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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1인 가구는 아플 만하네.’ 대전에서 산 지 햇수로 5년 만에 코로나 때보다 더 크게 앓았다. 일주일 사이 정형외과, 내과, 한의원을 번갈아 갔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프면 외로워서 더 서글퍼지는데 아픈 동안에 힘내서 병원에도 가고 시장에도 갔다. 여기선 움직일 힘만 있으면 사람들 있는 곳으로 직접 갈 수 있었다. 좋은 날이었다. 집 밖에 서 있기만 해도 따뜻한 기운이 몸으로 스미는 날이 이어졌다. 한눈팔면 이 시간이 사라질까 서울 친구네도 가고 고향 엄마네도 가고 산으로 들로 다녔다. 겨우내 굳어 있던 몸이 슬슬 풀리니 운동하는 재미도 늘었다. 고맙게 일도 많이 들어와 제법 바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에 샘이 난 걸까 통증이란 녀석이 어느 틈에 끼어들었는지 처음엔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손목에서 주먹 쥘 힘을 빼앗아 가더니 슬금슬금 온몸을 덮쳤다. 체력과 날씨가 맞아떨어지는 귀한 날이 한없이 이어질 줄 알고 무리한 탓도 있을 거다. 염증을 치료한답시고 체외충격파라는 걸 받았는데, 근육을 있는 힘껏 찢어지기 직전까지 늘여 펼친 뒤에, 원인이 되는 아주 작은 무언가를 콕 집어 뜯어내는 듯 짓이기는 듯 아팠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감기 몸살까지 겹쳤다. 발 디딜 힘도 없어 누워만 있기를 며칠, 겨우 걸음을 떼 병원에 가 주사를 맞았다. 집에 돌아와 내내 누워 식은땀을 흘렸다.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머리가 울리고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기침은 안 멈추고 손목은 계속 아팠지만 다시 걸을 만해지자 또 병원에 갔다. 그놈의 충격파를 한 번 더 받을 자신은 없어서 정형외과 대신 한의원으로 갔다. 팔과 다리에 침을 맞고 부항을 뜨고 마사지 방법을 배웠다. 여전히 힘들지만 조금씩 몸이 가벼워졌다.
“일할 때만 손 쓰고 평소엔 흔들지도 마세요.” 이런 조언도 도시 의사라서 가능한 것 같다. 아픈 부위를 안 쓰고 푹 쉬어야 낫지만 몰라서 그렇게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능청스럽게 위안과 지침을 주는 게 대전답다 생각했다.
상쾌한 아침 햇살과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고, 시끌벅적 신나는 야외 벼룩시장에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파는 역할은 친구한테 맡기고,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빠지지 않던 요가 수업에 결석을 알렸다.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면 집 밖으로 나와 동네를 걸었다. 정신이 번쩍 들게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지나, 구불구불 끝이 보이지 않는 입장 대기 줄 때문에 입구가 가려진 빵집을 지나, 대전천을 건너 중앙시장으로 간다. 아침에 조금 걷고 들어와 자고 저녁에 다시 나가 더 걸었다. 부산상회에서 딸기를 사고 삼양상회에서 아몬드를 샀다. 귀촌해서 시골에 살 땐 병원 가는 길이 멀고 험해서 어지간하면 아프지 않으려고 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사니 아플 일이 없었던 것도 같다. 어쩌다 혼자 골골 앓게 되면 옆 마을 사는 친구에게 읍내에서 약을 사다 달라 부탁했다. 친구는 기꺼이 차로 10여 분을 달려 약을 사다 주었고, 자기가 바빠 올 수 없을 땐 다른 친구에게 부탁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 있다가 ‘띵동’ 소리에 반가워 겨우 문을 열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서 있는, 당혹스러우면서도 고마운 기분이란… 시골살이는 그런 것이었다. 부족하면 사람이 직접 메꾼다. 사랑과 우정으로. 작은 동네에서 큰 동네로, 다른 도시로, 더 큰 도시로, 학교와 직장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산 지 10여 년이 지났을 즈음에야 살 곳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용기와 자원이 생겼다. 크고 복잡한 곳이 좋은 거라는 의심 없던 생각을 의심했다. 시골은 좁고 단순해서 아름다웠다. 마을과 읍내는 작았지만 세계는 넓고 풍요로웠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서로 진하게 사랑했다. 사랑이 부담이 되고 자연이 지루해지기 시작할 즈음 대전으로 이사 왔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원하는 삶터를 고르는 행운이 고맙다. 취향은 상대적이라 번잡한 도시가 싫을 땐 조용한 시골로, 적절한 소란이 그리울 땐 적당한 도시로 향한다. 대전은 시골 같기도 서울 같기도 한, 그저 그런 곳이었다. 이도 저도 아니어서 꼭 그만큼인 도시.
