요(웃음). 작가님은 먹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잘 아는 분 같아요.

사실 저도 가끔씩 생활인으로서 밥 하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어요. 농담 삼아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 좀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거든요. ‘집밥예찬론자’는 더더욱 아니기에 어느 누가 ‘나는 절대로 죽어도 요리 못 해!’라고 생각한다면 억지로 설득할 마음이 없어요. 다만 내 삶을 내가 더 주도한다는 감각으로 요리해요. 음식에 대한 감각, 재료를 보는 안목, 일상을 챙기는 힘을 얻기 위한 행위인 거죠. 그리고 칼을 쓰고 불도 다루면서 그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되고요. 끼니를 위한 음식이 아닌 베이킹을 한다고 치면 뭔가 기술을 연마하는 느낌도 든답니다.

 

식재료 하나로 풀어낸 긴 대화가 거의 마무리되었어요. 이제 함께 망원시장에 가보기로 했는데, 자주 가는 가게가 있어요?

망원시장은 재미있어요. 요즘에 시장이 많이 없어지고 있어서 아쉬운데, 여기는 현대적으로 꾸며두고 관광객과 주민들로 북적이는 분위기라 좋아해요. 우선 시장 입구 쪽 청과 가게에 들러 딸기 같은 과일을 좀 둘러보려고요. 자주 가는 만두 가게에도 가고 야채 가게에서 콩과 풋마늘도 살 거예요.

 

장바구니도 잊지 않고 챙겨 왔으니 그럼 가볼까요?

좋아요!

숫자로 보는 요리

우리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더욱 알맞게 조리하는 법을 소개한 음식평론가 이용재의 책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그는 경험과 탐구를 거듭하며 평범한 하루의 끼니를 맛있게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아래 내용은 그가 저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한 ‘숫자로 보는 요리 팁’이다.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완성된 요리책의 핵심인 수치 정보 가운데 요긴한 것을 한데 모았다.

-18 / 4

차례대로 냉동실과 냉장실의 적정 온도. 시원찮다 생각이 든다면 온도계로 확인해 보자. 참고로 물이 끓는 것은 100도, 얼음이 어는 온도는 0도다.

-1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는 요령. 한 면을 굽고 뒤집은 다음 앞면보다 1분 덜 구워야 속까지 균형이 맞게 익는다. 덧붙여 구운 스테이크를 휴지(레스팅)할 때는 5분에서 10분 정도가 적당하다. 조리 열 때문에 수축된 고기의 근섬유가 수분을 머금게 되어 육즙을 덜 잃는다.

1000:35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오이 발효 피클의 물 대 소금 비율. 오이를 썰어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담고 끓는 물 1000밀리미터에 소금 35그램을 타서 붓는다. 뚜껑을 덮어 상온에서 하루 이틀 두면 국물이 탁해진다. 익기 시작한 것이니 그때부터는 냉장 보관하고 조금씩 꺼내 먹는다.

6:30

가장 맛있게 달걀을 삶을 수 있는 시간. 냄비에 달걀을 담고 찬물을 잠기도록 부어 불에 올린 뒤 끓기 시작하면 끄고 그대로 둔다. 6분 30초 뒤 건져 찬물에 담갔다가 껍데기를 깐다. 달걀흰자는 야들야들하고 달걀노른자는 가운데가 살짝 덜 익어 부드럽고 목이 메지 않는다.

3:1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스 중 하나로 꼽히는 비네그레트의 기름 대 산의 기본 비율. 소금과 후추, 마늘 등을 넣어 보다 세밀하게 맛을 조정하지만 우선 기름과 산의 비율만 맞춰준다면 드레싱의 농도와 맛의 큰 그림은 제대로 그릴 수 있다.

7-9 / 9-10 / 11-13.5

차례대로 박력분, 중력분, 강력분의 단백질 함유량을 퍼센트로 나타낸 숫자. 숫자가 커질수록 반죽을 만들었을 때 질겨진다. 셋 중 부엌에 한 가지만 갖춘다면 단연 중력분이다. 쓰임이 다양해 쿠키부터 수제비, 빵까지 두루 만들 수 있다.

Book —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이용재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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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