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나는 타이거라고 해!

타이거 디스코

안녕,
나는
타이거라고 해!

타이거디스코

‘안녕, 나는 타이거디스코야. 디스코 DJ지. 난 옛날 노래 튼다. 너희는 이런 노래 잘 모르지? 들어보니 어때? 좋지 않니? 같이 놀까?’ 그는 디제이 부스에 들어가기 전 늘 마음을 새로 가다듬는다. 그의 무대에는 단지 독특한 외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와 꼬박 하루를 다니며 그가 감춘 매력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개량한복 

지난 6월, ‘서울레코드페어’ 행사가 열린 한일물류창고에서 타이거디스코를 만났다. 그는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고, 멀리서 보기에도 ‘타이거디스코스러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어깨를 쭈뼛거리며 어색한 첫인사를 나눴다.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로 그를 촬영하고 도망갔다. 날씨가 많이 더웠고, 타이거디스코는 땀을 조금 흘렸다. 마침 담벼락에는 그의 한복 색깔과 같은 능소화가 활짝 피어있었다.

레코드 페어

페어가 열리는 창고 안을 어슬렁거리며 타이거디스코는 몇몇의 지인들과 인사했다. 생각보다 유명인처럼 보였다. 그곳에는 노래하는 가수도 있었고,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양평이 형도 있었다. LP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타이거디스코는 음질은 조금 떨어져도 앨범 재킷이 크고 잘 보인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크릿 웨폰Secret Weapon(비밀 무기, 희귀품)을 찾는 것 역시 그가 꼽은 LP의 매력 중 하나였다.

복고 

사실 타이거디스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몇 개의 확실한 이미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바로 ‘복고’다. 이대팔 가르마를 유지하는 것도 그렇지만 옷차림 역시 소위 ‘촌스러운’ 스타일을 고수했다. 복고는 타이거디스코의 생활 전체를 지배했다. 스타일, 자동차, 건축, 브랜드, 음악 등 모든 것이 과거에서 막 끄집어낸 듯한 모습으로 팔딱거렸다. 하지만 그건 주목받기 위해 일부러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사춘기 시절에 그는 나이키 운동화 대신 고무신을 신었다.

드렁큰 타이거디스코

타이거디스코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용산 기찻길 옆 이름 없는 술집이다. 그는 ‘기찻길’이라고 편의상 불렀다. 여느 때처럼 기찻길로 가려했는데 하필 그날 주인 부부가 싸우는 바람에 다른 포장마차로 가게 되었다. 곱창볶음과 홍합탕을 시켰고 소주를 네 병 마셨다. 그러다 불쑥 타이거디스코는 이런 종류의 인터뷰에 조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주업이 요리사(15년 경력, 육개장을 가장 맛있게 끓인다)라서 다른 전업 DJ들에 비해 말을 아껴야한다는 뜻이었다. 그에게는 항상 조심스러운 태도가 배어있었고, 동료 DJ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고급호텔 라운지 디제잉

택시를 타고 남산의 고급호텔로 갔다. 타이거디스코는 라운지 파티에서 음악을 틀 예정이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의 차림새 때문에 호텔 출입이 제한된 거였다. 파티 관계자의 설명으로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찜찜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음악을 틀었다. 한국 70~80년대 가요와 동요, 디스코 음악 등 그만의 독특한 선곡을 뽐냈다. 그는 즐거워보였다. 몇몇 사람들은 두 손을 하늘 높이 들고 마치 타이거디스코를 경배하려는 듯 열정적으로 춤을 줬다

여러분 디스코 좋아하십니까?

“예전에는 김흥국 선생님의 호랑나비 틀면 매니저가 달려와서 미쳤느냐고 했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불과 몇 시간 전 술자리에서 자랑처럼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약속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파티 분위기와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타이거디스코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리가 풀렸는지 벽에 기대어 한동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조금 슬펐고 서운했다. 어쩐지 볼이 빨개진 느낌이었다. 다음 날 타이거디스코는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여러분 디스코 좋아하십니까? 솔직히 전 너무 좋습니다.’

타이거디스코를 이해하는 몇 가지 키워드

득템

타이거디스코가 페어에서 고른 LP들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서) 디미트리 프롬 파리스Dimitri From Paris는 그가 무척 좋아하는 DJ 중 한 명으로, 마블 느낌의 재킷 사진이 예뻐서 골랐다. 언니네 이발관의 LP는 페어에만 한정 수량을 판매하는 제품이어서 더욱 소장 가치가 있다. 남궁옥분의 음악은 버스 안에서 처음 들었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는 정말이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곡이다. 분홍색 재킷은 일본 DJ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antastic Plastic Machine의 싱글 앨범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재킷과 내용물이 달라서 환불할 예정이다.

디스코

디스코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프로Afro 머리에 나팔바지, 허공을 찌르는 춤을 연상하자 타이거디스코는 조금 화를 냈다. 그는 몇몇 미디어가 디스코의 범위를 한정시켰다고 말했다. 더 깊고 넓은 세계가 있으며, 이미지 메이킹 된 것은 그것에 10분의 1도 안 된다는 말이었다. 사람과 가장 가깝고 편한 음악이야말로 디스코라며, 들을만한 뮤지션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를 골라주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처음엔 그저 외모가 독특하고 하는 일이 궁금해서, 한 번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 하는 생각으로 그와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오만한 태도였는지, 나는 이제 안다. 이 지면에 이야기된 타이거디스코의 얼굴은 단지 그가 가진 수백 가지 모습 중 일부일뿐이다. 한식 요리사, 디제이 크루 YMEA, 글렌체크 퍼포먼서, 화가, 술꾼, 그리고 미처 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세계 안에 있다. 그는 자신이 DJ로서는 실력이 한참 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만 그는 이미 터질 듯 부풀어버린 전자음악 무대에서 ‘유난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거였다. 타이거디스코는 다양성의 이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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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