특별한 일 없이 가볍게 동네 산책을 나설 때 목적지는 중앙시장이다. 보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강변이나 맑은 공기에 휩싸이는 숲속이 좋은 산책 코스임은 틀림없지만 사람들 북적거리고 각종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 시장에는 다른 재미가 있다. 요즘 제철인 식재료는 뭔지,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유행하는 간식은 무엇인지, 사람들은 뭘 입고 뭘 사는지 등등. 특별히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한눈에 파악한다. 입구에서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는 단골 가게도 생겼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주택가에 자리 잡은 단정한 공원 테미동산, 집에서 조금 멀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보문산, 만경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도심 속 하천으로 손색없는 대전천으로 산책하러 갔다. 시골에서 느낀 맛 비슷한 걸 찾으려고 그나마 ‘자연’스러운 곳을 찾았지만 콩고기에서 소고기 맛이 나지 않듯 아쉬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비육식 대안은 그 자체로 맛있는 콩 요리였다. 대전다운 산책길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중앙시장이다. 복잡한 시내 길을 지나는 성심당 코스, 조금 한적한 길로 돌아가는 중교로 코스, 쭉 뻗은 대로를 따라 권력의 맛을 느끼는 중앙로 코스가 있다. 시장에 도착하면 간 김에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 사서 돌아온다. 생각보다 짐이 무거워지면 대전 공유 자전거 타슈를 빌려 탄다. 실용과 재미, 필요와 여가를 동시에 충족하는 산책이다. 아직 완쾌되지 않았으니 오늘은 가볍게 운동 삼아 걸었다. 은행동 지나는 길에 여전한 성심당의 인기를 확인하고 마치 내 일처럼 기뻐한다. 덕분에 대전이 들썩거리니 동네 사람이 빵 좀 못 먹는 불편은 감수할 만하다. 성심당 본점 골목은 으능정이거리와 만나는데 서울 명동 같은 원도심의 번화가로 겨울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서고, 각종 캠페인이 펼쳐진다. 거리 전체를 스카이로드라는 LED 영상 구조물이 덮고 있는데 썩 아름답진 않지만 비를 피하게 해주니 만족한다. 대전역 방향으로 계속 가면 차는 다닐 수 없는 다리 은행교를 통해 대전천을 건너게 된다. 작은 공연이 펼쳐지고 사주나 궁합을 보는 천막도 들어서 있다. 역시 별로 아름답지 않은 달 모양 조형물이 있는데 의외로 인기가 좋은지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은행교 너머에 나의 부산상회가 있다. 하도 자주 가서 많이 사니 어느 날엔가 사장님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카페 해요?”라고 물었다. 보통은 매일 먹을 사과를 사지만 지금은 들고 올 힘이 없으니 작은 딸기를 달라고 한다. 내 얼굴을 보고 사장님 얼굴에 짧은 미소가 스친다. 단골이라고 티 나게 챙겨주는 건 아니지만 알아봤다는 마음을 전하기에는 충분한 표정이다. 사장님은 여러 개 놓인 딸기를 이리저리 살펴보곤 잘생긴 놈으로 챙겨준다. 사과를 살 땐 얼굴을 빤히 보면서 하나 더 주기도 하고, 슬쩍 작은 사과를 하나 넣고선 “조금 말랐는데 서비스로 줄게요.”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직접 과일을 집지 않는다. 전문가 사장님이 좋은 놈으로 골라주리라 믿는다. 딸기를 들고 집으로 갈 힘이 다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돌아온다. 기운이 달리니 복잡한 시내 길 말고 사람들 덜 마주치는 중교로 코스를 택한다.
한숨 자고 다시 나선 두 번째 산책 목적지는 삼양상회다. 이번에는 대전역과 옛충남도청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중앙로 코스를 택했다. 옛 충남도청은 건축이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얼핏 봐도 뭔가 대단해 보이는 건물이다. 1932년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층 도지사 집무실에서는 대전역과 역까지 이어지는 중앙로가 훤히 보인다. 경부선 건설을 계기로 급부상한 신흥 도시 대전은 공주에 있던 도청까지 옮겨올 정도로 힘이 있었다. 도지사가 퍼레이드라도 하는 양 죽죽 뻗은 대로를 걸어 목척교까지 간다. 목척교를 건너면 바로 중앙시장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대전역까지 이르는 길에 과일이며 채소를 파는 노점이 있다. 견과를 파는 가게는 여럿이지만 한눈팔지 않고 삼양상회로 직행한다. 도착하면 사장님께 인사하고 아몬드 앞에 선다. 사장님은 반갑게 맞이한다. “세 개 섞어서 만 원어치? 뭐뭐였드라~” 마트에서는 기성품을 사거나 포장된 단위대로 사는 소극적 소비를 하지만, 시장에서 특히 얼굴을 익힌 단골 가게에서는 원하는 만큼 물건을 살 수 있다. 부산상회에서 만 원에 여덟 개 하는 오렌지를 반만 사는 경험을 여러 번 한 뒤에 다른 가게에서도 비슷한 요청을 할 배짱이 생겼다. 삼양상회도 부산상회처럼 부부 사장님이 가게를 보시는데 남자 사장님만이 봉지 하나를 아날로그 저울에 올려 세 가지 품목을 차례대로 담아주는 고급 기술을 쓴다. 망설임 없이 저울 위를 날아다니는 손이 마치 춤추는 것 같아서 보기만 해도 즐겁다. 여자 사장님이나 바쁠 때만 가끔 계시는 종업원님은 품목 하나씩 봉지에 담아 디지털 저울로 일일이 계량한다. 그럴 땐 나도 눈치가 있어서 각각 5천 원이나 만 원어치씩 산다. 오늘은 운 좋게 덤으로 망고 젤리, 코코넛 젤리를 한 주먹 받아 살살 빨아 먹으며 집에 왔다. 제 발로 걸어가 병원에 가고, 시장에 가서 딸기와 아몬드를 사 먹는다고 손목 통증이나 몸살 기운이 더 빨리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너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생활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지금의 대전살이가 좋다. 필요할 땐 기꺼이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할 친구는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필요하고 유용하다. 코로나로 집 밖을 나서지 못할 땐 배달 음식만으로 채울 수 없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친구에게 잠깐 집 앞으로 와 달라 굳이 청할 정도였다. 서울과 완주에서 그랬듯 대전에도 함께 모여 일하고 놀고 운동하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다만 대전에는, 어중간한 규모와 특징을 가진 나의 도시에는 필요한 만큼 다정하고 편한 관계들이 있다. 지인과 남남 사이, 고객과 친구 사이. 원하는 데까지 갈 수 있고, 원하는 데에서 멈출 수 있는 사이를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 기성품 말고 특별 구성으로.
글·일러스트 이보현